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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적북적] 누구든 혹은, 누구나 그럴 순 없는 3인분의 삶 [요한, 씨돌, 용현]

[북적북적] 누구든 혹은, 누구나 그럴 순 없는 3인분의 삶 [요한, 씨돌, 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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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룸] 북적북적 268 : 누구든 혹은, 누구나 그럴 순 없는 3인분의 삶 [요한, 씨돌, 용현]
 
와! 아름답다. 우와! 막 쏟아진다.
 
깜깜한 세상을 밝힌,
아! 소리 없이 착한 사람들.
 
와! 사무친 별, 꽃이여.
 
새벽 별 반짝이는, 인간미 넘치는
건강한 꿈나라를 엎드려 두 손 모아 비나이다.
저 별들처럼 가리지 말고 만납시다.
야호~야호~

 
"어디에나 있었고, 어디에도 없었던" 그. 세 개의 이름을 가진 한 사람. 2012년 한 지상파 방송사의 교양 프로그램에 처음 소개됐다가 작년 6월 'SBS 스페셜'에서 4부작으로 소개됐던 그... 프로그램 제작진이 그의 이야기를 책으로도 냈습니다. 이번 주 북적북적의 선택은 <요한, 씨돌, 용현>입니다.
 
이 책과, 다큐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본명은 김'용현'입니다. 가톨릭 세례명이 '요한', 그리고 자연인으로 살 때의 이름은 '씨돌'. 맨 처음 읽었던 시는 '씨돌'이 쓴 것이죠.
 
이렇게 이름을 여럿 가진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우선 예명을 사용하는 연예인이나 문인도 있겠고 죄를 짓고 숨어 살거나 혹은 제2의 인생을 살려고 하는 장발장 같은 전과자도 있죠. 처음에 갖게 된 이름이 맘에 들지 않거나 문제가 있어 개명하는 경우도 있겠고요. 요한 혹은 씨돌 혹은 용현은 이들 중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습니다. 그는 왜 이름이 세 개였을까요. 그를 수식하는 카피인 '어디에나 있었고, 어디에도 없었던...'은 어떤 의미일까요.
 
"씨돌이 정선에 처음 등장하자, 사람들의 시선은 순식간에 외지에서 온 '수상한 남자'에게로 쏠렸습니다. 무엇보다 범상치 않은 그의 모습을 보면 눈을 뗄 수 없었는데.... 쉽게 해 부랑자 행색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격도 유별나서, 조선시대도 아닌 요즘 세상에 지게를 짊어지거나 봇짐을 메고 봉화치 마을에서부터 읍내까지 왕복 세 시간 거리를 걸어 다니기 일쑤였습니다."
 
"읍내에서 만난 상인들은 씨돌을 한마디로 이렇게 정의합니다. '참 좋은 아저씨'. 봉화치에서부터 뚜벅뚜벅 걸어 내려오는 씨돌과 마주칠 때마다 그는 상인들에게 늘 기분 좋은 말을 해주고, 때로는 길가의 들꽃을 꺾어다가 단골 가게 상인들에게 선물했습니다. 삼십 년이라는 세월 동안 씨돌과 주민들이 수없이 마주하다 보니 서로에게 익숙해졌기 때문도 있겠지만, 평범하지 않은 겉모습 속 진짜 그의 모습을 알게 되면서 그를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어느 방송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자연인'은 흔히 불리는 말이 됐지만 굳이 원조를 찾자면 씨돌 같습니다. 2012년 처음 씨돌의 이야기를 방송으로 만든 이큰별 PD가 '아저씨와의 인연'이라고 쓴 글을 보면 "아저씨는 산을 걷다가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아름드리 소나무를 껴안으며 나무의 숨소리를 느끼기도 하고 길을 가다 갑자기 황토 구덩이에 머리를 묻고 흙의 향을 맡기도 했"던 자연인이지만 짜파게티를 좋아하고 보통 정선 읍내까지 왕복 3시간 걸어 다니면서도 PD에겐 다리 아프다고 차 태워달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했던 자연인이기도 했습니다.
 
'저절로 농법'을 사용한다거나 토종벌을 살리기 위해 지방자치단체에 문제제기를 했다거나 산불 감시 활동을 해왔다거나 여느 '자연인'과 사뭇 다른 원조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PD는 이를 "자연인이지만 꼭 그것에만 매몰되지 않는 사람"이라고 적었습니다.
 
잠시 '씨돌'에게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30여 년 전으로 가보겠습니다. 당시 대통령 선거의 군 부재자 투표에서 야당 후보를 찍었다는 이유로 상관에게 구타당해 사망한 고 정연관 상병 사망 사건. 하지만 유가족은 진상 규명이나 피해 보상은커녕 오히려 보안사의 감시를 받아야 했습니다.
 
"보안사 관계자들이 집 주변을 에워싼 채 가족에 대한 감시를 이어가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수상한 인기척에 벽장문을 열자 그 안에 낯선 남자가 몸을 숨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보안사 관계자도, 강도도 아니라고 하면서 놀란 가족들을 진정시키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연관 상병이 죽은 진짜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남자는 자신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요한은 가족들에게 이 억울한 죽음을 세상에 알려 진실을 밝히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말합니다.... 서울에 가서 정연관 상병의 죽음에 대해 기자회견을 하기로 한 요한과 형 연복 씨. 문제는 보안사의 감시망을 뚫는 것이었습니다."

 
자연인 '씨돌'은 30여 년 전엔 '요한'이었습니다. 이렇게 정연관 상병 죽음의 진실을 밝히는 데 큰 역할을 했는데(기자회견 뒤로도 십수 년이 지나서야 정 상병의 의문사 진상이 정부기관에 의해 확인됩니다.) 그렇게 민주화 투쟁에서 희생된 이들의 가족과 함께 했던 '요한'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요한'이자 '씨돌'이 90년대 중반에 또 나타났던 곳이 있었습니다.
 
"씨돌을 만난 건 사고 다음 날인 6월 30일이었습니다. 조금 늦었다며 송구해하던 그는 강원도에서 출발하느라 시간이 걸렸다면서, 늦었지만 자신도 도움이 되고 싶어서 찾아왔다고 했습니다. 배낭에 각종 농기구를 넣어온 그는 고진광 씨와 다른 민간 구조대원들과 함께 백화점 건물 B동의 지하 이층으로 내려가 구조작업을 벌였다고 합니다....
 
그들은 생명을 구하겠다는 의지 하나로,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평범한 시민이었습니다. 구조인력도, 구조장비도 턱없이 부족했던 당시 현장에서 이들의 활약은 빛이 났습니다... 그런데 민간 구조대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사진 속에 어쩐 일인지 씨돌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현장에 함께 있었지만 인터뷰는 물론 사진 촬영도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씨돌은 물러서서 그 길로 조용히 사라졌다고 합니다."

 
95년 삼풍백화점 참사가 발생했을 때 강원도에서 서울로 향해 구조활동을 벌였던 '씨돌'은 막상 활동이 끝나자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마치 정선에서 갑자기 사라졌던 것처럼 그렇게 말입니다. 하나씩 실타래를 풀어가듯이 씨돌과 요한의 흔적을 찾아나갔던 제작진은 어떤 심경이었을까요. 아니, 도대체 '용현'은 어떤 마음으로 이렇게 살아갔던 걸까요.
 
제작진에게 가장 큰 충격이었던 '요한'이자 '씨돌'인 '용현'의 말... 왜 그렇게 남을 돕고 다녔냐, 왜 대가도 없이, 관계도 없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했냐는 물음에 대한 답은 책 속표지에 씌어 있습니다.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
 
처음에 책장을 넘길 땐 뭔지 잘 몰랐지만 읽고 나니 가슴 벅차게 다가옵니다. "어디에나 있었고 어디에도 없었던 요한-씨돌-용현". 누구든 그럴 수도, 누구나 그렇게 살진 않는다는 인간의 삶을 압축한 말 같습니다.
 
**가나출판사로부터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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