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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삼성준법감시위 평가, 올해 안에 마칠 수 있나?

삼성준법감시위 전문심리위원단 평가 보고서 살펴보니

[취재파일] 삼성준법감시위 평가, 올해 안에 마칠 수 있나?
지난 금요일 (18일), 서울고등법원은 홈페이지에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를 평가한 전문심리위원단의 보고서를 공개했습니다. 재판부가 추천한 강일원 전 헌법재판관, 특검 측이 추천한 홍순탁 회계사, 삼성 측이 추천한 김경수 변호사가 작성한 보고서 원본은 서울고등법원 홈페이지에서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습니다.

대법원에서 추가 뇌물액이 인정돼 파기환송심에서 실형 선고 위기에 놓인 이재용 부회장. 재판부가 양형요소로 고려하겠다고 밝힌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어떻게 평가받는지는 그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다른 시각에서 보면 , 불과 십수 년 전까지만 해도 '삼성 불패'라는 꼬리표가 붙었던 우리 사법 역사에 있어서도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에 대한 정확한 평가는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 등이 이미 전문심리위원단의 보고서 내용을 기사화 한 바 있습니다만, '더 많은 평가가 더 정확한 평가를 가능하게 한다'는 생각에서 전문심리위원단 보고서에 대한 소개와 논평을 담은 이 글을 씁니다.

삼성 (사진=연합뉴스)

● 정반대로 갈린 특검과 삼성 측 평가위원 보고서

많은 사람들이 예상했던 것처럼 특검 측이 추천한 홍순탁 회계사와 삼성 측이 추천한 김경수 변호사의 삼성준법감시위원회에 대한 평가는 정반대로 갈렸습니다. 홍순탁 회계사는 삼성준법감시위원회가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발생할 수 있는 위법사항에 대한 예상을 충분히 하지 않고 있으며, 그 실효성과 지속가능성에 대해서도 의문이 든다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삼성 관계사들이 준법감시위원회 협약에서 탈퇴하는 것을 막을 장치가 없고,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증권 등 주요 관계사들은 준법감시위원회 협약에 가입돼 있지도 않거니와 가입시킬 방법도 사실상 없다는 것입니다. 또 향후 예산과 조직에 대한 지원이 약해져 준법감시위원회 기능이 무력화돼도, 준법감시위원들이 이에 대해 대외적으로 공표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대책이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홍 회계사는 삼성그룹의 각종 비위 혐의 중심에 있던 '미래전략실' 해체 뒤 설치된 '사업지원 TF'에 대해서도 준법감시위원회의 감시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봤습니다. 또 최근 검찰이 기소한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혐의에 대해서도 준법감시위원회 조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홍 회계사는 준법감시위원회 구성원들이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했습니다만, 평가는 '주관적 의지'가 아닌 '객관적 제도와 시스템'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때문에 현시점에서 준법감시위원회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김경수 변호사는 정 반대의 해석을 내놨습니다. 16개 평가 항목에 대한 서술을 모두 나열한 홍 회계사와는 달리, 김 변호사의 보고서는 준법감시위원회 전반에 대한 평가적 서술로 시작합니다. 김 변호사는 우선 삼성 준법 경영의 세 축으로 ▲기존에도 있었던 준법지원인들의 활동 ▲이번 파기환송심 재판부의 제안으로 설치된 삼성준법감시위원회 ▲총수 등 최고 경영자들의 준법의지 세 가지를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준법감시위원회의 출범이 준법 경영의 다른 두 축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습니다. 준법감시위원회가 생김으로서 기존에도 있었던 준법지원인들의 위상이 강화됐으며, 삼성그룹 내부 임직원들의 준법의식 또한 자극하여 총수 등 최고 경영진에게도 영향을 미쳤다는 겁니다.

김 변호사는 준법감시위 활동에 대해서도 "책임의식, 뜨거운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고 평가하며 희망적인 전망을 내놨습니다. 특검 추천의 홍 회계사는 '현재 준법감시위 협약에 가입된 7개 관계사의 탈퇴를 막을 방법이 없으며, 삼성바이오로직스 등 주요 계열사의 추가 가입 여부도 알 수 없다'고 판단한 반면, 삼성 추천의 김 변호사는 '준법감시위원장이 주요 관계사 협약 가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며 "현재 전체 계열사가 협약에 가입돼 있지 않았다는 이유로 준법감시위 실효성을 부인해선 안된다"고 평가했습니다. 김 변호사 또한 홍 회계사의 지적과 마찬가지로, 준법감시위 권고를 총수 등 최고경영진이 무시했을 때 강제할 방법이 없다는 것에 대해선 한계라고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김 변호사는 최고경영진이 준법감시위 권고를 무시했다는 게 공개됐을 경우 생길 강한 여론 압박을 고려하면, 준법감시위원회의 실효성을 무시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내놨습니다.

강일원 전 헌법재판관

● 강일원 전 재판관도 내놓은 '유보' 항목

'현재 기준으로 제도의 실질적 작동 현황을 봐야 한다'며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에 대해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한 홍순탁 회계사. '제도 이면에서 엿볼 수 있는 변화 가능성과 최고 경영진의 의지도 봐야 한다'며 준법감시위의 실효성과 지속가능성을 인정한 김경수 변호사. 두 위원의 결론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속, 자연스럽게 눈길이 간 것은 재판부가 추천한 강일원 전 재판관의 평가 보고서였습니다.

강 전 재판관의 결론에 대한 해석은 보고서가 공개되기 전부터도 뜨거운 이슈였습니다. 지난 재판에서 강 전 재판관은 구두로만 보고서 결론에 대해 언급했는데, 이에 대해 언론 보도가 정반대로 나온 것입니다. 상당수 법조 언론들이 '강 전 재판관이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에 대해 유보적 평가를 내놨다'는 보도를 한 상황 속, 일부 경제지와 매체들은 '강 전 재판관도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내놨다'고 정반대의 보도를 했습니다.

해석은 다양할 수 있고, 제 기사 또한 다양한 해석들 중 하나일 뿐입니다. 하지만 공개된 보고서 전문을 읽어봤을 때, 강 전 재판관이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에 대해 내놓은 결론은 '유보적'이라고 평가할 수밖엔 없을 것 같습니다. 강 전 재판관은 '준법감시위 제도 출범 뒤 삼성이 제도적으로 위법 행위를 하는 건 이전보다 어려워졌고, 조직 내부의 준법 의식도 강화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습니다. 또 '여론을 감안할 때 삼성 최고경영진이 준법감시위 권고를 일방적으로 무시하기 어렵다고 준법감시위는 판단하고 있다'는 점도 보고서에 명시했습니다. 이 부분은 삼성 측 김경수 변호사의 긍정적 평가와 결을 같이 합니다.

하지만 강 전 재판관은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엔 분명한 한계점도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강 전 재판관이 유보적으로 평가한 항목들은 홍 회계사가 지적한 내용과도 겹치는 것들이 많습니다. 이를테면 강 전 재판관은 "주요 관계사가 탈퇴하면 준법감시위원회는 사실상 그 존재 의의를 잃게 되는데, 협약상 관계사의 탈퇴를 막을 수 있는 규정은 없다"며 홍 회계사와 동일한 지적을 남겼습니다. 또 "관계사들이 예산 배정을 중단하거나 사무국에 배치된 직원의 보직을 변경할 경우 이런 사실을 대외적으로 공표하는 것 이외에 준법감시위원회가 이를 저지할 다른 수단은 없다"고 짚었습니다. 또한 현재 준법감시위원회 제도는 "앞으로 발생할 새로운 유형의 위험을 정의하고 이에 대비한 선제적 예방 및 감시활동을 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이 또한 홍 회계사의 지적과 일치하는 대목입니다.

● '한국형 컴플라이언스' 제대로 자리 잡으려면

'삼성 준법감시위' 제안으로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서울고법 형사1부의 정준영 재판장은 이전 재판들에서 새로운 사법제도의 실험적 도입을 시도해왔습니다. 인천지법 재직 시절 형사재판에만 도입돼 있던 '국민참여재판'을 민사 재판에 적용해 '배심 조정 제도'를 처음 시행했습니다. 또 파산부 재직 시절엔 자금난에 빠진 기업에 신속히 자금을 지원하는 '패스트트랙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데에도 관여하기도 했습니다. 미국 연방 양형기준 8장을 인용해 '삼성 준법감시위'를 이재용 부회장 양형에 반영하겠다고 한 건 이런 이력의 연장선입니다.

하지만 법인에 적용하게 돼 있는 연방 양형기준을 이재용 개인의 재판에 끌어다 쓰는 건 봐주기 판결을 위한 수순이 아니냐는 비판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결국 이 재판의 핵심으로 등장한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또 한 번의 성공적 실험으로 남을지, 아니면 또 한 번의 재벌 총수 봐주기 수단으로 기록될지는 평가 절차의 공정성과 엄밀성에 달려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에 대한 정확한 평가엔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재판부는 지난 기일에서 올해 안으로 심리를 끝내겠다는 의중을 내비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일치된 결론을 얻지 못한 보고서가 나온 뒤 한 달도 되지 않는 기간 동안에 재판 절차를 마무리 짓는다면, 결과에 대한 동의와 별개로 '과정이 졸속이었다'라는 비판을 피하긴 어려워 보입니다.

강일원 전 재판관 또한 물음표를 찍은 것들이 많은 상황 속,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실효적이고 지속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기 위해선 특검과 삼성 양측 간 보다 많은 논쟁이 필요합니다. 보고서에도 등장하듯, 준법감시위원회가 '지속가능한 경영 체계 수립'을 제안함에 따라 삼성이 컨설팅업체 BCG에 의뢰한 연구용역 결과도 내년에야 나올 예정입니다. 반대로 현재 상황에서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의 실효성과 지속가능성이 없다'고 결론 낸다면, 재판부가 사회적 갈등을 감수해가며 제안한 한국형 컴플라이언스 제도의 착근은 사실상 요원해지게 될 것입니다.

내년 초 법관 인사를 앞두고 있는 서울고법 형사1부가 이 큰 재판을 다음 재판부로 넘기는 것에는 현실적 부담이 따릅니다. 하지만 특검의 재판부 기피 신청 뒤, 재판에선 삼성 준법감시위 평가와 관련해 반 년 넘는 시간 동안 아무 것도 다뤄지지 않았다는 점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수많은 논란을 낳으며 출범해 운영되고 있는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이 재판 한 번을 위한 '소모품'이 아닌, 재벌 기업 준법 경영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보일 '제도'로 자리잡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시간'입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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