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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픽처] '미나리'는 '제2의 기생충'이 될 수 있을까

[빅픽처] '미나리'는 '제2의 기생충'이 될 수 있을까

SBS 뉴스

작성 2021.01.12 02:49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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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빅픽처] 미나리는 제2의 기생충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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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미국인 정이삭(Lee Isaac Chung·리 아이삭 정) 감독이 연출한 영화 '미나리'가 아카데미 시상식을 앞두고 미국 내에서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91년 아카데미 역사를 바꾸며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지 1년. 올해에도 미국 시상식에서 '복병의 반란'은 계속될 것인가.

'미나리'는 희망을 찾아 낯선 미국 땅으로 이민을 선택한 한국인 가족의 따뜻하고 특별한 이야기를 그린 작품. 미국 드라마 '워킹데드'와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에 출연했던 스티븐 연과 한국 배우 윤여정, 한예리 등이 주연을 맡았다.

이민자 가정에서 자란 감독의 경험담을 투영한 '미나리'는 지난해 2월 미국 선댄스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심사위원 대상과 관객상을 받으며 화제를 모았다.

선댄스 영화제는 독립영화 최고의 축제로 꼽히는 행사다. 이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받으며 '미나리'는 단숨에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이후 크고 작은 영화제 초청 및 수상 행진을 이어가며 아카데미 레이스에서 주목해야 할 작품으로 부각되고 있다.

2021년 제78회 골든 글로브 후보 발표는 2월 3일이며, 시상식은 2월 28일이다. 또한 제93회 아카데미상의 후보 발표는 3월 15일이며, 시상식은 4월 25일에 개최될 예정이다. 그 해 최고의 영화를 가리는 두 주요 시상식을 향한 경쟁작들의 장외 싸움은 이미 시작됐다.

연일 보도되고 있는 '미나리'의 수상 레이스와 아카데미 노미네이트 가능성은 막연한 장밋빛 전망이랄까. 아니면 근거 있는 설레발일까.
이미지 ◆ '미나리' 수확철이 다가온다…아카데미 입성 가시화?

영화의 제목인 '미나리'(MINARI)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한국을 떠나 낯선 이국에 정착하며 사는 한국인을 비유한 제목이다. 그도 그럴 것이 미나리는 물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자라는 식물이다. 물론 그 과정의 녹록지 않음이 영화를 보며 공감하게 되는 요소다.

이방인의 이야기가 미국에서 호평을 받고 있는 것은 영화가 가진 보편성 때문이다. '미나리'를 본 봉준호 감독은 "자전적인 이야기이면서도 노스탤지어에 젖어 있지 않다는 점이 좋았다. 여러 인물에게 시점이 분산돼 있고, 해설이나 내레이션이 나오지 않는 데서 생기는 거리감이 영화를 더 아름답고 보편적으로 만든 것 같다"고 호평했다.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에서 이 영화가 가지는 울림은 '당신들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나와 우리의 이야기'라는 보편적 공감으로 확장됐다.

지난해 2월 선댄스에서 시작된 '미나리'의 수상 행진은 해가 바뀌어도 계속되고 있다. 미들버그영화제 관객상과 배우조합상, 하트랜드영화제 관객상과 지미 스튜어트 공로상, 덴버영화제 관객상과 최우수연기상(스티븐 연), LA비평가협회 여우조연상(윤여정), 플로리다 비평가협회 각본상, 노스캐롤라이나 협회 각본상, 기념상, 여우주연상(윤여정) 등을 받았다.

아카데미 입성의 중요한 바로미터가 되는 4대 비평가 협회(LA비평가협회는 전미비평가협회, 뉴욕비평가협회, 시카고비평가협회) 중에서는 LA비평가 협회의 여우조연상(윤여정)을 받는데 그쳤지만 1월 중 열리는 전미비평가위원회상과 배우조합상, 작가조합상 등에서의 낭보를 기대해볼 만하다. 세 시상식의 결과는 골든글로브 시상식과 함께 아카데미의 노미네이트 향방을 점쳐볼 수 있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이미지물론 '미나리'를 지난해 '기생충'의 기세와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기생충'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을 시작으로 전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작품상 및 각본상 등 주요상을 빠짐없이 수거했던 것을 생각하면 '미나리'의 수상 레이스는 그에 미치지는 못한다. 감독 역시 신인에 가까운 인물이다.

그러나 다크호스의 면모는 충분하다. 미국 매체 '버라이어티'도 '2021 오스카 예상'에서 '미나리'를 작품상·감독상·각본상·주연상 등 주요 부문 유력 후보로 언급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지난해 미국에서 개봉한 영화의 편수가 절대적으로 작았고 넷플릭스 영화들이 강세를 보인다는 것도 '미나리'에겐 호재다. 미국 영화 시상식은 아직도 넷플릭스 영화에 대해 인색한 편이다.

'미나리'의 제작과 배급을 플랜B와 배급사 A24가 각각 맡았다는 것도 든든하다. 2001년 설립된 제작사 플랜B는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인 '문라이트', '노예 12년' 등을 배출하며 강호로 떠올랐다. 2012년 설립된 신생 배급사 A24는 '문라이트', '룸', '레이디 버드', '더 랍스터', '플로리다 프로젝트' 등을 배급해 아카데미에서 알찬 성적을 거뒀다. 두 파트너 회사가 전략적인 오스카 캠페인 수립과 충분한 예산을 투입한다면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 시상식 주요 부문 노미네이트 및 수상도 기대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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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영화인가 vs 외국 영화인가

'미나리'의 아카데미 레이스 행보에서 예기치 않은 이슈도 불거졌다. 미국 버라이어티는 지난해 12월 22일(현지시간) 골든글로브를 주관하는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가 최근 출품작에 대한 연례 심사를 마쳤다며 '미나리'가 외국어 영화상에 출품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해 논란이 불거졌다.

미국의 자본이 투입되고, 미국의 제작사가 제작을 맡았으며, 미국인 감독이 만든 '아메리칸 드림'에 관한 영화를 외국 영화로 분류하는 것은 차별이라는 여론이 영화계를 중심으로 확산됐다.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는 '대화의 50% 이상이 영어가 아닐 경우 외국어 영화로 분류한다'는 규정에 따라 '미나리'를 외화로 본다는 입장이다.

'미나리'는 한국에서 넘어간 이민자 가정의 이야기를 다루는 만큼 대부분의 대사가 한국어다. 그러나 대사를 이유로 미국 자본이 들어가고 주요 제작진이 미국인이 영화를 외국어 영화로 분류하는 것은 차별이라는 여론이 힘을 얻고 있다.
이미지중국계 미국인인 룰루 왕 감독은 자신의 SNS에 버라이어티의 뉴스를 인용하며 "나는 올해 '미나리'보다 더 미국적인 영화를 본 적이 없다. 그건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이자 미국에서 아메리칸드림을 추구하는 이야기다. 오직 영어만 사용하는 것으로 특징짓는 구식 규정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를 비판했다. 룰루 왕 역시 지난해 뉴욕에 사는 중국계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페어웰'를 만들었다. 평단은 이 영화를 지난해 가장 뛰어난 영화 중 한편으로 꼽았지만 골든글로브는 작품상이 아닌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미국 인기 드라마 '로스트'에 출연했던 한국계 미국인 배우 대니얼 대 김도 버라이어티 기사를 인용하며 "미국이 고국인데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골든글로브의 규정 중에는 외국어 영화상 출품작은 작품상 후보가 될 수 없다는 없다는 조항이 있다. 이 때문에 지난해 '기생충'도 외국어 영화상, 각본상을 수상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단 아카데미 시상식에는 이 규정이 없다. '기생충'은 아카데미에서 작품상과 외국어 영화상을 모두 받았다.

봉준호 감독은 지난해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외국어 영화상을 받으며 "서브타이틀(자막)의 벽을 1cm 뛰어넘으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다"는 인상적인 수상 소감을 남겼다. 세상의 모든 영화인에게 남긴 말인 동시에 아직도 유색 인종에 대한 보이지 않는 차별을 가하는 시상식에 대한 일침이기도 했다.

아카데미는 지난해 역사상 처음으로 자국 시상식에서 외국어 영화에게 작품상을 안기며 스스로의 한계를 깨는 선택을 보여줬다. 하지만 골든글로브는 여전히 시대 흐름을 역행하는 규정을 이유로 납득할 수 없는 판단을 하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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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으로 시의적절한 윤여정을 향한 관심

현실적으로 '미나리'가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부문은 연기상이다. 출연진 중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한국 배우는 윤여정이다. 윤여정은 '미나리'에서 흔들리는 가족을 따뜻하게 다독여주는 할머니 '순자'역을 맡았다.

윤여정의 첫 번째 미국 영화다. 앞서 홍상수 감독의 영화('다른 나라에서', '하하하' 등)를 통해 칸영화제에 초청을 받고 외신의 주목을 받기는 했지만 미국 영화를 통해 자신의 기량을 뽐냈다는 점에서 '본격 해외 진출'이라는 의미 부여가 가능하다.

윤여정은 대중이 중년의 여배우에게 기대하거나 공통적으로 발견해온 '한국의 인자한 어머니상'에서 벗어나 있다. 약간 냉소적이면서 은근한 따스함을 전하는 특유의 연기는 개성과 깊이 면에서 훌륭하다. 좋은 배우를 알아보는 눈은 인종과 언어의 장벽도 넘어서기 마련이다. 윤여정을 향한 미국 평단의 반응이 그것을 입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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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릴레이도 진행형이다. LA, 보스턴, 노스캐롤라이나, 오클라호마, 콜럼버스, 그레이터 웨스턴 뉴욕 비평가협회와 美 여성 영화기자협회, 그리고 선셋 필름 서클 어워즈, 콜럼버스 비평가협회에서 잇따라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트로피만 벌써 8개 째다. '맹크'의 아마다 사이프리드, '더 파더'의 올리비아 콜맨 등 쟁쟁한 후보를 제친 결과다.

누적 수상이 중요한 것은 "마땅히 받아야 할 연기", "이견 없는 결정"이라는 분위기를 만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각 시상식마다 심사위원과 심사기준이 다르지만 오스카 레이스에서의 수상 흐름은 시상식의 종착역인 오스카 입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수상 여부를 떠나 '미나리'는 윤여정이 해외 활동을 하는데도 교두보 역할을 톡톡이 할 것으로 보인다. 과거 미국 생활을 통해 영어에도 능통한 만큼 언어의 장벽도 없다. 여러모로 윤여정을 향한 시의적절한 관심이 아닐 수 없다.

(SBS연예뉴스 김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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