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인-잇] 어른이도 크리스마스 선물은 받고 싶어

김창규│입사 21년 차 직장인. 실제 경험을 녹여낸 회사 보직자 애환을 연재 중

[인-잇] 어른이도 크리스마스 선물은 받고 싶어
"새해 복 많이 받고 모두들 내년에는 착한 어른이 되어서 크리스마스에 선물 받읍시다."

작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날에 생겼던 기분 좋은 일을 2020년 새해 첫날에 내 블로그에 남겼었는데 위 문장은 그 글의 맺음말이다. 1년이 지난 지금 다시 보니 새롭다. 전체 내용은 다음과 같다.

"크리스마스 날이다. 당연한 건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나의 머리맡에 선물이 없었다. 나이 50에 선물을 기대하다니. 소가 웃겠다. 그러다 잠깐 생각을 해 본다. 왜 나는 지난 40년 가까이 크리스마스 날 선물을 받지 못했을까? 주먹으로 머리를 한 대 콕 쥐어박았다. 산타클로스는 착한 아이에게만 선물을 준다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인데 못 받은 이유를 생각해 보고 말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속은 상했다. 나도 선물을 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난 1년 나의 선행을 생각해 봤다. 산타클로스가 착한 어른에게도 선물을 준다면 나는 받을 수 있을까? 착한 일? 그런데 그게 뭐지? 순간 아찔했다. 착한 일이 뭐냐고 묻다니? 이래서 어른은 선물을 받지 못하는 것 같다."

어쨌든 곰곰이 생각한 결과 착한 일이란 "누구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답을 내려 보았다. 그렇다면 상당수 어른은 받기 쉽지 않다. 어른이면 누구나 안다. 자신이 희생을 하며 누구를 도와주는 일은 대단히 드물고 설사 있더라도 그 행위는 순수함이 결핍된 다분히 이해득실을 따져서 한 일임을 말이다. 왜? 복잡다난하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니까.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무한 경쟁 속에서 배려, 희생, 양보가 없는 삶을 몇십 년째 살고 있다. 그런데 무슨 선물을 기대? 다시 한번 나의 뻔뻔함에 창피함을 느낀다. 하지만 그렇다손 치더라도 선물을 못 받는 것이 못내 속상해서 몇몇 모임의 단톡방에 다음과 같이 썼다. ​

<올해도 크리스마스 선물 못 받았어요. 벌써 몇십 년째. 어른이 되고 나서 착하게 살지 못해서 그런가 봐요. 그러나 포기하지 말고. ㅋ. 메리 크리스마스.>

누구나 기대하지 않았던 좋은 일로 행복감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삶이 가끔 주는 이런 기쁨은 모든 병을 다 고치는 기적의 호르몬 같은 것이다. 나는 방금 그 호르몬을 느꼈다. 무슨 일이냐고? 이 글이 올라가자 몇 분 뒤 후배 한 명이 나에게 휴대폰으로 케이크 선물을 보낸 것이다. 처음에는 이게 뭔지를 몰랐다. 그러다 내가 쓴 글이 생각났고 "아하! 그렇구나."하고 정말로 감동을 받았다.

이 글을 나는 왜 굳이 남기려고 하는 것일까? "원하는 것이 있으면 창피하더라도 속으로만 얘기하지 말고 표현을 해야 한다. 자신이 나쁜 놈임을 알고 처절한 반성을 하면서 착한 어른이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러면 삶은 선물을 준다." 이런 것을 같이 공감하고 싶어서이다.

"새해 복 많이 받고 모두들 내년에는 착한 어른이 되어서 크리스마스에 선물 받읍시다."

올해 난 착한 어른이었을까? 누군가에게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고 도움을 준 일이 있는가? 이 질문에 또 한없이 내가 작아짐을 느끼면서 씁쓸함이 밀려왔다. 내가 올 한 해 동안 도대체 무엇을 했지? 여러 일이 떠올랐다. 가정에서도 회사에서도 맡은 바 일을 열심히 하긴 했는데 그것이 군포 화재에서 사다리차로 사람들을 구한 그런 선행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역시 나는(어른들은) 안돼.' 이러다가 문득 칼뱅의 '직업 소명설'이 생각이 났다. 칼뱅에 따르면 직업은 신이 우리에게 내린 소명이며, 인간의 노동은 땅 위에서 신의 영광을 실현하는 주요 수단이다. 그러므로 목사나 사제 등의 성직만 거룩한 게 아니라, 일반 직업 역시도 거룩한 일이라는 것. 그렇다면 (논리의 비약이 있기는 하지만) 나한테 주어진 일에, 그것이 소시민이 하는 평범한 일이더라도 최선을 다했다면 그 자체로 영웅과 같은 선행을 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인은 직장인으로, 기업가는 기업가로, 학생은 학생으로, 가정주부는 가정주부로, 취업준비생은 취업준비생으로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했다면 그 일로 분명히 누구에게는 크던 작던 도움이 되었을 테니 말이다.

열악한 환경에 굴복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며 사는 것, 주어진 자신의 역할에 열과 성을 다하는 것,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착한 바보로 사는 것, 코로나를 옮기지 않기 위해 외출을 자제하고 답답하지만 마스크를 쓰는 것, 만약 우리가 이렇게 올 한해를 살았다면 누구든지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난 생각한다.

혹시나 선행을 하기에는 이미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자. 우리에게는 과거 보다 14일의 시간이 더 있다. 실없는 얘기이지만 산타할아버지도 자가 격리를 해야 하니 말이다. 나의 이런 생각에 동의를 한다면 다시 마음을 다 잡아 남은 기간이라도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지금부터 작년의 나처럼 뻔뻔(?)하게 선물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공개적으로 주변에 얘기해 보면 어떨까 한다. 산타할아버지의 행정 착오 혹은 배송 누락을 확실히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인잇 필진 네임카드

#인-잇 #인잇 #김창규 #결국꼰대

# 본 글과 함께 읽어 볼 '인-잇', 만나보세요.

[인-잇] "내또출, 끄적끄적" 부장님은 인싸말 공부 중   
인잇 사람과 생각을 잇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