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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 의약품 빼돌렸던 북한 의사들…무상치료, 이젠 옛말?

[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 의약품 빼돌렸던 북한 의사들…무상치료, 이젠 옛말?

우리는 통일에 준비돼있는가

안정식 북한전문기자 cs7922@sbs.co.kr

작성 2020.12.16 09:11 수정 2021.01.05 15:06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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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는 이달(12월) 초 8뉴스를 통해 의사들이 전문의약품인 보톡스를 불법으로 빼돌리는 현상을 보도했습니다. 의사들이 돈벌이를 위해 보톡스를 중국인 불법 유통업자에게 빼돌리는 것을 고발한 것입니다. 먹고살 만한 의사들이 왜 이런 짓을 하나 싶은데, 북한에서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습니다.

[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 2편_북한 병원
● 장마당에 의약품 빼돌렸던 북한 의사들

북한 의사들이 의약품 빼돌리기에 나섰던 것은 먹고살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북한 경제시스템이 망가져 생활에 필요한 배급과 수당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다 보니 불법적인 유통에 나선 것입니다.

북한에서는 의약품이 매우 부족해서 병원에 약이 없습니다. 의약품 부족을 한약재로 보충하기 위해 의사들이 매년 약초 채취에 동원되고 약초 제출 의무까지 부과된다고 하지만, 이런 식으로 의약품 부족을 메꿀 수는 없습니다. 결국 국제기구 등 외부에서 지원되는 의약품이 매우 중요한데, 생계가 어려운 의료인이나 중간상인들이 이런 의약품들을 장마당에 빼돌렸습니다. 물론 돈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 의료시스템은 다음과 같이 운영됐습니다. 환자가 아파서 병원에 가면 진단은 의사가 해주더라도 약은 환자가 장마당에서 직접 구해와야 했습니다. 의사가 환자에게 붕대에서부터 마취약, 주사기에 이르기까지 필요한 물품 목록을 적어주면 환자가 장마당에 가서 의약품을 사 오는 식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장마당에서 유통되는 의약품은 의사들이나 중간상인들이 빼돌린 것들입니다. 의사들은 환자들에게 필요한 양 이상의 목록을 적어준 뒤 환자들이 의약품을 사 오면 일부만 사용하고 일부는 재고로 보관한 뒤 친한 사람들이나 당 간부들에게 사용하기도 하고 장마당에 다시 되팔기도 했습니다.

장마당이 의약품의 거래처가 되다 보니 출처나 유통기한이 불분명한 약품들이 거래되고 가짜 약품까지 유통됐습니다. 약물 부작용과 오남용이 심각했던 것은 물론입니다.

[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 2편_북한병원2
● 돈 될 만한 환자들 먼저 치료

최근에는 장마당에서 의약품 단속이 강화되면서 국가에서 운영하는 약국에서 의약품이 거래되고 있다고 합니다. 의약품을 장마당에 빼돌리는 일은 많이 사라진 것입니다. 다만 병원에 약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여서 환자들은 치료를 받으려면 약국에 가서 필요한 약을 사와야 한다고 합니다. 북한이 원래 무상치료제를 자랑하던 나라인데 무상치료와는 거리가 먼 상황입니다.

약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를 떠나 병원에서 무상치료를 받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됐습니다. 의사들이 환자를 대상으로 돈벌이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병원에 가면 의사들은 돈이 될 만한 환자들을 골라 먼저 치료하고 호의를 베푼다고 합니다.

꼭 돈이 아니더라도 예전에는 감사의 표시였던 술, 담배 같은 선물이 이제는 비공식적 비용이 돼 가격이 정해지고 의료인들도 이런 것들을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노력동원에서 면제받기 위한 의사소견서나 노동능력평가서를 발급받는 데에도 비공식적 진료비가 필요한 것은 물론입니다. 당 간부처럼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돈이 많아 뇌물을 줄 형편이 안 되면 제대로 치료받기 힘든 것이 지금의 북한 의료 현실입니다.

[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 2편_북한 의약품관리소
● 품질 관리 안 되는 의약품 생산시설

의약품 부족도 문제지만 북한 내 의약품 생산 실태도 걱정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북한의 의약품 생산 시설에서 품질 관리가 잘 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제기구들이 북한 내 의약품 생산시설을 살펴본 바에 따르면, 주사제 생산공장 건물에 위생구역과 환기 시스템이 없고, 약품이 무균 상태에서 제조되어야 하나 무균에 대한 개념 자체가 별로 없었다고 합니다. 소독 필터나 병들을 재사용하는가 하면, 생산된 의약품에서 눈에 보일 정도의 부유물이 떠다니는 현상도 관찰됐다고 합니다.

의약품관리소에도 문제가 많습니다. 국제기구들이 살펴본 결과 평양의 중앙의약품관리소는 의약품 보관에 필요한 정도의 온도와 습도가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었지만, 다른 도 지역 의약품관리소는 천장에 물이 새고 환기도 제대로 되지 않는 등 의약품 관리에 문제가 많았습니다. 냉장고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백신이 안전하게 보관될 수 있을지 걱정스러운 곳도 많았습니다. 의약품을 운송할 수단이 부족해 지방으로 의약품이 적시에 배달되지 않고 있는 것은 공통된 현상이었습니다.

이렇게 망가진 북한의 의료현실을 보고 있자면 북한이 의료 후진국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지만, 애초 북한의 의료시스템이 이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북한의 의료인력이나 병상 수는 세계 수준에 뒤떨어지지 않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다음 글에서는 북한의 의료시스템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본문 속 사진들은 북한 병원의 일반적 모습으로, 사진 속 인물들과 기사의 특정 내용과는 관계없음>

(사진=조선중앙TV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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