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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코로나19의 뒤끝, "인플레이션 온다" 잇따르는 경고

[취재파일] 코로나19의 뒤끝, "인플레이션 온다" 잇따르는 경고
▲ 전 세계 코로나19 확진자와 누적 사망자 (사진=뉴욕타임스)

작년 말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19가 발생한 지 곧 1년이 된다. 전 세계 코로나19 확진자는 13일 현재 7천1백만 명을 넘어 1억 명을 향하고 있고, 코로나19에 따른 사망자도 160만 명을 넘었다. 우리나라의 코로나19 확진자도 하루 1천 명을 넘어 최악으로 치닫고 있지만, 글로벌 제약사 화이자(Pfizer)와 바이오앤텍(BioNTec)의 코로나19 백신이 영국에 이어 미국에서도 공식 승인받아 접종에 나서면서 지난 1년 간 전 인류의 활동을 제약했던 코로나19의 캄캄한 터널 끝에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코스피: 12월 11일 현재

2차 대전 후 최악의 경제상황 속에 주가와 유가가 폭락하던 지난 3월 코로나19 1차 대확산 시기의 암울했던 경제상황도 이제 잊혀진 과거가 되고 있다. 미국은 물론 우리나라의 주가는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부동산 가격은 하루가 다르게 오르면서 집을 마련하지 못한 사람들의 애를 태우고 있다.

한국은행 경제전망보고서: 2020년 11월

감소하던 우리나라의 수출은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고, 10월 경상수지는 116억 달러 흑자로 3년 1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은 11월 경제전망보고서에서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은 올해 -1.1%로 1998년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하겠지만, 내년에는 빠른 회복세를 보이며 연간 3.0%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연간 4% 이상 물가 상승률 기록 국가(좌)와 통화량 증가율(우)

영국과 미국에서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던 코로나19가 지나가면 '인플레이션이란 괴물'이 다시 나타날 것이라는 주장이 잇따르고 있다. 석유 파동 등으로 선진국의 물가상승률이 10%대에 달했던 1970년대의 악몽이 되살아 날 것이라는 경고다.

인플레 재연 논란은 지난 12월 3일 전 뉴욕연방은행 총재이자 미국 연준 부총재이기도 했던 빌 더들리(Bill Dudley)가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로 공급여력이 줄어든 상황에서 내년 수요가 증가하면 급격한 인플레이션이 불가피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시작됐다.

다음날인 12월 4일에는 세인트루이스 연방은행 리서치 담당 부총재인 데이빗 안돌파토(David Andolfatto)가 "미국인들은 인플레이션 발생에 대비해야한다"고 경고하며 가세했다. 모건 스탠리의 경제 전문가들은 2021년 하반기 물가 상승률은 연준의 목표치 2%를 넘어서고, 중앙은행이 제때 대처하지 못하면 1970년대와 같은 인플레이션 시대가 도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이들이 인플레이션 발생을 전망하는 근거는 급격한 통화공급의 확대와 인구구조의 변화, 통화정책 담당자들의 태도변화로 요약된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올 들어 미국과 영국, 일본, 유럽중앙은행의 자산은 20%가 늘어났다. 코로나19에 대처하기 위한 정부의 재정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그만큼 시중에 돈을 많이 풀었다는 얘기다.

대규모 부실이 발생한 금융기관의 자본 확충을 위해 돈을 풀었던 2008년 금융위기 때와 달리, 올해 중앙은행이 푼 돈은 실업급여, 휴직수당, 현금성 복지 등으로 기업이나 개인의 주머니에 들어갔다. 기업들의 대출도 크게 증가했다. 내년 코로나19 사태 해결되면 억눌렸던 소비가 급격히 증가할 수 있고, 코로나19로 공급 여력이 줄어든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있다는 분석이다.

전염병이 휩쓸고 지나간 다음에는 인플레이션이 온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영국은행의 연구원들이 지난 800년 동안 인플레이션을 조사한 결과, 전염병이 창궐한 이후에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1918~20년 스페인 독감도 일정 부분 인플레이션에 기여했다는 분석이다. 올해 들어서도 코로나19 이후 해외 운송 비용이 상승했고, 철광석 가격은 연초보다 60% 이상 상승하는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찰스 굿하트(Charles Goodhart) 영국중앙은행 통화정책 위원과 경제학자 마노즈 프라단(Manoj Pradhan)은 지난여름 출간한 책 '인구구조의 대전환(The Great Demographic Reversal)'에서 인구구조의 변화로 앞으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굿하트와 프라단은 1990년 대 이후 지속되고 있는 낮은 인플레이션은 중앙은행들의 적절한 통화정책에 의해서가 아니라 중국과 동유럽, 그리고 다른 신흥시장에서 수백만 명의 새로운 노동력이 유입됐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들 저임금 근로자들이 선진국 근로자들의 임금 협상력을 빼앗아 갔고, 임금 인상 압력에 따른 상품 가격 인상은 옛말이 됐다는 것이다. 최근 낮은 물가 상승률은 결국 해외에서 생산된 상품들의 가격 안정으로 가능했다는 분석이다.

잠재성장률과 실질성장률의 차이(좌), 인플레이션기대치(우)

하지만 중국과 선진국의 고령화가 함께 진행되면서 노동자 1인당 피부양자 숫자가 증가해, 이들 저임금 외국 근로자들에 의존하던 저물가 현상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됐다고 두 사람은 주장한다. 이미 요양원 등 돌봄 산업을 중심으로 인력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아프리카나 인도에는 젊은이들이 많지만, 선진국들은 이민 장벽을 세워 이들 근로자들의 유입을 막고 있다. 결국 선진국 근로자들의 임금 협상력이 강화돼 임금이 오르고 물가도 따라 오를 것이며, 이런 현상은 그동안 확대됐던 사회적 격차를 완화하는 새로운 글로벌 트렌드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대표적인 고령화 국가인 일본의 경우 정부의 각종 경기부양책에도 불구하고 물가가 오르기보다는 디플레이션을 우려하고 있는 것도 해외 투자로 값싼 해외 노동력을 활용해 상품 가격 상승이 억제되면서 본국 근로자들의 협상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셋째 요인으로는 정책 당국자들의 인플레이션에 대한 태도 변화를 지적한다.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들이 인플레이션 발생을 우려하기보다는 경기진작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1970년대 인플레이션은 1979년 미국 연준 의장이 된 폴 볼커(Paul Volcker)의 강력한 통화 긴축과 금리인상으로 꼬리가 잡혔다. 이후 독립적인 중앙은행이 경기침체를 감수하고도 강력한 통화정책으로 결국 물가잡기에 나설 것이라는 믿음이 자리 잡았고, 이는 물가 안정에 기여했다. 하지만, 이런 중앙은행의 정책기조가 변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정부와 중앙은행의 정책 협력 기조가 어느 때보다 높아졌고, 막대한 부채를 안고 있는 각국 정부는 인플레이션을 조장해 부채 부담을 줄이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통화정책의 수장인 중앙은행 총재도 결국 투표로 선출된 정치인에 의해 선임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중앙은행의 총재들도 인기가 없는 인플레이션 억제 정책을 쓰기는 쉽지 않다는 진단도 나온다.

대부분 선진국에서 1990년대 이후 인플레이션이 나타나지 않음에 따라 고물가의 위험을 체감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저금리 정책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미국 연준이 충분한 경기 부양을 위해 지금까지 마지노선으로 여겨졌던 2% 이상의 물가상승률 용인하겠다고 밝힌 점도 이런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미국의 기준금리: %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그러나 내년 대부분 선진국의 물가상승률이 2%에 못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고 보도했다.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단순히 통화량 증가만으로 인플레이션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우세하다. 소비자들의 인플레이션 기대감과 노동시장의 탄력성이 인플레이션을 좌우하는데, 이 두 가지 모두 낮은 인플레이션을 지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각종 설문조사 결과와 금융시장의 추세에서도 급격한 물가상승 조짐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고용이 회복되려면 몇 년 더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내년에 경기가 빠르게 회복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는 골드만삭스도 2024년은 돼야 미국의 실업률이 4%대 아래로 떨어질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대부분 선진국에서 실질 경제성장률이 잠재 경제성장률을 밑돌고 있는 상황이어서 임금인상 요인도 적다는 분석이다. JPMorgan Chase는 내년 근원 물가 상승률이 코로나 이전보다 0.5%p 낮을 것 전망하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통화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제기됐던 인플레이션 우려도 결국 기우로 끝났다. 하지만 유례없이 많은 양의 돈이 풀린 상황에서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감은 언제 폭발할지 알 수 없다.

최근 국내에서 나타나고 있는 이른바 '영끌 투자' 열풍은 언제라도 인플레이션의 망령이 되살아 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코로나19로 많은 기업과 가계가 도산하면서 상품과 서비스의 공급 여력이 상당부문 축소된 상황에서 수요는 급증하면 어느 정도의 단기적인 인플레이션 발생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도 점차 힘을 얻고 있다.

인플레이션은 화폐의 가치를 떨어트려 임금생활자들과 예금 보유자들의 재산 가치와 소비 여력을 잠식한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확대시켜 경제활동의 근간인 신뢰를 저해한다. 단기적으로 실물자산의 가격을 올려 자산가치를 상승시킬 수 있지만, 명목 금리의 상승으로 이어져 부채 버블을 터트릴 수 있다.

물가의 급격한 상승이 아니더라도 코로나19의 극복을 위한 확장적인 재정정책을 마무리하고 재정집행 규모를 축소하게 되면 어느 정도의 금리 상승은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세계 최대의 상품 공급처로 막대한 무역수지 흑자를 내면서 전 세계의 자본 공급처이기도 했던 중국이 내수에 치중하면서 자본수요처로 부상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최근 이어지고 있는 인플레이션 논쟁은 사상 최대 규모로 급격히 불어난 가계와 정부, 기업의 부채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지, 이제 전략을 세워야 할 시기라는 경고음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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