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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내란 수괴' 트럼프…무엇이 지지자들을 괴물로 만들었나

[월드리포트] '내란 수괴' 트럼프…무엇이 지지자들을 괴물로 만들었나

김수형 기자 sean@sbs.co.kr

작성 2021.01.10 09:40 수정 2021.01.11 13:24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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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상 초유의 '쿠데타 미수' 사건…사면초가 처한 트럼프

지난해 최악의 코로나 사태와 격렬했던 인종차별 반대 시위, 사상 초유의 탄핵 사건 등 워싱턴DC에서 볼 수 있는 충격적인 사건은 거의 모두 경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착각이라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100년 만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능가하는, 200년 만의 의회 폭동 사태는 이걸 지켜보는 저 같은 외국인 기자의 눈에도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아무리 그동안 막무가내로 행동했던 트럼프 대통령이라고 해도 문명사회의 일원으로 지켜야 할 선이 있습니다. 충격적인 의회당 폭동은 내란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었고, 이를 부추긴 건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것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것이 영상으로 녹화돼 있고, 평소처럼 트럼프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일으켰던 평지풍파 가운데 이번 사태가 가장 파장이 컸고, 책임론 또한 거세게 일고 있습니다.

미 의회 의장 책상에 구둣발…단상서 트럼프 승리 선언도
미국 사회가 받은 충격은 어느 때보다 큰 상황입니다. 현지 시간 지난 6일, 의회 폭동 사태 당일에는 미국 지상파들도 정규 방송을 모두 끊고 상황을 생중계했었습니다. 정치권에서는 진보, 보수가 모처럼 한목소리로 트럼프 대통령을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결국 견디지 못하고 나와서 사실상 대선 패배를 시인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 연설에는 승복이라는 단어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승복하지 않겠다던 평소의 호언장담을 이런 식으로 소극적으로 지키면서도 결국 패배를 인정한 것입니다.) 그는 평화로운 정권 교체를 약속하고, 의회 폭력 사태 가담자를 강력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말잔치가 마지못해 나온 거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사건 당일만 하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은 의회로 가서 지지자들의 힘을 보여줘야 한다며, 극한 시위를 부추겼습니다. 폭력 사태가 벌어진 뒤에도 시위대는 특별한 사람들이라며, 사랑한다는 세심한 응원 메시지를 남기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일단 이런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일부 자기 지지자들까지 버리는 모양새를 취했습니다. 트럼프 음모론자들은 의회당을 습격한 세력이 극좌 세력인 '안티파'라는 주장을 또 근거 없이 하고 있는데, 이런 주장에 힘을 얻어 이번 폭동 세력은 트럼프 지지자를 가장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 합니다.

● 탄핵 추진에 수사에…임기 완주를 걱정 해야 하는 트럼프

수정 헌법 25조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직무를 정지 시키는 안이 거론되고 있지만, 펜스 부통령의 미온적인 태도로 실현되기 어려운 분위기입니다. 일단 실현되면 트럼프 대통령의 직무를 정지시키는 가장 빠른 방법이지만 현실적인 가능성이 크지 않습니다. 탄핵 추진 논의는 민주당에서 펠로시 하원 의장과 슈머 상원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지만 이것도 끝까지 잘 될지는 두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 사태는 지난해 탄핵 사건을 촉발 시켰던 우크라이나 스캔들보다 훨씬 범죄 혐의가 크지만,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가 너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바이든 당선인이 의지를 가지고 탄핵을 추진한다면 불이 붙을 수 있겠지만, 바이든이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취임식이 눈앞에 다가왔는데,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감당하기 어려운 큰 숙제를 안고 출발하는 상황 때문일 것입니다. 트럼프 탄핵을 추진하면 국정 동력이 분산될 게 뻔하고 정권 초기 가장 중요한 일에 집중하기 어려워집니다. 일단 급한 불을 끄는 데 탄핵은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탄핵은 그 자체로 정치 행위이기 때문에, 정치적인 부작용도 같이 고려해야 합니다. 지금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력한 트럼프 대통령 지지 세력이 탄핵을 계기로 똘똘 뭉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바이든 정부는 정권 시작부터 팬데믹이 아니라 트럼프의 그림자와 싸워야 할 수도 있습니다.

야간 통행금지가 내려진 미 의사당 주변에 주 방위군이 투입된 모습
의회 폭동 수사는 눈여겨볼 부분입니다. 이번 사태를 내란 음모 혐의로 수사하겠다는 셔윈 워싱턴DC 검사장 대행의 발표가 나왔습니다. 트럼프도 수사 대상이냐는 질문에 셔윈은 "혐의가 입증되면 모두 수사 대상"이라고 답변했습니다. 원론적인 내용이기는 하지만, 대통령도 기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는 읽을 수 있습니다. (워싱턴DC 검찰청은 웰컴 투 비디오 손정우 사건을 담당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트럼프가 가장 걱정하는 부분은 형사 기소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물론 임기 직전에 셀프 사면을 통해 수사의 예봉을 피하려 하겠지만, 그 행위 자체가 또 복잡한 정치적 파장을 낳게 될 수도 있습니다. 셀프 사면권을 행사해도, 적법성 논란이 벌어지면서 소송전이 벌어질 게 거의 확실합니다. 결국 법원까지 가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도 모르고, 사면권을 행사하는 것 자체가 스스로 사법적 잘못이 있었다는 걸 인정하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수사에서 의회 폭동 사태에 트럼프의 잘못이 있었다고 나오면 탄핵 논의가 급물살을 탈 수도 있습니다. 임기가 보름도 안 남은 대통령이 끝까지 백악관을 지킬 수 있을지 걱정해야 하는 딱한 상황이 된 겁니다. 난파선에 탄 참모들도 제 살길 찾겠다며 저마다 사표 내기 바쁜 상황입니다. 예전에는 트럼프와 호흡이 잘 맞았던 교통부 장관, 교육부 장관까지 사표 대열에 참여했습니다. 백악관, 내각의 주요 보직자 여러 명이 사표를 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기가 시간차 트윗 해고를 통해서라도 떠나려는 참모를 해고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직성이 풀렸는데, 부하들에게 이런 식의 버림을 받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듯합니다.

● 트럼프 연설 전후로 완전히 달랐던 시위 분위기

지난 6일(미국 시간), 미 상하원이 바이든 당선인을 대통령으로 확정하는 날 열렸던 트럼프 지지자들의 집회는 시작 부분은 평소 집회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날 집회는 트럼프가 오래전부터 지지자들을 불러 모았고, 심지어 전날 자기가 연설한다고 공지까지 했습니다. 현장에서 보니 평일인데다 날씨가 추워 사람이 많이 모이기 쉽지 않았는데도 흥행에는 상당히 성공했습니다. 지난해 11월 15일 처음 열렸던 대선 불복 집회만큼 엄청난 규모는 아니었지만, 지지자들이 컨스터튜션 애비뉴를 가득 채우고 워싱턴 모뉴먼트 언덕 위까지 서 있어야 할 정도로 사람이 많았습니다. 수만 명이라고 충분히 말할 수 있는 규모였습니다. 차로 몇 시간 씩 걸리는 다른 주에서 온 사람들이 많았는데, 대통령으로 트럼프를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 지지자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 의회 점령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방탄조끼에 가스총 스프레이 등으로 중무장을 하고 나온 트럼프 지지자들도 상당수였지만(DC는 진짜 총기를 다른 사람 눈에 보이게 휴대하면 체포됩니다.) 이런 무장한 복장을 워낙 좋아하는 지지자들의 성향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평소와 크게 달라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마스크를 쓴 사람은 여전히 거의 없었고 트럼프 깃발은 기본 소품처럼 거의 다 들고 나왔습니다. (코로나 관련해서 질문도 꽤 해봤는데, 백신 맞겠다는 사람이 드물었습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백신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있다는 걸 이번에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인터뷰할 때마다 대통령과 일체감이 너무 커 깜짝 놀랄 때가 많습니다. 사실 관계는 따져보지도 않고 거의 복사 수준으로 트럼프 발언을 따라하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특히 이번에는 법원 소송에서도 모두 지고 패배가 확정된 상황이었지만, 관련해서 질문하면 지지자들은 오히려 법원을 비난했습니다. 정치인의 팬으로 부정 선거가 있었다고 믿는다는데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근거로 거의 모두 페이스북, 유튜브에서 본 음모론을 말하니 더 이상 질문을 하는 게 무의미하다고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일부는 음모론을 신봉하는 신도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모뉴먼트 앞 잔디밭에 모여 있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이 진행될 때는 정말 조용했습니다. 트럼프의 연설을 경청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라 몰입도가 아주 높았습니다. 워낙 사람이 많아서 앞으로 조금 움직이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잘 안 보인다고 생각한 사람들 일부는 아예 나무 위에 올라가서 듣기도 했습니다. 너무 많이 올라가서 부러지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지지층 사이 트럼프의 지지 열기는 여전히 뜨거웠던 건 분명했습니다.

이날 트럼프의 연설은 지나치게 선동적이었습니다. 승복은 죽어도 못하겠고, 의회로 몰려가서 힘을 보여주자는 발언을 이어갔는데, 사람들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자극제 주사를 맞은 사람들처럼 씩씩거리며 의회 행진을 했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인터뷰를 해도 지나치게 적대적이었고, 외국 언론인데도 분노를 드러내는 사람도 꽤 많았습니다. 자유의 국가 미국에서 마스크는 왜 쓰는 거냐며 시비 거는 사람부터, 중국 언론사로 착각한 지지자들이 취재진을 향해 돌아가라며 욕을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대선 레이스 기간 꽤 많은 트럼프 지지자들을 실제 만나보고 인터뷰도 해봤지만, 이 정도로 거칠고 공격적으로 대응하는 사람들을 만난 건 처음이었습니다. (물론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일부 트럼프 지지자들은 친절하게 인터뷰에 응해줬고, 자기가 의사당에서 촬영한 동영상을 현장에서 클라우드 서비스에 올려서 쓰라고 건네준 사람도 있었습니다.)

트럼프가 지지자들에게 폭력을 사주한 게 맞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의회로 몰려가 힘을 보여주라는 것은 위력으로 헌법에 보장된 의회의 활동에 영향을 미치라는 지시입니다. 대통령의 지시는 일종의 공적 업무 지시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의사당에 난입한 사람들은 자기가 이런 행동을 해도 대통령이 뒤를 봐준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을 사면도 해주는 대통령인데 든든한 마음에 불법 행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했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선봉에 서서 기물을 부수고 들어간 사람들은 일종의 범죄 전문가라고 볼 수 있겠지만, 뒤따라 우르르 들어간 사람 가운데는 일반 시민도 많았습니다. 그냥 트럼프가 가라고 해서 갔고, 남들이 들어가니까 들어간다는 일종의 군중 심리가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의사당 안에 들어갔다가 나온 사람을 붙잡고 왜 거기 들어갔냐고 물어보니 답변이 황당했습니다. 하도 불법적인 일이 많이 진행돼서 의회에서 적법하게 일하는지 들어가서 확인하려는 것이었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의회의 주인이 국민인데, 주인이 자기 집 들어가는 게 문제냐는 단순한 논리였습니다.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이 여럿이었는데, 음모론 사이트를 통해 널리 공유된 내용이었습니다.

트럼프 지지자들, 미국 의회 난입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미 의원들 본회의장 좌석 밑으로 몸 숨긴 모습
의사당 진입 과정에 유리창을 깨부수고, 공성전 하듯 담벼락을 기어오르고, 의사당 안에서 경찰과 스트리트 파이트 하듯 주먹질을 하는 장면은 모든 사람이 느끼듯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경호원들이 총기를 발사하고, 최루탄을 쏘는 장면은 어느 나라에서 일어났어도 대서특필 됐을 사안입니다. 밤에는 주 방위군들이 방패로 시위대를 밀어내는 걸 또다시 경험했습니다. 현장에서 만나는 군인들은 경찰들과는 차원이 다른 위압감을 줍니다. 뭉그적거리다가 방패로 한 대 얻어맞아도 하소연도 못할 분위기입니다. 의사당 폭동과 진압 과정에 또 군이 투입된 것은 모두 미국의 수치입니다.

● 음모론 집착이 부른 참사…측근 모두 적으로 돌린 트럼프

하루에도 수십 개씩 부정 선거 증거라며 트위터에 음모론을 올렸던 트럼프 대통령을 보면서 '진짜 믿고 있나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정치 자금 수금이 목표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주변에 워낙 음모론을 신봉하는 사람이 많았고, 그들이 음모론을 동원해 자신의 패배를 부정해주는 것에 경도됐던 게 사실로 보였습니다. 트럼프는 언론이 아무리 부정 선거는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대중에게는 음모론으로 진실이 은폐된 것일 뿐이라고 선동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음모론에 대한 집착의 정도가 도를 넘는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결국 대선 결과까지 지지자들의 폭력 행위로 원하는 대로 탈취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게 큰 패착이었습니다.

트럼프
결과적으로 트럼프는 자신의 가장 충성스러운 부하 펜스 부통령을 적으로 만들었습니다. ABC 백악관 출입기자 조나단 칼도 트럼프에 가장 로열티가 높은 사람이 펜스라고 주저 없이 말하곤 했는데, 실제로 그동안 펜스는 거의 대다수 대중 연설에 트럼프 칭찬을 제일 앞에 넣어서 말하곤 했습니다. 대통령에 반기를 든 적도 없었고, 트럼프 부통령으로 시키는 대로 충직하게 직무를 수행해왔습니다. 하지만 상하원 회의에서 선거 결과를 바꾸라는 트럼프의 명령은 북한 수준의 독재국가가 아니면 실현 불가능한 얘기입니다. 부통령이 자기 마음대로 당선자를 선언할 수 있다면 뭐 하러 돈과 시간을 들여 대선을 치르는 거냐는 반문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당선을 확정 짓는 의회 회의에서 사회 역할을 하는 게 부통령입니다. 아카데미 시상식 상 발표하러 나온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수상자를 발표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런 민주주의의 기본조차 무시하고 자기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트럼프는 펜스를 비난했고, 의사당에 난입했던 지지자들은 "펜스를 교수형에 처해라"고 험악하게 외치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사에게는 충성을 다할 수는 없습니다. 펜스 부통령까지 등을 돌리면서 트럼프 주위에는 유명세나 돈, 사면 같은 대가를 바라는 음모론자들만 남은 상황입니다.

작년 한 해만 돌아봐도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수많은 기회가 있었습니다. 코로나 초기에 이 병의 실체를 인정하고 마스크 쓰기 한 가지만 강조했어도, 미국이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설사 지금과 똑같은 피해를 입었다고 하더라도, 코로나 피해자들에게 공감하고 그들을 조금만 더 위로했어도 이렇게 민심이 떠나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트럼프는 도저히 질 수 없는 대선에서 자신의 잘못으로 패배했습니다. 그리고 그 패배조차 인정하지 않고 무리수를 두다가 안전한 퇴임의 기회조차 날려버렸다는 역사의 평가를 받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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