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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적북적] '인생은 불확실한 일뿐이어서' 오가와 이토

[북적북적] '인생은 불확실한 일뿐이어서' 오가와 이토

권애리 기자 ailee17@sbs.co.kr

작성 2020.12.06 07:22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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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북적북적] 인생은 불확실한 일뿐이어서 오가와 이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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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룸] 북적북적 269 : '인생은 불확실한 일뿐이어서' 오가와 이토

"엄마는 요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평소 식사는 거의 할머니가 준비했다. 그래도 엄마는 매일 아이들과 남편 도시락을 만들고, 휴일에는 커다란 냄비에 니코미소바(닭 육수로 끓인 메밀국수)를 끓여주었다. 시간을 들이지 않고 재빨리 만들 수 있는 이 요리는 엄마의 주특기였다.

엄마는 요리를 특별히 잘하지 않았지만 달걀말이는 참 잘했다. 길이 잘 든 프라이팬에 굽는 엄마의 달걀말이는 달콤하고 폭신하고 부드러웠다. 나는 지금도 엄마처럼은 달걀말이를 만들지 못한다. 아마 앞으로도 평생 만들지 못할 것이다.

내 도시락에는 거의 매일 달걀말이가 들어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부엌에서 엄마가 달걀을 굽고 있다. 따끈따끈한 달걀말이를 도마에 올려 식칼로 써는데 나는 그때 나오는 달걀말이 꽁다리를 정말 좋아했다. 엄마 바로 뒤에서 손을 내밀어서 몇 번이나 혼났는지.

엄마는 양쪽 꽁다리를 항상 작은 접시에 담아서 아침 반찬으로 주었다. 도시락으로 먹는 달걀말이는 식었지만 아침에 먹는 꽁다리는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꽁다리를 먹는 것은 가족 중에서도 나 뿐이라는 사실에 의기양양한 기분이 들었다."
('달걀말이' 中)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2020년이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지내고 있으신가요.

'코로나19 블루.' 코로나 시대 한복판을 헤치며 나아가고 있는 요즘 우리에게 딱 맞는 통칭이죠? 이제 1년 가까이 이 피로감과 공포가 쌓여온 데다 3차 확산세가 그 어느 때보다 심상치 않습니다. 저도 사실 주변 사람들 중에 확진자가 잇따라 발생한 건 요즘이 처음이에요. 코로나19가 이제 정말 일상 안으로 서서히 조여온다는 느낌까지 듭니다. 지쳐있는 다른 많은 분들처럼, 쉬이 다스려지지 않는 마음을 다스리려 나름 노력하고 있는데요. 지극히 명랑한 분위기의 음식 다큐 같은 걸 보면서까지 문득문득 눈시울을 붉히는 요즘의 스스로를 의식할 때마다 '아 내가 지칠 만큼 지쳐 있구나' 문득문득 깨닫곤 합니다. 일상적이고 평범한 행복이 지금 얼마나 훼손돼 있나, 그런 게 문득문득 가슴 저리게 느껴지는 순간들마다 마음이 크게 동요하는 거예요. '별일없이 산다'는 게 얼마나 소중하고 실천하기 어려운 얘기인지… 요즘 새삼 느낄 때가 적지 않습니다.

오늘 [북적북적]에서 함께 읽고 싶은 책은 요새 이런 기분 속에서 일단 너무 잘 지은 그 제목에 확 끌렸습니다. [인생은 불확실한 일뿐이어서]. '그렇지, 인생은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지.' 어찌나 가슴에 사무치던지요.

"어느 주말, 근처 카페에 갔더니 평소에는 잘 되던 와이파이가 되지 않았다. 가게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더니 웃으면서 칠판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No Wi-Fi on weekend!"라고 적혀 있었다. 그렇다, 주말에는 일부러 인터넷을 못 하도록 한 것이다.

모처럼 주말에 컴퓨터나 스마트폰만 보지 말고 친구와 얘기도 하고 하늘도 보며 맛있는 것을 먹으라는 가게의 메시지 같다. 그런 유머가 통하는 베를린에 나는 한 표를 던지고 싶다."
('나만의 규칙' 中)

"베를린에 지내면서 가끔 이웃사람들의 짐을 맡을 때가 있다. 이를테면 택배 기사가 택배를 배송하러 왔는데 받는 사람이 부재중인 경우, 같은 아파트에서 집에 있는 사람을 찾아 택배를 맡기고 간다. 그리고 그 내용을 적은 메모를 문에 붙여둔다. 택배 주인은 메모를 보고 이웃집에 가서 택배를 찾아온다.

나도 마침 부재중일 때 일본에서 보내온 교정지가 도착한 적이 있다. 어디로 갔을까, 하고 걱정했는데 나중에 같은 아파트 주민이 가져다주었다.

일본에서도 예전에는 그런 일이 예사로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지금은 있을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신뢰 관계가 없으면 불가능한 시스템이다."
('이웃의 택배를 맡다' 中)

[인생은 불확실한 일 뿐이어서]는 2008년 데뷔한 일본 소설가 오가와 이토의 생활 에세이집입니다. 오가와 이토는 영화로도 흥행한 스테디셀러 [달팽이 식당], [츠바키 문구점] 같은 소설들로 우리나라에도 좋아하는 분들이 많은 인기 작가죠. 사소한 일상을 섬세하게 뒤적뒤적함으로써 조용한 울림을 전하는, 일본 특유의 감성이 깃든 이야기들을 내놓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직 이 작가의 소설은 저 역시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에세이집부터 접하게 됐네요.)

[인생은 불확실한 일 뿐이어서]를 통해 오가와 이토가 건네는 말들. "저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조용한 보고들은 '그래 그래' 연신 고개를 끄덕여가면서 끝까지 읽게 되는 면이 있습니다. 이 책에 부제를 붙여 보자면, '별일없이 나답게 산다'쯤 될까요. 저자는 평범하게 자기 모국을 그리워하면서도 라트비아라는 나라에 흠뻑 빠져서 베를린에 거주하기도 하고, 아이를 갖고 싶어했지만 쉽사리 생기지 않아 대신 반려견을 맞아들여 소중한 애정을 쏟아 붓습니다. 나 자신, 또는 내 주변 누군가가 영위하고 있을 법한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서 길어올리는 담백하고도 여운 우러나는 단상들. 슴슴하고 따뜻하게 끓여 놓은 우리 뭇국에 글뤼바인을 곁들이는 맛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 슴슴하고 단순한 맛, 평범한 일상에 대한 담담한 소회들이 유독 가슴 깊이 스며드는 요즘입니다.

"나는 철이 들 무렵부터 반항기였다. 눈앞의 엄마를 보며 '저렇게는 되지 말아야지' 하고 본보기를 삼았다. 나는 엄마를 정말로 싫어했다. 만약 내게 자식이 있는데 내 자식이 그런 식으로 나를 싫어한다면 살아갈 수 없을 거라고, 나라면 절대로 견딜 수 없다고 확신할 만큼 엄마를 혐오했다 ……. 나도 저렇게 웃는 얼굴로 엄마를 보았던 시절이 있었을까. 부디 있었기를. 철이 들었을 무렵부터 반항기였지만 그전에는 나도 엄마를 그렇게 바라보았고, 엄마가 나를 낳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시간이 있었기를 바란다." ('달걀말이' 中)

단순한 일상 에세이집만은 아닙니다. 저자가 난생 처음 털어놓는다고 스스로 고백하고 있는 부모와의 관계, 특히 어머니와의 관계에 대한 묵직한 반추가 담긴 14편의 에세이가 '엄마 이야기'라는 제목의 파트 아래 이 책의 한가운데에 묵직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어머니로부터 받은 상처를 갈무리 하지 못하고, 또 그런 상처들을 남긴 어머니를 용서하지 못했던 날들. 그리고 그 깊게 해묵은 상처가 자신을 작가로 키웠던 시간들과 이제 어머니가 없는 세상에서 혼자 감당하고 있는 후회와 정리의 시간들, 뒤늦게 깨닫고 스스로 쌓아나가고 있는 사랑에 대해서… 저자는 하나하나 담담하고 솔직하게 이야기합니다. 사무치는 감정들을 굳이 감추려 하지 않으면서도 묵묵하게 정리해 나갑니다. 가족 안의 문제로 고민해보거나 남에게 쉽게 말못할 상처를 딛고 걸어온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에세이들에서 적지 않은 공감과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자의 인생에 대해 함부로 '이해한다' 말하기는 힘들지만, 읽는 이의 마음에도 깊이 파고드는 깊고 아픈 감정들을 담담히 추려가는 그 자세가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작품을 쓸 때는 항상 어떤 내용이든 내 책이 독자들에게 넓은 의미로 실용서이길 바란다. 기껏 인생의 일부를 할애해서 그를 읽어주었으니 뭐라도 독자들의 인생에 도움이 되는 책이고 싶다. 가능하면 독자들의 책장에 있다가, 무슨 일이 있을 때 문득 페이지를 넘기고 싶어지는 책이 되었으면 싶다. ….. 인생에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자신이 선택한 일도 아닌데 엄청나게 힘든 일이나 고통스러운 일,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일어난다. 겉으로는 여유로워 보여도 남들 모르게 물속에서는 다리를 파닥거린다. 그렇게 피할 수 없는 인생의 재난을 당했을 때 어둠의 세계에 삼켜져 절망할 수도, 희망을 잃지 않고 빛으로 향할 수도 있다." ('정곡' 中)

별일없이, 나답게 살아가기가 어쩌면 이다지 어려운 세상이고 시간일까요. 참 희한했던 2020년에 지친 분들께 오늘의 낭독이 조금이라도 힘이 되고 기운이 되는 소리, 그런 시간이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우리, 함께, 이겨내요. 들어주시는 모든 분들, 늘 마음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시공사의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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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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