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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이제 빚 낼 곳도 없어요"…'착한 건물주' 만나는 건 천운?

버티거나 망하거나…사라지는 자영업자들

[취재파일] "이제 빚 낼 곳도 없어요"…'착한 건물주' 만나는 건 천운?
경기도 고양시에서 스피닝 센터를 운영하는 김 모 씨는 또다시 센터 문을 닫게 됐습니다. 수도권 거리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되면서 실내체육시설은 모두 운영을 중단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거리두기 수준이 지금보다 낮을 때 사정이 그리 좋았던 것도 아닙니다. 코로나 초기부터 불안한 마음에 기간 연장을 요청하거나 환불해달라는 회원들 요구가 줄을 이었습니다. 회원은 줄어드는데 매달 꼬박꼬박 나가는 관리비와 건물 임대료만 350만 원 수준. 이를 제외하면 김 씨에겐 수입이 마이너스인 달이 더 많았습니다. "1년은 어찌 버텼는데, 이제 대출받을 곳도 없어요." 착잡한 목소리의 김 씨는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자영업자

● '숨만 쉬어도' 나가는 임대료, 자영업자 숨통 조이지만

길어지는 코로나와의 싸움에서 자영업자들에게 가장 큰 부담은 변함없는 임대료입니다. 간혹 언론을 통해 알려지던 '착한 건물주' 얘기는 김 씨에겐 먼 얘기였습니다. 조심스레 임대료를 깎아달라고 건물주에게 부탁도 해봤지만 돌아온 대답은 매몰찼습니다 . '숨만 쉬어도' 나가는 임대료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막막하다는 자영업자는 김 씨뿐만이 아닙니다. 인쇄 관련 도소매업을 하는 또 다른 자영업자 역시 아직 나오지 않은 '2차 재난지원금'만 기다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비대면 소비가 확산하면서 각종 광고지나 안내문 등 실물 종이에 대한 수요는 더 줄었습니다. "코로나 타격이 나한테까지 올지는 몰랐다"고 덧붙이던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 역시 전년대비 매출이 30%, 올해 초반에 비하면 50%나 줄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 학원 강사 10명 중 3명은 실직…"버티려면 내보내는 수밖에 없어"

본격적인 방학이 다가왔지만, 문을 걸어 잠그게 된 학원들 사정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학원 강사들 중에선 코로나로 실직을 경험했다는 사람이 27%나 됐습니다. 휴원이 연장되면서 무급 휴가 등 휴업을 경험했다는 사람도 열 명 중 여덟 명이나 됐습니다. 그마저도 휴업 수당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서울에서 보습학원을 운영하는 한 원장은 역시 임대료가 가장 큰 고민이라고 말했습니다. "임대비는 계속 나가는데 원생 모집은 안 되고, 그마저 원비라도 깎아줘야 하는 상황에서는 강사를 그대로 쓰기가 어렵다"고 덧붙였습니다. 줄일 수 없는 임대료 대신 직원을 내보내 학원 운영비를 충당하거나 폐업하는 실정이라는 겁니다.

자영업자들이 벼랑 끝을 걷고 있다는 건 통계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비법인기업(자영업자)의 대출은 올해 3분기 말을 기준 387조 9천억 원으로 사상 최대였습니다. 대부분 개인사업자인 이들이 올해 1월에서 9월 사이 은행에서 빌린 돈이 약 38조 원.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두 배 이상 폭증해 '그나마 빚으로 겨우 버틴다'는 말을 실감케 했습니다.

그러나 하루하루 생계가 위태로운 자영업자들에게 코로나가 닥쳐도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은 여전히 유효했습니다. 지난 9월 국회는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을 개정해 임대료 증감 청구 요건에 '제1급 감염병에 의한 경제 사정의 변동'을 포함시켰습니다. 코로나 대유행으로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도 건물주에게 임대료 감액을 청구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겁니다. 하지만 바뀐 법 역시 이들에게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임대료가 전과 변함없다고 밝힌 소상공인이 80%에 달했습니다. 심지어 전년보다 임대료가 올랐다는 경우도 14%나 됐습니다. 임대인이 감액 요구를 수용할 의무가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자영업자들의 호소가 많았습니다.

● 호주, 건물주 임대료 감면 의무화…캐나다,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 혜택 받도록

다른 나라 사정은 어떨까요. 호주의 경우 올해 4월 코로나19 국면에서 상업용 부동산 임대차 계약에 적용되는 '의무행동규칙'(Mandatory Code of Conduct)를 발표하면서 건물주가 임차인에게 영업 피해에 비례해 임대료를 감면해 주도록 명시했습니다. 임대인이 코로나19 기간 동안 임대료를 인상할 수 없고, 임대료 미납을 이유로 임대차 계약을 해지할 수도 없도록 규정했습니다. 캐나다 역시 '캐나다 긴급 상업용 임대 지원 정책'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임대인에게 세제감면과 대출 상환 유예 등의 혜택을 주면서 동시에 임대료를 최소 75% 감면하도록 한 내용이 골자입니다. 정부가 그 임대료의 50%를 부담하기 때문에 임차인은 최대 25%만 부담하면 되도록 했습니다. 정부가 임대인의 부담을 덜어주면서도 그 혜택이 임차인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도록 했습니다. 우리와는 대조적인 모습입니다.

연말까지 길어진 거리두기 상황에 자영업자들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습니다. 호주와 캐나다처럼 피부에 와 닿는 임대료 대책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정부와 임대인, 임차인의 진정한 고통분담 방안을 논의하는 게 당장 1, 2백만 원의 추가 지원금 지원보다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을 뿐, 분초를 다투며 '망하거나 버티거나' 기로에 선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언제까지 '착한 건물주'의 선의에 기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 직장갑질119, <코로나 10개월 학원강사 500명 설문조사>,
소상공인연합회, <11월 5일 임대료 현황 실태조사 결과>,
국회도서관 <코로나대유행과 상가임대차 보호에 관한 미국,캐나다,호주 입법례>
도움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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