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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내또출, 끄적끄적" 부장님은 인싸말 공부 중

김창규│입사 21년 차 직장인. 실제 경험을 녹여낸 회사 보직자 애환을 연재 중

[인-잇] "내또출, 끄적끄적" 부장님은 인싸말 공부 중
어느 날 지점장들과 함께 있는 단톡방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려보았다.

(카페에서) 아아 주세요.
아, 진짜 코로나가 하필 모임 직전에 뽜이어하네.
근데 너 문찐이랑 진짜 직관했냐? 그 사람 혼코노 같던데?
아니야. 그 친구 인싸야. 워라밸이 좋더라고.
그 친구 그만 얘기해. 안물안궁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는지 물어보자 지점장들은 잠시 답이 없다가 한두 명씩 아는 단어의 뜻을 올려 놓았다.

가 지점장 : "아아"는 아이스아메리카노예요. 젊은 친구들이 주문하는 것을 들어본 적 있어요.
나 지점장 : 안물안궁은 많이 쓰는 것 같은데. 아, 우리 애가 맨날 내가 뭘 물어보면 하는 말이군요. 안 물었어, 안 궁금해 라는 뜻이죠.
다 지점장 : 뽜이어는 fire로 문맥상 여기서는 성행하다 뭐 이런 것으로 쓰였네요.
내년에 뽜어어 하자는 말도 있는데 그것은 열과 성을 갖고 잘해 보자라는 뜻이래요.

난 "대단하시네요"라고 말한 뒤 이 대화의 해석을 올렸다.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주세요.
아, 진짜 코로나가 하필 모임 직전에 엄청 성행하네.
근데 너 문화에 뒤쳐진 사람과 진짜 직접 관람했냐? 그 사람 혼자 코인 노래방 갈 것 같던데?
아니야. 그 친구 사람들이랑 잘 어울리는 외향적인 사람이야. 일과 삶의 균형이 좋더라고.
그 친구 그만 얘기해. 안 물어봤어, 안 궁금해.

그리고 내가 배운 요즘 줄임말을 추가로 썼다. "인싸의 반대말은 아싸. 아웃사이더란 뜻으로 약간 사람들이랑 어울리지 못하고 겉도는 친구를 의미한답니다. 올인빌은 뭔지 아세요? 코로나 시대에 준수해야 할 행동지침인데 집 주변에서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뜻이래요. 가심비는 가격 대비 마음의 만족도, 법블레스유(Gog bless you에서 God을 법으로 바꾼 말)는 법이 너를 지켜주길, 복세편살은 복잡한 세상 편하게, 빼도 박도 못한다고 우리가 흔히 썼던 말도 요즘 줄임말로는 빼박캔트(can't) 라네요. 내또출이란 말도 있어요. 내일 또 출근이라는 뜻이랍니다."

단톡방에 있는 사람들은 재밌다고 맞장구를 쳤다. 그러자 나는 언론사 후배한테 전해들은 그들 사이에서 일어난 최근의 해프닝을 올렸다. 사실 이 부분이 내가 실제로 하고 싶은 말이었다.

『홍남기 부총리가 사표를 냈다. 국회에서 기자들을 만나 "타이핑해서 인편으로 전달했다"고 했다. 우리 부 90년대생 후배가 기사를 썼다. <홍남기 부총리가 사표를 인터넷으로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70년생 기자 : (책망하듯이) "거기서 왜 인터넷이 나와?"
90년생 기자 : "홍 부총리가 인편이라고 해서요."
70년생 기자 : "'인편'이 무슨 뜻인데?"
90년생 기자 : "인편, 인터넷 편지요."

70년대생 데스크들은 벌러덩 뒤집어졌고, 후배는 눈을 껌뻑껌뻑 했다.』

지점장들은 모두 "우리도 직원들과 소통과정에서 이럴 수도 있겠네요"라며 공감했다. 나는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달성되었다고 생각하고 "모두 수고하세요"하고 대화를 끝낸 뒤 잠시 휴식을 취했는데 아내에게 들은 결이 다른 또 하나의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우리 남편이 아침에 나한테 "물 떠줘"라고 했어. / "뭐라고! 아직도 그런 남편이 있단 말야" 그러자 주변 사람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킨 당사자가 당황하면서 상황을 설명했다. "사실은 나 우리 딸에게는 아침에 미리 물을 떠다 줘. 그냥 자발적으로. 근데 그걸 보자 우리 남편이 자기도 "물 떠줘" 그러는 거야." 그녀의 부연 설명을 듣자 그제서야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소통은 참으로 어렵다. 젊은 직원들과 제대로 소통을 하려면 그들의 시대 정서가 묻어있는 줄임말을 알아야 한다. 물론 이런 줄임말은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사용되지 않는 것 같으나 평상시에 이들이 즐겨 쓰는 용어를 모르면 '인편=인터넷 편지'같은 대형 업무사고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또 모든 세대가 어울리는 회사에서는(특히 서로의 백그라운드를 잘 모르는 상황에서) 말을 할 때 머리 속에서 축약되며 나오는 말을 여과없이 그대로 하면 '자신의 남편 = 권위적인 남편'이 되듯이 업무가 엉뚱한 방향으로 진행될 여지가 많다.

솔직히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어느 정도 자리에 올라가면 '척하면 척'하고 알아듣는 사람이 좋다. 하지만 그렇게 회사생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싫더라도 외국어를 배우듯이 젊은 세대의 언어를 습득해야 하며, 피곤하더라도 중요한 업무지시를 할 때는 오해나 착각이 없도록 세심하게 그 뜻을 전달해야 한다. 그래야 조직 전체가 산으로 가는 상황을 막을 수 있고 이로 인해 요즘 줄임말로 회사에 '개이득'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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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인잇 #김창규 #결국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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