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노인을 위한 '디지털'은 없다?…코로나 시대가 키운 세대 간 격차

실버 세대 막는 '터치 장벽'

QR코드 출입기록 해킹 논란

"QR 코드 찍고 입장하셔야 해요."

요즘 식당이든 커피전문점이든 어디를 가든 듣게 되는 첫마디입니다. 가게 입구에 마련된 패드 화면에 알아서 찍고 들어가거나, 계산할 때 점원의 스마트폰을 통해 QR코드 인증을 하면 되는데, 저도 초반에는 애를 먹었습니다. 점원이 일단 개인 QR코드를 네이버나 카카오를 통해 받으라고 설명해줬는데 어떤 버튼을 눌러 받아야 하는지 찾는 과정에서 진땀을 뺐습니다. 시간을 들여 QR코드를 생성한 이후에도 15초 안에 가게 안에 마련된 패드 화면으로 보이는 네모 칸 안에 내 QR코드를 잘 맞춰야 인증이 됐습니다. 제한 시간 이내에 실패하면 새로고침 버튼을 누른 뒤 다시 인증을 시도해야 합니다. 뒤에 줄 선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 뒤통수에 느껴지는 것 같아서 안절부절 못했던 '첫 QR코드 인증' 경험이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30대인 저도 이런데, 어르신들은 오죽할까요? 환갑이 넘으신 저희 어머니만 해도 QR코드 생성을 못해서 초반에는 수기로 일일이 개인정보를 출입 명부에 작성하셨습니다. 그런데 젊은 사람들은 척척 QR코드로 인증해 들어가는 것을 보시곤 자기만 전화번호와 이름 등 개인정보를 직접 남기는 게 찝찝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머니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인증할 수 있도록 설치해드렸는데, 그걸 찾을 때마다 남들보다 시간이 오래 걸려 가게에 들어갈 때마다 긴장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실제 저희 어머니 사례 말고도 QR코드 인증 과정에서 어르신들과 가게 직원 간의 실랑이를 쉽게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키오스크 이용하는 시민들

이번 보도의 시작은 이런 고민에서 출발했습니다. 코로나19 확산과 더불어 QR코드 인증, 비대면 주문(키오스크), 온라인 장보기가 확대되면서 일상생활 전반이 급격하게 달라지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간 조금씩 논의돼 왔던 세대 간 디지털 격차 문제가 중요한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이제 모른다고 피할 수도, 외면할 수도 없을 정도로 '디지털화'가 우리 일상으로 급속도로 깊게 파고든 겁니다.

터치 장벽_취재 파일용

그렇다면 격차를 좁히기 위한 해결책들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우선, 현재 실시되고 있는 것들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정부는 디지털 교육 활용에 어려움을 겪는 국민들을 대상으로 '디지털 배움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주민센터나 복지관 같은 각 지역별 생활편의시설을 기반으로 교육이 실시되기 때문에 접근성이 좋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서울 목동실버복지문화센터에서 교육용 로봇 '라쿠'를 통해 카카오톡 사용법 교육 중이다.

서울시는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디지털 격차가 심화되는 현 상황을 고려해 디지털 역량 강화 종합대책을 수립하고 이달부터 교육용 로봇 '리쿠'와 체험용 키오스크 기기 보급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리쿠와 체험용 키오스크 기기를 활용하는 교육 현장에 나가 어르신들을 만나 인터뷰해보니 만족도가 매우 높았습니다. 어르신들은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들 신경 안 쓰고 마음껏 키오스크를 사용을 해볼 수 있어 좋고, 자식이나 손주들이 귀찮아할까 봐 물어보지 못했던 각종 궁금증들을 로봇 리쿠에게 자세히 물어볼 수 있어 속 시원하다고 웃으며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교육용 키오스크 기기의 경우 지난 11일 기준 전국에 모두 95대가 설치돼 있는데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인 54대가 서울에 있었습니다. (한국정보화진흥원, 11월 11일 기준) 디지털 격차를 줄이기 위한 교육이 어디 사느냐에 따라 지역별로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교육도 중요하지만, 디지털 소외 계층을 배려하는 정책도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수요자 측면에서 디지털 역량을 기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급자 측면에서 이들을 배려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미국과 영국, 호주, 중국 등 해외에서는 우리나라 114와 같은 번호 안내 사업자가 각종 예약이나 길 안내, 상품 가격 비교 대행 서비스 등을 제공합니다. 음성 기반의 정보통신 서비스에 익숙한 디지털 소외 계층을 위한 배려인 셈입니다. 전화 한 통만 걸면 생활에 꼭 필요한 편의 서비스들을 제공받을 수 있는 겁니다.

사회 곳곳에서의 세심한 배려와 디지털 역량 교육이 동시에 이뤄지면 격차를 좁히는 데 보다 빠른 속도를 낼 수 있습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단순히 고도의 기술을 발명하는 것뿐만 아니라 소외 계층을 돌보고 배려하는 기술을 함께 고민하는 것도 과학의 중요한 가치로 떠올랐습니다.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의 전치형 교수는 이를 '돌봄의 과학'이라고 일컬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더 잘 돌보기 위해 과학이 필요한 것이고, 그 과학은 격차와 소외를 줄이는 '돌봄'과 '배려'라는 가치를 항상 염두에 둬야 합니다.

(작가 : 이미선·김채현)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