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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떠나는 비건의 조언…"북, 권한 없는 실무협상 한계 알아야"

[취재파일] 떠나는 비건의 조언…"북, 권한 없는 실무협상 한계 알아야"

김혜영 기자 khy@sbs.co.kr

작성 2020.12.12 10:53 수정 2020.12.12 17:02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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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이 지난 11일 저녁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서울 용산구 장관 공관에서 주최한 만찬 일정을 끝으로 '고별 방한 일정'을 마무리했다. 사진은 만찬 계기 기념사진 촬영 모습.
2차례의 북미 정상회담을 이끌어낸 미국의 실무 책임자, 비건 국무부 부장관이 어제 강경화 외교장관과의 만찬을 끝으로 '고별 방한 일정'을 마무리했습니다. 비건 부장관은 방한 기간, 북미 실무협상 미측 대표로서의 마지막 강연도 했는데요. 비건은 강연에서 자신이 협상 대표로서 느꼈던 아쉬움과 한계, 또 북한에 대한 충고와 한국을 향한 조언까지 아낌없이 털어놓았습니다. 흡사 지난 2년 반을 되돌아보는 회고록 같던 강연의 주요 내용 정리해봤습니다.

■ ① 북한을 향한 조언 : 실무진에 협상 권한 줘라

비건은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 합의 이후 양측 대화에 진전이 없었던 점, 결과적으로 2019년 2월 하노이 회담이 결렬에 이르게 된 이유로 북한 실무진의 협상 권한이 없었던 점을 꼽았습니다. 바로 하노이 회담 당시 북측 카운터파트였던 김혁철이 비핵화 협상에 관한 아무런 전권이 없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었는데요.

비건은 "지난 하노이 회담의 문제점은 북한 협상팀이 비핵화를 논의할 권한과 능력이 없었다는 것"이라며 "정상회담 여건을 마련하기 위해선 정상들 간 협의도 중요하나, 그전에 (서로) 동의할 수 있는 진전 방안을 실무진이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북측 협상팀이 좀 더 권한이 있었다면 큰 진전이 있었을 것이다", "북한이 이를 배우길 바란다"고도했습니다.

지난 2019년 2월 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진행된 2차 북미정상회담 당시 모습. 비건은 정상회담 개최 한 주 전, 실무협상으로 이견을 좁힐 기회가 있었지만 북측 협상대표가 비핵화 협상 전권을 갖지 못해 그러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실제 김혁철은 협상 재량권이 없었던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정부의 한 당국자는 "모든 결정을 평양의 판단에 맡기려는 듯한 인상이었다. 재량권이 거의 없어보였다"고 회고했는데요. 북한 실무자의 재량권이 없다 보니, 시간조차 부족했던 협상에 진전을 만들기 어려웠고, 결과적으로 실무급이 아닌 정상급에서 '진짜 협상'이 시작되는 상황이 연출됐다는 겁니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한 소식통은 "하노이의 문제는 실무협상에서 비핵화 문제를 아예 논의하지 못했다는 것"이라며 "북한이 향후 실무협상 대표에게 얼마나 전권을 줄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실무진에 협상 권한을 줘야 한다는 비건의 조언은 북한이 깊이 새겨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당장 다음 달 출범하는 미 바이든 행정부도 실무협상을 중시한다는 인식을 계속 밝혀왔기 때문인데요.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는 지난 마지막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김정은이 핵능력 축소에 동의한다면 만날 용의가 있다"고 했고, 미국 외교위원회 CFR의 문답을 통해선 자신이 실무협상팀에 힘을 실어주겠다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실무협상부터 차근차근해나가야 한다', 이게 바로 미국 측 입장이니 북한은 미국과 협상장에 마주 앉기 위해서라도 실무진에 비핵화를 논의할 재량권을 줘야 하는 겁니다. 적어도 바이든 행정부가 대북정책을 검토하고 협상팀 진용을 갖출 걸로 예상되는 내년 중순쯤까지는 '전권이 있는' 협상팀을 미리 꾸려두는 게 중요해 보입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9년 2월 26일 베트남 하노이에 도착한 뒤 숙소인 멜리아 호텔에서 김혁철 대미특별대표 등 실무진으로부터 보고받는 모습. 이 모습은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 등 북한 매체가 2월 27일 보도했다.
■ ② 북한을 향한 조언 : 서로 최종 목표에 합의하고 로드맵 만들어야

비건은 또 북한을 향해 서로 최종 목표에 합의하고,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습니다. 최종 목표의 주어는 쓰지 않았지만 비핵화를 염두에 둔 걸로 보입니다. 비건은 강연에서 "우리는 (비핵화) 행동을 위한 로드맵을 마련하는 것과 로드맵의 궁극적 목표에 동의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이어진 질의응답에서도 "(북한과 미국 모두) 양측 누구도 무엇을 할 때까지 모든 걸 다 하기를 기대해서는 안 되지만, 로드맵은 기대할 수 있다"며 "서로 만족할 수 있는 방안으로 만들 수 있는데, 이를 위해선 아주 크고 과감한 아이디어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비건이 강조한, '최종 목표에 합의하고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이는 미국이 그간 취해온 입장이기도 합니다. 비핵화의 최종단계를 분명히 하고 그 목표를 위해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핵 활동을 중단해야 하며, 이런 합의가 이뤄지면 비핵화 진행에 맞춰 제재를 완화하고 관계를 진전시키는 '동시·병행적 이행'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즉, 2018년 6월 6.12 싱가포르 공동성명 4개 항 중 '비핵화' 부분을 먼저 논의해, 비핵화 최종 목표를 합의한 뒤 각 단계별 상응조치가 담긴 로드맵을 만들어보자는 게 미국의 생각입니다.

반면, 북한은 싱가포르 공동성명 1항에서 합의한 '새로운 관계' 수립을 최우선 의제로 다뤄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즉, 미국이 원하는 '비핵화' 문제보다 신뢰 구축을 통한 '새로운 관계' 수립에 먼저 나서야 한다는 건데요. 이는 북한이 지난 10년 간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내용이기도 합니다. 북한은 2019년 10월 스톡홀름 회담에서 미측의 새로운 셈법을 요구하면서 대북 제재 해제와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 첨단무기 한반도 반입 중단 등 크게 3가지 요구했는데, 올해 7월 김여정 담화에선 대화 재개의 문턱을 더욱 높였습니다. 제재 해제는 물론 대북 체제 안전보장을 포괄하는 '대북 적대시 정책'을 철회해야 북미 협상을 재개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건데요. 이후 지금까지도 북한의 입장은 변함이 없는 상태입니다.

북한이 이처럼 대화 선결 조건을 내세우는 걸 의식한 듯, 비건은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비건은 "지난 2년간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에 대해 내가 실망했는지 다들 궁금할 텐데, 물론 그렇다"며 "유감스럽게도 북한 카운터파트들은 무수한 기회를 잡는 대신 협상의 장애물을 찾는 일에 몰두하는 데 지난 2년을 낭비했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은 내년 1월 노동당 제8차 당 대회 등 중요한 외교 이벤트들을 앞두고 있다"며 "그때까지 북한이 외교 재개의 길을 열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 ③ 한국을 향한 조언 : 향후 70년 동맹 이어갈 '솔직한 논의' 필요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가 미측 실무팀과 함께 지난 10일 저녁 최종건 외교부 1차관 등 외교부 인사들과 '닭한마리 만찬'을 하는 모습.
비건은 한국을 향해선 한·미동맹이 진화해야 하고, 이를 위해선 솔직한 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비건은 "오랫동안 북한으로부터 남한을 방어하는 데 초점을 맞춰온 한·미동맹은 이를 넘어설 필요가 있다"며 "주권 국가들이 강압받지 않는,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지역을 발전시키는 데 공통의 이해관계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비건은 여기서 중국을 특정하진 않았지만, 사실상 한미 동맹이 북한을 넘어 중국의 위협에 함께 대응하는, 보다 폭넓은 개념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 걸로 보입니다. 비건은 "진화된 한·미동맹이 방위비 분담금과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둘러싼 양국의 이견을 풀어나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비건은 또 이수혁 주미대사가 지난 10월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국이 70년 전에 미국을 선택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70년간 미국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고 언급한 대목을 강연에 그대로 인용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비건은 "과거 70년의 전략적 근거에 기초한 동맹이 향후 70년에는 통하지 않을 것임을 모두 동의할 것"이라며 "향후 70년 동맹을 더 지속하기 위해선 더 큰 노력이 필요하다", "한미동맹의 미래지향적인 전략적 근거를 만들어내기 위해 양국 정부 간 솔직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 ④ 풀지 못한 숙제 :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아쉬움

2016년 3월 체제전복 혐의로 북한에서 15년 노동교화형을 선고받은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모습. 웜비어는 북한 여행 중 정치 선전물을 훔치려 했다는 이유로 지난 2016년 1월부터 17개월간 북한에 억류돼 있다 2017년 6월 13일 혼수상태로 귀국했지만, 병원 입원 6일 만에 숨졌다. 당시 그의 나이는 22살이었다.
비건은 대북특별대표로 활동했던 지난 2년 반을 통틀어 처음으로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길게 언급했습니다. 비건은 "싱가포르 공동성명의 각 항의 진전이 이뤄지면 인권 문제 같은 민감한 문제도 다루길 바랐다"며 인권 문제를 다루지 못한 아쉬움을 드러냈는데요. 그는 "폼페이오 장관이 가장 기억에 남는 업적으로 북한에 억류된 3명의 미국 시민들을 석방시킨 걸 말했지만, 모든 사람들이 돌아올 수 있었던 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지난해 만난 프레드 웜비어와 신디 웜비어의 아들 오토는 비극적인 학대로 부당하게 북한에 수감됐고, 무사히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며 "살아있었다면 이번 토요일에 스물여섯 번째 생일을 맞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수만 명의 한국인과 재미교포들은 북한에 남겨진 친척들을 다시 볼 날을 기다리며 고통스럽게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고, 일본에서는 요코타 시게루가 (북한에 납치된) 딸 메구미와 재회하기를 수십 년 간 기다리다 올해 숨졌다. 미국에는 제시 브라운 소위처럼 가족들과 합당한 작별을 하기를 기다리는 이들이 있다"며 "오토와 시게루, 제시가 남긴 유산과 70년을 기다리는 이산가족들의 희망은 우리가 하는 일의 절박함을 알려준다"고 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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