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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 북한에서도 "잘 사는 집 자식이 공부 잘해"

우리는 통일에 준비돼있는가

'과연 통일이 될까' 하고 통일에 회의적인 분들이 많습니다. 사실 지금 시점에서 통일의 전망을 긍정적으로 얘기하기는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하지만, 과거 역사를 보면 역사적 격변은 그 직전까지도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한 상태에서 다가왔습니다.

여기서 이런 질문을 던져봅니다. 통일이 비교적 가까운 시기이든 아주 오래 뒤이든 현실로 다가온다면 우리는 당황하지 않고 대처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통일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일까요? 70년 이상 분단돼 우리와는 많이 달라진 북한의 현실에 대한 이해와 남북한 통합의 과제, 통일 과정에서 부딪혀야 할 현안들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얼마나 될까요?

저는 앞으로 '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라는 시리즈를 통해, 북한의 현실과 통일과 관련된 현안들을 하나씩 짚어보려고 합니다. 이런 작업을 하는 이유는 북한전문기자로서 북한과 통일 문제에 대해 15년 이상 관심을 가져온 것도 있지만, 최근 4년여에 걸쳐 관련 서적을 출간하는 과정에서 수집한 여러 가지 자료와 고민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당장은 관심이 많지 않은 주제일 수 있지만, 언젠가는 다가올 미래를 준비한다는 차원에서 벽돌을 한 장씩 쌓아보려고 합니다.

평양 제1중학교

● 북한 학부모 교육열도 남한 못지않다

처음으로 살펴보려고 하는 주제는 북한의 대학 입시입니다. 지난 3일 전국적으로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졌죠. 교육열이 높은 남한 사회에서 대학입시는 중요 관심사이고 수험생 부모에게 수능은 집안의 가장 중요한 행사 중의 하나입니다.

북한에서도 학부모들의 교육열은 대단합니다. 교육이 자녀들의 미래와 직결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김일성종합대학 같은 북한의 명문대에 보내려는 북한 학부모들의 관심은 지대합니다.

북한 학부모들의 대학 입시 경쟁은 자녀들이 중학교에 진학하는 단계부터 시작됩니다. 북한의 영재교육기관으로 제1중학교라는 것이 있는데, 남한의 특목고 같은 개념으로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해 교육시키는 곳입니다.

제1중학교는 초급중학교(남한의 중학교)와 고급중학교(남한의 고등학교) 과정을 포괄하는 6년제인데, 북한의 하부 행정단위인 시, 군, 구역까지 확대됐다가 지금은 평양과 각 도별로 1개씩만 존재합니다. 각 도의 제1중학교는 도에서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하며, 평양 제1중학교는 전국에서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합니다.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제1중학교에 보내려는 이유는 김일성종합대학 같은 명문대 입학도 입학이지만 제1중학교에 입학하면 일단 대부분 대학에 진학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일반 중학교에서는 보통 10% 내외의 학생들만 대학에 진학하는데, 제1중학교 졸업생들은 거의 대부분이 대학에 진학하는 만큼 제1중학교 입학 자체로 대학 진학에서 엄청나게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북한 학생들, 교실, 학교 (사진=연합뉴스)

● 북한의 대학 입시 제도는?

제1중학교에 대해 좀 더 알아보기 전에 북한의 대학 입시 제도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북한에서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각 지역별 예비시험과 대학별 본시험을 치러야 합니다. 학생들은 예비시험 성적에 따라 본시험을 치를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는데, 본시험 자격을 얻는 학생 수는 학교별로 다릅니다. 북한 당국이 전체 대학의 입학생 숫자를 고려해 대학 본시험을 치를 수 있는 자격을 각 지역별로 할당하기 때문입니다.

즉, 북한 내각 교육위원회가 도별로 대학 본시험 응시자 정원을 할당해주면, 도에서는 할당받은 정원에 따라 각 고급중학교별로 본시험 정원을 할당해주는 식입니다. 이때 할당받는 본시험 자격을 북한에서는 흔히 '뽄트'를 받는다고 표현합니다. '뽄트'는 러시아어에서 유래된 말로 정원이나 TO의 개념입니다.

보통 예비시험을 거쳐 대학 입학 본시험을 치를 자격을 얻는 학생, 즉 '뽄트'를 받는 학생은 일반 중학교 졸업생의 20% 정도이고, 이 가운데 본시험에 합격해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은 반수인 10% 정도라고 합니다. 북한의 학력을 남한과 일괄 비교하기는 어려우나 대학 입학자 비율로만 보면 북한에서는 상당히 우수한 학생만 대학에 갈 수 있는 것입니다(남한의 경우 2012년 기준으로 볼 때 고등학교 졸업자의 71.3%가 대학에 진학했다고 합니다). 고급중학교에서 대학에 갈만한 학생들은 교장이 공부하라고 노력동원을 빼주기도 한다고 합니다.

[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 1편 (사진=조선중앙TV 캡처)

● 제1중학교 졸업생은 대부분 대학 진학

제1중학교 입학이 대학입시에서 유리한 이유는 뽄트를 받을 때 제1중학교가 우선적으로 배려되기 때문입니다. 제1중학교는 일반 고급중학교에서 받기 어려운 중앙대학 뽄트도 우선적으로 할당받습니다. 북한에서 중앙대학과 지방대학의 의미는 우리하고는 다른데, 중앙대학은 대학 소재지와 관계없이 전국단위로 학생을 선발하는 대학을, 지방대학은 해당 지역에서만 학생을 선발하는 대학을 말합니다. 제1중학교 학생들은 중앙대학에 가지 못해도 대부분 대학에 진학하게 된다고 합니다. 제1중학교 학생들은 또 일반 중학교 학생들이 해야 하는 노력동원도 면제받습니다.

제1중학교가 북한에서 인기 있는 것은 대학 진학에서 유리하기 때문이지만, 중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또 하나의 선호요인입니다. 북한에서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으면 남자의 경우 대개 군대에 가는데, 군대 내 생활이 열악하기 때문에 부모들로서는 자녀들이 군대가 아닌 대학에 갈 수 있는 제1중을 선호합니다.

대학을 졸업한 뒤 간부가 될 뜻이 있는 사람은 군대에 가지만, 간부가 될 뜻이 없는 사람은 군대에 가지 않기도 합니다. 대학을 졸업한 뒤 군대에 가면 3∽5년만 복무한 뒤 제대할 수 있다는 점도 제1중과 대학 진학을 선호하는 이유입니다. 참고로 북한의 군 복무기간은 남자는 12년 여자는 7년 정도이며, 특수부대 병력은 13년 이상 장기복무를 해야 합니다.

제1중에 대한 선호는 북한 내에 사교육이 확대되는 계기로 작용했습니다. 돈 있는 학부모들이 자녀를 제1중에 보내려는 욕심과, 경제난으로 생계가 어려워진 교사들이 부가적인 돈벌이를 해야 했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입니다. 시, 군, 구역까지 확대됐던 제1중이 평양과 도별 1개씩으로 축소된 것은 사교육 부작용과 관계가 있습니다.

북한 학생 방학모습

● 잘 사는 집 자식이 공부 잘해

제1중이나 대학 진학에서 중요한 과목은 수학인데, 돈이 있는 집들은 학교 밖에서 별도로 수학 과외를 받기도 합니다. 이를 위해 학부모들이 유명 수학교사를 섭외해 시내에 집까지 얻어준 뒤 제1중 입학을 위한 그룹과외를 시키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학부모들은 소학교(남한의 초등학교) 입학 때부터 실력 있는 수학교사 혹은 실력 있는 수학교사가 운영하는 수학 소조가 있는 학교를 찾아 자녀를 보내고, 실력 있는 수학교사를 자녀의 담임교사로 만들기 위해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제1중에 가려면 공부도 잘해야 하지만 부모의 경제력도 뒷받침돼야 합니다. 제1중 학생들은 기숙사 생활을 하는데, 학교는 별 능력이 없어서 부모들이 생활 비용을 대야 하기 때문입니다.

북한에서 학부모들의 영향력이 과대해지면서 대학 입학을 위한 뽄트를 학부모가 직접 받아오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학부모가 개인적인 능력으로 해당 기관에 뇌물을 주고 뽄트를 따내는 것입니다. 제1중을 가기 위한 사교육과 제1중 입학 이후에도 필요한 학부모의 경제력, 대학 입학 뽄트까지 따낼 수 있는 학부모의 영향력 등으로 인해 북한의 교육은 돈의 힘으로 학력과 특기를 획득해 소수만이 대학에 갈 수 있는 구조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경제력 격차에 따라 차별적으로 사교육이 이뤄지고 갈수록 계층 간 차이가 심해지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북한 내에서는 '잘 사는 집 자식이 공부를 잘한다'는 인식이 공공연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분단의 저편에서도 남한과 비슷한 넋두리가 나오고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입니다.

● 남북한 모두가 만족할 대학 입시제도는 있을까

남한이나 북한이나 교육열이 엄청나고 대학 입시에 대해 갖는 관심이 지대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통일 뒤 교육 문제에서 남북한 주민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대학 입시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남북한을 불문하고 실력에 따라 대학에 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남한 주도의 통일이 이뤄진다고 할 때, 지금 남한의 입시제도를 북한 학생들에게 적용해 대학에 진학하도록 하는 것은 북한 학생들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합니다. 북한 지역 학생들의 교과과정과 학력 수준이 남한과 확연히 다른데 남북한 학생들에게 동일한 입시제도를 적용하는 것은 불공정합니다. 북한 학생들에게 불리한 입시 여건은 한두 해만에 극복되는 것도 아닙니다. 북한 학생들의 실력도 실력이지만 대학 입시 지도를 해야 할 북한 교사들이 재교육을 받아야 할 상황이니 교사들의 지도가 제대로 이뤄질 리 없습니다.

공교육 이외의 교육 인프라, 즉 사설학원 등에 있어서도 남한 지역과 북한 지역의 차이는 현격합니다. 이런 여건들을 무시하고 남북한 학생들에게 동일한 입시 규칙을 적용한다면, 이는 어른과 아이를 동일선상에서 경주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자녀 교육을 위해 올인하고 있는 북한 학부모들이 이런 입시제도를 순순히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다면 북한 지역 학생들에게 입시 상의 이점(利點)을 제공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는데, 여기에 대해 남한 학생과 학부모들이 어느 정도까지 동의할 수 있을지가 의문입니다. 대학 입학 정원 가운데 일부를 북한 학생들에게 배정하거나, 북한 학생들의 입시 성적에 가산점을 주는 방안 등을 생각해볼 수 있을 텐데, 남한의 치열한 입시 경쟁을 볼 때 어디까지 동의가 이뤄질 수 있을까요. 입시 상의 이점이 필요하다는 원칙에는 동의할지 모르지만 구체적인 각론까지 동의가 이뤄지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어떤 입시제도를 마련하든 간에 남북한 모두가 만족할만한 제도를 만들기는 어렵습니다.

결국에는 중간선의 타협점을 찾아야 할 텐데 남쪽 주민에게도 북쪽 주민에게도 100% 만족스럽지는 않을 겁니다. 통합의 모든 과정이 아마도 이런 식이 되겠죠.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가능한 타협점을 찾아내는 것이 통합의 과제라는 것인데, 한 가지 더 생각해볼 부분은 통일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구조를 업그레이드시킬 방법은 없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대학 입시에 목을 매야 하는 사회구조를 통일 후에도 계속 유지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입니다. 통일을 우리 사회 업그레이드의 계기로 만들 수는 없는가 이 부분에 대한 고민도 진지하게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진=조선중앙TV 캡처, 평양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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