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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MZ세대 vs X세대, 성과입력부터 다르다?

김창규│입사 21년 차 직장인. 실제 경험을 녹여낸 회사 보직자 애환을 연재 중

[인-잇] MZ세대 vs X세대, 성과입력부터 다르다?
몇 년 전 회사 규정이 바뀌어 1년에 한 번 하던 인사평가를 반기에 한 번씩 하게 됐다. 인사평가를 받고 하는 것, 상당히 번거롭고 부담되는 일이다. 인사부로부터 몇 번 독촉을 받고 나서야 뭉그적대던 이 일을 하기 시작했다. 우선 피평가자로서 내가 지난 반년 간 어떤 성과를 거두었고 어떤 과업을 했는지 기재 했다. 입력해야 할 것이 제법 있었지만 확 줄여서 30분 만에 끝냈다. 한번 더 대강 훑어보고 최종 발송을 하려는 데 인접 지사장에게 전화가 왔다. 그가 나에게 물었다.

"뭐하세요?"

"상반기 성과 입력이요. 30분이나 걸렸어요. 으......"

"뭘 그렇게 쓸게 있어요. 10분이면 끝나지."

"그러게요. 그래도 너무 성의 없게 입력하면 안 되잖아요. "

"그렇긴 하죠. 하지만 성과를 너무 적어 대면 자기 자랑을 막 늘어놓는 것 같아 영 민망해요."

나도 이 말에 공감한 뒤 가벼운 업무 얘기를 하고 끊었다. 그리곤 내가 입력한 성과를 다시 보았다. 초등학생처럼 너무 소소한 것까지 기재한 것 같다. 노자가 쓴 도덕경 20장에 나오는 "굽으면 온전해 진다"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스스로 드러내지 않으므로 밝아지고,
스스로 옳다고 하지 않으므로 드러나고,
스스로 자랑하지 않으므로 공을 얻게 되고,
스스로 뽐내지 않으므로 오래 간다.


그러자 속으로 '이 말이 맞아. 목표 달성했으면 되었지, 뭘 더 자랑질이야' 또는 '목표 미달했으면 쿨하게 인정해야지, 뭘 변명질이야. 다 위에서 알아서 평가하겠지' 하면서 그렇지 않아도 휑한 성과 입력란에 오글거리는 몇 문장을 더 삭제한 뒤 최종 발송 버튼을 눌렀다.

이 일이 끝나자 난 피평가자에서 평가자로 바뀌어 그간 직원들과 한 면담 내용과 업무를 같이 하면서 알게 된 그들의 장단점을 평가 시스템에 입력했다. 김 차장은 이렇고 박 대리는 저렇고 오 사원은 요렇다고 썼으나 사실 두루뭉술하게 표현했다. 야박하게 단점을 자세히 쓸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비정해져야 할 시간이 왔다. 다음 입력창에서는 직원들이 기재한 성과와 과업성취도를 보고 반드시 우열을 가려 평가 점수를 주고 서열을 매겨야 하기 때문이다. 평가자로서 정말 괴로운 시간이다. 고민에 고민을 하며 최대한 공정하게 점수를 매겼다. 이때 매우 특이한 점 하나를 발견했다. 무엇일까? 나와 비슷한 연령대 직원들의 성과 입력은 나처럼 다소 간략했다. 반면 젊은 직원들은 읽기가 힘들 정도로 자신들의 성과를 정말 자세히 썼다. 그 분량과 세밀함에 있어서 현격한 차이가 났다.

왜 이럴까? 생각해보면 그 세대가 어떻게 평가를 받으며 성장했는가의 차이가 아닌가 싶다. 우리 X세대는 시험 한번 치고 등락이 결정되는 세대여서 그런지 대다수가 평가를 하고 받는 것 자체를 낯설어 한다. 그래서 (개인차가 있겠지만) 자신의 성과를 잘 드러내지 못하며 누구를 평가하는 것도 꺼린다. 반면 요즘 세대들은 지필 평가 외에도 수행, 모둠 같은 평가를 수시로 받으며 성장했다. 또한 이들은 인생의 중요 전환점, 그러니까 대학교 입학 및 회사 입사시에 자신을 PR하는 자기소개서가 합격, 불합격에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 이런 이유로 평가 받고 자기 홍보에 익숙한 젊은 직원들은 회사에서도 인사평가를 잘 받기 위해 자신들의 업적을 우리 세대와는 달리 당당하게 소상한 것까지 자세히 기재하는 것이다. 어쨌든 이런 세대별 성장환경 차이로 인해 누구는 본인의 성과 입력란을 빽빽하게 채우고 누구는 듬성듬성하게 채우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이유로 공들여 자기 성과를 입력하는 젊은 직원들을 잘못 평가하면 '큰일' 난다. 알다시피 MZ세대를 포함한 젊은 직원들은 평가로 자신의 흥망성쇠를 경험한 세대라서 어느 세대보다도 더 평가의 공정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공정성은 객관적 근거를 바탕으로 확보된다. 바로 이점이 이들이 자신의 업적을 차곡차곡 모아두고 세세히 기록하는 이유다.

그런데 평가자인 나는 어떠한가?
이들이 기대하는 것처럼 객관적 근거를 바탕으로 평가하는가?


최대한 그렇게 하려고 노력한다. 단 오직 데이터와 실적을 기준으로만 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개인에게 부여되는 목표와 과업은 난이도에 있어서 상당한 차이가 있으며 그것의 달성 여부도 혼자만의 능력이 아니라 시장 환경, 당시의 회사 상황 등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년 진급 대상자, 이미 진급한 직원, 한 번 더 기회를 줘야 할 직원, 그렇지 않은 직원을 단지 겉으로 표현된 숫자로만 해서 우열을 나누는 것도 무조건 올바른 방향이라고 하기 어렵다.

인사평가를 할 때, 객관적인 수치를 갖고 평가하는 정량적 평가와 숫자로 표현하기 어려운 노력과 정성(혹은 당시의 상황)을 감안하며 평가하는 정성적 평가를 어떤 비율로 조화시켜 상호보완이 되도록 해야 평가 이후에 발생될 수 있는 부정적 효과를 최소화할 수 있을까? 여기에 중간 관리자인 나의 어려움이 있다.

연말이 다가오니 인사평가를 조만간 또 해야 한다. 어쨌든 나는 현명한 평가로 조직의 갈등을 최소화해야 한다. 무엇이 현명한 평가인지는 더 고민해야 하겠으나 생각이 약간 바뀌기는 했다. 이번에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본인들이 적은 성과 입력 내용을 전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며 봐야겠다는 것. 그렇다면 나의 성과는 어떻게 입력을 할까? 이것 또한 민망함을 무릅쓰고 자랑할 만한 성과는 스스로 드러내 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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