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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돌봄 파업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

[취재파일] 돌봄 파업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
● 돌봄이란, "그냥 하는 일"

아서 클라인먼 하버드 의대 의료인류학 교수의 책 중 <care>에는 치매를 앓았던 자신의 아내를 10년 동안 간병한 기록이 담겨 있습니다. 이 책의 제목을 우리말로 하면 '돌봄'이 될 것입니다. 아서 클라인먼이 책 속에서 펼쳐낸 문제의식은 아주 간단합니다. 막상 자신이 보호자 입장에 서보니, 지금의 의료체계가 생각한 것보다 질병의 치료에만 집중하고 환자에 대한 돌봄은 소홀히 하고 있단 것입니다. 돌봄을 의료의 영역 밖으로 몰아내고 돌봄을 환자가 회복하는 과정에서 제공돼야 할 하나의 서비스 정도로 치부했기 때문인데, 그 결과 의료인 입장에선 수술과 약 처방에 더 많은 자원을 쏟을 수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환자나 그 가족은 치료의 전 과정에서 더 많은 어려움과 난처함을 겪게 됐다고 호소합니다.

돌봄은 하나의 서비스에 머물지 않습니다. 아서 클라인먼에겐 순식간에 돌변하는 자신의 아내 곁에서 매 순간 현존하는 일이었고, 그 곁에서 듣고 보고 실천하고 인내하고 추억을 쌓으며 감사하는 일이었습니다. 돌봄은 효용 측면에서 쓰임새를 판단하는 '기능'에 머물지 않고 개인의 삶이나 사회의 생존에 있어서 가장 기초적인 활동이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매 순간 누군가를 돌보고 우리 역시도 돌봄 받는다는 것이 그의 결론입니다. 때문에 돌봄은 의료의 한 영역이나 부분이 아니라, 오히려 의료를 넘어서는 가치이자 활동이며 조건이나 그 효과를 가늠하지 않고 "그냥 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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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초등돌봄전담사 전국파업투쟁대회

● 돌봄 밀어 내기

굳이, 책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지난 6일 있었던 '돌봄 파업' 때문입니다. 딱 하루였지만 코로나에도 문을 열었던 초등 돌봄 교실이 문을 닫았습니다. 초등 돌봄 전담사들의 파업 때문이었습니다. 어떤 학부모는 제게 근무시간 확대 등의 이유로 매년 한 번 정도 파업이 있었다며, 이번에도 지난번처럼 잘 넘어갈 수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물론입니다. 장기화되는 일 없이 잘 해결돼야 합니다. 하지만 이번엔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게 있는 듯했습니다.

이번 파업의 원인에는 '온종일 돌봄 체계'가 있습니다. 국회도 특별 법안을 2개나 발의했는데, 그 안에는 지자체 중심으로 돌봄 서비스를 통합해 운영하겠단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니까, 학교라는 울타리를 넘어서 마을이라는 공간 전체가 돌봄을 위한 놀이터가 될 것이고, 이를 위해서 지자체 중심으로 돌봄 체계를 통합해 운영하겠단 것입니다. 아서 클라인먼이 정의 내린 돌봄에 지금보다 더 가까운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통합 이면에는 마치 돌봄을 의료 밖으로 밀어냈던 것과 비슷한 움직임이 있습니다. 바로 '돌봄-교육 논쟁'입니다.

이 논쟁의 쟁점은 돌봄이 과연 교육이냐는 것입니다. 주로 교원 단체를 중심으로 돌봄은 교육이 아니기 때문에 돌봄 서비스는 교육 당국이 관여할 이유가 없고, 오히려 지자체로 모두 이관되는 것이 맞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2004년부터 초등 돌봄 교실이란 이름으로 운영돼온 것도 법적 근거 없이 교육부 고시에 근거해 임시방편처럼 시작됐고, '교육으로 볼 수 없는 돌봄' 때문에 (물론 초등 돌봄 전담사들이 따로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들의 업무 부담은 커져 교육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교육부 (사진=연합뉴스TV, 연합뉴스)

● 돌봄이 교육에서 분리된다면

지난 5월 교육부는 초중등교육법 일부 개정안에 대한 입법예고를 했는데, 불과 며칠 만에 발의 절차는 중단됐습니다. 당시 개정안은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방과 후 학교'에 대한 법적 근거를 신설하는 방향이었지만, 돌봄은 교육이 될 수 없다는 교원단체의 반발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대해 교육부의 한 관계자는 "정부와 국회 등이 함께 온종일 돌봄 체계를 만들고 있다"면서 "초중등교육법을 개정한다고 해도 그 진행 상황에 맞춰해야 하기 때문에 중단된 것"이라고 제게 해명했습니다만, 지금 상황은 교육 당국 스스로도 돌봄이 교육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확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만약, 돌봄이 지금처럼 교육으로 정립되지 못한 채 지자체 중심으로 통합된다면 어떻게 될까. 지난해 기준으로 학교에서 이뤄지는 초등 돌봄 교실은 290,358명이 이용하고 있는데 반해, 지자체의 마을 돌봄의 규모는 107,586명에 불과합니다. 규모 면에서 초등 돌봄이 마을 돌봄보다 3배 가까이 더 큰데, 규모 차이에도 불구하고 방과 후에 이뤄지는 학교 돌봄이 모두 지자체로 이관된다면 지자체는 학교 돌봄의 상당 부분을 민간에 넘길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실제로 마을 돌봄 영역에서 가장 비중이 큰 지역아동센터를 기준으로 지자체가 운영하는 건 1.8% 수준에 불과한 상황입니다.(2018년 말 기준) 반면, 70%는 개인이 운영하고 있고, 법인이 21%, 시민단체나 종교 단체가 7%를 운영 중입니다.

학교에서 일하는 돌봄 전담사들은 대부분이 지역 교육청 교육감이나 교육장과 계약을 맺고, 교육 당국의 지침에 따라 일을 합니다. '공공 돌봄'이 이뤄지고 있는 겁니다. 수도권의 한 지역아동센터 관계자는 "마을 돌봄의 상당 영역이 이미 민간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 가운데, 30만 명 가까운 초등 돌봄 업무가 지자체로 넘어온다면 마찬가지로 대부분을 민간에서 맡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물론, 민간에서 맡는다고 해서 무조건 '수준 이하'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돌봄을 위한 자원을 동원할 수 있는 능력에서 지자체 직영과 민간 사이에 차이는 날 수밖에 없다"라고 토로했습니다.
 
● 더 나은 서비스에도, 더 많이 고통받는 역설

지난 6일 1차 파업을 마친 돌봄 전담사들은 교육 당국과 교원단체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에서 문제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면 2차, 3차 파업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예고했습니다. 하지만 돌봄이 교육으로서 역할할 수 있길 바라는 돌봄 전담사들과 교육과 돌봄을 분리시켜주길 바라는 교원 단체 사이에서 교육 당국은 옴짝달싹도 못하는 모양새입니다.

중요한 건, 지금 상태로 모든 돌봄 서비스가 지자체로 넘어간다면 그 결과는 모두가 상상하는 것과는 사뭇 다를 것이란 점입니다. 돌봄이 학교 울타리를 넘어 마을로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 울타리 밖으로 쫓겨나 고립될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아서 클라인먼에 따르면, 돌봄을 밀어낸 의료는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더 많은 환자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교육 역시 돌봄을 밀어낸다면 똑같은 역설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이젠 교사들도 적극 돌봄 교실 운영에 참여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또는 교육계의 권위나 권한을 다른 누군가에게 나눠야 한다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다만, 교육으로부터 돌봄을 밀어낼 때 교사의 업무 환경은 나아질지 몰라도, 학교를 찾는 학생들과 그 학부모의 어려움은 더 커질 수 있음을 호소하는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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