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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법전에만 존재하는 법, 지금도 누군가 죽어간다

[인-잇] 법전에만 존재하는 법, 지금도 누군가 죽어간다

최정규 | '상식에 맞지 않는 법'과 싸우는 변호사 겸 활동가

SBS 뉴스

작성 2021.01.06 11:08 수정 2021.01.06 16:10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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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두 가지 법이 있다. 사람을 살리는 법과 죽이는 법. 사람을 죽이는 법을 우리는 '악법'이라고 부른다. 사람을 살리는 법은 그 법이 잘 시행되도록 힘을 실어야 하고, 사람을 죽이는 악법은 폐지되도록 힘을 쏟아야 한다. 2021년 새해에도 우리는 그 일을 해야만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를 암울하게 하고 허탈하게 하는 건, 사람을 죽이는 악법만이 아니다. 그건 바로 있으나 마나 한 법들이다. 법전에는 존재하나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법. 우리를 이런 법이 만들어지는 걸 막아야 한다.

작년 12월 20일, 캄보디아 국적의 이주노동자 속헹 씨가 경기도 포천의 한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속헹 씨의 죽음으로 인해 사회적 약자인 이주노동자의 삶이 세상에 알려졌다. 농지 한 가운데 설치된 비닐하우스 숙소에 거주하면서 일을 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은 약 2만 명이다. 그들은 이 한파를 막아 줄 숙소를 제공받지 못한 채 새해를 맞이했다.

비닐하우스 기숙사 캡처2019년에 외국인고용법이 개정되어 아래와 같은 조항이 신설되었다.

제4장 외국인근로자의 보호

제22조의2(기숙사의 제공 등)
① 사용자가 외국인근로자에게 기숙사를 제공하는 경우에는 「근로기준법」 제100조에서 정하는 기준을 준수하고, 건강과 안전을 지킬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본조신설 2019. 1. 15.]


이 법이 만들어진 이유는 2016년부터 이주노동자와 시민단체들의 외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

2017년 12월 부산의 한 공장 컨테이너 숙소. 이주노동자가 난방을 위해 전열 기구를 사용하다 화재로 숨진 사건. 그 해 여름 국가인권위원회는 건설업 이주노동자의 인권 증진을 위해 임시 주거시설의 주거환경 기준 마련 및 관리감독 강화를 권고하였고, 그 겨울 '이주노동자가 안전하게 겨울을 보낼 수 있도록 근로기준법 시행령(기숙사 부분)을 마련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국민청원에 386명의 시민들이 참여했다.

인잇 최정규법제처가 제공하는 이 법의 개정이유는 아래와 같다.

농·어업에 종사하는 외국인근로자의 위험하고 열악한 주거환경은 오래전부터 국정감사 및 다수의 언론보도를 통해 지적되어 왔음.

그러나 아직까지 비닐하우스 또는 컨테이너박스를 기숙사로 사용하는 열악한 실태가 개선되지 않고 있으며, 농·어업에 종사하는 외국인근로자들은 사실상 출퇴근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숙소 선택을 자유롭게 할 수 없는 실정임에도 기숙사 등 주거환경에 대하여 어떠한 사항도 규정하고 있지 않음.


그런데 이 법은 법전에만 존재했을 뿐,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속헹 씨는 위험하고 열악한 비닐하우스에서 숨을 거두었다. 지난 12월 24일 국과수가 발표한 직접 사인은 '간경화 합병증'. 이러한 사실도 속헹 씨의 열악한 주거환경을 가릴 수는 없다. 속헹 씨는 2016년 3월 한국에 입국한 뒤 간기능 검사를 포함한 엄격한 건강검진을 받았고, 그 건강검진을 통과했기에 작년 12월까지 한국에서 합법적인 노동을 이어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왜 이 법은 법전에만 존재하고
현실에는 존재할 수 없었던 것일까?


그 이유는 이 조항을 위반한 사업주에 대한 처벌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근로기준법 기숙사 조항에 의해 기준 미달 기숙사를 제공할 경우 사업주를 처벌하는 조항은 있지만 법정 최고형은 벌금 500만 원에 불과하고, 이주노동자가 고용되어 있는 농업 사업장은 상시 노동자 5인 미만 사업장이기에 그마저 존재하는 근로기준법 적용은 제외되어 처벌을 면하게 된다. 지키지 않아도 아무 처벌도 받지 않는 법을 엄격히 지킬 윤리적 선택을 기대할 만큼, 우리 농장주들의 삶은 녹록하지 않다.

2019년 외국인고용법에 신설된 '기숙사 관련 이주노동자 보호 조항'이 막아내지 못한 속헹 씨의 죽음 앞에 우리는 이렇게 외칠 수 밖에 없다.

"속헹씨! 미안합니다!"

인잇 최정규
중대한 인명 피해를 주는 산업재해가 발생하였을 경우 사업주에 대한 형사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법안(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현재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다. 2년 전 일터에서 목숨을 잃은 노동자 고 김용균씨 어머니, 4년 전 일터에서 목숨을 잃은 노동자 고 이한빛씨 아버지 등 많은 시민들이 단식까지 하며 이 법의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국회 과반 이상 의석수를 가지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임시국회 회기만료인 모레(8일)까지 무조건 이 법을 처리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의안정보시스템에서 확인할 수 있는 법안만 5개, 그리고 최근 정부는 수정안을 제시했다.

인잇 최정규
정부가 각 부처의 의견을 모아 내놓은 수정안은 '1명 이상 사망'의 중대재해 개념을 '동시 2명 이상 사망'으로 완화하고, 재해의 책임을 묻는 대상은 기업의 대표가 아닌 안전담당 이사로 국한하였으며, 벌금액과 징벌적 손해배상에도 상한선을 두었다. 또한 산재 사망에 취약한 건설 현장의 경우 책임 대상에서 원청을 제외했고, 법 적용도 사업장 규모에 따라 최대 4년까지 유예하자며 시행 시기도 늦췄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묻는다.

"법전에는 존재하나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법이 우리에게 또 필요한가?"

새로 제정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만큼은 산재공화국 대한민국에서 하루 6명 꼴로 사망하는 노동자들의 죽음을 막아낼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2019년 개정된 외국인고용법이 속헹 씨의 죽음을 막아내지 못했던 것처럼 새로 제정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노동자들의 죽음을 막아내지 못할까봐 우려스럽다.

정부와 국회는 지혜를 한데 모아 현실에 존재할 수 있는 법을 법전에 담아주길 다시 한번 촉구한다. 우리가 노동자들의 사망을 막아내지 못했던 이유는 법전에 담긴 법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현실에서 작동하는 법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기억했으면 좋겠다.

어제(5일)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합의된 처벌조항은 정부안보다 더 완화돼 정부가 제시한 "2년 이상 징역 또는 5,000만원~10억원 벌금'보다 징역형의 하한선을 낮추고 벌금형의 하한을 아예 없애는 "1년 이상 징역형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형'을 선고하도록 정했다.

처벌 강화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하지만, 기업의 특성상 '윤리적 선택'이 아니라 사망 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져야 할 형사 처벌, 지불해야 할 대가를 고려해 얼마만큼 안전을 위해 투자를 할지를 결정하는 '경제적 선택'을 하게 되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인잇 네임카드 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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