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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조금씩 전모 드러내는 국방과학연구소장 '낙하산'의 실체

[취재파일] 조금씩 전모 드러내는 국방과학연구소장 '낙하산'의 실체
어제(9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렸습니다. 오후 2시 시작해 예산 심사와 법률 개정안 검토를 하는 일정이어서 현안을 논의할 여유는 없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여야 의원이 돌아가며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국방과학연구소(ADD)의 소장 낙하산 내정설에 대해 질의를 했습니다. 진상이 많이 드러났습니다.

ADD 차기 소장 노리는 강은호 전 방사청 차장

강은호 전 방사청 차장은 ADD 소장을 노리고 지난달 29일 퇴직한 것으로 국방위에서 확인됐습니다. 청와대 안보실 관계자뿐 아니라 왕정홍 방사청장도 이를 알고 있었습니다. 방산업계를 벌벌 떨게 하는 방사청 2인자의 자리를 1년도 안 돼 던진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2일 ADD는 소장 응시자격에 '방사청 고위공무원급'을 추가해 공고했습니다.

국방부는 우연의 일치라고 우기고 있지만, 알만한 이들은 모두 강 전 차장을 ADD 소장으로 옹립하기 위한 시나리오가 가동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무늬만 공개모집이고 실상은 내정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ADD는 정치로 낙하산 소장을 앉힐 기관이 아닙니다. ADD는 자주국방의 메카로 모든 국산무기가 개발되는 곳입니다. 국방과학의 꽃입니다. 윗선과 입 맞춘 행정관료의 경력관리용으로 쓰고 버릴 자리가 절대 아닙니다.

어제 국방위 전체회의에서 야당 의원은 강 전 차장의 ADD 소장 내정을 맹공하면서 그의 ADD 관리감독 부실 책임을 확인했습니다. 여당 의원은 옹호하려고 노력했지만 얕은 논리의 밑천만 들통났습니다.

국회 국방위 회의에서 질의하는 국민의힘 강대식 의원 (사진=연합뉴스)

● 그의 ADD행, 왕정홍 청장도 알았다

국민의힘 강대식 의원이 "강 전 차장이 의원면직 신청한 사유를 알고 있나"라고 왕정홍 청장에게 묻자, 왕 청장은 "아마 ADD 소장 응모할 생각을 가지고 면직한 걸로 알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강 전 차장이 사퇴하기 전에 왕정홍 방사청장도 그의 ADD행을 알고 있었습니다. 청와대 안보실 핵심 관계자도 강 전 차장의 다음 행선지를 ADD로 찍었습니다.

사퇴 압박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강 전 차장은 10월 29일 목요일 퇴직했고, ADD 소장을 꿈꿨습니다. 청와대도 방사청도 그의 꿈을 알았습니다. 그 다음 주 월요일인 11월 2일 ADD 소장 공개모집 공고가 떴습니다. 응시자격에 예전에는 없던 '방사청 고위공무원급'이 돌연 추가됐습니다.

짬짜미, 낙하산 내정이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요. 그런데도 문홍식 국방부 부대변인은 지난 3일 정례브리핑에서 "어떤 특정인에게 자리를 주기 위해서 한 것 아니냐는 그런 질문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ADD 소장 응시자격에 '방사청 고위공무원급'이 추가된 것과, 강은호 전 방사청 차장이 퇴직하고 ADD 소장에 응모하는 것, 방사청과 청와대가 이러한 사정을 인지하고 있던 것은 모두 우연의 일치라는 뜻입니다. 공정하게 공개모집이 이뤄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ADD의 한 연구원은 "국방부는 하늘을 가릴 정도로 손바닥이 넓거나, 어떤 비판에도 꿈쩍 안 할 정도로 낯이 두껍거나 둘 중 하나 아니면 둘 다 일 것"이라고 촌평했습니다.

● ADD 관리감독 책임은 방사청 차장!

ADD에서 대규모 기밀 유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퇴직자들이 국방과학 기밀을 숨겨 ADD를 떠난 사건입니다. 현재도 경찰이 수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ADD는 방사청의 출연기관입니다. 방사청은 ADD를 관리 감독할 책임이 있습니다. 특히 ADD 기밀의 보호는 방사청의 감사관실과 국방기술보호국의 소관입니다.

강대식 의원이 "방사청이 자체적으로 2019년 보안실태조사 합동팀을 꾸려서 이미 (ADD) 기밀 유출 건을 인지했던 거 맞죠"라고 왕 청장에게 물었습니다. 왕 청장은 좀 뜬금없이 "감사관실하고, 보호 대상 기밀인지 아닌지 판정하는 업무 하는 게 국방기술 보호국인데 둘 다 차장 산하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질문과 동떨어진 대답이긴 했지만 왕 청장의 답변으로 강은호 전 차장이 ADD 기밀 유출의 관리감독 책임자인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방사청이 ADD 관리 감독을 제대로 했다면 ADD의 기밀 유출 사건은 이토록 크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강 전 차장은 제 소임을 다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강 전 차장의 ADD 소장 도전의 변이 'ADD 재구조화'로 알려졌습니다. ADD 관리감독 부실의 책임도 안 지면서 ADD를 개혁하겠다고 하니 ADD 연구원들은 당황스럽습니다. ADD의 한 고위 연구원은 "연구원들이 생각하는 ADD 소장의 자격 요건 중 첫째가 소장 자리를 다음을 위한 디딤돌로 여겨서는 안 되고, 인생의 마지막 봉사로 국가안보의 소명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둘째, 셋째 요건을 논하기 전에 강 전 차장은 첫째 자격 요건에서 탈락"이라고 말했습니다.

● ADD 소장으로 획득 전문가가 적임?

역시 여당이었습니다. 청와대와 정부가 하는 일은 불공정, 불평등, 부정의라도 옹호해야 하는가 봅니다.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어제 국방위에서 "ADD는 획득 전문기관인데 (강 전 차장의) 자격이 되는 것 같다"며 소장 응시 자격의 수정이 오히려 늦었다는 듯 방사청장을 타박했습니다.

무기체계의 획득에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해외 무기의 도입이고, 다른 하나는 독자개발입니다. 해외 무기의 도입은 방사청이 전담하고, 독자개발은 ADD의 몫입니다. 방사청은 ADD의 개발을 관리할 뿐입니다. 강 전 차장은 개발의 획득이 아니라 해외 무기 도입의 획득 전문가입니다. ADD의 독자개발은 행정관료가 아니라 과학자들의 영역입니다. DNA가 다릅니다.

바라건대, 강 전 차장은 ADD 소장 말고 방사청장을 노리시길 바랍니다. ADD 기밀 유출 사건의 책임은 안 지면서 ADD 소장 자리의 과일만 탐내면 공직자의 윤리와 배치됩니다. 행정가는 행정을, 과학자는 과학을 해야 합니다.

ADD 소장 자리는 ADD 사람들에게 맡기는 것이 순리입니다. 역대 정부들도 두루 그리했습니다. 공개모집의 허울을 드리운 채 그를 ADD 소장 자리에 낙하산으로 앉히려는 권력자들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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