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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박근혜 사면'은 헌법적으로 불가능한가?

[취재파일] '박근혜 사면'은 헌법적으로 불가능한가?

임찬종 기자 cjyim@sbs.co.kr

작성 2021.01.04 09:30 수정 2021.01.04 10:44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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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이명박 전 대통령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건의하겠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언급하면서 새해가 밝자마자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여당 내부와 여당 지지층에서는 반대 의견이 압도적으로 우세하지만, 야당 쪽에서는 국민 통합을 위해 사면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습니다.

●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학계 주류 의견은 "헌법 해석상 불가"

그런데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이 적절한지에 대해 논의하기에 앞서 따져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헌법과 법률에 비춰볼 때 사면이 가능한지에 대한 문제입니다.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이 논란이 됩니다. 탄핵된 사람에 대해서는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헌법학계의 주류적 의견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대통령 사면권의 근거 조항을 살펴보겠습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사면권은 헌법 제79조 1항에 규정돼 있습니다. "대통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사면·감형 또는 복권을 명할 수 있다"는 조항입니다. 이를 구체화한 법령이 '사면법'과 '사면법 시행규칙'입니다. 그런데 사면법과 사면법 시행규칙에는 대통령의 사면권을 실질적으로 제한하는 조항은 없습니다. 사면법 등에서 규정하고 있는 법무부 사면심사위원회 역시 대통령에 대해 권고적 기능만 수행할 뿐입니다. 대한민국 헌법과 법률에는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를 실질적으로 제한하는 규정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가 헌법재판의 실무적 절차와 효력에 대해 공식적으로 설명해놓은 책자인 [헌법재판실무제요]에는 "탄핵결정을 받은 사람에 대하여는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가 제한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라고 적혀 있습니다.(제2개정판 456쪽) [헌법재판실무제요]는 "이에 관하여는 견해의 대립이 있으나, 명문의 규정이 없더라도 탄핵제도의 취지에 비추어 대통령의 사면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라고 강조하면서 탄핵결정을 받은 사람에 대해서는 사면할 수 없음을 명시한 미합중국 연방헌법의 사례도 참고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헌법재판소의 공식 연구기관인 헌법재판연구원에서 2019년에 발표한 "사면권의 한계에 대한 헌법적 검토"라는 연구보고서에서도 "헌법이론적인 한계에 비추어 본다면, 미국 연방헌법(제2조 제1절 제1항 후문)에서와 같이 명시적 언급이 없더라도 사면의 대상에서 탄핵 사건은 제외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보고서 작성을 책임진 이석민 연구관은 같은 글에서 헌법학의 원로로 꼽히는 성낙인, 정종섭, 허영, 권영성 교수의 헌법학 교과서도 모두 탄핵결정된 자의 사면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에 서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석민 연구관은 "탄핵은 예외적이고 중요한 헌법보장수단"이라서 이미 탄핵된 자에 대해 대통령이 사면권을 행사한다면 국회와 헌재의 헌법적 권한행사를 무력화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탄핵결정된 자의 사면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헌법학계의 주류적 견해라고 하더라도, 이것이 공무원에 대한 징계처분으로서의 탄핵 조치에 대한 사면이 불가능하다는 것인지, 아니면 탄핵의 원인이 된 사실관계와 동일한 사항에 기초한 형사재판의 결과에 대한 사면이 불가능하다는 것인지에 대해 논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 탄핵의 직접적 효과인 '파면' 이라는 행정처분에 대해서만 사면할 수 없는 것인지, 아니면 탄핵 사유와 사실상 같은 사실관계 때문에 기소된 후 형사재판에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것에 대해서도 사면할 수 없는 것인지가 문제입니다.

이에 대해 "사면권의 한계에 대한 헌법적 검토"를 쓴 이석민 연구관은 "형사재판의 대상이 된 것과 동일한 사실관계(same offence)가 이유로 된 탄핵이 이루어졌다면 탄핵제도는 예외적이고 중요한 헌법보장수단이기 때문에 이러한 이들에 대한 사면을 국회와 헌법재판소의 탄핵에 대한 권한을 직간접적으로 형해화할 수 있는 점이 있어 사면은 어렵다고 보아야 할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이를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에 대입해보면 대통령직 파면 조치라는 행정처분에 대해서 사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형사재판 결과에 대해서도 현직 대통령이 사면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문재인 대통령
● 문제가 있어도 대통령이 행사하면 막을 수 없어

그렇다면 문재인 대통령은 이미 헌법재판소에서 탄핵결정이 내려진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끝내 사면권을 행사할 수 없는 것일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설사 문재인 대통령이 사면권을 행사하더라도 이를 막을 수 있는 수단은 없습니다. 헌법학계의 주류적 견해는 탄핵결정된 자에 대한 사면권 행사는 잘못이라는 것이지만, 막상 대통령이 사면권을 행사했을 경우 이를 무효로 만들 수 있는 절차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단 대통령이 사면권을 행사하면 뒤집을 길은 없습니다.

사면권 행사는 대통령의 행정처분입니다. 행정처분을 중단시키기나 무효로 만들기 위해서는 법원이나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법원은 사면권은 대통령의 고도의 정치적 결단에 맡겨져 있는 '통치행위'로서, 통치행위의 성격상 원칙적으로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판단한 바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의 특별사면 조치가 위헌이라는 점을 확인해달라는 헌법소원심판에서 청구인들이 당사자로서의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각하한 적은 있습니다. 다만 이는 청구인의 청구인으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판단일 뿐입니다. 헌재는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가 헌법재판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판단한 것은 아닙니다. ("사면권의 한계에 대한 헌법적 검토"에서 인용)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례에 주목해 '탄핵된 자에 대한 사면권 행사'를 비판적으로 검토한 이석민 연구관은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도 당위적으로는 법원 또는 헌법재판소의 심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이석민 연구관도 현행법상 사면권 행사가 재판이나 심사의 대상이 되기 어렵다는 점은 인정했습니다. 사면권 행사에 문제를 제기하는 행정소송을 누군가가 제기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다른 사람을 사면함으로써 소송을 제기하려는 사람의 권리를 침해했다는 점이 인정되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이런 사례가 존재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헌법재판소의 헌법소원 절차 역시 마찬가지라고 이석민 연구관은 지적합니다.

결국, 헌법학계의 주류적 견해에 따르면 탄핵된 자에 대한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는 부당하고,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 역시 사후적으로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되어야 하지만, 일단 대통령이 사면권을 행사한 후에는 이에 대해 실질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절차는 현행법에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탄핵결정으로 파면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은 부당하는 것이 다수의 헌법학자들의 생각이고, 만약 사면권이 행사된다면 법원이나 헌재가 사후적으로 정당성을 심사해야 한다고 보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사면한다면 뒤집을 수 있는 방법은 실질적으로는 없는 것입니다. (물론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탄핵당한 자에 대해 대통령이 사면권을 행사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것도 사실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 '해도 어쩔 수 없는 것'과 '해도 좋은 것'의 차이

'해도 어쩔 수 없는 것'과 '해도 좋은 것'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습니다. 여러 차례 설명했듯이 다수의 헌법학자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처럼 탄핵결정된 인물을 대통령이 사면하는 행위는 사면권 남용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부적절한 행위라는 뜻입니다. 탄핵결정된 자에 대한 사면이 아닌 경우에도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의 특별사면 자체가 정치적으로 남용되고 있다는 문제제기가 수십 년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를 규제하는 법률적 절차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 역시 꾸준히 제기돼왔습니다. 사법부가 유죄를 선고한 사람을 행정부 수장이 사면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권력분립 원칙에 위배되며, 대통령의 사면권이 정당한 기준 없이 자의적으로 행사된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를 인용하여 박 전 대통령을 파면했습니다. 한 달 뒤 검찰은 탄핵과 사실상 같은 사실관계를 원인으로 해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구속기소했습니다. 추가 기소가 이어진 끝에 대법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재상고심 결과를 선고할 예정입니다. 이번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형이 확정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렇게 되면 문재인 대통령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사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 갖춰집니다.

이석민 헌법재판연구원 연구관은 헌재 결정례와 선행 연구를 종합해 사면권 행사의 정당한 목적을 세 가지로 제시했습니다. '(잘못된) 재판작용에 대한 시정', '형사정책적 목적', '사회통합'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나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법원의 재판이 잘못됐다고 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두 사람에 대한 사면이 대상자에 대한 교정이나 교화를 목적으로 하는 형사정책의 일환이라고 보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남은 것은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이 '사회통합'에 도움이 되느냐 뿐입니다.

언론 인터뷰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건의한다면 문재인 대통령은 결국 '사회통합'을 기준으로 삼아 사면 여부를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정치적 논란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사례가 거의 없는 헌법적 문제까지 극복하고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이 단행될 수 있을지, 두 차례 대통령 탄핵 재판 등을 통해 세계 헌법재판의 역사를 선도하고 있는 대한민국 정치가 과연 또 다른 리딩 케이스(leading case)를 만들어낼지 주목됩니다.

※ 본문에도 여러 차례 언급했지만 위 취재파일 내용 중 상당 부분은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연구원이 2019년에 발표한 "사면권의 한계에 대한 헌법적 검토"라는 연구보고서를 인용한 것입니다. 105쪽 분량의 해당 보고서 원문은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연구원'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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