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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 '개혁보수' 되새기며 마지막 도전…유승민의 길

[그, 사람] '개혁보수' 되새기며 마지막 도전…유승민의 길

정치인의 말과 글

윤춘호(논설위원) 기자 spring84@sbs.co.kr

작성 2020.12.19 08:44 수정 2021.01.08 22:24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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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머니는 죽은 지 6개월 만에 발견이 되고 발달장애 아들은 거리를 전전하며 노숙을 하고 있는 방배동 모자의 비극에 대해 이 사람이 뭐라고 쓸지 궁금했다. 따뜻한 보수, 정의로운 보수를 말하는 이 사람이라면 우리 사회의 복지 사각지대가 여실히 드러난 이 비극에 대해 말을 하리라고 예상했다. 지난달 대선 도전 선언 이후 거의 매일 주요 현안에 대해 SNS에 글을 올리며 키보드 워리어가 된 이 사람의 글을 기다렸는데, 방배동 모자 사연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문재인 대통령의 임대주택 방문, 코로나 백신 확보 문제, 공수처법 개정, 윤석열 검찰총장 정직에 대한 글을 올렸다.

글로 정치를 해왔고 말로 이미지를 구축해온 사람이기에 이 사람이 무엇에 대해 쓰느냐는 주목할 만하다. 글을 보면 이 사람이 어디에 관심이 있는지, 어디로 가려는 것인지 알 수 있다. 최근 SNS에 올린 글은 문재인 대통령을 정면으로 겨냥하는 글들이다. 지금 이 사람의 관심은 문재인 정권과 싸우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는 뜻이다.

유승민은 표정이 풍부하진 않다. 그의 눈물이 보여진 건 세월호 희생자 어머니를 만났을 때가 거의 유일한 것 같다.
유승민은 표정이 풍부한 정치인은 아니다. 울컥할 법한 순간에도, 얼굴을 붉힐 법한 순간에도, 주먹을 불끈 쥘 만한 순간에도, 목소리를 높일 법한 순간에도 그는 평정심을 잃지 않는다. 소장 의원 시절 정봉주와 국회 본회의장 안에서 활극을 벌이기도 했지만 그는 격한 몸짓이나 다양한 표정으로 기억되는 정치인은 아니다. 그가 눈물을 보이는 장면은 세월호 희생자 어머니를 만났을 때가 거의 유일하지 않은가 싶은데 그 장면도 유심히 살펴보지 않으면 놓치기 쉽다.

이 사람은 몇 개의 연설, 몇 편의 글로 기억될 사람이다. 최근 몇 년간 이 사람의 정치 역정은 그 어떤 정치인보다 선연한데 그 이유는 중요한 고비 때마다 말과 글을 남겼기 때문이다. 완결된 자신의 문장으로 자신의 생각과 이념, 가치관을 이야기하고 자신의 결단을 설명했다. 논리가 서지 않으면 행동하지 않는 사람이다. 이 사람으로 인해 보수가 저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법전 속에서 먼지나 뒤집어쓰고 있던 헌법의 가치를 생각해봤고 새삼스럽게 헌법 전문이라도 읽어본 사람이 적지 않았다.

지난 2일 필자와 만난 유승민. '한담이나 나누자고 있는 게 아니다' 그렇게 그는 표현하고 있었다.
2. 이 사람에게는 다른 세계를 곁눈질하지 않는 치열함이 있었다. 지난 2일 그와 만나서 받은 느낌이다. 가볍게 차 한 잔 마시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는 자리였지만, 그는 필자의 질문을 메모하며 주의 깊게 들었다. 자신이 한담이나 나누자고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렇게 표현하고 있었다. 여의도 복귀 이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유승민은 질문하는 기자에게 잠시도 시선을 떼지 않았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겠다는 자세, 1분 1초도 허투루 쓰지 않겠다는 단호함 같은 것이 있었다. 그와 대화를 할 때 나의 시간이 소중하니 질문하는 사람도 나의 시간을 소중하게 다뤄달라는 무언의 압박감을 느꼈다. 자신의 시간과 역량을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겠다는 것은 태도만이 아니라 답변 내용에서도 알 수 있었다.

올해 담배를 끊었고 그렇게 좋아하던 술도 이제는 입술만 축인다.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한 술, 담배였으니 끊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인데 그로서는 대단한 결심을 한 셈이다. 우선은 건강을 생각한 결단이겠지만 이 역시 자신을 새로 다잡고 목표에 집중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필자는 과거의 시간을 통해 이 사람의 현재와 미래를 천천히 바라보고 싶었는데 이 사람은 자신의 과거에 대해 별로 말하고 싶은 기색이 아니었다. 과거의 시간이 부끄럽거나 숨기고 싶어서가 아니라 현 시점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시간 낭비로 여기는 듯했다. 지금 이 사람 머릿속에는 차기 대선 말고는 다른 것이 자리 잡을 틈이 없는 듯싶었다. 지금은 오로지 대통령 선거라는 목표에 한순간의 호흡까지도 집중하려는 듯했다. 그러다 보니 묻는 사람이 듣고 싶은 이야기와 답하는 사람이 말하고 싶은 내용이 달랐다. 가끔 서로의 말과 말이 허공에서 엇갈리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런 그에게 1시간 30분 정도로는 당신에 대해 충분히 알기 어려우니 다시 한번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일은 조심스러웠다. 그는 1시간 30분도 자기로서는 긴 시간을 할애한 것이었다며 다시 만나는 것을 생각해보긴 하겠는데 장담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그에게 다시 만나자는 연락은 오지 않았다.

지난 2017년 대선 후보로 출마했을 당시 선거 방송용 제작물 촬영을 위해 SBS 본사를 방문했을 때 잠깐 얼굴을 본 게 이 사람과 인연의 전부다. 그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지만 이 연재물을 시작할 때부터 이 사람을 취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새로운 개혁보수 정당을 만들겠다며 17년 넘게 몸 담아온 정당을 뛰쳐나온 뒤 이 사람이 겪은 풍찬노숙의 시간에 대해 들어보고 싶었고 그 과정에서 이 사람이 얼마나, 어떻게 달라졌는지 살펴보고 싶었다.

이 사람이 쓴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라는 책을 보면 고마운 사람에 대한 이야기도 미운 사람에 대한 이야기도 거의 없다. 다른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애써 아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 부분이 특이하게 느껴졌다. 그 이유를 알고 싶었고 그가 정치를 하면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평도 듣고 싶었다. 지난 7월에 한 번, 지난 9월에 한 번, 모두 두 차례에 걸쳐 인터뷰를 요청하는 문자를 보냈다. 답은 없었다.

지난달 27일 이 사람에게 문자가 왔다. 답이 늦어 미안하다, 시간이 되면 차나 한 잔 하자는 내용이었다. 그의 뒤늦은 문자가 반가웠지만 조금 난감하기도 했다. 이 사람은 분명히 대선 캠페인의 한 방법으로 인터뷰에 응하는 것일 텐데, 아직 대선 경쟁 구도가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이 글이 한 후보의 주장이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모양새가 되는 것이 조심스러웠다. 그런 부담이 없지 않았지만 한 번 만나보고 싶었던 인물을 피할 이유가 되지는 못했다.

바른정당 당사가 있던 곳에 자리 잡은 그의 사무실
3. 지난달 16일 유승민은 여의도에 '희망22'라는 이름의 사무실을 열고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지난 2월 자유한국당과 새보수당의 합당과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이후 여의도 복귀는 9개월 만이었다. 유승민은 이번 도전이 자신의 마지막 대권 도전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가 몇 차례 기자들을 만나 했던 이야기를 다시 듣고 싶은 생각은 없었고 그 말을 이 지면에 옮겨 적을 이유도 없다.

그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9개월 동안 무엇을 했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지냈는지 알고 싶었다. 2015년 원내교섭단체 대표 연설 이후 드라마틱하게 전개된 그의 지난 5년 남짓한 이야기가 그의 미래보다 훨씬 궁금했다. 지난 9개월의 공백기에 대해 자세히 말하지는 않았다. 말하자고 들면 말할 게 꽤 있을 법한데 그는 말을 아꼈다. 정치권에 들어와 조용히 보낸 시간이 없어 맘 먹고 쉬었고 자신의 정책 비전을 담은 책도 준비했다고 했다.

"지난 9개월 동안 저한테 권력 의지가 있느냐. 2016년 탈당 이후에 이렇게 실패를 했는데 이런 상황에서 저한테 다시 대통령에 도전하려는 의욕이나 용기나 기운이나 에너지가 여전히 남아있는지 스스로 점검한 시간이었습니다. 내가 왜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가, 내가 대통령이 되면 뭐가 더 달라지고 국민들에게 뭐가 더 좋아진다고 설득을 할 거냐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지난 시간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지만 향후 비전에 대해서는 할 말이 차고 넘쳤다. 그는 대권에 도전하는 이유, 보수 진영의 지지율 회복 방안, 자신에 대한 보수층의 거부감 등에 대해 구체적인 숫자를 들어가며 상세히 설명했다. 대권 도전을 선언하면서 그가 야심 차게 준비해서 들고 나온 것은 '경제'였다.

"제가 대선 슬로건으로 내세우려는 게 '결국은 경제다'라는 말입니다. YS정권 이후 매 정권 5년을 거칠 때마다 1%포인트씩 성장률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저출산, 양극화를 비롯한 우리나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신성장 시대를 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경제 성장, 그 자체가 시대의 최우선 가치가 되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2015년 원내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도 확인되니 새로운 주장은 아니다. 보수는 성장, 진보는 분배라고 하면 그는 신성장 시대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는 것으로 보수주의자의 정체성을 유권자에게 호소하려는 의도도 있어 보였다. 저성장이 대세로 자리 잡은 거 아니냐, 이 시대에 웬 성장 타령이냐는 반론을 그는 예상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성장 시대는 끝나고 지금은 분배나 복지가 중요할 때 아니냐 우리나라 경제는 낙수효과도 없고 고용 없는 성장이 자리를 잡아서 과거와 같은 고성장 시대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데,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성장을 극복하지 않으면 저출산, 양극화 같은 핵심 과제는 해결이 어렵습니다."

따뜻한 보수를 말하며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배려를 강조하고 공화의 가치를 높이 들었던 그가 성장만이 문제의 근본 해법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다소 퇴행적인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이에 대한 그의 소신은 확고했다. 이런 정책 비전을 담은 책을 다음 달쯤 낼 예정이라고 했는데 자신이 던지는 의제가 활발한 논쟁의 대상이 되기를 기대하는 눈치였다.

"지난 대선에서 사람들이 이게 표가 됩니다, 저게 표가 됩니다, 라고 저한테 던져준 공약들, 이번에는 안 하려고 합니다.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여야 후보들이 거의 비슷한 공약을 하지 않습니까. 그게 다 사실은 매표성 공약입니다. 저는 그런 것에서 탈피해서 대선을 치러보고 싶습니다. 저는 이번에 이런 개혁하지 않으면 우리는 망한다, 저는 이런 개혁을 하겠다는 것을 밝히는 것으로 승부를 보려고 합니다. 그러면 제가 나중에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제 스스로에 대한 후회가 없을 거 같습니다."

TK 지역 유권자를 비롯한 일부 보수 유권자들의 거부감을 극복하고 자신이 중심이 되어 보수가 정권을 잡는 방안을 말할 때 이 사람의 몸에서는 열기가 느껴졌다. 그의 꽤 길었던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 득표율과 지난 총선에서 야권이 받은 득표율을 비교하면 아직도 10%의 유권자들이 보수 정당 지지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것, 돌아오지 않은 10%의 유권자는 수도권의 젊고 중도적인 사람들로 볼 수 있는데 이들을 보수로 끌어오는 데 자기 만한 적임자가 없다는 것, 자신이 수도권과 젊은 유권자들에게 통하는 것이 입증되면 TK 지역 유권자들도 정권 교체를 위해 자신에 대한 거부감이 있더라도 결국 자신을 선택할 것이라는 논리였다.

그 사람-유승민 자료사진
4. 역시 이 사람의 전성기는 2015년 새누리당 원내대표 시절이었다. 국회 본회의장은 그동안 이 땅의 기라성 같은 정치인들이 숱한 웅변을 쏟아낸 무대지만 유승민의 2015년 연설을 능가하는 것은 찾기 어렵다. 이 글을 쓰기 위해 그 때 연설문을 다시 읽어봤고 영상을 찾아봤다. 역시 명문, 명연설이다. 44분이 넘는 연설 시간이 짧게 느껴진다. 저런 글 한 편, 저런 연설 한 번 하려고 정치를 하는 것일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이 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영감을 주고, 당시 야당 대변인까지 나서 보수의 갈 길을 보여준 명연설이라는 찬사를 던졌을까.

말하는 사람이 정의를 독점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유승민은 당신들이 틀렸다고 말하는 대신 말한 사람의 진의가 무엇인지를 먼저 헤아리려고 했다. 소득주도성장론을 포함한 야당의 주장도 국가의 미래를 위한 고민과 진정성이 담긴 것이라고 평가했다. 결코 짧지 않은 이 글에서 유승민은 누구도 비난하지 않는다. 경쟁자는 악이고 나만이 선이라는 이분법이 아니라 내가 틀리고 당신이 맞을 수도 있다고 인정한다.

용기가 있기 때문이다.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며 최고 권력자에게 현실을 직시할 것을 촉구하는 것, 우리 당의 공약을 지킬 수 없게 됐다고 고백하는 것, 양극화 문제를 시대의 과제로 제시한 전직 대통령에게 찬사를 보내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진영을 넘어 옳은 것은 옳다 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용기가 있기에 그의 글과 말은 울림이 컸다.

철학이 있기 때문이다. 남이 써준 글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글로 표현한 이 글에는 보수의 새로운 길을 진지하게 모색하는 한 지식인의 고뇌가 그대로 담겨 있다. 공동체가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화의 가치를 역설한 그의 제안은 몇 마디 그럴 듯한 슬로건과 책략으로 정치를 하던 사람들의 말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 글이 좋은 글인 또 하나의 이유는 쉽게 쓴 글이기 때문이다. 그의 연설은 누구나 들으면 이해할 수 있다. 어려운 단어를 쓰지 않고 단문으로 의미를 자연스럽게 쌓아 올린다. 긴 글이지만 장황하지 않다. 글이 꽉 차 있지 않고 곳곳에 여백이 있으니 울림의 공간이 크고 넓다. 전업작가들의 뺨을 때릴 만한 솜씨다.

홍릉 KDI 근무 시절의 유승민
"대학 다닐 때 제가 경제학을 공부하지 않는다면 소설을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은 있습니다만 그런 쪽으로 훈련을 받은 적은 없습니다. 다만 제가 글을 보는 기준은 되게 엄격하고 높은 거 같습니다. 글이 명료하지 않으면 싫어합니다. 읽기 쉽게, 알기 쉽게 쓰는 게 늘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면 유시민보다 더 잘 쓸 거 같다고 했더니, 그렇게 말하면 유시민이 싫어할 거라며 환하게 웃었다. 같은 경북 출신에 중학교 후배이자 대학교 같은 과 후배인 유시민에게 라이벌 의식이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연설을 통해 그는 한순간에 정치적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스타 정치인이 되었지만, 최고 권력자의 눈 밖에 났다. 한때 그가 비서실장으로 보좌했고 가장 쓰라린 패배의 순간을 같이 했던 박근혜 당시 대통령과의 갈등과 투쟁은 필연적이었다. 최고 권력자는 그를 배신자로 규정하고 그를 심판해줄 것을 국민에게 호소했다. 그로서는 기가 막힌 일이었다. 그는 원내대표 직에서 질질 끌려 내려왔고 당에서 공천을 받지 못하고 사실상 당에서 쫓겨났다.

'새누리당 탈당 선언 및 무소속 출마' 유승민의 기자회견
그는 수난을 겪을 때 명분을 놓지 않았고 탄압에 맞설 때 노여움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2016년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그에게 대구 동구을 지역 유권자들은 75%가 넘는 표를 몰아줬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순간이었다. 그의 연설은 그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보수 진영이 분화하는 단초가 되었고 세월호 사고와 그 정치적 여파로 심각한 내상을 입었던 박근혜 정권이 본격적인 레임덕에 들어섰음을 보여주는 뚜렷한 증거였다.

5. 이 사람의 꿈이 작아졌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꿈을 작다고 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따뜻한 보수, 정의로운 보수를 말할 때에 비하면 이 사람이 지금 가지고 있는 꿈은 작아 보인다. 꿈이 작으니 꿈을 이루기 위한 전략과 방법도 작아졌다.

창조적인 진영의 파괴, 합의의 정치, 공화의 실현을 말할 때 이 사람은 커 보였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에게 표를 찍은 '우리 편' 51%의 지지를 회복할 방법을 말할 때 이 사람은 작아 보였고 보수의 울타리에 갇혀 있었다. 영남 유권자들에게 달려가서 호남 유권자들은 전략적 투표를 잘하는데 왜 우리 영남 유권자들은 그러지 못 하느냐고 호소하겠다고 말할 때 이 사람에게서 낡고 어두운 지역주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대의가 아닌 정치공학을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이 놀란 눈으로 바라보던 유승민은 아니었다.

원래 매서운 싸움닭이었다. 국책 연구기관인 KDI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DJ정부의 빅딜 정책에 대해서 날을 세웠고 여야 간 경쟁보다 더 치열했던 2007년 한나라당 후보 경선 당시 그는 박근혜 진영의 대표 공격수였다. 집권여당의 일원이면서도 4대강을 비롯한 정부 핵심 정책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서슴지 않았고 남들은 눈도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는 현직 대통령과 대차게 한판 붙었던 결기 있는 사람이었으니 현 정부의 실정과 폭주에 대해 공격의 날을 세우는 것이 이상할 것은 조금치도 없다.

2015년도 국방위 국정감사를 평가하면서 한 언론사가 유승민에게 별 다섯 개 만점을 주고 '고품질, 핵심 질의'라는 제목을 달았다. 2017년 대선 후보 토론에서 다른 후보자들을 압도한 것도 핵심을 찌르는 그의 능력 때문이었다. 품위와 지성, 절제라는 단어가 이 사람에게 딱 어울렸다.

지금 문재인 정부를 겨냥한 그의 비판은 유승민의 글 치고는 거칠다. 그리 정교하지도 않고 품위가 넘치는 것도 아니다. '역시 유승민이야' 하는 말이 나오지는 않는다. 이런 글은 유승민이 아니래도 다른 사람이 할 수 있겠다는 게 솔직한 소감이다. 임대주택 논란에서 그가 문재인 대통령 사저 문제를 거론할 때처럼 가끔 그의 비난은 핵심을 빗나가기도 하는데 왠지 과녁을 빗나간 그의 화살은 의도된 것처럼 보인다. 상대 진영의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의도보다는 자기 진영의 환호와 평가를 기대하는 글로 읽히는 것은 필자의 난독증 때문일까.

자신이 앞장서 공동의 적에 맞서 싸우다 보면 등 돌린 보수 유권자들과 다시 손잡을 날이 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현 정부와 대통령에 대한 공격으로 자신이 충성스러운 보수주의자임을 보여주려는 듯하다. 그렇다면 유승민의 비난의 강도와 수위는 점점 더 높아질 것이고 그의 공격은 청와대와 문재인 대통령에게 집중될 것이다.

이 자존심 강한 사람이 요즘 화해라는 말을 입에 자주 올린다. 보수 진영 안에서 탄핵에 대한 서로의 입장이 여전히 확고하니 그 문제는 덮어두고 문재인 정권의 폭주를 막고 정권 교체에 힘을 합치자는 것이다.

그 사람-유승민 자료화면
"탄핵 문제를 다시 끄집어내서 우리끼리 서로 손가락질하고 싸우는 것은 민주당 세력이 가장 원하는 일이고 정권 교체를 어렵게 하는 일이니 그러지 말자. 보수가 분열하는 것은 문재인 세력이 가장 원하는 것이니까 그러지 말자는 것입니다."

이제 탄핵 문제에 대한 시비를 멈추자고 입으로 말하지만 유승민 본인이 여전히 시퍼렇게 흐르는 탄핵의 강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탄핵이라는 단어가 그의 입에서 여러 번 반복되어 나오는 것이 그가 탄핵의 강을 건너지 못한 증거였다.

6. 이 사람 사무실은 여의도 국회 부근에서 가장 비싼 빌딩에 자리잡고 있다. 그가 굳이 이 비싼 빌딩에 사무실을 차린 이유는 이곳이 바른정당 당사가 있던 곳이기 때문이란다. 개혁보수의 기치를 높이 들고 나왔던 그 시절을 잊지 않겠다는 각오를 그는 그렇게 표현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요즘 모습은 좁은 길을 가겠다던, 길이 없으면 혼자서라도 용감하게 길을 만들어 가겠다던 모습과는 사뭇 달라 보인다.

그는 아무리 둘러봐도 문재인 정권이 잘하는 것을 단 하나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사진 찍고 쇼나 잘할 뿐, 비겁하고 무능하고 위선적인 정권이라고 했다. 그의 주장이 옳고 그름을 떠나 그의 이런 모습은 정의를 독점하지 않겠다던, 내가 틀리고 당신이 맞을 수도 있겠다고 말하던 모습과는 차이가 있다.

왜 이 사람의 자세가 달라졌을까.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유승민은 다음 대선에서 실패하면 정치를 그만두겠다고 스스로 퇴로를 차단했다. 이 사람의 정치 인생 달력에서 2022년 3월 이후라는 시간은 없는 것이다. 그 이후를 볼 생각이 없으니 멀리 볼 수 없고 두루 살필 여유가 없고 깊게 호흡을 가다듬을 수 없다.

근거지가 미약하기 때문이다. 4선을 하면서 든든한 정치적 근거지로 삼았던 TK 지역은 어떤 사람의 표현을 빌리자면 '발을 들여놓기도 어려운 곳'이 됐다. 개혁보수라는 깃발을 3년 만에 내렸고 본인은 총선 출마를 포기했다. 깃발을 꽂아 둘 성은 사라졌고 그 깃발 자체도 해지고 낡았다. 지난 대선에서 그에게 표를 던진 22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가 기댈 수 있는 언덕이다. 새누리당 탈당 이후 그가 간난신고의 세월을 버틸 수 있었던 것도 220만 8771표의 힘이었다. 그러나 이 표가 지금도 자신의 호주머니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 사람은 잘 안다.

"지난번에 저를 찍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이 젊은 사람들입니다. 그 분들이 다음 대선에서도 당연히 저를 선택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저를 찍었던 분들은 대부분 젊고 합리적이고 굉장히 비판적이고 제가 조금만 잘못해도 쉽게 떠날 분들이라는 것을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의 지금 지지율은 3% 안팎이다. 지난 대선에서 얻은 6.8%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초조하지 않을 리 없고 일단은 지지율을 올려야 된다는 생각에서 보수 유권자들을 겨냥한 말과 글이 나오는 것이다. 그가 쓴 글에 대한 댓글을 보면 유승민의 이런 생각을 유권자들은 빤히 읽고 있는데 그의 전략이 계산대로 먹혀 들어갈지 확인하는데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 사람-유승민 자료사진
7. 그에게서 변화의 기미가 느껴진다고 해서 그의 진정성까지 의심할 필요는 없다. 지난 11월 연평도 포격 10주기 추도식에서 고 서정우 하사의 어머니가 유승민에게 각별한 감사의 뜻을 전했다. 원고에 없는 내용이었다.

"정치인들 한두 해 오고 말거나 오더라도 잠시 얼굴 한 번 비치고 가는 것이 일반적인데 유승민 의원님은 국정감사 때문에 한 번 빠진 것 말고는 10년 동안 꾸준히 참석해서 고마웠습니다. 광주에 강연하러 오실 때는 (서정우 하사가 다닌) 중학교를 일부러 찾아와서 추모의 뜻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때는 국가를 위해 희생한 우리 아들 같은 사람을 잊어버린 것은 아닌지 야속하고 섭섭할 때가 있는데 유승민 의원님이 늘 잊지 않고 기억해줘서 고맙지요." - 김오복 (고 서정우 하사 어머니)

그가 잊지 않고 고 서정우 하사 같은 사람을 기억하는 것은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진정한 약자라고 보기 때문이다. 진보에서 말하는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같은 사회·경제적 계급으로서 약자와 유승민이 말하는 약자는 상당 부분 겹치기도 하지만 이 사람이 말하는 약자는 특정한 상황 속에 처한 약자라는 점에서 더 구체적이고 유동적이다.

세월호 침몰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시신조차 찾지 못하는 사람들, 나라를 지키다 숨진 천안함 장병들과 그 가족들, 희귀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과 그 가족, 폐지 주워 하루하루를 사는 노인들, 나라를 지키러 갔던 군대에서 석연치 않은 이유로 숨진 의문사 장병과 그 가족, 일자리 구하지 못해 길거리 헤매는 젊은이 등이 약자이다. 이 사람들에 대해 유승민은 보이지 않게 후원의 손길을 보내고 관심을 기울인다. 그것도 지속적으로 말이다. 여기에 감동하는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니다.

"방송 같은데 나와서 이미지 만들고 하는 그런 분과는 정말 다르더라고요. 자기가 하는 일을 언론에 알리지도 않더라고요. 이런 사람이 다 있구나… 이 사람이 진짜 정치인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홍성원 (소아조로증 환자 홍원기 군 아버지)

지난 4년 동안 자신과 뜻을 같이 하던 정치적 동지들이 대오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이 사람에게 힘이 되고 위안이 된다. 그의 동지들은 그가 선택한 사람도 있지만 유승민의 개혁보수 깃발에 동의해서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이 더 많다.

" 유승민이 우리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유승민을 선택한 거죠. 유승민이 좋아서, 그의 비전에 대해 동의해서 한 테두리에 있는 거죠. 술 먹고 어깨동무하고 형님 동생하면서 뭉친 게 아니죠. 유승민이 제게 나 대선 나갈 테니 도와줘 그렇게 말한 적이 없어요. 제가 그를 선택하고 내 돈 내서 함께 일하는 거지 그가 제게 정성을 기울여서 같이 하는 한 것은 전혀 아닙니다." - 오신환 전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죽음의 계곡을 함께 건너면서 우의가 더욱 굳어진 '동지'들이 약하지만 든든한 기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영화의 한 대사를 인용하며 동지들에게 이렇게 약속했다.

"우리는 죽음의 계곡에 들어간다. 여러분은 전우를 지켜주고 그 전우는 여러분을 지킨다. 여러분과 하느님 앞에 이것만은 맹세한다. 전투에 투입되면 내가 맨 먼저 적진을 밟을 거고, 내가 맨 마지막에 적진에서 나올 거다. 단 한 명도 내 뒤에 남겨두지 않겠다."
-유승민 바른미래당 대표 수락 연설문

20년 넘는 정치를 하면서 같이 했던 측근들 가운데 그에게 등을 돌린 사람이 없다고 했다. 호불호가 분명하고 까칠해서 주변에 사람이 모이지 않는다는 세간의 평을 의식한 듯한 말이다. 부잣집 도련님처럼 생겼지만 선이 굵고 카리스마도 강하단다. 그를 꽤 오랫동안 취재한 한 기자는 그를 '상남자'라고 표현했다.

2016년 새누리당을 탈당한 이후 그의 당적은 1년이 멀다 하고 바뀌었다. 바른정당, 바른미래당, 새로운보수당, 국민의힘으로 바뀌었고 김무성, 안철수, 손학규 등이 그와 반갑게 손잡았다 싸늘하게 등 돌린 사람들이다. 탈당, 창당, 합당, 분당, 복당 등 정당인으로 겪을 수 있는 일들은 다 겪었다. 이 과정은 결국 배신하고 배신당하는 과정이었을 것이고 보고 싶지 않은 인간의 밑바닥을 거듭거듭 확인하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그는 정치적 생사를 같이 하자고 굳게 맹세했던 사람들이 떠날 때 그들에게 비난을 퍼붓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처지를 이해한다고 말했다. 맹약을 저버린 사람들에 대한 분노를 얼굴에서 드러내지 않으려 애썼지만 그것은 감춘다고 감춰질 감정은 아니었다. 정치가 자신의 몸과 마음을 갉아먹었다고, 정치 때문에 자신의 수명이 줄어든 거 같다고 말하는 것이 과장이 아니었다.

그 사람 - 유승민 자료화면
중국 공산당의 만리 대장정은 기나긴 패주의 길이었지만 혁명의 역량을 키우는 승리의 과정이기도 했다. 원칙을 지키고 뜻을 꺾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승민과 그의 동지들이 걸어온 길이 그런 길이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온갖 시련을 겪은 이 사람이 구태의연한 보수의 세계로 되돌아가는 것은 그는 물론 우리 정치권, 유권자 모두에게 손실이라는 점이다. 그가 말했듯이 정치는 진흙탕에서 연꽃을 피우는 일이니 정치판에 있으면서 진흙을 묻히지 않을 도리는 없을 것이고 진흙이 묻은 그의 모습에 실망하는 사람도 있겠으나 그가 들었던 따뜻하고 정의로운 보수의 깃발을 포기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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