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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기도의 힘

김창규│입사 21년 차 직장인. 실제 경험을 녹여낸 회사 보직자 애환을 연재 중

연말이다. 올 한해 코로나 때문에 큰 고난을 겪었지만 우리 지사는 적잖은 성과를 냈다. 매출, 영업이익 목표를 달성했고 위기는 있었지만 커다란 사고 없이 2020년이 마무리가 될 듯하다. 이만하면 이 어려운 시기에 선방한 것이리라. 하지만 마음 한 구석이 휑하다. 올해 내가 소원하던 2개 중 1개는 결국 안되었고 1개는 나쁘지는 않지만 완전히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서 그렇다. 역시 세상 살면서 원하는 것 모두 되지 않음을 다시 깨닫고 스스로를 위안하고 있는 중에 친한 지사장에게 전화가 왔다. 기쁨에 찬 흥분된 목소리였다.

"연말에 인사이동 있는 거 알죠?"

"예."

"나 드디어 이동해요. 그때 말했던 점쟁이 말이 맞았어요. 올해 책상을 세 번 옮긴다고 했는데 이번에 발령이 나면 정말 세 번째거든요. 거 참 신통하네요."

나는 "아, 그래요. 정말 신기하네요" 하며 맞장구를 쳐 줬다. 전화를 끊고 나는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점쟁이 말이 맞았다며 나한테까지 전화를 하다니. 이건 아마도 자신이 지금의 자리가 너무 싫어서 다른 곳으로 옮기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을 했었는데 늦었지만 연말에 마침내 본인의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니 그런 것 같다. 하지만 그의 즐거움은 나의 슬픔을 배가시켰다. 어쨌든 그는 소원을 이룬 것이고 나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 이유가 뭘까? 이래저래 고민하다가 '혹시 소원에 대한 절실함이 부족해서 그런 건가' 생각이 문득 들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정말 그런 것 같다. 조금 전 전화 온 지사장과는 달리 나는 '내 소원이 이루어지면 정말 나한테 좋은 건가'라는 의구심을 수없이 제기했기 때문이다. 즉 확신이 없이 소원을 빌었으니 그 소원이 이루어질 리가 없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출간된 지 꽤 오래됐지만 <시크릿>이라는 책이 떠올랐다. 이 책의 주된 내용은 사람이 정말 온 정성을 다해 소원성취를 기도하면 온 우주가 그것에 대한 답을 준다는 거다. 여기서 기도는 종교적 의미의 기도 방식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일기에 바라는 것을 매일 기록한다거나 그림으로 소원을 표현하는 등의 행위로 진력을 다해 원하는 바를 하늘이 알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하여 소원성취된다는 것.

예로부터 피그말리온 신화가 전해져왔다. 피그말리온 신화는 세속적 여인을 싫어했던 피그말리온이 자신이 손수 만든 여인 조각상과 사랑에 빠져 아프로디테 여신에게 그 조각상이 여인이 되게 해 달라고 피가 마르게 기도해서 그 소원을 성취했다는 얘기다. 진심으로 기도하면 조각상이 인간이 되듯 우주가, 하늘이, 조물주가 해 준다는 거다. 엉터리 주장 같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경험상으로 보면 '기도발'은 있음은 확실한 것 같다. 그렇다면 왜 있는 것일까?

틱낫한 스님은 기도에 믿음, 자비, 사랑의 에너지가 들어 있다고 말했다. 그 에너지가 타인을 향한 자비이든 세상을 향한 믿음이든 자기 자신을 향한 사랑이든 그 힘은 무언가를 바꿔 놓는다. 특히 다른 건 몰라도 기도하는 자기 안에서는 분명 변화가 일어나게 마련이다. 그래서 참된 기도를 하면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몸짓 하나하나에 '마음 챙김, 집중, 깨달음'이 함께 한다. 여기서 마음 챙김이란 지금 이 순간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깨어 있는 의식으로 온전히 알아차리는 것을 말한다. 어떻게 보면 지속적인 자기와의 문답으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아는 것이라도 하겠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에 대해 집중하면 뭔가를 깨닫는다.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게 해 주는 방법과 그것을 실행할 수 있게 하는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다. 이 주장은 무슨 문제 해결에 골몰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 길과 답이 보이는 경험을 체험해 봤던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인정할 것이다.

기도 (사진=픽사베이)

위의 내용을 내 기준으로 재해석하면 '기도'는 내적으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하고 그것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깨달음을 얻게 한다. 그리고 그 깨달음 역시 기도를 통해 내 바깥에 있는 하나님, 부처님, 하느님, 조상님 그가 누구든지 간에 그와 연결되어 내 노력과 초월자의 섭리로, 우리 눈에 보이는 대로 말하면 우리의 기도는 이루어질 때도 있고 이루어지지 않을 때도 있으나 궁극의 차원에서 봤을 때 진실한 기도는 어떤 식으로든 이뤄진다는 것이다.

이제 곧 새해다. 코로나 때문에 새해 소원을 예전처럼 한 해의 시작 날에 첫 일출을 보며 기원하지는 못할 것 같다. 하지만 그게 뭐가 대수인가. 참된 소원을 비는 것은 장소와는 상관이 없으니 말이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내가 진실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틱낫한 스님이 말씀대로 참된 기도를 해야 한다. 아무튼 새해 첫날, 그리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참된 기도로 도출된 그 참된 소원을 피그말리온처럼 지극정성으로 빌어야겠다.
 
인잇 필진 네임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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