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인-잇] 저승사자의 고민

[인-잇] 저승사자의 고민

시골소방관 심바씨 | 마음은 UN, 현실은 집나간 가축 포획 전문 구조대원

SBS 뉴스

작성 2020.12.30 11:00 수정 2021.01.05 16:52 조회수
프린트기사본문프린트하기 글자 크기
주간 근무 종료 40분 전 출동벨이 울렸다.

"아. 쫌…" 나도 모르게 마음의 소리가 입 밖으로 새 나왔다. 우리도 사람이기에 퇴근 전 출동이 그리 반갑지 않다. 이상하게 요 시간대에 산악 출동이 걸린다. 퇴근 직전에 산악 출동이라도 걸리면 집에서 잠 잘 생각은 일찍 접고 출동 다녀와서 무슨 라면 먹을지 고민부터 한다. 힘든 건 둘째치고 기본 5시간은 걸리는 출동이기에 말이다. 사무실 문 열고 나오면 보이는 흔한 앞동산이 우리는 지리산이다. 바퀴 달린 의자를 질질 끌고 출동지령 모니터 쪽으로 가보니 다행히 동물 관련 출동이다. 아파트에 유기견이 한 마리 돌아다닌다는 내용이었다.

"급한 거 아니니까 일단 상황 어떤지 한번 전화해봐." 구조대장님이 말했다.

"안녕하세요. 여기 남원소방서 구조대인데요. 지령서 보니까 유기견이 돌아다닌다는데 정확히 상황이 어떤가요?"

"여보세요! 아니 그게 아니고요. 강아지가 집을 잃어버려서.. 제가 지금 안고 있는데요. 꼭 좀 집 찾아주세요."

수화기 너머로 초등학생쯤으로 들리는 목소리의 신고자가 사정을 말해주었다. 조금 싸한 느낌이 들었다. 신고자의 의도와 구조대의 업무랑 전혀 다른 색을 띠고 있기 때문이었다. 쉽게 말해 우리는 유기견의 집을 찾아주는 기관이 아니다. 물론 도움은 준다. 유기견 신고를 받고 출동을 하면 우리가 시청 축산과에 인계를 한다. 그러면 축산과는 유기견 보호센터에 보내고 공고를 띄워 주인을 찾을 수 있도록 한다. 하지만 열흘의 기간 동안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유기견은 안락사를 당하게 된다. 현실은 우리가 잡아서 인계하는 대부분의 유기견들이 안락사를 당한다. 개들 입장에서 우리는 저승사자인 셈이고 지금 이 초등학생은 갑자기 나타난 수호천사와 같은 상황인데, 수호천사가 아직 세상 물정을 몰라서 저승사자한테 연락을 한 것이었다.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


개들 입장에서는 우리는 저승사자인 셈인데... 번지수를 찾아도 잘못 찾았다.
"저기 대장님. 신고가 좀 이상한데요. 이게 의도가 좀 다른 거 같은데 어쩌죠?"

"어쩌긴 뭘 어째. 다녀와."

산악구조차를 선임 반장님과 동기, 나 이렇게 셋이 나눠 타고 길을 나섰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도착을 해서 경비 아저씨께 여쭤보니 얼마 전부터 하얗고 큰 개 한 마리가 주인을 기다리는 건지 찾는 건지 관리소 주변을 배회하고 있다고 한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건물 옆에서 초등학교 여학생 3명이 우리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다가왔다. 가운데 아이의 품엔 진짜 하얗고 큰 개 한 마리가 배를 보이고 아기처럼 안겨 있었다. 두 앞발을 접어 가슴 쪽에 살포시 놓고 안겨있는 폼이 제법 사람 품에 안겨본 개였다.

"소방관 아저씨 이 강아지 집 좀 찾아주세요."

누가 봐도 개인데 이 수호천사들의 눈에는 한없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강아지로 보였나 보다. 개를 땅에 내리고 보니 유기견이라기엔 너무 사람 손을 많이 탄 개였다. 짖을 생각은 아예 없는 것 같고 우리가 다가가도 전혀 경계하는 몸짓이 없었다. 보통은 우리가 다가가면 도망을 간다. 개들은 후각이 발달해서 우리 장갑이나 장비에서 나는 다른 개들의 냄새를 맡고 미리 거리를 둔다. 한데 이놈은 그럼에도 우리 쪽으로 오는 게 우리가 주인을 찾아줄 사람이라고 생각을 한 것 같다. 아니면 너무 곱게 자라서 이 아이들처럼 세상 물정을 너무 모르거나 말이다. 개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동안 아이들의 폭풍 질문이 이어졌다.

"아저씨 이 강아지 집 꼭 찾아주시는 거 맞죠?"

"그렇지~ 아저씨가 하는 일이 그건데."

"강아지가 어려서 집을 몰라서 못 찾아주면 강아지는 어디로 가요?"

"그럼 유기견 보호센터라는 곳으로 보내서 주인이 알아볼 수 있게 사진을 인터넷에 띄워놔."

"만약 주인이 안 나타나면 어떻게 돼요?"

"어.. 그게.. 일단 센터에 강아지들하고 같이 지내면서.."

"죽어"

갑자기 나타난 선임 반장님이 말을 가로챘다.

"아니. 반장님 그렇게 솔직하게 말씀을 하시면 어떻게 해요?!"

"애들도 알건 알아야죠. 얘들아 개 주인 안 나타나면 병원에서 안락사시켜."

그 말을 들은 아이들은 난리가 났다. 두 아이는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아까 보다 더 많은 질문들을 쏟아내었고 개를 안고 왔던 초록 티를 입은 아이는 울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비록 천사 같은 아이들의 동심을 단박에 파괴해버렸지만 선임 반장님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이들도 그 사실을 알고 받아들여야 하는 게 맞다. 어쩌면 동물을 사랑할수록 그 말을 뼛속 깊이 통감하며 자신이 키우고 있는 반려동물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개 목엔 낡고 해어진 목줄이 걸려 있었다. 주인을 찾고 있는 듯 서성거렸다는 경비 아저씨의 말에 요 근래 주인이 버리고 갔나 보다 생각을 했는데, 낡은 목줄을 보니 주인을 찾는 것이 아니라 많은 날들을 밖에 떠돌며 누구라도 주인이 되길 기다렸는 듯 보였다. 어느 누구라도 머리를 쓰다듬어주길 기다렸고 안아주길 기다렸던 것이었다.

시청 축산과에 개를 인계하기 위해 시청 건물 뒤편으로 이동했다. 거기엔 조랑말도 들어갈 만한 커다란 철재 케이지가 있었다. 개를 안고 구조차에서 내려 케이지로 가는데 조용하고 착했던 개가 발을 바둥거리며 질색팔색을 했다. 케이지에 들어가지 않으려 버티는 개를 구조대원 둘이서 미안하다 말하며 힘으로 밀어 넣었다. 차에서도 가만히 앉아 말을 잘 듣던 놈인데 케이지 앞에 오니 본능적으로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았던가 보다. 주인 찾아주는 줄 알았는데 자유마저 빼앗은 우리에게 배신감이 들지 않았을까. 축산과 직원의 말이 요즘 구조대의 활약이 눈부신 건지, 세상이 각박해진 건지 유기견이 너무 많아서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 더 이상 없다고 했다. 보호센터가 포화상태이기 때문에 동물병원에 사정해서 맡기기도 하고 때론 안락사 조기 집행도 감행을 해야 할 실정이라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은 우리에게 친구가 되어달라고 손을 뻗지 않았다. 꼬물꼬물 거리는 생명체에게 우리가 그들의 엄마가 되길 원했고 친구가 되어주길 바랐다. 인간 엄마의 밥과 사랑 덕분에 아주 튼튼하게 장성하여 똥도 굵직하게 싸게 되었는데 더 이상 귀엽지 않다는 이유로 혹은 감당하기 힘들단 이유로 버림을 당한다. 그 버림이란 게 생각보다 더 잔인하다. 인간에게 길들여져 자연에서 살아가는 법을 잃어버린 그들은 산과 들을 돌아다니다가 민가로 내려와 버려진 상한 음식을 주워 먹으며 연명을 한다. 맘 좋은 식당 아주머니라도 만나면 당분간 정기적으로 밥을 얻어먹지만 곧 주민들의 신고로 구조대가 출동하여 잡아들인다. 언젠가 출근해보니 간밤에 잡혀온 개가 구조대 이송장에 갇혀 있었다. 뼈만 앙상하게 남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창고에 있는 애완견 간식을 그릇에 담아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끼니를 챙겨주는데 참.. 마음이 복잡했다.

우리 119 구조대는 유해 동물들을 포획하고 있다. 민가로 내려와 밭을 엉망으로 만들고 가는 멧돼지, 닭들을 물어 죽이는 족제비, 고라니, 뱀 등 국민들의 삶에 위협을 가하거나 해를 끼치는 녀석들을 잡아들인다.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위협하는 유기견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에게 버려져 밥 빌어먹고 다니는 유기견을 잡아달라는 요청 건이 주를 이루고 있다. 어떤 현장에선 자신이 키우던 개가 더 이상 컨트롤이 되지 않아 죽여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한다. 국민의 요구에 응답해야 하는 기관이지만 그럴 땐 진심으로 고민이 된다.

최근 반려동물에 대한 관심이 대단하다. 반려동물의 밝은 면이 있다면 이런 어두운 면도 존재한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우리가 위험하다고 신고한 동물들도 한때는 우리의 가족이었고 친구였음을 기억하며 지금 키우고 있는 반려동물에게 좀 더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이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인-잇 #인잇 #시골소방관심바씨

# 본 글과 함께 읽어 볼 심바씨의 '인-잇', 지금 만나보세요.

[인-잇] 교통사고 현장에서 내 아버지의 손을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