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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예술품 베낀 '중국 짝퉁', 국내서도 팔리고 있다

<앵커>

저희가 취재한 내용 전해 드리기 앞서서 영상 하나 먼저 보시겠습니다. 약 300년 전 중국 청나라 시대에 유명 학자가 썼던 글입니다.

[이민숙/한국외대 특임교수 : '나소화'의 먹 16개를 샀는데, 한눈에 보기에도 오래된 물건 같았습니다. 집에 와서 써보니 진흙으로 뭉쳐서 검은색으로만 칠한 것이었죠.]

1700년대에도 명품이라고 속인 가짜를 팔았다는 내용이었는데, 2020년에도 이른바 짝퉁은 계속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동안은 주로 가방이라든지, 시계, 신발 같은 게 많았는데 이제는 예술작품까지 가짜가 늘고 있습니다. 원작을 베끼는 건 물론이고 그렇게 만든 가짜 작품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판매되면서 원작자들까지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그 실태와 함께 막을 방법은 없는건지, 소환욱 기자 최고운 기자가 함께 취재했습니다.

<소환욱 기자>

성인 키를 훌쩍 넘는 도넛 모양의 나무 조각.

나무를 차곡차곡 엮거나 포개서 만든 공과 테이블.

밤나무나 낙엽송 등으로 설치미술을 하는 세계적인 작가 이재효의 작품들입니다.

이 작가는 2년 전 자신의 작품을 베낀 조각품이 중국의 대형 온라인 쇼핑몰 '타오바오'에서 팔린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재효 작가의 작품

처음에는 유명세라 여겼습니다.

[이재효 작가 : 그때는 그냥 '짝퉁 나오나 보다' 그랬죠. 나는 뭐 짝퉁 나오면 좀 유명해지나 보다 생각했어요.]

하지만 내버려두는 사이 선을 넘었습니다.

이 작가의 작품 사진을 그대로 올려놓고 닥치는 대로 베껴 팔더니,

[이재효 작가 : 처음에는 동그란 나무 공만 몇 가지 있었는데 몇 년 만에 굉장히 다양해진 거죠.]

이제는 이 작가와 스태프의 사진까지 쇼핑몰 사이트에 무단으로 올렸습니다.

마치 타오바오가 작가와 계약을 맺고 작품을 파는 것처럼 착각할 정도입니다.

[이재효 작가 : 이 마당에서 우리 작업장 스태프들이 다 같이 단체사진 찍듯이 찍은 사진이거든요. 중국에서 만든 건지 내 작품인지 구분을 잘 못 해요. 내가 작가니까 알지, 남들은 모르죠.]

이 작품의 경우 가격은 2백만 원 정도. 원작품의 약 50분의 1 수준입니다.

타오바오에서 이른바 짝퉁 작품을 팔고 있는 업체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중국 후난성에 공장이 있고 선전에는 전시장도 있다며 실력을 자랑합니다.

[중국 가짜 미술품 제작 업체 : 사진만 가지고 있으면 뭐든 제작 가능해요. (사이트에 올려놓은 것 말고 다른 미술품도요?) 네, 주문제작 돼요.]

이 작가 작품에 있는 독특한 낙관도 새겨 준다고 합니다.

[(예술가는 작품에 자신의 상징인 낙관이 있잖아요, 이것도 있나요?) 없어요. 그냥 목각 제품인데, 새겨 드릴 수 있어요.]

저작권은 모르겠다는 반응입니다.

[(저작권 문제는요?) 그런 건 우린 잘 몰라요.]

통화가 끝난 뒤에는 자신들이 만들면 원작과 똑같다며 구매를 독려하는 메시지까지 보내왔습니다.

명품 공산품 뿐 아니라 예술작품까지 무차별적으로 베끼는 중국 업체들, 이렇게 만들어진 가짜 예술품들이 중국 최대 온라인 쇼핑몰에서 버젓이 팔리고 있습니다.

(영상취재 : 배문산, 영상편집 : 원형희, VJ : 김준호) (CG : 홍성용·이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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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운 기자>

알리바바그룹이 운영하는 타오바오입니다.

미국의 아마존, 일본의 라쿠텐에 비견되는 중국 최대 온라인 쇼핑몰입니다.

중국어로만 안내하고요, 영어같은 다른 외국어는 지원하지 않습니다.

중국내에서는 배송이 되는데 다른 나라에서 주문하면 보통 중국 내 배송 대행지를 거쳐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저작권을 침해한 제품이 유통이 돼도 중국어에 능하지 않은 한 외국에 있는 원작자는 그 사실을 알기가 어렵습니다.

이렇게 중국에서 만든 짝퉁 제품이 중국 쇼핑몰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팔리고 있습니다.

옻칠 공예가인 유남권 작가는 재작년 동료와 함께 남원 특산품인 목기를 모티브로 유리잔을 디자인했습니다.

[유남권/옻칠 공예 작가 : (목기로 만든) 막걸리 잔을 저희가 생각하던 중에 두 개를 딱 겹쳐 보고 '아, 이 정도면 맥주잔을 해도 되겠다'해서 유리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독창성을 인정받아 디자인 특허를 낸 뒤 중국 하청 업체에 생산을 맡겼고 공예품 전문 매장에 입점했습니다.

그런데 네이버 스토어에서 자신의 디자인을 베낀 컵이 5분의 1 값에 팔리는 걸 발견했습니다.

네이버 스토어에 있는 자신의 디자인을 베낀 컵, 유남권 옻칠 공예 작가가 동료와 함께 남원 특산품인 목기를 모티브로 디자인 한 유리잔

짝퉁 물건을 판 한 국내 업자는 저작권 위반 물품인지 몰랐다며 물건을 폐기했고 다른 업자는 내용증명을 보내자 잠적한 상태.

물건이 어디서 왔는지 추적한 결과 타오바오에서 수입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유남권/옻칠 공예 작가 : 타오바오 이런 중국 업체 사이트를 통해서 검색해서 (물건이) 오더라고요. 물건 뺏기고 이런 느낌이랄까? 자식 뺏기는 느 낌?]

우리나라와 중국 등 179개 나라는 '문화 예술 저작물 보호'를 위한 국제 조약, 즉 베른 협약 가입국입니다.

당연히 이 협약에 가입했으면 개별 국가에서 인정받은 저작권은 모든 가입국이 인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중국은 중국에서 저작권을 따로 등록하거나 중국 내 인증기관에서 인증받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협약에 가입하고도 실제로는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겁니다.

[박주희/변호사 : 중국에 저작권 소송을 할 때는 (중국) 저작권 등록증이 있어야 이 사람을 저작권자로 추정을 해주는 (사례가 많습니다.)]

재작년 영국 캐릭터인 페파피그는 짝퉁을 만들어 타오바오에서 판 중국업체와 소송 끝에 저작권을 인정받았습니다.

이마저도 거대 기업이 소송 전에 나서 이긴 첫 사례로 개인이 언어장벽을 뚫고 소송에 나서는 건 쉽지 않습니다.

[홍경한/미술 평론가 : 언어도 돼야 하고 비용도 엄청나게 많이 들죠. 결정적으로 작업할 수 없을 정도로 신경을 많이 써야 하고. 그걸 쉽게 할 수 있는 작가가 과연 몇이나 될까요?]

현재로선 다른 나라에서 저작권을 침해당한 상품이 판매되는 걸 알면,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저작권위원회에 권리를 위임해 현지 짝퉁 판매 사이트를 삭제하도록 하는 게 느리지만 현실적인 방법입니다.

직접 저작권 침해소송을 할 경우 내년부터 소송 비용 일부를 지원하는 방안을 문체부는 추진하고 있습니다.

(영상취재 : 배문산, 영상편집 : 전민규, CG : 최재영·성재은·정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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