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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알고 싶다' 한국판 마타하리 '간첩 원정화'…알고보니 조작된 스파이?

'그것이 알고 싶다' 한국판 마타하리 '간첩 원정화'…알고보니 조작된 스파이?

SBS 뉴스

작성 2020.11.22 02:57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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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그것이 알고 싶다 한국판 마타하리 간첩 원정화…알고보니 조작된 스파이?
원정화는 왜 스스로 간첩이 되었을까?

21일에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스파이를 사랑한 남자 - 그리고 여인의 거짓말'이라는 부제로 2008년 '원정화 간첩 사건'의 진실을 조명했다.

지난 2008년 황 중위는 8살 연상의 탈북자 여성과 사랑에 빠졌다. 그리고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다고 믿었던 사랑 때문에 인생이 망가졌다.

어느 날 국군기무사령부 조사실에 끌려간 황 중위. 그는 여자 친구가 북한 보위부에서 직파한 간첩 원정화라는 사실을 알고 충격에 빠졌다. 그리고 원정화는 황 씨가 자신이 간첩인 것을 이미 알았지만 자신의 정체를 숨겨주었고 자신의 임무 수행까지 도왔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이는 황 중위에게는 금시초문이었다. 황 중위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지만 자백을 강요하는 조사관의 압박 때문에 혐의를 인정했고, 이에 황 중위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3년 6월형을 받았고 군복을 벗게 되었다.

당시 눈에 띄는 외모로 화제가 되었던 원정화는 미녀 스파이로 불리었고 '한국판 마타하리'라는 타이틀로 연일 대서특필되었다. 그리고 황 씨는 12년이 지난 지금 자신의 억울함을 밝히기 위해 나섰다.

원정화는 자신에 대해 "중학교 중퇴 후 15세에 사회주의 노동 청년 동맹 위원장에게 발탁되어 낮에는 조직부 서기, 밤에는 정치 대학에서 공부를 했다"라며 "공작원 출신인 아버지 등 집안의 성분이 좋아 일찍이 공작원으로 발탁되었다"라고 밝혔다. 또한 대남 침투를 위한 훈련을 받아. 25살에 공작원으로 선발되어 중국에서 활동을 하며 탈북자 색출, 한국인 사업가 납치 및 북송 작전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조선족으로 신분을 속이고 한국인 남성과 결혼해 임신 후 입국하여 미군 관련 정보 수집 등 공작 활동을 펼쳤다고 설명했다.

이에 전문가는 "다 소설이다. 15살이 뭘 안다고 그렇게 하겠냐. 금성 정치대학은 성인들이 가는 곳이다. 사로청에는 서기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원 씨가 다녔다는 대학에는 야간반도 없다"라며 그의 주장이 허무맹랑한 것이라고 했다. 또한 "공작 활동을 하면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하는데 임신을 일부러 하라는 것은 발도 안 된다. 임신을 한 상태로 한국으로 가라니 말이 안 되는 거다"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원정화가 훈련을 했다는 805 훈련소는 없고 815 훈련소는 있다"라며 "미군기지에 대한 정보를 넘겼다는데 위성지도를 보면 다 나오는데 그런 건 군사기밀로 보기 어렵다"라고 했다.

또한 전 간첩 출신의 한 인물은 원정화 사건에 대해 "영화에나 나오는 이야기다. 공작금을 벌어서 쓰라고 했다는데 돈이 없으면 공작을 안 시키지, 북한이 아무리 돈이 없더라도 스스로 벌어서 쓰라고 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원정화의 전 남편은 원정화에 대해 "중매로 만났다. 간첩 같은 느낌 전혀 없었다"라며 "결혼 후 툭하면 가출을 하고 돈을 요구했다. 돈 천만 원은 준 것 같은데 출산하기 전에 헤어졌다. 나중에 보니 내 아이도 아니더라"라고 했다.

실제로 원정화는 아이의 친부인 과거 동거인에게도 양육비 명목으로 돈을 수차례 요구하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수사기관은 원정화에게 지령을 내린 상부가 그의 의붓아버지라고 밝혔다. 그리고 그 증거로 그의 집에서 압수한 조선노동당 당원증과 북에서 지령을 받을 때 쓰는 단파 라디오를 들었다. 이에 원 씨 의붓아버지는 "이걸로 어떻게 지령을 받겠냐? 그리고 간첩이면 이런 당원증을 가지고 있겠냐"라고 되물었다.

이후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 판정을 받았던 원정화의 의붓아버지. 그는 "원정화가 백과사전에 등재된 것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 고등학교도 안 나오고 온갖 사고를 친 애가 무슨 북파 간첩이냐. 마타하리가 지옥에서 울겠다"라며 "북에서 하도 사고를 치고 그것 때문에 수감 생활을 반복해 가족들이 탈북을 하도록 도운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결혼할 거라고 데려 온 남자가 10명이 넘는데 결혼을 조건으로 돈을 뜯어냈다"라며 "자기 스스로 간첩이 된 인간이다. 100% 다 거짓말이다"라고 원정화의 동의하에 녹음한 음성 파일을 공개했다.

그가 공개한 음성 녹음에 따르면 원정화는 누군가에게 간첩으로 지목당했고, 공포 속에 거짓 진술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솔직하게 말하면 김현희처럼 살게 해 주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거짓말로 국가안전보위부다 라고 말했다"라고 주장했다.

당시 수사관들은 원정화가 간첩이라는 증거에 대해 그의 자백과 주변인들의 진술을 들었다. 그러나 실제로 당시 공작원이었던 인물들은 판결문 속 인물들에 대해 "다 모르는 사람이다. 그 당시 원정화가 일을 했다면 내가 알 수 있는 이름이 나와야 하는데 전혀 모르는 사람들뿐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당시 북한에 있던 전문가는 "당시에 원정화 사건에 대해 듣고 우리들끼리도 웃었다. 걔가 무슨 간첩이냐. 소년 교화소 다녀온 애도 간첩인가 라고 했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당시 북한에서는 원정화 간첩 사건에 대해 날조한 모략극이라는 입장을 전했는데 이는 이전의 사건들에 대해 침묵했던 것과 대조되는 대응이었다.

이 사건에 대한 취재를 이어 온 한 기자는 "초기 수사 지휘자인 소 씨는 원정화에 대해 간첩이 될 수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내부에서 이에 대해 계속 항의를 했지만 묵인당했고 결국 정신병을 앓다시피 하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세상을 떠났다"라고 밝혔다.

당시 소 씨의 주장에 따르면 수사관들은 원정화에게 폭탄주부터 내어주었고, 김현희처럼 살게 해 주겠다며 간첩임을 인정하라고 했다는 것. 그렇다면 원정화를 간첩, 거물로 만들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에 소 씨는 "당시 이명박 정부에 있어 원정화 사건은 호재였다"라며 실제로 촛불시위 잠재울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던 것이 이유가 아니었을까 하고 짐작했다.

현재 출소 후 간첩 출신으로 자신의 경험담을 방송이나 강연을 통해 이야기하는 원정화. 특히 그는 과거에 증언했던 것보다 훨씬 더 과장된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이에 전문가는 "간첩 출신으로 살면서 잃는 거보다 얻는 게 훨씬 많을 것이다. 방송 출연, 강사 활동 등 거기에서 오는 돈이 있을 것이고 이런 활동을 통해 자존감을 회복하는 계기도 되었을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또한 "그가 가진 연극성 성격도 한몫했을 것이다"라며 "끊임없는 인정과 관심받고 싶어 하는 욕구에 의한 행동으로 보인다"라고 덧붙였다.

황 씨는 당시 줄곧 혐의를 부인하다가 어느 순간 인정하게 되었다. 국가보안법은 무기징역 아니면 사형이라고 했고, 인정만 하면 군복만 벗으면 된다며 수사관들의 회유와 강압으로 수사를 진행해 입장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는 것.

그러나 당시 조사 영상 어디에도 강압적인 조사를 하는 모습은 포착되지 않았다. 이에 황 씨는 "영상 중에 길게 비는 부분이 있다"라며 녹화가 되지 않고 사라진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에 황 씨는 "누군지 밝히지도 않은 높은 직급의 사람이 수사관으로 왔고 내게 원정화의 진술이 담긴 신문 자료를 보여주었다"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계속 그 높은 직급의 수사관이 사실을 말하라며 부추겼고 결국 혐의를 인정하게 되었다는 것.

당시 황 씨는 원정화와 편지도 주고받았다. 그리고 원정화의 편지를 통해 그에게 자백을 유지하라며 압박을 가하고 있었다. 이에 전문가는 "공범끼리 편지를 쓰게 해 줬다. 일반적인 사건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는 수사기관이 시켰다고 볼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

그리고 황 씨의 재심과 관련해 "조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정해져 있는데 신원 미상의 사람이 조사를 하고 있다 이는 분명 불법이다"라고 했다. 또한 "원정화가 간첩이 아니라면 그의 죄는 성립하지 않는다. 그리고 원정화가 피고인에게 자신이 간첩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도 황 씨에 대한 죄가 무너지게 된다"라며 두 가지 전제 중 어느 것 하나라도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황 씨는 원정화를 직접 찾았다. 재심을 위해 진실을 말해달라는 것. 그러나 원정화는 그와의 대화를 거부하고 경찰을 불러 그를 내쫓았다. 그리고 돌아가는 그에게 전화를 걸어 "나는 네가 백 년, 천년 찾아온다고 해도 신고할 거다"라며 "나 좀 편히 살자. 난 네 재심에 전혀 관심이 없다. 앞으로 이런 일로 몇십 년 후에도 보지 말자"라고 차갑게 말했다.

당시 초기 수사관이었던 소 씨는 "수사관들이 1억 정도의 돈을 나눠가졌다. 그중 일부는 원정화 생활비로 썼는데 입을 다무는 조건이었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탈북자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김현희처럼 살게 해 주겠다고 먹고 살 돈을 주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간첩이 되어보자고 생각했다"라고 했다. 그리고 당시 간첩을 잡은 수사관들에게는 1계급 특진 등 특혜를 주었기에 간첩 잡기에 혈안이 되기도 했던 수사관들, 이에 그들은 간첩들에게 그에 충분한 대가를 주었다는 것.

원정화는 자신의 의붓아버지에게 수사관에게 주기적으로 돈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당시 소 씨의 후임이자 원정화 사건을 담당했던 수사관은 이 사건 이후 특별 승진 및 표창을 받기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제작진은 이와 같은 의혹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당시 수사관들을 찾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수사관들이 만남을 거부하고 단 한 명만 만났을 수 있었다. 당시 수사관은 "당시 많은 증거가 제출했다. 문제가 있다면 그때 이야기를 하지 왜 지금 와서 이야기를 하냐"라며 원정화가 간첩이라는 사실에는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는 "그런데 원정화가 교육을 제대로 받은 인간이 아니라는 걸 전제로 대화를 해야 한다. 군인에게 접근하고 그랬던 것도 다 생존을 위함이었다"라며 당시 공소장과 판결문 어디에도 없는 이야기를 해 의아함을 자아냈다.

당시 소 씨는 원정화도 원정화 사건의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당시 6살짜리 딸을 볼모로 잡힌 원 씨가 그러한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 추측했던 것.

과거 황 중위 변호인은 "원정화가 간첩으로 인식되고 행세되는 것이 그런 것들이 뿌리 뽑혀야 원정화로 인해서 생긴 수많은 사회적인 부작용들이 제거될 수 있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황 씨는 "국가가 개인한테 이러면 안 된다. 그리고 원정화는 나를 생각해서라도 진실을 말해줬으면 좋겠다. 그 사람도 피해자일 테니까 진실을 밝히고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게 지금이라도 이야기를 해주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황 씨의 바람과 달리 원 씨는 제작진들의 취재 요청과 전화 연결 모두를 거부했다.

원정화 사건으로 황 씨는 꿈을 빼앗겼고, 의붓아버지도 범죄자 낙인이 찍혔다. 그리고 당시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던 한 경찰은 극단적인 선택을 했고 이후 탈북 간첩 사건이 이어지며 많은 피해자들이 생겨났다.

이에 방송은 자본주의에 적응하려다 실패하고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원정화가 지금이라도 간첩이라는 무거운 이름을 내려놓고 거짓 속에 숨은 진짜 얼굴을 찾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SBS 연예뉴스 김효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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