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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적북적] 저 창밖 모퉁이마다 잠든 매혹 '뉴욕 미스터리'

[북적북적] 저 창밖 모퉁이마다 잠든 매혹 '뉴욕 미스터리'

권애리 기자 ailee17@sbs.co.kr

작성 2020.12.27 07:07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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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북적북적] 저 창밖 모퉁이마다 잠든 매혹 뉴욕 미스터리


[골룸] 북적북적 272 : 저 창밖 모퉁이마다 잠든 매혹 '뉴욕 미스터리'

"이 상황이 지금 뭐 같은지 아세요? 무슨 옛날 브로드웨이 스릴러 같아요! <가스등>, <다이얼 M을 돌려라>, <쥐덫>. 레빈이 <데스트랩>을 통해 경의를 표한 바로 그 장르요. 누군가 살해당하고, 극이 진행되면서 관객은 단서들을 얻게 되지만, 해답은 늘 보기보다 복잡하죠."
(<함정이다!> 中)

크리스마스, 어떻게 보내셨나요. 크리스마스이브 한때, 대형 포털의 실시간 검색 1위가 '오프너 없이 와인 따는 법'이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5명 이상은 모일 수도 없는 시기,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에서 가족들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려던 와중에 나타난 해프닝 아닌 해프닝이겠죠. 여러 가지로 작년 이맘때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연말입니다.

저는 자가격리 중입니다. 이번 주에 뉴욕에 도착했습니다. 뉴욕은 미국 바깥에서 오는 사람들뿐 아니라, 미국의 다른 주에서 넘어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2주간 자가격리를 명하고 있습니다. 제 격리도 새해가 돼야 끝납니다. 떠나오기 전에 "이 시기에 뉴욕을 가서 어쩌냐."고 주변 사람들이 걱정을 많이 했고, "그래도 어쨌든 뉴욕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아보겠네?"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요. 그냥 트리 전구가 반짝이는 걸 바라보면서, 집에 있습니다. 그리고 격리 중이라 자세한 건 알 수 없지만, 공항에서 집까지 오면서 언뜻 봐도 이 도시 역시 예년 같은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결코 아닌 걸로 보여요. 이전에 몇 번 연말 언저리에 미국에 있었을 때는, '미국 사람들은 정말 크리스마스란 걸 삽으로 떠다가 여기저기 막 끼얹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는데요. 올해는 확실히 그 정도는 아닙니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도 보기 힘들고요. 저는 1년 동안 여기 있을 예정이고, <북적북적>엔 계속 참여합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소식 들었어? 비행선 계류탑을 달 예정이래. 지상 4백 미터 상공에서 탑승객들을 태우고 내릴 수 있게 된다고."
"정신 나간 소리 같은데요. 바람은 어쩌고요?"
"다 알아서들 하겠지."
"그래요." 나는 말했다. 물론, 결국 실현되진 않았지만, 나보다 똑똑한 사람들은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셉, 난 브로드웨이로 돌아가야겠어. 직접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사람들 앞에서 연기하고 싶다고. 스튜디오 기술자들 앞에서가 아니라. 그리고 그 건물을 보고 싶어."

(<브로드웨이 처형인> 中)

이번 주에 함께 읽어보고 싶은 책은 우리나라에선 지난 2016년에 출간된 <뉴욕 미스터리>입니다. 1945년 뉴욕에서 회원 10명으로 시작한 미국추리소설가협회가 지난 2015년 창립 70주년을 맞아 최근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회원 17명으로부터 뉴욕 곳곳의 명소들을 배경으로 한 단편을 하나씩 받아서 엮어낸 책입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나 타임스퀘어처럼 대부분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름, 한 번쯤은 영화에서라도 보았을 곳들을 배경으로 음모와 범죄, 단막 누와르와 치정극이 펼쳐집니다.


"포입니다."
"뭐가?"
창백한 남자가 앙상한 손을 내밀며 다시 말했다.
"포. 제 이름이요. 에드거 앨런 포. 선생님은요?"

(<더할 나위 없는> 中)

뉴욕은 많은 것들의 요람이었지만, 추리소설의 역사에 있어서도 일정 이상 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메리 히긴스 클라크를 비롯해 이 책을 펴낸 미국추리소설가협회도 뉴욕에서 시작됐고, 에드거 앨런 포가 그 유명한 <the Raven>을 비롯한 작품들을 쓸 당시 살았던 곳도 뉴욕입니다. 대학 졸업 후 처음으로 일을 쉬고 재충전할 수 있는 시간을 1년 갖게 되면서, 그 1년을 보내게 된 도시를 소재로 한 작품을 읽어볼까 했던 게 물론 –당연히 짐작하셨겠지만- 이 책을 집어 든 첫번째 이유입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면서 문득문득 '추리소설이란 이 얼마나 낭만적인 장르인가' 새삼 강렬하게 그리운 기분을 느꼈던 게 이 책을 이번 주에 북적북적 가족 여러분과 함께 읽고 싶은 책으로 고른 이유가 됐어요.

"비치는 뭐에 홀린 듯이 피아노 앞으로 다가갔어.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떠올랐지. 외로움, 그리움, 산산조각 난 꿈의 견딜 수 없는 무게. 술집 매니저가 올 때까지도 자기가 큰소리로 노래하고 있다는 걸 몰랐던가 봐. 말랐지만 강단 있어 보이는 남자는 '차스'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었대. 비치는 그가 자신을 쫓아낼까 봐, 경찰이라도 부를까 봐 무서웠지. 하지만 매니저는 목소리가 마음에 든다며 공연을 해볼 생각이 없는지 물었어.

…… 곧 팬들도 생겼어. 처음에는 룸메이트들이랑 같이 살았는데, 머지않아 혼자 살 수 있는 형편이 됐지. 이십대 초반에는 플라자 호텔이랑 상류층 파티에서 노래를 부르게 됐어. 화려한 행사에 자유롭게 출입하고, 옷장에는 아름다운 드레스가 가득하고, 구혼자들도 넘쳐나고. 본인조차 믿기 어려울 정도로 삶이 완전히 바뀐 거야. 신데렐라가 된 기분이었다더라고. 넘쳐나는 돈이 정신을 몽롱하게 만들었지만, 언제든, 12시 정각이 찾아오면 신데렐라처럼 환상이 깨질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기분 말이야."

(<서턴 플레이스 실종 사건> 中)

범죄, 치정, 음모, 계략, 아찔한 상승과 까마득한 추락,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일어날 만한 그럴싸한 배경…. 추리소설이란 장르는 역설적인 낭만과 강렬한 감정들이 듬뿍 배어나는 장르죠. 형제 격인 –또는 종종 더 이상 구분되지 않는- 첩보물과 스릴러를 아우른다면 더더욱요. '협회 창립 70주년'을 기념해 만들었다는 이 단편집에 참여한 작가들은 추리소설의 이 같은 낭만성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을 거의 노골적으로 담은 작품들을 내놨습니다. 추리소설 나름의 이런저런 전통적인 기법이나 이 장르를 만들어간 사람들에 대한 흠모가 곳곳에서 진하게 묻어납니다. 특히 '뉴욕'을 같이 기리고 있는 만큼, 이 도시에서 태동하거나 절정기를 맞았던 문화와 '글래머'에 대한 향수, 복고적인 풍취가 가득해요.

이번에 뉴욕으로 오면서, 오랜만에 공항을 이용하게 됐습니다.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그토록 텅 빈 공항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반쯤 빈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짐작도 못했던 시절을 살고 있구나' 새삼 쓸쓸한 마음을 억누르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이번 주에 함께 읽고 싶어 졌어요. 뉴욕이든 어디든, 우리가 예전에 알았던 그 세계. 전처럼 누리기 힘든 바깥세상을 그린 작품들의 분위기에 젖어서 잠깐이라도 '지금'을 잊어보면 어떨까. '현재'를 떠나 적당히 편안하면서도 은근히 긴장되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기에 안성맞춤인 작품들입니다.

"난 에드워드 호퍼가 <나이트호크>를 여기서 그렸다고 생각합니다."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中)

잘 쓴 추리소설은 그야말로 쾌감 덩어리죠. 유머감각이 적당히 얹혀 있으면 금상첨화고요. 그런데 발췌 낭독은 정말 어렵습니다. 일단 제일 결정적인 대목들은 모두 스포일러라서 읽을 수가 없고요. 가장 흥미진진한 대목을 찾아 읽어도, 왜 여기가 흥미진진한 대목이 되는 건지 결말을 보지 않을 사람에게는 알릴 방법이 없어요! 그래도 자꾸만 도전해 보고 싶어요. (이 얘기들이 어떻게 이어지는 건지, 직접 찾아서 알아내신다면 더욱 기쁘겠고요.)

그래서 이번 낭독에선 그냥, 뉴욕이란 도시에서 시간 속 기행을 떠나는 기분으로 들어볼 만한 대목들을 골라봤습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이나 흥겨운 사교 모임처럼 다시 누리고 싶은 필수적인 사치들, 불확실한 것들 투성이에 예측 불가능한 대도시에 대한 매혹이 느껴지는 부분들을요. 지금은 세상 어디에도 이런 매혹이 발붙일 자리가 없는 것 같지만… 조만간 다시 우리가 알던 그 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고 희망해 보면서요.

"그는 벽에서 몸을 떼어 북쪽으로 매디슨 애비뉴를 걸으며, 모자를 쓰고 식당 카운터에 앉아 팔꿈치를 기대고, 이미 오래된 비밀로 가득한 삶에 새로이 생긴 비밀을 곱씹는 자신을 상상했다."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中)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집 제목 <기이한 이야기> 같은 한 해였지만, 1년을 힘내서 버텨온 만큼, 올해의 마지막도 북적북적 가족 여러분 모두 사랑하는 사람들과 잘 마무리하시면 좋겠습니다. 새해에는 새로운 태양이 떠오를 거라고 믿습니다. 새해에도, 앞으로도, <북적북적> 함께 해요.

*출판사 '북로드'의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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