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취재파일] 전동 킥보드 안전 대책, 전기 자전거를 따르라?

[취재파일] 전동 킥보드 안전 대책, 전기 자전거를 따르라?

장훈경 기자 rock@sbs.co.kr

작성 2020.11.15 11:38 조회수
프린트기사본문프린트하기 글자 크기
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전동 킥보드 안전 대책, 전기 자전거를 따르라?
전기 자전거와 전동 킥보드의 공통점은 사실상 딱 하나다. 작동 방식, 전기의 힘을 빌린다는 것이다. 그것 말고는 온통 다른 점이다. 앉아 타는 것과 서서 타는 것, 출발부터 다르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큰 차이다. 직접 타보면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앉아 타는 전기 자전거는 전동 킥보드보다 훨씬 안정감을 준다. 바퀴도 크고 가격도 비싸다. 페달을 움직여야만 움직이는 것도 큰 차이다. 출퇴근용 대신 레저나 운동 목적으로 타는 비율이 높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실제 보행자와 차가 많은 도심에서는 전기 자전거보다 전동 킥보드를 쉽게 볼 수 있다.

전동 킥보드의 무기는 간편함이다. 부피가 작아 전기 자전거보다는 훨씬 좁은 공간을 달릴 수 있다. 공유형만 놓고 보면 후발 주자인 전동 킥보드가 전국 2만 대 정도로 전기 자전거보다 2배 많은 걸로 추정된다. 다만 무게중심이 높은 데다 바퀴가 작아 조그만 요철에도 흔들림이 크고 넘어지기 쉽다.

지난 9일 시민단체 회원들이 '전동킥보드 자전거 도로 통행 허용 관련 시민안전대책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자전거 도로도 달려야 한다…고로 자전거가 돼야 한다

국회와 정부는 구조와 특성이 다른 이 두 이동장치에 대해 사실상 똑같은 안전 대책을 내놓았다. 자전거 도로도 달릴 수 있게 한 것이다. 전동 킥보드와 전기 자전거는 도입 당시 오토바이 같은 '원동기장치 자전거'로 분류됐다. 차도로만 다녀야 했다. 자전거 도로도 달리게 하려면 '원동기장치'란 단어를 빼고 도로 이름 그대로 '자전거'가 돼야만 했다. 전기 자전거는 2017년 자전거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 개정으로 자전거 범주로 옮겨왔다. 전동 킥보드 역시 지난 5월 도로교통법 개정으로 다음 달 10일부터 원동기장치 자전거에서 벗어나게 됐다.

문제는 자전거 도로까지 활동 반경을 넓혀준 게 사실상 안전 대책의 전부라는 점이다. 실제 규제는 오히려 느슨해졌다. 자전거가 돼 버렸기 때문이다. 원동기장치 자전거는 면허가 필요하고 헬멧을 안 쓰면 범칙금을 부과한다. 하지만 자전거로 분류되면서 만 13세 이상이면 면허 필요 없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 됐고 헬멧 미착용 시 처벌 규정도 없어졌다.

우리나라 자전거 도로는 77.3%가 보행자 겸용 도로다. 전동 킥보드가 자전거 도로로 달리게 되면 보행자와의 접촉이 늘 수밖에 없다. 서서 타기 때문에 안정감이 떨어져 넘어지기 쉽고 제어가 어려워 행인과 부딪칠 가능성이 높은 전동 킥보드만의 안전 대책이 필요했지만 정작 국회와 정부의 논의 과정에서는 빠져버렸다.

● 첫 번째 회의, 부처 합의 안 돼 보류

2018년 11월 20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전동 킥보드에 관한 국회와 정부의 첫 번째 논의가 진행됐다. 법안 두 개가 발의된 상태였다. 홍의락 전 의원은 전동 킥보드를 아예 차도로는 통행을 금지하고 자전거 도로나 보도로만 다니게 하되 보도에선 시속 10km로 속도를 제한하자고 제안했다. 윤재옥 의원 발의안은 현재 개정 도로교통법의 기준이 됐다. 차도와 자전거 도로 이용을 모두 가능하게 하고 면허도 없애자는 것이었다.

소위는 부처 간 합의가 안 됐다는 이유로 법안심사 보류를 결정했다. 경찰청과 행정안전부는 "교통안전 주관 부서인 국토교통부가 먼저 안전관리기준을 수립해야 논의를 진행할 수 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문제 제기했다. 홍익표 당시 소위원장은 "국토부에만 넘기지 말고 경찰 측도 사례 조사나 해외 입법례를 참조해 입장을 정해 달라"며 이날 논의를 마무리했다.

● 1년 반 뒤 열린 회의서도 '떠넘기기'

2020년 5월 12일, 첫 번째 회의를 한 지 1년 반 뒤에야 국회 행안위에서 논의가 이어졌다. 이대로 가다가는 20대 국회가 끝나갈 판이어서 부랴부랴 잡은 회의였다. 1차 회의 이후 국토부만 기다리지 말라는 지적에 따라 경찰청, 국토부, 산업부 등이 TF를 구성해 정부 의견 정리에 나선 상황이었다.

하지만 끝내 부처 간 떠넘기기가 해소되지 않았다. 국토부는 "저전거로 분류될 전동 킥보드에 대한 안전 기준을 담을 소관 법령이 없다"는 입장을 계속 유지했다. 결국 정부 TF는 일단 산업부에서 전동 킥보드라는 상품에 대한 안전 기준을 고시하고 이를 경찰청의 도로교통법으로 개정하자는 의견에 합의했다. 그렇게 전동 킥보드는 전기 자전거에 적용한 방식 그대로, 똑같이 따라가게 됐다. 2020년 5월 20일,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그렇게 통과했다.

● "안전 기준 마련" 정부 내에서 꾸준히 요구

전동 킥보드만의 특성을 고려한 안전 기준과 제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정부 내에서도 꾸준히 제기됐다. 관련 정부 TF가 한창이던 2019년 3월, 국민권익위원회는 전동 킥보드에 대한 민원을 분석해 TF에 제도 보완을 촉구했다.

자전거 도로 이용을 막아 달라는 민원과 반대로 자전거 도로까지 운행하게 해 달라는 요구가 팽팽히 맞섰다. 불법 개조 금지, 주차장 설치, 충전소 확대 등 전동 킥보드만의 별도법 제정을 요청하는 민원도 많았다. 모두 경찰청, 국토부, 산업부 등 해당 부처들에 전달됐다. 어떻게 전동 킥보드 사고를 예방할 수 있을지, 전기 자전거와 다른 별도의 대책을 고민해달라는 주문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주관 부서가 어딘지 만을 놓고 따졌다. 무려 18개월이나 걸려 정부가 마련한 안전 대책에 부실하단 평가가 가득한 이유다.

● 정부 탓만 한 국회…정부 내 갈등 해결 방안 연구용역까지

국회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행안위 관계자는 "정부 안을 기다리느라 일단 급한 대로 자전거 도로 통행만이라도 가능하도록 법안을 만들었다"고 했다. 개정 도로교통법은 안전 대책의 '중간 단계'일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합의를 시도하고 국회가 기다린 18개월 사이에 전동 킥보드 관련 사고는 꾸준히 급증하고 있었다. 2017년 117건, 2018년 225건, 2019년 447건으로 매년 두 배에 달하는 증가폭이다. 기다리느라 일단 '중간 해법'을 내놓았다는 설명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국회 행안위 관계자는 또 "국토부가 연구용역을 의뢰해 그 결과를 기다리느라 시간이 지체됐다"고 말했다. 책임을 다시 정부에 돌린 것이다. 하지만 국토부에 확인해 보니 해당 연구용역은 전동 킥보드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새로운 이동수단이 등장할 때마다 주무 부처가 어디인지를 두고 갈등이 반복돼 시간이 지체되는 걸 방지할 해법을 모색하는 연구였다. 정부에서도, 국회에서도 전동 킥보드 안전 대책은 사실 논의조차 제대로 안 된 것이었다.

아무 데나 세워 둔 전동킥보드
● '국토부 주도하라' 법안 발의…"속도 제한이라도 하자"

21대 국회 들어 지난 9월, 초선인 홍기원 의원이 국토부와 협의해 법안을 발의했다. 만 13세 이상이더라도 청소년들에 대해서는 안전 교육을 실시하고 주차 방식, 개조 금지 등 내용도 담겼다. 특히 핵심은 안전 기준을 국토교통부령으로 정하라는 것이었다. 교통안전 주무 부서인 국토부가 이제라도 키를 쥐고 정책을 마련하라는 것이었다. 홍 의원실 관계자는 "연내 본회의 통과가 목표인데 그렇게 되더라도 국토부가 세부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마련하는 데는 또다시 1년 정도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2018년 9월, 당시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주재한 혁신성장관계장관회의에서 전동 킥보드의 주행, 안전에 대한 합리적 기준을 내놓겠다는 약속을 한 바 있다. 시한은 2019년 6월이었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전동 킥보드 안전 대책은 그저 전기 자전거를 그대로 따라 하는 것 말고는 사실상 전무하다. 홍기원 의원실 바람대로 발의안이 연내 통과해 관련 법령이 빠르게 정비되더라도 정부 약속 시한은 최소 2년 반 이상 지체된다.

전문가들은 일단 속도 제한이라도 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당장 다음 달 10일부터 전동 킥보드가 자전거 도로로 통행할 수 있게 돼 보행자와 충돌 가능성이 높아진 만큼 최고 시속을 현재 25km에서 좀 낮추자는 것이다. 실제 호주에서는 전동 킥보드가 차도에 출입이 제한되는 대신 최고 시속이 12km로 제한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6년 국회에서 관련 법안을 처음으로 발의한 홍의락 전 의원 안에도 보행자와 부딪칠 수 있는 곳에서는 시속 10km로 줄이자는 내용이 담겨 있다. 특히 이 같은 방안은 산자부와 경찰청이 현재의 관련 법령을 정비하는 것만으로도 가능해 부처 간 의견 조율도 한결 쉬운 것으로 전해졌다. 인명 사고가 더 나야 대책이 나올 것이라는 자조 섞인 우려가 많다. 할 수 있는 대책부터 가능한 한 빨리 내놓아야 한다. 이미 늦었다.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