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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윤석열 감찰 과정이 낳고 있는 검찰 개혁 반동의 역설

- '함바왕' 유상봉 대법원 판결에 드러난 통신비밀보호법 시사점

윤석열 검찰총장(오른쪽)과 한동훈 검사장 (사진=연합뉴스)

지난 1일, 법무부 감찰위원회에서 박은정 감찰담당관이 공개한 윤석열 검찰총장 부부와 한동훈 검사장 간 통화 내역을 두고 논란이 있었습니다. 논란의 핵심은 박은정 담당관이 '통신비밀보호법'을 위반한 것 아니냐는 것이었습니다. 박 담당관이 윤석열 총장 감찰에 활용한 통화 내역은 이른바 '검언유착 의혹' 사건 수사팀으로부터 왔기 때문입니다. 박 담당관을 공격하는 쪽에서는 '통신비밀보호법은 수사기관이 확보한 통신자료 활용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데, 검언유착 수사팀에서 받은 자료를 윤석열 검찰총장 감찰에 쓴 것은 위법'이라고 주장합니다. 이에 대해 박 담당관은 기자단에 장문의 입장문을 보내 해명했습니다. 한동훈 검사장 감찰 사유인 '검언유착 사건'과 윤 총장 징계 청구 사유인 '한동훈 감찰 무마 혐의'는 관련 비위 사건이라며, 검언유착 수사팀에서 받은 통신자료를 활용한 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 아니라는 취지입니다.

사상 초유의 검찰총장 해임을 둘러싼 건곤일척의 승부지만, 보통 사람들이 이 승부를 두고 벌어지는 세세한 법리 논쟁 자체를 알아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다만 경계해야 할 것은 이들의 싸움 과정에서 보통 사람들의 삶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파생되는 일일 겁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한 검사장 수사 자료를 윤 총장 감찰에 활용한 박 담당관의 행위가 '아무런 문제없는 일'로 받아들여진다면, 국가 기관의 수사를 받는 보통 사람들의 인권이 침해당할 길이 열릴 수도 있습니다. 편의적으로 수사에 임했던 검찰의 낡은 관행을 타파하자는 현 정부 검찰개혁 기조에도 역행하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왜 그런 것인지 따져보겠습니다.

박은정 법무부 감찰담당관 (사진=연합뉴스)

● 수사기관이 '관련 있어 보이는 사건'에 통신자료를 마구 가져다 쓴다면

한동훈 검사장의 이른바 '검언유착' 의혹 수사 자료를 윤 총장 감찰에 가져다 쓴 것이 정당한지 여부의 핵심은 바로 '범죄 간 관련성'입니다. 박은정 담당관은 '한동훈 검사장 감찰을 위해 법무부 감찰규정에 따라 중앙지검 형사1부에서 적법하게 수사 자료를 넘겨받았다'고 해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자료는 윤 총장 징계 사유인 한동훈 검사장 감찰 무마 혐의와도 관련된 것이라 이를 윤 총장 감찰에도 활용했다'고 밝혔습니다.

통신비밀법 12조와 13조5를 종합하면 수사기관은 확보한 통신사실확인자료를 ▲통신사실 확인의 목적이 된 범죄와 ▲관련 범죄에 대한 수사 ▲앞의 범죄들에 의한 징계 절차 등에만 활용할 수 있습니다. 박 담당관은 윤석열 총장 징계 사유인 '한동훈 검사장 감찰 무마 의혹'이 그가 기록을 넘겨받은 중앙지검 형사1부의 '검언유착 의혹' 사건과 '관련 사건'이라는 논리로 해당 자료를 활용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법원은 수사기관이 확보한 통신기록을 다른 사건 수사에 활용할 때 매우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라는 판례를 제시해 왔습니다. 수사기관이 통신기록을 편의주의적으로 광범위하게 활용하는 데 제동을 걸어온 것입니다. 이른바 '함바왕'으로 정관계 로비 의혹에 핵심에 섰던 유상봉 씨의 대법원 판결에 드러난 대목이 대표적입니다.

'함바왕' 유상봉 씨

2016도13489 '함바왕' 유상봉 대법원 판결문 中

통신사실확인자료 제공 요청의 목적이 된 범죄와 관련된 범죄란 통신사실확인자료 제공 요청 허가서에 기재한 혐의사실과 객관적 관련성이 있고 자료 제공 요청 대상자와 피의자 사이에 인적 관련성이 있는 범죄를 의미한다. (…)

다만 통신비밀보호법이 통신사실확인자료의 사용 범위를 제한하고 있는 것은 특정한 혐의 사실을 전제로 제공된 통신사실확인자료가 별건의 범죄 사실을 수사하거나 소추하는 데 이용되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통신의 비밀과 자유에 대한 제한을 최소화하는 데 입법 취지가 있다. 따라서 그 관련성은 통신사실확인자료 제공 요청 허가서에 기재된 혐의 사실의 내용과 수사의 대상 및 수사 경위 등을 종합하여 구체적, 개별적 연관관계가 있는 경우에만 인정되고, 혐의 사실과 단순히 동종 또는 유사 범행이라는 사유만으로 관련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수사기관이 확보한 통신사실확인자료를 외형상 '유사해 보이는' 별건 범죄 수사에 무분별하게 사용한다면 국민의 통신 비밀과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통신비밀보호법 취지에도 어긋난다는 것입니다.

박은정 담당관은 한동훈 검사장의 이른바 '검언유착' 의혹 사건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한동훈 검사장 감찰 무마' 의혹이 '관련된 사건'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관련된 사건'인지 여부를 구체적으로 따져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에 따라 두 사건의 인적, 객관적 관련성을 엄격히 짚어본다면, 두 사건은 통신 사실을 마구 가져다가 쓸 수 있는 '관련 범죄'가 아니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 논리에 따르면 두 범죄 간 '인적 관련성'이 성립하려면 감찰 무마 혐의를 받는 윤 총장이 이른바 '검언유착' 사건에서도 형사적 '공범'의 위치에 있어야 합니다. 이는 윤 총장이 한 검사장의 배후라고 정치적으로 공격하는 것과는 별개로, 형사적으로 엄밀한 잣대를 들이댔을 때 '공범' 관계에 놓여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현재 '검언유착 의혹'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는 윤 총장을 공범으로 입건하지 않은 상황, 윤 총장과 한 검사장 혐의 간 '인적 관련성'이 있다고 보는 건 수사 주체의 편의주의적 해석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객관적 관련성'에 대한 해석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박 담당관은 앞에서 설명한 기자단 해명을 통해 윤 총장 감찰 혐의와 한 검사장 혐의를 '관련 있는 사건'이라고 반대 해석을 했습니다. 그러나 인권 보호를 위해 수사기관의 편의적 관행에 제동을 걸겠다고 하는 추미애 장관 법무부에서 이런 해석이 나오는 건 상당히 자가당착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윤석열과 한동훈이 측근이라는 점에서 두 사건은 외형상 비슷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정치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자유입니다. 하지만 법률가로서 통신비밀보호법을 적용할 땐 더욱 세밀하고 엄밀해야 합니다. 검찰의 자의적이고 편의적인 수사 행태를 비판하며 검찰 개혁을 부르짖는 추미애 장관 법무부의 감찰담당관의 경우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이것이 선례를 남기고, 통신자료를 수사기관이 자의적으로 활용하는 문을 넓히는 논리로 활용된다면, 검찰이 확보한 통신자료를 별건 수사에 활용하는 길이 넓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검찰 개혁을 위해 윤 총장을 감찰하는 행위가 도리어 검찰 개혁의 철학을 침식하는 역설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추미애 법무장관(왼쪽)-윤석열 검찰총장

● '제도 개혁'을 잠식해버린 '인사 청산'…정치적 책임 회피의 후과

이런 장면은 처음이 아닙니다. 추미애 법무장관이 수사기관으로 하여금 피의자 휴대폰을 열어볼 수 있게 하는 '한동훈 방지법'을 만든다고 할 때 사방에서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한동훈 검사장 하나를 잡겠다고 피의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법을 만든다는 건 검찰 개혁 정신에 역행하는 것'라는 지적이었습니다. 추미애 법무장관과 집권세력이 윤석열, 한동훈 청산을 검찰 개혁의 핵심 과제로 잡으면서 발생한 파열음입니다.

추미애 법무장관과 집권세력이 윤석열 총장을 검찰 개혁의 가장 큰 걸림돌로 판단하는 건 정치세력의 정치적 판단 자유이니 그럴 수 있다고 치겠습니다. 그렇다면 절대다수 의석을 보유한 국회에서 검찰총장을 탄핵하는 방법으로 자신들이 임명한 윤석열을 제거하고 그에 따른 정치적 책임을 졌으면 됐을 일입니다. 합법적인 절차로 윤석열 총장을 멸균하듯 없애버리고 그들이 생각하는 '순결한 검찰 개혁'을 추진했으면 됐을 일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책임을 회피하는 방향을 선택한 이들은 대안으로 택한 길에서도 치밀하지 못했습니다. 절차와 과정에서 일어나고 있는 예상치 못한 파열음들은 그 무능력 내지는 게으름의 부산물입니다.

이들은 이 파열음을 대의에 따르는 부수적인 피해 정도로 여길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형사 사법체계 전반에서 이들이 남기고 있는 선례는 훗날 보통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후과로 돌아올 수도 있습니다. '혁명을 위해선 뭇 사람들의 희생이 따른다'고 외친 역사 속 수많은 이데올로그들이 있었지만, 이들 대부분이 결국 목적 전치의 덫에 걸려 정작 중요한 인권의 가치가 대의라는 이름의 늪에서 익사하고 말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윤석열 검찰총장 감찰 국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법 절차 위반 논란은 그래서 자세히 기록될 필요가 있습니다. 다른 정부라면 몰라도, '사람이 먼저다'라는 슬로건으로 당선된 정부에서는 더더욱 있어서는 안 될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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