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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기후변화, 강하고 오래가는 태풍 만든다

우리가 기후변화, 기상 이슈에 큰 관심을 두는 것은 여기저기서 벌어지는 기상현상들이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폭우와 폭설, 폭염과 한파도 무섭지만 가장 두려운 건 단기간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태풍이다. 우리나라를 찾은 태풍 중 가장 강한 태풍인 지난 2003년 태풍 매미는 영남을 관통하면서 131명의 사상자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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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기후변화가 이런 태풍에 어떠한 영향을 줄지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많은 연구들이 있었지만, 태풍이 강해질 거란 분석부터 오히려 약해질 거란 분석까지 다양한 결과가 나왔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좀 더 정밀한 분석이 가능해지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최근 발표된 결과는 태풍이 더 강해질 거란 분석에 손을 들어줬다.

● '매우 강한' 태풍 많아진다

국내 연구팀이 기후변화에 영향을 주는 이산화탄소의 농도를 조절해 온난화가 태풍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분석했다. 그 결과 50년쯤 뒤부턴 전체적인 태풍 빈도는 줄지만, 발생하는 태풍의 중심풍속이 50m/s를 넘어가는 '매우 강한' 태풍은 1.5배 느는 것으로 나타났다.

파란색 : 태풍 빈도 줄어드는 지점 / 빨간색 : 태풍 빈도 증가하는 지점
 
50m/s가 넘는 바람은 기차를 탈선할 시킬 수도 있고 달리는 승용차도 뒤집어 놓을 수 있는 강력한 바람이다. 지난 2003년엔 매미가 순간적으로 60m/s의 바람을 기록하면서 철제 크레인을 쓰러뜨리기도 했다. 기상청도 태풍의 강도가 강해짐에 따라 올해 '초강력'이라는 태풍 등급을 신설했는데, 50m/s 정도면 가장 높은 단계인 '초강력'의 바로 아래 '매우 강한' 등급에 이른다. 올해 우리나라에 상륙한 태풍들은 이 정돈의 세기는 아니었지만, 제10호 태풍 하이선의 중심풍속이 한때 오키나와 남쪽 해상에서 55m/s에 달하는 '초강력' 태풍으로 발달해 긴장감을 고조시키기도 했다. 당시 태풍 하이선의 영향으로 1명이 실종되고 5명이 다치는 인명피해가 발생했고, 124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전국적으로 시설 피해도 724건이나 됐다.

● 달궈진 해상

태풍은 해양과 대기의 상호작용에 의해 생긴다. 대기 상층과 하층의 수직적인 바람 차이, 따뜻한 바다에서 공급되는 수증기 등이 태풍을 만드는 핵심 요소이다. 연구팀은 온난화로 지구가 따뜻해지면, 대기 상층과 하층의 온도 차이가 줄어들어 열대지방에서 상승기류가 약화될 것으로 봤다. 대기 중 공기 분자들은 대기 하층에 대부분이 집중돼 있는데, 온난화로 수증기가 많아지면 이 수증기 역시 대기 하층에 집중된다. 이렇게 집중된 수증기의 비열로 인해 하층은 온도가 천천히 증가하고 상대적으로 수증기가 적은 대기 상층은 온도가 빨리 증가한다는 것이다.

열대지방의 상승기류가 약화되니 이 지역에서 저기압이 형성되지 못하고 열대 저기압인 태풍도 발생빈도가 줄어드는 것이다. 하지만 발생 조건이 맞아 일단 태풍이 발생하면 지금보다 더 뜨거운 해상에서 풍부한 수증기를 공급받을 수 있어 지금보다도 더 강하게 발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북태평양에서 발생하는 태풍(typhoon)* 그리고 북대서양에서 발생하는 허리케인(hurricane)*에서 모두 같은 결과가 나오는 것을 확인했다.

이번 연구는 그동안 태풍 예측에 사용되던 모델보다 해양과 대기를 더 촘촘하게 분석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기존 모델들**보다 지구를 좀 더 촘촘히 나눠 그동안 간과됐던 지역별 기상현상과 온도, 지형적인 차이 등을 더 잘 반영했기 때문이다.

*열대에서 발생하는 저기압 중 중심풍속이 초속 17m를 넘으면 Tropical cyclone으로 부르고 태평양에서 발생하는 건 태풍(typhoon), 대서양은 허리케인(hurricane), 인도양은 사이클론(cyclone)으로 지칭.
**기존 태풍 예측 모델 전 지구 격자, 대기·해양 100km 정도 l 이번 모델 격자, 대기 25km, 해양 10km.

● 태풍은 강해지는데 소멸은 늦어진다고?

아무리 강력한 태풍이어도 우리가 살고 있지 않은 먼 해상에서 소멸해버리면 그만이다. 태풍이 문제가 되는 건 우리가 있는 내륙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 다행스럽게도 태풍은 내륙에 상륙하면 에너지를 잃고 하루 이틀 사이에 소멸했다. 더 이상 수증기를 공급받지 못한 데다 지표와 마찰도 생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구 온난화가 태풍의 소멸을 늦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연구팀은 북대서양에서 발생하는 허리케인을 상대로 연구를 진행했는데, 실제 1960년대 말엔 허리케인이 내륙에 상륙할 때 75% 에너지가 사라지던 것이, 현재는 5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만큼 내륙에서 더 많은 에너지를 가지고 오래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은 태풍의 소멸에 대해서 어떤 요소가 주요하게 작용하는지 밝혀진 게 없었지만, 이번 연구에서 수증기가 태풍의 소멸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북미에 영향을 주는 허리케인에 대한 연구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영향을 주는 태풍과 1대 1로 비교하기 힘들다. 하지만 태풍의 소멸에 마찰력보단 수증기가 더 많은 역할을 하고, 지구 온난화로 인해 이전보단 더 많은 수증기를 함유한 태풍이 늦게 소멸할 것은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 일 것으로 보인다.

태풍은 지진이나 예측할 수 없는 자연재해와 달리 적어도 2~3일 전부터 예측이 가능하다. 하지만 미리 알고 대비를 해도 항상 많은 상처를 남긴다. 그동안 태풍 상륙에 취약한 해안을 근처로 태풍 대비를 했지만, 이제 내륙도 과거처럼 안심할 순 없다는 얘기다. 기후변화가 초래한 일들이 1~2년 사이 와 닿을만한 결과로 나타나진 않겠지만 우리 세대의 일은 아니라고만 생각했던 일들이 점점 더 빨리 다가오는 건 사실이다. 이미 우리는 변화된 기후 속에서 살고 있다. 더 이상 미래의 일들이 아니다. 태풍의 계절적 특성을 생각해보면 겨울인 지금 먼 이야기지만, 기후변화로 변화할 태풍들을 예보가 나오고서 2~3일이 아닌 장기적으로 대비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참고문헌>
Lin Li*Pinaki Chakraborty, "Slower decay of landfalling hurricanes in a
warming world", nature(2020) 587, 230–234, doi.org/10.1038/s41586-020-2867-7

Jung-Eun Chu*, Sun-Seon Lee, Axel Timmermann, Christian Wengel, Malte F. Stuecker, Ryohei Yamaguchi, "Reduced tropical cyclone densities and ocean effects due to anthropogenic greenhouse warming", Science Advances(2020) Vol. 6, no. 51,
doi: 10.1126/sciadv.abd5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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