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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무대책 정부·불 지른 여당…'총체적 난국' 부동산

[취재파일] 무대책 정부·불 지른 여당…'총체적 난국' 부동산
2010년 개봉한 <블라인드 사이드_The Blind side>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미국의 유명 여배우 샌드라 블록에게 오스카와 골든글러브 여우주연상이란 영예를 안겨준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의 첫 장면은 1985년 미국축구 경기에서 실제 일어났던 처참한 사고로 시작합니다.
 
당시 최고의 쿼터백으로 불리던 조 타이스먼이 공을 패스하려는 순간, 그의 '왼쪽 뒤'에서 매우 강한 태클이 들어갑니다. 당시 신인 수비수인 로렌스 테일러가 '쌕(Sack)'이라고 불리는 수비를 성공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 수비 한방에 타이스먼의 뼈는 산산조각 났고, 결국 그날이 선수로서 뛴 마지막 경기가 됐습니다.
 
여러분께서 타이스먼처럼, 오른손으로 공을 던진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러면 앞쪽부터 오른쪽 뒤까지는 시야가 충분히 확보됩니다. 반면, 왼쪽과 뒤통수 뒤 뒤편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의 시각이 미치지 못하는 사각(死角, Dead Space) 즉, '블라인드 사이드(Blind side)'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 실제 미식축구에서 쿼터백이 보지 못하는 사각을 '블라인드 사이드'라고도 하는데, 타이스먼 사고 이후 쿼터백의 이 '블라인드 사이드'를 방어하는 수비수의 연봉이 매우 높아졌습니다.)
뼈가 부서지는 중상을 입은 미국축구 쿼터백 타이스먼 ESPN 보도
1. 첫 번째 사각: 매매시장
 
사각(死角, Dead Space)을 미리 챙겨보려는 노력이 중요한 것은 비단 스포츠만은 아닙니다. 전 국민의 실생활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정부 정책은 그 중요도가 훨씬 더 높아질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그동안 부동산 정책을 이끌어온 정부 여당의 사각은 매우 크고 또 짙었습니다. 볼 수 있는 것만 봤고, 보이지 않는 부분은 과감히 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대가는 참혹했습니다.
 
지난 일 년 동안 정부가 펼쳐온 부동산 정책을 시간순으로 간단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서울 강남 집값을 잡기 위해 대출 규제·세 부담 강화 → '마·용·성', '노·도·강' 등 강북지역 집값 상승 → 강북 규제 확대 → 서울 인접 수도권 '수·용·성(수원·용인·성남)' 집값 상승 → '수·용·성' 다시 규제 확대 → 수도권 전체·세종 등 충청까지 '풍선효과' 확대 → 수도권 전체 규제 확대 → 유동자금 서울 재유입
 
간단하게 보면 <규제 → 풍선효과 → 규제 → 풍선효과 확대 → 규제 → 역풍선효과> 이런 단편적인 악순환이 반복된 것입니다. 좋게 말하면 증상에 맞춰 처방하는 대증요법, 나쁘게 말하면 두더지게임식 규제가 이어진 결과입니다.
 
눈에 보이는 대상 즉, 고가·다주택자를 잡겠다고 덤비면서 정작 그 뒤에 가려진 사각을 놓친 것은 아닐까요? 고가·다주택자에 대한 정책을 펴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충분히 고려했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2. 두 번째 사각: 전세시장
 
고가주택·다주택자가 1차 목표였다면, 2차 목표는 서민 주거안정(전세대책)이었습니다. 국민 대다수는 둘 다 마땅히 추진해야 할 정책이라고 믿습니다. 관건은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방법론'입니다. 정부 여당은 안타깝게도 앞선 첫 번째 실패에서 교훈을 충분히 배우지 못했습니다. 서민 주거안정(전세대책)을 이루려고 노력하면서, 또다시 그 뒤에 있는 '사각'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입니다.
 
수도권으로 갔던 유동자금이 다시 서울로 돌아와 외곽 중저가 아파트 시장을 자극하던 지난 7월, 정부 여당은 주택임대차보호법을 '과감하게' 시행했습니다. 충분한 시뮬레이션이 없었다는 비판이 이어졌지만, 180석 거대 여당은 용감했고 또 자신감에 넘쳤습니다.
 
그로부터 석 달, 전세시장에는 메가톤급의 엄청난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월세나 반전세를 선호하는 집주인이 늘며 매물이 대폭 줄었고, 대출 규제 강화와 재건축 실거주 의무 규정, 분양가 상한제 등 정부가 앞서 폈던 정책은 선호 지역의 전셋값을 올리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했습니다. 씨가 마른 매물에 서민들은 "전세 찾아 삼만리"를 외쳤습니다.
 
공급은 없는데 찾는 사람은 많은 상황에서 전셋값은 당연히 폭등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동산114가 조사한 지난주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전주 대비 0.19% 상승해, 2015년 11월 첫째 주 이후 가장 큰 상승폭을 기록했습니다. 경기·인천과 신도시 전셋값도 각각 0.13%와 0.12%씩 상승했습니다. 전세시장 불안이 서울을 넘어 수도권 전역으로 확대하고 있는 양상입니다.
 
전세 공급과 수요의 불균형도 역대 최악입니다. 한국감정원이 발표한 서울 아파트 전세수급지수는 130.1을 기록했는데, 이는 관련 통계를 작성한 2012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입니다. 과거 '전세 대란' 시기로 일컬어지던 2013년과 2015년에도 전세수급지수는 최고 120.9, 125.2를 넘지 않았습니다.

결론적으로 통계는 단호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지금이 역대 '최악의 전세대란'이다!"라고요. 세입자에게 이사 비용으로 뒷돈을 준 '마포구 전세 난민' 홍남기 씨는 이런 희극 같은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3. 세 번째 사각: 전셋값↑ → 매맷값↑
 
부동산 시장은 수많은 요소가 얽히고설킨 복잡계(complex systems)입니다. 특정 사건은 반드시 다른 요인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치솟은 전셋값이 영향을 끼치는 곳, 그곳은 바로 다시 집값이었습니다. 전셋값 상승이 중저가 아파트의 집값 상승세를 부추기는 것입니다. 이른바 전세와 매매 사이에 악의 순환 고리가 이뤄지는 것입니다.
 
안정세를 보이던 매매시장이 불안해진 것은 임대차3법 시행 이후 전세난이 확산하면서부터입니다.
실제로 지난주 서울 아파트 매맷값은 0.06% 상승했는데 강동(0.21%)과 강서(0.13%), 관악(0.13%), 구로(0.13%), 도봉(0.12%), 중구(0.10%), 노원(0.09%) 등 외곽 중저가 아파트의 상승세가 두드러졌습니다.
 
수도권에서는 비규제 지역인 김포·파주를 중심으로 집값 상승세가 가파르게 나타납니다. 김포·고양·파주 등이 속한 경의권의 매매수급지수는 전주(113.6)보다 12.1포인트 오른 125.7을 기록했습니다. 역대 최대치입니다. 김포시는 같은 기간 무려 1.94% 상승하며 역시 역대 최고 상승률을 갈아치웠습니다.
 
이런 현상이 의미하는 것은 단순명료합니다. "2년마다 급등하는 전세보증금을 걱정하느니, 이럴 거면 차라리 조금 더 보태서 중저가 아파트를 사버리겠다!"라는 것입니다. 높아진 전셋값이 중저가 시장을 중심으로 매맷값을 밀어 올리는 것입니다. 서울과 수도권에 이어 부산·대전·대구 등 광역시에서도 집값 상승세가 포착되는 점은 오늘보다 내일이 더 어둡고 우울할 것이란 사실을 말해줍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한 여당 의원은 임차인의 거주 기간을 현행 4년에서 6년으로 확대하는 내용의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바로 발의했습니다.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교육 기간이 각각 6년인 점을 고려해 계약갱신 기간 연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전세 매물은 더 줄어들고, 전셋값은 더 오르며, 분쟁은 더 잦아질 거라고 우려합니다. 설사 취지가 아무리 좋고 바람직하다고 할지라도, 미처 보지 못한 사각은 없는지 고민해보고, 그에 대한 반론을 잘 듣고, 실질적인 시뮬레이션도 충분히 거쳤는지 국민은 안타깝게 묻고 있습니다. 그런 과정도 없이 바로 발의한다는 것은 정치인으로서 무책임한 것을 넘어 정책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이 있는지조차 의심하게 합니다.
 
4. 네 번째 사각: 월세시장
 
앞서 말씀드린 대로, 부동산 시장은 복잡계입니다. 모든 것이 서로 유기적으로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앞으로 불거질 문제를 예측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쏘아 올린 거대한 '사각지대'는 월세시장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저의 개인적인 바람을 담아 '전망'이라고 썼지만, 냉정하게 보자면 이미 현실이 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2일 감정원이 발표한 지난달 주택가격동향을 보면, 전국 아파트 월세가격은 0.03% 상승했습니다. 지난 2015년 6월 통계가 처음으로 작성된 후 역대 최고 상승률입니다. 줄곧 마이너스를 기록하던 전국 아파트 월세 변동률은 임대차법 시행 한 달 뒤인 8월 하락을 멈췄습니다. 그리고 9월 0.02% 상승하더니, 지난달에는 오름폭이 더 커진 것입니다. 
 
월세뿐 아니라 반(준)월세도 역대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습니다. 지난달 서울 아파트 반월세 가격은 0.07% 올랐는데, 전달 0.01%보다 7배 높은 상승률입니다. 전국 아파트의 반월세 가격 상승률도 0.12%를 기록했습니다. 마찬가지로 통계 작성 이후 역대 최고 수치입니다. 이창무 한양대 교수(도시·부동산 경제학연구실)는 "최근 발생하고 있는 월세의 상승은 이제 시작이다. 향후 심각한 월세시장의 상승 압력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전조에 불과한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라고 우려했습니다.
 
"대책이 없다"
 
이쯤 되면, 부연 설명은 필요 없어 보입니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부동산 정책은 깔끔하게, 오해할 여지 없이, 교과서적으로, 명쾌하게 '실패'했습니다. '23타수 무안타', '23전 23패'란 조롱 섞인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 모두 "죄송하다"라며 고개를 숙일뿐입니다.
 
그럼에도, 취재 과정에서 만난 국민은 마음 한편에 기대감을 담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까지 만들고 설마 아무런 대책이 없지는 않을 거야. 문재인 대통령도 약속하셨잖아. '기필코 전세 시장을 안정시키겠다'라고. 조만간 좋은 대책이 나올 거야!"
 
이와 같은 기대를 산산조각 낸 건 다름 아니라 우리나라 경제의 최고 컨트롤 타워인 홍남기 경제부총리였습니다. 국회에서 의원들에게 관련 질문을 받고 "특출난 대책이 있으면 벌써 정부가 다 했겠죠."라고 답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대책이 없다는 것을 당당하게 고백(?)했습니다. '전세 대책이 언제쯤 나오느냐?'는 질문에는 '날짜를 지정하기는 어렵다'고 답했습니다. 국민의 기대를 분노로 바꾸는 대답이었습니다.

 
*SBS 보이스(VOICE)로 들어보세요.
피터 교수와 제자 헐이 공저한 피터의 법칙

 
"무능함이 입증될 때까지 올라간다"
 
이등병에서 출발해 4성 장군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 이라크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미국 정치권으로부터 신임을 받았던 토미 프랭크스 중부군 사령관은 육군참모총장직 제의를 고사했습니다. 그리고 미련 없이 36년 군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때가 되면 군복을 벗겠다"라고 아내에게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합참의장으로 1991년 걸프전을 성공적으로 이끈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도 한때 최적의 대통령감으로 지목됐습니다. 하지만, 끝내 대통령 후보직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국무장관 퇴임식에서는 "더는 군인이 아니니 보병 부리듯 직원들을 대하지 말라"는 부인의 말을 소개해 직원들에게서 더 큰 박수를 받기도 했습니다.
 
"위계질서가 있는 조직에서는 자신의 무능함이 입증되는 자리까지 올라가는 경향이 있다." 1969년 미국 컬럼비아대 로렌스 피터 교수가 내놓은 주장입니다. 유능한 사람을 승진시키다 보면 그 일을 감당할 수 없는 위치에까지 승진하게 되고, 결국은 무능한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른바 '피터의 법칙'입니다. 앞서 언급한 프랭크스 전 사령관과 파월 전 장관은 피터 교수의 조언을 스스로 충분히 인지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했던 것은 아닐까요?
 
앞서 어느 강연에서 유시민 작가가 했던 '피터 이론'에 대한 설명으로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피터의 법칙'을 뒤집어서 보면, '피터의 제2법칙'이 나온다. 위계질서가 있는 조직에는 아직도 자신의 무능함이 증명되는 위치까지 오르지 못한, 무수히 많은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리더에게 있어서 인사는 만사다. 결국, 자신의 무능함이 증명될 그 높은 위치까지 오르지 못한 사람을 잘 찾아서 뽑아 올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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