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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새해, 부끄러운 사람이 되지 않기로 했다

김창규│입사 21년 차 직장인. 실제 경험을 녹여낸 회사 보직자 애환을 연재 중

[인-잇] 새해, 부끄러운 사람이 되지 않기로 했다
"또 계약 조건을 변경하라고요?"

내 의견에 김 과장이 당황한 눈빛으로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질문에 나는 뭐가 문제냐는 듯이 대답했다.

"그래요. 상황이 변했잖아요. 그럼 계약 조건도 조정돼야죠."
"하지만 벌써 세 번째입니다. 업체에 더 이상은 변동이 없다고 지난번 협의 때 말했는데……"
"그게 무슨 상관인가요?"
"또 번복하기가 민망하고 창피합니다."
"음. 민망하고 창피하다… 허허. 알았어요. 그럼 내가 할게요."

이렇게 말하고 김 과장을 돌려보내고 나니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그의 모습에서 10여 년 전 나를 다시 보는 것 같아서다. 생각해 보니 당시 상황도 지금과 똑같았다. 그 때 나는 대외협력업체 제휴 관련 실무자였는데 우리 내부 사정으로 인해 A 파트너와의 업무제휴 조건을 계속 바꿔야만 했다. '이제는 마지막이겠지' 하며 최종 조율을 하고 나면 어김없이 또 윗선에서 변경 지시가 떨어졌다. 막판에는 당시 팀장님에게 "저는 창피해서 이제 더 이상 말을 못 하겠어요"라며 투정하듯 불평했었다. 그러자 팀장님은 지금의 나처럼 웃으면서 "내가 얘기할게. 같이 가자"고 하셨고 그 일을 매끄럽게 잘 처리해주셨다.

사실 난 당시 협의 과정을 보면서 적잖이 놀랐다. 그렇게 많이 번복했는데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조건 변경을 또 요구하는 팀장이나, 큰돈이 되지 않는 거래인데 반복적으로 수정을 요청한 우리에게 그걸 또 짜증내지 않고 받아주는 파트너 팀장. 그들은 내가 아는 거래의 원칙과 인간관계에 있어서 지켜야 할 기본적 도리를 한참 뛰어넘은 것으로 보였다(분명 갑질은 아니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세월 때문이다. 흘러가는 시간 말이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사람은 별의별 일을 다 겪는다. 승승장구하다 갑자기 벼랑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친한 사람에게 쓰라린 배신을 당하고, 이유도 모른 체 견디기 힘든 고난으로 전전반측하는 등 여러 모진 일들을 온 몸으로 겪어야만 한다. 직장생활도 마찬가지. 입사 때부터 경쟁이 시작되어 승진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서든지 성과를 내야 하며 나이 먹어서는 자리를 보존하기 위해서 한줌 남은 자존심까지 헌신짝 버리듯 버려야만 한다. 그러다 보면 웬만한 일엔 창피함 없이 뻔뻔하게 요구를 하거나 다소 무리한 요청이라도 쿨하게 수용할 수 있는 얼굴의 두께와 마음의 공간을 갖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예외 없이 나이를 한 살 두 살 먹으면서 산전수전, 공중전 심지어 화생방전까지 다 겪게 마련이다. 이런 과정에서 어떤 사람은 이해의 폭이 아주 넓은 사람이 되고 또 어떤 사람은 창피함 혹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 된다. 그렇다면 나는? 위의 사례를 보면 후자, 그러니까 창피함 혹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 된 것 같다. 기분이 씁쓸해지려는 순간 당시의 두꺼비 가죽 얼굴을 가졌던 팀장 말이 떠올랐다. "이 나이에 창피한 게 어디 있냐? 살기 위해서는 얼굴이 두꺼워 져야 해." 그러면서 한 마디 더. "하지만 우리가 양아치는 아니잖아. 창피한 짓을 하더라도 부끄러운 짓만 하지 않으면 된다고."

창피함과 부끄러움은 뭐가 다를까? 사전적 의미로 창피함은 '체면이 깎이는 일이나 아니꼬운 일을 당하여 부끄럽다', 부끄러움은 '일을 잘 못하거나 양심에 거리끼어 볼 낯이 없거나 매우 떳떳하지 못하다'는 뜻이다. 즉 창피는 체면과 관계되어 있고 부끄러움은 양심과 연결되어 있다. 그렇다면 직장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창피함을 모르게 되었다는 뜻은 힘든 세상에서 살기 위해 본인 체면이 깎이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게 되었다는 얘기와도 같다(누구나 심각한 곤경에 빠지면 가장 먼저 없어지는 것이 창피한 감정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과도하게 씁쓸해할 필요 없지 않을까? 모진 풍파를 헤쳐나가기 위해 높았던 자기 콧대를 계속 깎아내리며 치열하게 산 것이 크게 문제 될 건 없지 않은가.

하지만 부끄러움은 창피함과는 결이 다르다. 부끄러움 속에는 자신이 자기 자신에 대해 어떤 존재여야 한다는 당위성을 설정했고 다른 사람들도 그 기준으로 나를 바라볼 것이라고 믿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을 때 느끼는 감정으로 통상 자책(이것이 발전되어 죄책감)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이 아비가 부끄럽구나"라는 말을 떠올려보자. 이 말에는 본인 혹은 타인이 보기에도 아버지가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여 창피하다는 뜻에 더해 미안한 감정이 포함된 죄책감도 내포되어 있다. 따라서 부끄러움은 역할, 양심, 규칙 등 사회적 준거에 부합하지 못했다는 것에서 오는 창피함과 더불어 그것으로 인해 오는 자책, 죄의식이 동반된다는 감정이다. 그렇다면 '부끄러움을 모르게 되었다' 함은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양심의 거리낌을 느끼지 못한다는, 인면수심(人面獸心)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창피함을 모른다' 와는 달리 매우 중대한 문제다.

이 같은 이유로 당시 팀장은 "회사 일을 함에 있어서 창피하지만 부끄러운 짓만 하지 않으면 된다"라고 한 것 같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현실에선 창피한 일과 부끄러운 일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합의한 기준을 바꾸는 것, 자신이 잘되기 위해 상대방의 약점 혹은 트집을 잡아 못살게 구는 것,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상대방을 무력화하는 것, 자신의 신념을 관철시키기 위해 한 입으로 두 말하는 것, 종종 벌어지는 현실의 일들은 과연 '창피한 일'일까 '부끄러운 일'일까?

녹록치 않았던 올 한 해도 이제 일주일 남았다. 혹시나 생존을 위해 했던 많은 일들이 창피한 일이었는지 부끄러운 일이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곧 다가오는 새해에는 부끄러움을 알고 부끄러운 짓을 하지 말자라는 다짐을 해본다.

부끄러움을 모르면 사람이 아니라고 한 맹자의 말을 되새기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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