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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기출문제 보니까 괴로워 미치겠어요" 기회 박탈 예비교사 67명

● "기출문제 보니까 괴로워 미치겠어요"

11월 21일 오후, 중등임용고시가 종료됐습니다. 온라인상에는 시험 후기가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문제가 출제됐는지 순식간에 공유됐습니다.

30살 A 씨는 기출문제를 보면서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고 합니다. 억울해서 잠도 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내가 고사장에서 저 문제를 풀었다면 어땠을까 상상하면 억장이 무너진다고 합니다.

A 씨는 지금 서울의 한 생활치료센터에 격리돼 있습니다. A 씨는 시험 하루 전날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습니다. 지금 가장 힘든 게 무엇이냐고 물어봤습니다. A 씨의 대답입니다. "기출문제 보니까 괴로워 미치겠어요."

[1125 취재파일용_박찬범] 사진1

● 항공사 승무원 관두고, 체육교사 꿈 2년째

A 씨는 30살 늦깎이 중등임용고시 준비생입니다. 사범대 체육교육과를 졸업하고 항공사에 취직했습니다. 첫 직업은 승무원이었습니다. 하지만 A 씨는 지금보다 보람된 일을 하고 싶다며 교직에 도전했습니다.

지난해 첫 시험을 쳤습니다. 1차 필기시험에서 1점 차로 아깝게 떨어졌다고 합니다. 이번이 두 번째 도전이었습니다. 공부를 1년 더 한 만큼 자신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A 씨를 포함해 예비 체육교사 67명은 응시 기회를 박탈당했습니다.

● "우리가 잘못한 게 뭔가요?"

A 씨를 포함해 67명 모두 자신들이 코로나19에 걸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합니다. 이들 전원은 11월 14일에 유명 강사의 수업을 들으려 모였습니다. 건물 6층, 9층, 10층, 11층에서 각각 아침 9시부터 오후 2시 20분까지 모의고사를 풀고, 해설 강의를 오후 6시까지 들었습니다.

건물 출입할 때 1층에서 발열 체크도 하고, QR코드 인증도 했다고 합니다. 강의실 좌석도 지정좌석제로 운영돼 어느 정도 거리두기가 가능했고, 마스크도 계속 쓰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방역수칙을 지키지 않은 게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오히려 강의실 환기가 잘 되지 않는 것 같아 수시로 창문을 열고 닫았다고 합니다. A 씨는 본인이 방역수칙 준수하지 않고, 어디 놀러 가다 감염됐다면 덜 억울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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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사가 꿈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1년에 한 번뿐인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시험 전날이 됐습니다. 갑자기 코로나19 진단검사를 받으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확진 판정 받으면, 시험 기회는 박탈당한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망설임 없이 검사를 받으시겠습니까?

노량진 대형 학원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하자, 일부 언론이 우려했던 부분입니다. 일부 검사 대상자가 시험 기회를 박탈당하는 게 두려워 고의로 검사를 미룰까봐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A 씨에게 물어봤습니다. 검사를 일부러 받지 않고 버텨볼까 생각해 봤냐고 말입니다. A 씨는 11월 19일에 동작구보건소로부터 연락을 받았다고 합니다. A 씨는 솔직히 시험 후에 검사받을까 망설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교사가 꿈인 내가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생각에 곧장 검사를 받았다고 합니다. A 씨를 포함한 67명은 검사 통보를 받고 자발적으로 선별진료소를 찾아갔습니다.

● "수능은 되고, 우리는 안 되나요?" 형평성 논란

대학수학능력시험에는 코로나19 확진자와 자가격리자가 응시할 수 있습니다. 격리된 장소에서 별도 시험이 가능하도록 조치했습니다. 하지만, 중등임용고사는 확진자 응시가 불가능합니다. 두 시험 모두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이 주관하고 1년에 한 번 있습니다. 수능은 되고, 임용은 왜 안 될까요?

교육부는 사전에 확진자는 임용고시를 볼 수 없다고 미리 공지했기 때문에 문제 될 게 없다고 말합니다.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홈페이지 응시자 유의사항 안내문을 게시했습니다. 시험 2주 전인 11월 6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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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6일, 확진자가 응시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면…

상상을 해봅니다. 11월 6일, 확진자는 시험을 볼 수 없다는 방침 대신에 확진자가 응시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안내가 있었으면 어땠을까요? 대안이 정말 없었을까요? 행정편의주의라고 생각합니다. 확진자 67명은 허무하게도 응시 자격을 박탈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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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시 자격 박탈 67명 "누구를 탓해야 할까요"

임용고사를 못 본 응시 예정자 67명은 지금 격리돼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학원 측은 방역수칙을 위반한 게 없는 만큼 책임질 게 없다고 말합니다. 담당 강사는 67명에게 도의적인 책임을 지겠다며 일일이 연락을 취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들 67명은 2020년 한 해를 임용고시 시험에 온전히 바쳤습니다. 이들은 단지 운이 없었다고 말하기에는 잃은 게 많습니다. 대부분은 20대 청춘을 바쳐가며 시험에 '올인'한 사범대생 혹은 졸업생입니다. 이들이 투자한 시간, 돈, 젊음은 누가 보상해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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