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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어쩌다 수험생들이 대학을 상대로 소송전에 나섰나

[취재파일] 어쩌다 수험생들이 대학을 상대로 소송전에 나섰나
● 가고 싶은 대학에 소송부터 하게 된 학생들

지난 9일, 올해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헌법재판소를 찾아 서울대학교가 최근 발표한 '2023학년도 입학전형 예고'를 대상으로 헌법소원 심판 청구서를 제출했습니다. 앞서 이 학생은 커뮤니티에 글을 올려 함께 소송에 나설 사람들을 모았고, 모두 9명이 함께 청구서를 제출했습니다. 물론, 9명 모두 수능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고등학생이거나 졸업생입니다.

한창 공부에 바쁠 시기에 어쩌다가 학생들은 소송까지 준비하게 됐을까. 그건 서울대학교가 수능 점수만 반영하던 정시-일반전형에서 2023학년도부터는 교과 평가 점수까지 반영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1단계에서 수능 점수만으로 선발한 뒤, 2단계에선 수능 80점과 교과 평가 20점을 합산하기로 한 겁니다. 또, 정시-지역균형 전형을 신설하고 수능 60점과 교과 평가 40점을 합산하기로 했습니다.

'어찌 됐든 정시니까, 수능을 더 많은 비율 반영하고, 교과 평가도 적은 비율이라도 반영하면 균형 잡히고 더 좋은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양 군은 직업 선택의 자유 같은 기본권이 침해받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23학년도 대입은 지금 고1이나 고2가 주로 응시하게 될 텐데, 이들은 이미 일부 학기에 대해서 내신 점수를 받은 상태입니다. 정시에서 교과 평가가 평가 요소로 반영될 수 있다는 걸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서울대의 발표가 이들에게 너무나 막막할 따름이고, 서울대의 움직임에 다른 학교들도 비슷한 결정을 할까봐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고, 급기야 소송까지 제기한 겁니다.

서울대학교 (사진=연합뉴스)

● 조국에서 시작된 '대입 공정' 의문

우리나라의 대입은 모두가 잘 알다시피, 정시와 수시 전형으로 나뉩니다. 정시에서는 주로 수능 점수가 주요 평가 요소가 됩니다. 실제로, 올해 서울대와 연세대, 고려대를 포함한 상위 15개 대학은 정시에서 오로지 수능 성적으로만 합격자를 선발할 예정입니다. 반면, 수시에서는 교과목 내신(학생부 교과 전형)이나 학생부 종합 전형, 논술 전형 등을 통해 합격자를 선발하고 이 과정에서 수능 점수는 최저학력 기준 등의 방식으로 일부 반영됩니다.

정시로 선발되는 인원과 수시로 선발되는 인원 간 비율은 조금씩 변해왔는데, 최근 몇 년간은 압도적으로 수시 선발 인원이 많았습니다. 실제로, 정시 선발 비중은 2010학년도에는 42% 수준이었지만 20학년도에는 23%로 하락했습니다. 그만큼 수시 선발 비중이 늘어난 건데, 21학년도에는 전체 모집 인원 가운데 77%에 달하는 26만 7천374명이 수시로 선발됩니다. 특히, 학생부 전형을 통해서 전체 모집 인원의 67%를 선발합니다. 이처럼 수시에, 그것도 학생부 전형에 무게가 실린 건 '학교 교육(공교육)에 충실한 학생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준다'는 명제가 대입 공정을 위한 컨센서스로 자리 잡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난해 이러한 질서를 흔드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검증 보도가 쏟아지던 시기, 조 전 장관의 자녀가 특정 논문의 제1저자로 기재된 사실이 드러난 겁니다. 그 결과, 이런 허위 경력이 조 전 장관의 자녀가 수시 전형으로 대학에 입학하는 과정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의혹이 주목을 받게 됐습니다. 조 전 장관의 자녀가 입학했던 고려대에는 당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진위를 가리는 것은 어려웠지만, 분명한 건 조 전 장관에 대한 의혹 제기가 대입 공정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이어졌단 점입니다.

조국 (사진=연합뉴스)

● 정시 확대에 흔들린 '대입 공정'

그런데, 예상 밖 답변이 나왔습니다. 교육에서의 공정을 위해 정시를 확대하겠다고 밝힌 겁니다(2019년 10월 22일, 문재인 대통령 국회 시정연설). 교육계 내부에서도 오히려 대입 제도가 후퇴하는 것 아니냔 지적이 쏟아졌습니다. 공교육 활성화와 더불어, 대입 공정이라는 지향점을 위해 학생부 전형이 꾸준히 확대돼 왔는데, 이와 정반대의 대책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교육부도 곧바로 학생부 전형을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교육부는 조사단을 꾸려 학생부종합전형 비율이 높고, 특목고나 자율고 학생 선발 비율이 높은 13개 대학에 대한 실태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당시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박백범 교육부 차관은 '고교 서열화' 경향이 이들 대학에게서 일관되게 나타났다고 밝혔습니다(2019년 11월 6일, 13개 대학 학생부종합전형 실태조사 결과 브리핑). 실태 조사 결과를 토대로 이들 대학들에 대한 후속 감사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일각에서는 대학들이 학생부 종합 전형의 비율을 줄이고 정시 비율을 높이도록 길들이기 하는 것 아니냔 비판까지 나왔지만, 굴하지 않았던 교육당국은 교육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학생부 종합전형 선발 비중이 높았던 16개 대학(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서강대, 성균관대 등)을 대상으로 정시를 확대하겠단 방침을 구체화했습니다(2019년 11월 28일, 교육부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발표).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정부는 나름의 사회적 합의를 허물고, 10년 전 수준으로 정시 비중을 확대했습니다. 당장 2022학년도 대입부터 서울대 등 7개 대학은 정시 선발 비율을 30% 대로, 연세대와 고려대 등 9개 대학은 40% 이상으로 늘리기로 했습니다. 여담이지만, 교육부의 후속 감사에선 고교 등급제와 같은 폐단이 정말 발견된 것일까. 교육부는 지난달 1년 만에 후속 감사 결과를 내놨는데, 학생부 종합 전형에서 고교 등급제의 증거는 찾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

● 결국, 고통받는 건 수험생

정부가 대입 공정성을 제고하겠다며 정시를 확대를 밀어붙인 탓에 대학들은 영문도 모른 채 정시 선발 비율을 확대해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지난 몇 년간 유지돼 온 질서, '학교 교육에 충실한 학생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준다'는 명제가 크게 흔들렸습니다.

수능, 시험, 모의평가, 모의고사 (사진=연합뉴스)

이런 와중에 서울대는 정시에서도 교과 평가 점수를 반영하도록 바꿔 나름대로 균형을 잡으려 했던 걸로 보입니다. 실제로, 서울대의 한 관계자는 "정시에서도 학교 수업에 충실했는지를 평가하기 위함"이라면서 "정시 비중 확대를 일부 보정하려는 목적도 있었다"라고 변경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궁극적으로 제가 지적하고 싶었던 건 서울대의 결정이 결과적으로 옳았다는 것도, 그렇다고 해서 교육부의 정시 확대 방침이 맞았다는 것도 아닙니다. 대입에 있어서 '무엇이 공정한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흔들린다면, 그로 인해 교육당국과 대학 사이에 엇박자 판단이 나온다면, 불확실성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이 받게 된단 것이었습니다.

학생들이 제기한 이번 소송의 결과는, 승소이든 패소이든 우리 사회의 씁쓸한 단면만을 부각해줄 것으로 예상됩니다. 가고 싶은 대학에 먼저 소송부터 제기해야 했던 우리 학생들의 상황이 그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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