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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의 땐 "그만둬라"…택배 현실은 여전히 '죽을 맛'

항의 땐 "그만둬라"…택배 현실은 여전히 '죽을 맛'

김희남 기자 hnkim@sbs.co.kr

작성 2020.11.13 21:05 수정 2020.11.13 21:49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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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정부가 어제(12일) 택배 노동자들의 과로를 막기 위한 대책을 내놨습니다.

하루 일할 수 있는 시간을 정하고 늦은 시간엔 아예 배송을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는데, 현장에선 얼마나 도움이 될지, 김희남 기자가 대책의 실효성을 짚어봤습니다.

<기자>

[택배입니다. 문 좀 열어주세요.]

오후 1시 반이 돼서야 배송에 나선 40대 택배기사입니다.

오전 7시쯤 출근했는데도 한나절이나 분류작업에 매달리느라 배송을 늦게 시작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김도균/택배기사 : (택배 물건) 250개 정도 싣고 나왔습니다. 400개 정도 해야 하는데, 아직 하차가 다 끝나지 않았어요.]

6시간 정도 분류작업을 하고도 대가는 한 푼도 받지 못하고, 물량이 많아 늘 밤 10시를 넘어야 끝나는 게 일상입니다.

[김도균/택배기사 : 제가 만약 400개를 다 싣고 왔다. 그러면 12시죠(끝나죠.) (밤 12시?) 네.]

지난달 12일, 쿠팡 물류센터에서 야간 분류작업을 끝내고 퇴근한 직후 자택에서 숨진 27살 장덕준 씨.

태권도 공인 4단에 건강했던 덕준 씨는 지난해 6월부터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해왔습니다.

그새 체중은 15kg 감소했고 전에 없던 무릎 통증과 가슴 통증이 나타났습니다.

[박미숙/고 장덕준 씨 어머니 : 장례식장에 오신 분이 자주 이제 작업을 하면서 가슴을 쥐거나 통증을 호소한 적이 있었다 그러더라고요.]

근무 일지를 확인해봤더니 한 달에 25일을 야간에 근무했고, 7일간 모두 59시간을 밤새워 일한 적도 있습니다.

쿠팡 측은 주 5일 52시간 근무를 준수한다고 내세우지만, 계속 이어지는 야간작업에 극한 상황으로 내몰렸던 겁니다.

[물류센터 동료 : 제가 오늘 '죽을 것 같다' 그러면 덕준이도 '아 오늘 너무 빡세. 나도 죽을 뻔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주당 60시간 이상 근무할 경우 과로사로 인정해주고 있지만, 야간 근무의 강도는 주간보다 1.5배가량 높게 봐야 한다고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김성희/산업노동정책연구소 소장 : 훨씬 더 많은 스트레스와 부담을 가중시키는 거죠. 적어도 1.5배 이상의 부담을 심야노동이 초래할 것이다.]

정부가 대책으로 내놓은 불공정한 관행 개선안도 현장에선 회의적입니다.

취재진이 입수한 한 택배회사 대리점의 녹취를 들어보면 종속적인 현실이 잘 드러납니다.

[대리점 관리자 (로젠택배 부산 ○○지점 녹취) : 이 자리에서 손을 안 들고 뒤에서 만에 하나 저한테 걸리면. 그날 그 자리에서 계약 해지…]

수수료 인하에 동의하지 않으면 일을 못하게 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항의하는 기사에게는 싫으면 관두라며 폭언을 쏟아냅니다.

[택배기사 (로젠택배 부산 ○○지점 녹취) : 우리 소장(택배기사)들은 못 믿겠다. 그런데 지점은 살겠다. 그렇게 느껴지거든요.]

[대리점 관리자 (로젠택배 부산 ○○지점 녹취) : 나가시면 되겠네. 그럼 나가시면 돼. 지금 ○○ 다른 데는 끝났는데, 언제까지 이럴 건데.]

대개 특수고용직인 택배기사는 개인사업자 형태로 도급 계약을 맺고 노동을 제공하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합니다.

산재보험도 사측과 반반씩 부담하게 돼 있지만, 회유나 압박 등으로 가입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선진국의 1/3 수준인 배송비와 낮은 수수료 문제를 현실화하고, 불공정한 계약과 근무 환경을 개선해야 과로사를 막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읍니다.

[김성희/산업노동정책연구소 소장 : 산업안전에 관련된 규정, 근로시간에 관한 규정, 적절한 소득을 보장해줄 수 있는 체계. 형식적인 계약이 개인사업자이더라도 적용하는 규정을 만들어내야지만 해결책이 될 수 있는 거죠]

(영상취재 : 이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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