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 번 되새긴 '인상착의'…퇴근길 형사 앞에 나타나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속설을 절도범 검거에 모든 신경을 쏟은 강력계 형사가 증명했다.

한 편의 단막극처럼 펼쳐진 검거는 이달 7일 광주에서 전남 담양으로 이어지는 대로변을 무대로 한다.

광주 광산경찰서 소속 A 형사는 야간당직을 마친 이날 정오 무렵에야 사무실을 나섰다.

A 형사는 몇 달씩 경찰과 숨바꼭질을 벌인 정모(49) 씨의 행방을 쫓느라 밤샘 근무를 끝내고도 퇴근 시간을 훌쩍 넘겼다.

느지막한 점심을 먹으러 가던 A 형사의 머릿속에는 폐쇄회로(CC)TV 영상을 통해 수천 번 반복해서 본 정씨밖에 없었다.

A 형사가 도로 가장자리의 자전거를 피하려고 차창 밖으로 눈길을 돌린 순간 '안경에 검정 상·하의 그놈'이 나타났다.

당시 정씨는 주말을 맞아 포근한 가을 낮의 정취를 즐기려 평소 다니지 않던 교외까지 자전거를 타고 나선 참이었다.

도망자 정씨에게는 불운이었지만, 3개월가량 이어진 추적이 결실을 보는 순간이었다.

정씨를 향한 A 형사의 집념은 개인적인 감정이 아니었다.

별다른 직업 없이 훔친 철물을 팔아 생계를 해결한 정씨는 집요하게도 광산구 산업단지의 공장 한 곳만 노렸다.

담장을 넘어 현금화가 쉬운 고압전선을 뭉텅 잘라 도망치는 정씨의 범행은 올해 8월 초부터 이달까지 열 차례나 이어졌다.

생산 설비 일부를 도둑맞는 상황이 반복되자 경기 침체에도 공장 가동을 준비하던 상공인이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한 까닭으로 A 형사와 동료는 긴급하게 처리해야 할 사건이 없는 날이면 정씨 검거에 시간과 체력을 집중했다.

정씨는 비슷한 범죄로 여러 차례 처벌받은 경험을 도주극에 활용했다.

그의 대담함과 치밀함에 경험 많은 형사들도 번번이 막다른 길에 다다랐다.

'기필코 잡겠다'는 집념은 우연과 필연이 뒤섞인 결말로 이어졌고, 정씨는 야간건조물칩입절도 등 혐의로 구속됐다.

정씨는 다른 범죄에 연루돼 여러 건의 수배도 내려진 상태였다.

11일 광산경찰서는 정씨가 훔친 400만원 상당의 고압전선 300㎏ 가운데 일부를 회수하고 여죄를 파악 중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