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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 신고했는데…"이럴 거면 왜 신고 받았나"

<앵커>

또 다른 아동학대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어른들이 뒤늦게 미안해만 하지 않도록 대안을 생각해보는 시간입니다. 은밀한 범죄인 아동학대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신고자, 제보자 역할이 매우 중요하죠. 학대 사실을 먼저 알아챌 수 있는 의사나 어린이집 교사가 신고 의무자로 지정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오늘(9일)은 아동학대가 의심된다고 신고했던 한 의사가 겪은 일을 통해서 아동학대 대응 체계의 문제점을 짚어보겠습니다.

조윤하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지난해 11월, 전북 순창에서 공중보건의로 일하는 A 씨는 눈 옆에 계란 만한 혹이 생긴 4살 아이를 진찰했습니다.

예사롭지 않은 상처에 정밀 검사를 당부했습니다.

[A 씨/전북 순창 공중보건의 : 아이의 얼굴 뼈가 골절됐을 수도 있고, 안구에 손상이 있을 수 있다. 안과랑 CT 검사 다 봐야 하니깐, 응급실로 가셔서 정밀검사 받으셔야 된다….]

그런데 병원 입구 안내직원을 통해 아이 엄마가 "아빠가 아이를 던졌다"고 말한 사실을 뒤늦게 들었습니다.

의사는 즉시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아이 상황과 건강이 궁금했지만 신고한 뒤로 A 씨는 소식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경찰은 학대 여부 판단의 핵심인 아이에 대한 의사 소견을 물어 오지도 않았습니다.

아이가 걱정된 의사는 보호자에게 직접 연락해 다시 정밀 검사를 받으라고 설득했지만 허사였습니다.

혼자 애태우는 사이 경찰의 실수로 최초 신고자의 신원이 아이 아빠 귀에 들어갔습니다.

"당신이 뭔데 신고하냐"는 협박이 날아왔습니다.

경찰 조사도 흐지부지, "학대 혐의가 없다"며 사건은 종결됐습니다.

[경찰 관계자 : 학대 없었는데, 애가 혼자 넘어진 거고. 문에 부딪힌 걸… 처벌할 수위, 그 정도 아닙니다.]

그러나 취재진이 확인해보니 "아빠가 아이를 던졌다"는 엄마의 최초 진술조차 경찰은 확인하지 않은 걸로 드러났습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의 대응도 부실했습니다.

아빠 행위에 고의성이 없었고 재발 방지를 약속한 점을 감안해 수사 의뢰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 아이는 뒤늦게 아동학대 사례 관리대상으로 지정됐습니다.

아이가 병원을 찾은 지 한 달 반이 지난 후였습니다.

[A 씨/전북 순창 공중보건의 : 되게 억울하고, 되게 외로웠어요. '나 혼자 해야 하는 싸움이구나', 또 다른 아이가 만약 아동학대 의심이 됐을 때, '내가 과연 신고를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더라고요.]

엄격한 처벌도 필요하지만 신고 의무자와 이웃의 관심, 관계기관의 유기적인 협조가 있어야 불행을 막을 수 있습니다.

(영상취재 : 김남성, 영상편집 : 원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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