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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보톡스 돈벌이' 나선 의사들…복지부 조사 착수

[취재파일] '보톡스 돈벌이' 나선 의사들…복지부 조사 착수
19세기 초 독일에서 대규모 식중독으로 수백 명이 숨졌다. 특이하게도 환자들 상당수가 마비 증상을 겪었다. 원인은 상한 소시지와 통조림으로 지목됐다. 상한 고기에서 나온 균이 산소가 없는 통조림 속 환경에서 독극 물질을 뿜어낸 것이다. 지금은 마비 효과를 내는 의약품으로 쓰이는 보톡스, 보톨리늄 톡신이다. 소시지를 뜻하는 라틴어 '보툴루스(botulus)'에서 명칭이 유래했다.

성형, 미용계에서 '젊음을 되찾는 마법'으로도 불리는 보톡스는 여전히 지구상에서 가장 강한 독이다. 1g만으로도 100만 명 정도가 사망할 수 있다. 1995년 일본 도쿄에서 출근길 지하철에 독가스 테러를 가한 옴진리교도 이 보톡스를 연구했다. 13명이 숨지고 5천600여 명이 다친 이 지하철 테러에도 사린가스와 함께 보톨리눔 톡신을 사용한 걸로 알려졌다. 보톡스는 지금도 테러단체들이 꿈꾸는 가장 이상적인 생화학무기로 전해진다.

● 의사 아니면 못 쓰는데…불법 시술 판친다

희석해서 써도 워낙 독성이 강한 탓에 보톡스는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된다. 의사의 처방전이 있어야만 구할 수 있고 의사의 진단과 지시에 따라서만 사용할 수 있다. 근육에 직접 주사하기 때문에 의료사고나 시술 후 부작용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서동철 중앙대학교 약학대학 교수는 "혈관이나 신경에 보톡스를 잘못 주사하면 대상자가 사망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실제 2018년 홍콩의 한 미용클리닉에서 보톡스 주사를 맞은 50대 여성이 숨지는 사건도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보톡스 불법 시술과 그로 인한 부작용 사례가 종종 기사에 등장한다. 취재진도 어렵지 않게 보톡스 불법 시술을 하는 사우나를 찾을 수 있었다. 서울에 위치한 이 사우나의 마사지사는 "의료법 위반에 적발된 전직 의사 출신이 보톡스를 시술한다"며 "시술에 대개가 만족한다"고 홍보했다. 시술도 병원이 아닌 빈집에서 한다고 했는데 보건범죄 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 위반으로 무기 또는 2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는 불법 행위다.

[12.08 취재파일용_장훈경] 사진1

● 의사가 팔고 중국인들이 빼돌린다

보톡스 불법 유통 경로를 추적했다. 말단에 중국인들이 있었다. 이들은 서울 곳곳에 사무실을 차려놓고 국내 제약사들의 보톡스를 상자째 쌓아두고 있었다. 아예 길거리에서 거래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이들은 중국 모바일 메신저 위챗에 보톡스를 뜻하는 은어 '肉肉'를 쓰며 "원하는 제품을 다 갖고 있다", "한국에서 직접 받는 게 싸다"고 광고했다. 취재진은 이들을 통해 국내 제약사의 보톡스 500병을 쉽게 구매할 수 있었다. 간판은 환전소, 물류업체로 써 있었지만 돈만 건네면 보톡스를 내줬다. 전문의약품 취급 권한이 전혀 없는데도 아무 거리낌이 없었다.

보톡스를 더 많이 사겠다고 문의하자 중국인들은 "2~3일 더 기다려 달라"며 "병원에 예약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에 보톡스를 공급하는 곳이 국내 병원이라는 뜻이다. 실제 보건복지부를 통해 중국인들에게 산 보톡스의 유통 경로를 문의하니 제약회사가 병원에 납품한 것이 확인됐다. 병원은 환자 시술에만 보톡스를 사용할 수 있는데 중국인들에게 판매를 한 것이다. 5년 이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는, 명백한 약사법 위반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렇게 보톡스를 불법 판매하는 병원이 서울 강남에만 10곳 이상, 전국적으로는 150곳에 이른다"고 말했다.

취재진은 서울 강남의 성형외과들에 전화를 걸었다. 보톡스 불법 판매가 가능하다는 곳이 많았다. 아예 당장 만나자고 하는 병원 원장을 직접 찾아가 봤다. 원장은 이 자리에 전 제약사 대표까지 대동해 필러까지 같이 거래하자고 말했다. 원장은 필러 6천 개, 보톡스 3천 개를 사가라고 제안했다. 개당 납품가보다 각각 8천500원, 4천 원 더 비싼 가격이었는데 자기 돈 한 푼 안 들이고 무려 6천300만 원의 이익을 챙기는 거래였다.

[12.08 취재파일용_장훈경] 사진2

● "제약회사-병원-중국인, 모두가 윈윈(win-win)"

업계 관계자는 "모두가 윈윈하는 구조 속에서 독극물인 보톡스가 시중에 무분별하게 팔려나간다"고 말했다. 병원은 보톡스 불법 거래를 통해 새로운 현금 수익원을 챙기고 세금도 덜 낸다. 중국인들 역시 차익을 남기고 판다. 실제 업계에서는 병원이 제약회사 납품가보다 20% 정도의 웃돈을 받고 중국인에 넘기고, 이들은 또 여기에 20%를 남겨 판매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병원들과 중국인들 모두 매달 각각 8억 원 정도씩 차익을 보는 걸로 추정한다. 보톡스는 그냥 현금이라는 뜻이다.

업계에서는 이 과정에 병원에 보톡스를 공급하는 제약회사 영업사원들이 개입돼 있다고 본다. 병원 원장들에게 사업자등록에 의약품 수출과 무역을 추가해 본격적으로 불법 유통에 나서라고 안내하는 것도 영업사원들이라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하지만 매출만 올리면 그만인 제약회사는 사실상 수수방관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제약회사는 한 병원이 사용 가능한 보톡스 물량을 추정해 납품 물량을 조절할 수 있다. 그러나 제약회사는 취재진에 "사용량은 병원의 능력"이라며 "영업사원이 그럴 리 없다"는 입장만 반복할 뿐이었다.

● 이제라도 정부 나서야…

중국인을 통한 불법 유통 구조가 자리 잡은 건 중국에서 국내 보톡스를 사용하는 게 불법이라는 데 그 원인이 있다. 국내 시장 점유율 1위 휴젤의 보톡스만 지난 10월, 중국에서 정식 판매 허가를 받아 이달부터 본격적으로 정식 수출이 시작됐다. 메디톡스, 대웅제약, 휴온스 등 나머지 상위 3개 업체 보톡스는 아직 판매 허가를 받지 못한 상태다. 하지만 관세청에 따르면 매년 1천억 원 정도의 보톡스가 중국으로 팔리고 있다. 미국 등 다른 나라 제품에 비해 가격도 싼 데다 의료 선진국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국내 보톡스 제품에 대한 수요가 크다는 게 이유라고 한다. 제약회사들의 보톡스 생산량이 늘어도 국내 수요는 제한적이기 때문에 불법 유통만 늘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SBS 보도 이후 보건복지부가 서울 강남 병원 10여 곳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 전문의약품 불법 유통을 단속하는 식약처 위해사범중앙조사단이 있지만 병원에 대한 조사 권한이 없어 보건복지부가 나선 것이다. 경찰 역시 이와 별개로 병원 원장과 제약회사 영업사원의 부정 거래를 들여다보고 있다. 보톡스는 독이다. 수출이 얼마가 늘든 이 위험천만한 불법 유통을 그냥 두고만 봐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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