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취재파일] 장관 개인감정으로 법치 흔들 건가

[취재파일] 장관 개인감정으로 법치 흔들 건가

秋의 연이은 실책, 윤석열 때문?

강청완 기자 blue@sbs.co.kr

작성 2020.11.16 09:11 수정 2020.11.17 15:11 조회수
프린트기사본문프린트하기 글자 크기
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장관 개인감정으로 법치 흔들 건가
요즘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추미애 법무부장관의 감정은 불호(不好)와 적대를 넘어 증오에 가깝다고 한다. 처음부터 좋았던 건 아니지만 지금은 완전히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것이다. 취임 초기 "명을 거역했다"며 질책할 때까지만 해도 '내 말을 들어라'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끝을 보자'에 가깝다는 게 정치권에 정통한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원래 본인의 권위가 아래로부터 도전받는 데 예민하고 엄격하기로 유명했지만 지금은 그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다. 당 대표 시절 몇 가지 일화는 유명하다. 2017년 문재인 대선 캠프 시절 상황본부장을 본인이 원하는 인사로 앉힌 걸 임종석 당시 후보 비서실장이 공개 비판하자, 실세 중 실세로 꼽히던 임 실장에게 당장 들어와 사과하라고 요구하는 결기를 보였다. 본인의 복심(腹心)으로까지 불리던 핵심 참모를 놓고 작은 논란이 일자 공개적으로 "읍참마속의 심정"을 언급하며 경질하기도 했다. 그런 추 장관 앞에, 윤 총장은 곧 죽어도 굽힐 생각이 없어 보이니 괘씸할 만도 하다. 심지어 본인과 관련된 논란 가운데 윤 총장과 딱히 관련 없어 보이는 사안에도 장관은 '윤 총장의 소행'이라 의심한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추미애, 윤석열
● 추미애 장관의 '기승전(起承轉)윤석열'

이제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지만, 얼마 전 국회에서 있었던 장면은 윤 총장에 대한 추 장관의 심경을 단적으로 드러낸 장면이라 할 만했다. 대전지검의 월성 원전 조기 폐쇄 결정 관련 수사, 검찰 특활비 등 거의 모든 질의에 대한 추 장관의 답은 '윤석열 검찰총장'으로 귀결됐다. 질의에 나선 야당 의원이 "장관님은 검찰총장 아니면 하실 얘기가 없으십니까" 되묻고 급기야 같은 당 정성호 예결위원장이 "질문을 다 듣고 답해 달라"며 협조를 요청할 정도였다. 법사위도, 대검 국정감사도 아니었지만 추 장관의 시선 어느 곳에는 윤 총장이 계속 아른거리는 듯했다.

말로만 끝나면 다행이지만 문제는 추 장관이 막강한 권한을 가진 법무부장관이라는 사실이다. 이전까지 법무장관의 수사지휘권 행사나 검찰총장에 대한 감찰 지시는 최대한 절제되어 왔다. 검찰을 종속시키려는 권력의 시도는 음으로 양으로 꾸준히 있었지만, 그나마 검찰의 중립성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상징적 보루라는 정치적 무게와 함의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휘권 행사와 감찰 지시는 추 장관 이전까지 단 한 차례씩만 있었고 그때마다 모두 검찰총장이 직을 던졌다. 지금 장관 지시에 무게감은 온데간데없다. 3주 동안 모두 4번의 감찰 지시가 내려졌고 수사 지휘권도 최소 2회 이상 발동됐다. 원래 처음이 어렵지 다음은 쉽다. 불과 최근 한두 달 사이 이뤄진 일이다.

처음에는 윤 총장의 권한 남용에 대한 장관의 정당한 지휘감독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권한 행사가 거듭될수록 '폭주하는 검찰 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라기보다 추 장관의 '감정 섞인 처사'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점점 느는 분위기다. 이번 달 초 한국리서치 등 4개 여론조사기관이 공동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선 법무부-대검 갈등에서 '추미애 장관 책임이 더 크다'는 의견이 36%로 '윤석열 검찰총장 책임이 더 크다'는 의견(24%)보다 높게 나타났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이러지 않았다. 시민들도 피로감을 느낀다는 이야기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
● 秋의 '잠금해제법'…비판 일자 "n번방 때문에"

그중에서도 지난 목요일(11/12), 추 장관이 꺼낸 카드는 역대급 악수(惡手)로 기록될 만하다. 채널A 강요미수 의혹 사건과 관련해 한동훈 검사장이 휴대폰 비밀번호를 제출하지 않은 사실을 언급하며 '비밀번호 제출 등을 강제하고 불이행 시 제재하는 법률 제정을 검토할 것'을 지시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 더불어 채널A 사건 피의자인 한동훈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사례와 같이 피의자가 휴대폰 비밀번호를 악의적으로 숨기고 수사를 방해하는 경우 영국 등 외국 입법례를 참조하여 법원의 명령 등 일정요건 하에 그 이행을 강제하고 불이행 시 제재하는 법률 제정을 검토하도록 지시하였음

법조계를 중심으로 즉각 비판이 쏟아졌다. 지난 이명박 정부에서도 추진하다가 각계의 반대로 폐기된 '사법방해죄'를 사실상 다시 추진하겠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참여연대, 서울지방변호사회 등에서 이튿날 비판 성명을 냈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인권 침해와 위헌 소지가 있고 검찰 개혁에도 역행한다는 취지였다. 즉시 철회는 물론, 장관의 대국민 사과까지 요구하는 강도 높은 질타가 이어졌다. 학계에서는 황당하다는 반응까지 나왔다. 심지어 민변 출신 여당 의원들에게도 반대 목소리가 나왔다. 자충수였다. 한동훈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 격이다.

비판이 계속되자 급기야 법무부는 다음날 법안 추진 배경에 한동훈 사건뿐 아니라 'n번방 사건'도 있다고 보충 설명을 내놓았다. 'n번방 사건'의 주범 조주빈이 휴대전화 잠금 해제에 협조하지 않아 수사가 지연된 사례 등을 언급하며 법안 추진 필요성을 다시금 강조한 것이다. 첫날 한동훈 사건만 언급했다가 비판을 받자 'n번방 사건'이라는 그럴듯한 논거를 끌어온 것처럼 비쳐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아직 실체가 밝혀지지 않은 채널A 사건과, 반인륜적 범죄인 'n번방 사건'을 동일선상에 놓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왜 n번방 사건 당시에는 이런 법안 추진한다는 얘기 안 했는지, 법무부는 아무런 답을 내놓지 않았다. 설마 그럴 리야 있겠느냐만, '정적(政敵) 제거'라는 정치적 필요 때문에 n번방 사건을 도구로 가져다 쓴 것이라면 정말 최악의 경우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추미애 법무장관
● 분노와 미움은 눈을 가린다

법무부 주변에선 요즘 추 장관이 '평정심을 잃었다'는 말도 나온다. 그 계기를 본인 아들 관련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로 보는 시각도 있다. 공교롭게도 장관의 실책이 이어진 것도 그 무렵부터다. 최근 이어진 수사지휘권 행사나 잇따른 감찰 지시, 사실상 '헛발질'에 가까운 것으로 드러난 특활비 의혹 등이 그런 경우다.

검찰 내부에선 이른바 추 장관의 '커밍아웃' 발언을 결정적 패착으로 꼽는다. 한 평검사가 검찰 개혁이 실패했다는 취지의 글을 올리자 추 장관이 해당 검사가 언급된 기사를 인용하며 "좋습니다. 이렇게 커밍아웃해 주시면 개혁만이 답입니다"라고 공개 저격한 일이 문제가 됐다. 비유하자면 대기업 평사원이 회사 정책에 비판적인 글을 올리자 회장이 본인 SNS에 해당 직원을 언급하며 "두고 보자" 하는 식이다. 사실상 검찰 전체를 적으로 규정함으로써 본인을 지지하는 검찰 내부 구성원까지 대거 등을 돌리게 한 사건이었다.

비단 이 사건만 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윤석열 총장이나 한동훈 검사장을 비판하는 여론이 검찰 내부에 적지 않았다. 윤 총장의 '굽히지 않음'은 본인을 위한 것인지 검찰의 중립성을 위한 것인지 분간이 잘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고 한동훈 검사장의 비밀번호 제출 거부는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해도 "결백하다"는 본인의 주장에 비춰볼 때 윤리적 비판의 소지가 충분히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잇따른 실책으로 추 장관 스스로 입지를 좁혀가는 모양새다. 요즘 추 장관 주변에는 여의도 출신의 가신(家臣)들과 극소수 고위 검사만 똘똘 뭉쳐있다는 말도 나온다.

윤석열, 한동훈으로 대표되는 검찰 일부에 대한 추 장관의 개인적 감정이나 적대심이 장관의 눈을 가리고 있는 건 아닌지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고 있다. 언제부턴가 검찰개혁이란 말은 쏙 들어가고 추-윤 갈등이란 말이 익숙해졌다. 이쯤 되면 검찰개혁인지 윤석열 개혁인지 헷갈릴 정도다. 정치인의 분노는 부조리와 싸우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종국에는 그의 눈을 가리고 올바른 판단을 막는다고 했다. 본인 감정이야 본인의 마음이다. 그러나 피해는 결국 국민과 나라에 돌아간다. 법으로 다스리는 나라에 법무부장관의 이야기라면 더더욱 그렇다.
 
*SBS 보이스(VOICE)로 들어보세요.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