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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삭제도, 검거도 피해자 몫이라면

[취재파일] 삭제도, 검거도 피해자 몫이라면

진화하는 디지털 성범죄 ① '지인 능욕' 범죄

정혜경 기자 choice@sbs.co.kr

작성 2020.11.19 13:05 수정 2020.11.19 15:59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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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A씨는 2년 전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본인의 사진이 무차별적으로 유포되고 있다는 소식을 고등학교 남자 동창으로부터 들었습니다. 친구들을 중심으로 "네 사진을 봤다"며 하나둘씩 이어지던 제보는 텔레그램 집단 성착취 사건이 대대적으로 보도된 뒤 부쩍 잦아졌습니다.

처음엔 순수한 걱정과 호의라 생각했던 지인들의 제보는 점점 미심쩍게 느껴졌습니다. "나도 봤다"며 오히려 당혹스러워하는 A씨의 반응을 지켜보기 위해 떠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본인 SNS 계정에 올렸던 A씨의 사진과 신상 정보가 음란한 글들과 함께 끝없이 온라인에서 퍼져나가고 있었습니다. 걱정을 핑계 삼아 연락해 온 동창들 중에 유포자가 있는 건 아닐까, A씨는 불안해졌습니다.

피해자 B씨는 우연히 유포자를 잡았습니다. 피해자들이 모여 있는 '단톡방'에서도 유포자가 잡힌 사례는 극히 드뭅니다. 수사 공조 절차가 까다로운 해외 플랫폼에서 IP 등 추적 정보를 제공받기가 어렵다는 경찰관들의 이야기를 듣고 반쯤 포기상태였던 B씨. 다행스럽게도, 범인은 여러 명의 사진과 신상을 유포하다 꼬리가 밟혔습니다.

B씨의 경우엔 합성물도 많았습니다. B씨 얼굴에 다른 사람의 몸을 합성한 사진이 신상 정보와 함께 떠돌아다녔습니다. 유포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유포자가 기소돼 집행유예 판결을 받기까지, B씨는 아직도 삭제되지 않는 합성물들을 떠올릴 때마다 불안감에 시달립니다.

▶[8뉴스] '지인 능욕' 당한 것도 충격인데…"이런 사진 왜 올렸어?"

● 내가 올린 사진이 '범행 도구'로

이른바 '지인 능욕' 범죄(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이 기사에서는 이러한 종류의 범죄를 이대로 지칭하도록 하겠습니다). 신종 디지털 성범죄의 일종입니다. 대개 미성년 아동들의 성을 매매하고 학대까지 일삼은 텔레그램 착취 사건의 범행 방식과는 다릅니다. 그렇다고 불법 촬영한 사진이나 영상물, 또는 해킹으로 개인 정보를 빼내 악용하는 등의 성범죄 방식과도 다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주로 범죄의 재료로 쓰이는 건 피해자가 직접 게시하거나 친구들에게 건넨 사진입니다. 불특정 다수가 모두 찾아볼 수 있는 공개 상태의 본인 SNS 계정, 심지어는 카카오톡이나 라인 같은 메신저 프로그램의 프로필 사진도 범행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삶을 전시하고 표현하는 데 자연스러운 '자기PR 시대'에 맞춰 진화한 성범죄의 일종인 셈입니다.

피해자의 얼굴에 노출 정도가 심한 타인의 신체 등을 합성해 신상 정보와 유포하는 경우와 함께 '맥락' 이해를 요하는 성범죄 게시물도 등장했습니다. 노출이 심한 신체가 아닌, 표정이나 눈동자 등만 일그러지게 합성해 음란성 문구를 덧붙여 유포하는 사례입니다. 노출 정도가 심할 때 자동으로 게시글을 걸러주는 IT기업의 인공지능도 아직 이런 디지털 성범죄의 진화 양상까지 따라잡진 못했습니다. 합성하지 않은 사진에 성희롱 문구를 담아 유포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 잡기 어렵고, 처벌하기 어렵고, 삭제하기도 어렵다

그러다 보니 경찰 수사는 난망합니다. 취재진이 접촉한 피해자들도 모두 수사기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혐의는 '명예훼손' 또는 '모욕'에 그쳤습니다. 운 좋게 유포자를 검거한 경우에도 '초범' 등의 이유로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 ▶[마부작침] '아는 사람'이 범인이라는 공포…지인 능욕) 이 게시물들의 '음란성' 여부에 관한 법률적 판단도 사실 명확하게 정의된 건 없습니다. 사각지대에 놓인 디지털 성범죄를 처벌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입법 논의와 더불어 사법부의 법리 적용 연구도 필요한 이유입니다.

사실 피해자들에게 시급한 건 유포자 검거에 앞서 피해 복구입니다. SBS 취재진이 접촉한 피해자들은 모두 유포물이 여전히 떠돌아다니고 있다는 불안을 호소했습니다. 유포자에 대한 정의 실현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불특정 다수에게 자신의 신상 정보가 노출돼 추가적으로 입는 피해를 멈추고 싶다는 겁니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이후 지난 6월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운영하는 '디지털 성범죄피해자 지원센터'에 지원금이 증액됐습니다. 3차 추경으로 증액된 총 8억 7천5백만 원으론 17명뿐인 센터 정규 인력에 50명의 보조 인력이 채용될 계획이었습니다. 2020년 11월 현재 기준, 센터의 삭제 전담 인력은 47명입니다. 몇 번의 공고와 재공고를 거쳐 현재 24시간 상담 3교대 인력 5명을 제외하곤 목표 채용 인원을 달성했습니다.

모니터와 삭제 전담 부서에선 다양한 종류의 성범죄 게시물 삭제를 지원합니다. 유포물을 꾸준히 모니터하고 빅데이터를 크롤링해 게시물이 올라간 해외 사이트에 삭제 요청을 합니다. 핫라인이 구축된 플랫폼도 있습니다. 지원이 전무했던 과거에 비해선 장족의 성과이지만 신고 건수에 비해 인력난은 여전합니다. 추경으로 증원한 50명도 한시적 계약직입니다. 올해 12월 31일이 지나면 이 인력을 대체 또는 연장 계약할 고용 예산이 또 필요합니다.

디지털성범죄피해자센터 현황
최초 유포자가 사라져도 복제에 복제를 거듭한 유포물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센터 측은 "피해 1건에 대해 모니터를 3년 정도 지원한다"고 밝혔습니다. 3년 만에 흔적이 삭제되면 다행입니다. 사설업체를 운영하는 디지털장의사 이덕영 씨는 "유명인, 눈에 띄는 특징이 있거나 많은 네티즌들의 바이럴을 탄 경우 또는 유포물이 고화질이거나 피해자가 나이가 어리다면 더더욱 완전 삭제가 쉽지 않다"고 전했습니다.

▶ [취재파일] 진화하는 디지털 성범죄 ② 디지털장의사 인터뷰

● 방심위 '읽씹'한 텀블러, '엄정 대응' 태세 전환한 사연

결국 확산 전 '삭제'가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하지만 여기도 난점이 있습니다. 피해자가 우선 본인의 사진이 유포, 도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삭제 요청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니터에 걸리는 유포물 추정 게시글이 아무리 많아도 피해 신고가 접수돼야 삭제 대상물이 됩니다.

반면 검색은 너무나도 용이합니다. 지금 현재도 텀블러, 트위터 등지에서 키워드를 검색하면 합성물을 만들어주겠다는 게시물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발표에 따르면 2020년 상반기에만 불법 유해정보 관련 시정을 요구한 자료는 모두 10만 1139건에 이르렀습니다. 가장 많은 비중이(24.8%) 음란, 성매매 관련 정보로 분류됐습니다.

SNS에서 지워지지 않는 흔적
가장 문제가 된 온라인 플랫폼이 SBS 8뉴스(관련기사)에도 소개된 '텀블러'입니다. 텀블러는 이미 예전부터 한국 정부와 '이슈'가 있는 회사입니다. 2017년 음란물 유포의 온상으로 지적되면서 한국 방심위가 자율 규제 협력을 제안했지만 텀블러는 '폭넓은 표현의 자유가 허용되는 서비스'라는 이유로 시정 요구를 받은 콘텐츠가 자국(미국), 자사 규정에 심각하게 어긋나지 않는다며 콘텐츠 삭제를 거부한 바 있습니다.

국내 비난 여론이 높아지면서 텀블러는 꼭 1년 뒤 자율 협약에 협조하겠다며 입장을 바꿨습니다. 이러한 '태세 전환'엔 사실, '원천 접속 차단' 등을 언급한 한국 정부의 고강도 규제도 영향을 끼쳤지만 음란물 관련 민원이 쌓이면서 이를 더 두고 보지 못한 애플 측이 자사 앱 유통시장인 '앱스토어'에서 텀블러를 퇴출했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주류입니다.

이후 개인의 삭제 요청이 받아들여지고 아동 착취물, 성매매 중개, 음란물 유포 등에 대해 나름의 기준이 만들어진 텀블러. 그러나, 그럼에도, 피해 복구를 어렵게 하는 굼뜬 대응은 그대로입니다. 여전히 유포 경로 확인과 일괄 삭제를 위해선 SNS 플랫폼의 선제적 기여가 절실합니다.

● "디지털 성범죄, 재정의해야"

지난 5월 개정된 성폭력특례법 제14조의 2는 허위 영상물, 편집물 등에 대해서도 대상자의 의사에 반해 유포되었을 때 가해자에게 엄벌을 내릴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었습니다.

그러나 성적 노출이 없는 이미지를 이용하거나, 앞서 말씀드린 대로 성적 모욕을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는 이미지, 또는 이미지를 이용하지 않는 명예훼손성 게시물을 유포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이 법조를 적용하기엔 무리가 따릅니다. 그러다 보니 피해자들은 성폭력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국선 변호인 선임 등의 권리 보장을 받기가 어렵습니다. 성범죄의 개념과 범위에 대한 추가 논의가 필요하단 지적이 나옵니다.

해외에 메인 서버를 두고 있는 글로벌 소셜 미디어 기업들도 같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진화하는 성 착취 유포물에 대한 대응이 기술적으로 원천 불가능한 건 아닙니다. 트위터는 성폭력 게시글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냐는 취재진의 물음에 "아동 성 착취에 대한 무관용 정책을 펼치고 있다"면서 "2019년 7월부터 12월까지 전 세계에서 257,768개의 계정을 아동 성 착취 정책 위반으로 정지시켰다"고 밝혔습니다. 이 가운데 84%는 머신러닝, 자동화 기술을 이용했습니다.

가장 많은 피해 사례가 제보되고 있는 '텀블러'는 "업계 기준을 충족하기 위한 자동 모니터 시스템, 전문가들과 삭제를 돕기 위한 사용자 툴을 제공하고 있다"며 "삭제가 필요한 경우마다 알려달라"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텀블러만 차단한다고 다가 아닙니다. 텀블러에 게시된 각종 이미지를 이른바 '박제'해 보관하는 파생 아카이브 웹페이지인 '텀벡스'는 범죄 형태와 상관없이 "EU 및 독일 정책을 따르고 있다"며 "EU 및 독일 정부를 거쳐 공조 요청이 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한국 경찰이 요청해도 IP 정보를 제공해줄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진화하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성범죄' 그리고 피해 복구를 위한 도움이 다각도로 논의될 필요가 있습니다.

작가 김유미 이지율
디자인 안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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