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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기후변화 한일전, 누가 더 잘하고 있나

김지석│그린피스 서울사무소 기후에너지 스페셜리스트

지난 9월, 우리나라의 최대 수출 시장이자 이웃나라인 중국이 2060년에 '온실가스 제로'를 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또한 전기, 전자, 조선, 자동차 등 여러 산업 분야에서 경쟁 상대인 일본 또한 지난달 26일, 2050년까지 '온실가스 제로'를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질세라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28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2050년 '온실가스 배출량 넷제로' 달성을 목표로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렇다, 기후변화 한일전이 공식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휴대폰, 반도체, 텔레비전, 축구에서는 우리나라가 일본을 이기고 있다. 하지만 온실가스 감축에서는 과연 우리가 일본을 이길 수 있을까? 현재 전력 생산과 자동차 부문에서 어떤 상황인지 한번 짚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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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전력 전력생산 에너지 (사진=픽사베이)

# 전력 생산

올림픽에서 육상이 메달밭이라면 온실가스 감축에서는 전력 생산 부문이 메달밭이다. 전력 생산이 중요한 이유는 우선 우리가 주로 사용하는 화력발전소에서 워낙 많은 온실가스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전기차를 충전하거나 수소를 만들 때도 앞으로 많은 전기가 필요하다. 게다가 태양광, 풍력, 수력 등 온실가스 배출 없이 만들어 낸 전기를 사용하지 않으면 물건을 사줄 수 없다는 해외 기업들도 늘어나고 있다. 따라서 전력 생산 부문 온실가스 감축은 아주 아주 중요하다.

여러 전문가들, 심지어 거대 석유회사 BP조차도 2050년까지 태양광, 풍력, 수력 등 재생 에너지를 이용해 전기의 90% 이상이 생산될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전력 생산은 결국 재생 에너지 확대에 달렸다.

현재 한국과 일본은 재생 에너지 확대에 있어 어디까지 진도가 나갔을까? 일본의 경우 2019년에 전체 전력 생산 중 재생 에너지 비율 18.5%를 달성했다. 아쉽게도 한국은 약 4.8%에 불과하다. 2013년도에는 한국이 1%, 일본이 4.4%로 도토리 키재기 수준이었고, 격차는 3% 정도에 불과했다. 그런데 지금은 격차가 14% 정도로 크게 벌어졌다.

벌어진 격차를 보고 있자니 뭔가 속은 느낌이다. 일본 정부의 재생 에너지 목표는 2030년 22~24%로 문재인 정부 출범 때 세운 2030년 20%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 일본은 이미 18.5%로 2030년 목표에 거의 근접했다. 한국은 4.8%로 갈 길이 아주 멀다. 비슷한 목표를 세우고 레이스를 하는 줄 알았는데 일본은 멀찍이 앞서가고 있다.

더 속상한 건 한국에서는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소 건설에 반대가 심해 건설이 어려운 반면, LS산전, 한화큐셀 등 한국 기업들이 일본에 태양광 발전소를 많이 설치했다는 점이다. 실력 있는 국가대표 선수가 자국에서 구박받고 외국 국가대표 선수가 된 형국이다.

한국이 재생 에너지 확대에서 일본을 따라잡고 역전할 수 있을까? 일사량 등 자연 환경에서는 일본과 한국이 아주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산업계의 리더십과 여론면에서는 한국이 상당히 불리한 상황이다.

일본의 경우 2018년 여름에 10여 개의 기업들이 재생 에너지 100% 사용을 목표로 하는 RE100에 가입하고 재생 에너지 확대에 노력했다. 2019년 5월에는 일본의 간판 기업인 소니를 포함해 20여 개 회사가 2030년 재생 에너지 목표가 너무 낮으니 50%로 상향해야 한다고 일본 정부에 공식 건의했다. 최근에는 보수 경제단체인 경단련이 일본 정부에 공식적으로 2050년 온실가스 제로 달성을 목표로 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전경련이나 대한상공회의소가 온실가스 감축 얘기가 나오면 속도 조절을 얘기하는 것과 대비된다.

한국에서도 SK가 계열사 8곳을 RE100에 가입시키며 추격을 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한국 정부에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20% 목표는 너무 약하니 더 강한 목표를 해야 한다고 건의한 기업은 없다. 여론도 아직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다. 어찌 된 이유에서인지 한국 언론에 비친 태양광 발전소는 장마가 오면 무너지고 주민들 사이에 분쟁을 만드는 시설로만 주로 보여지고 있다. 풍력 발전소는 반대가 더 심해서 그야말로 맥을 못 추고 있다.

태양광의 경우 현재 일본이 매년 10GW 규모로 설치를 할 때 한국은 3GW 규모 정도를 설치하고 있다. 전문가 분석에 의하면 2050년까지 한국에 총 200GW 정도의 태양광 발전소와 100GW의 풍력발전소가 설치되어야 한다. 바꿔 말하면 매년 6.6GW 규모의 태양광 발전소가 설치되어야 한다. 설치할 수 있는 실력과 땅은 있다. 다만 장애물과 오해가 너무 많은 게 걱정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 세계 태양광 패널 제조사 10위권에 들어가는 한화큐셀이 만든 태양광 패널은 해외에서만 명성을 떨치는 중이다.

정리하자면 전력 생산 부문 온실가스 감축의 핵심인 재생 에너지 확대에서 한국 4.8% 대 일본 18.5% 로 일본이 한참 앞서 나가고 있다. 팀 코리아의 분발이 절실한 상황이다.

전기차 (사진=픽사베이)

# 자동차

자동차 부문 온실가스 감축 종목은 한때 좋은 엔진과 변속기, 경량화를 통해 연비를 높이는 게 승리의 지름길이었다. 물론 판매에 있어서는 품질이나 디자인, 가격도 물론 중요한 요소지만 온실가스 감축에 있어서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아무리 차가 예쁘게 생겨도 이산화탄소(CO2)가 많이 나오면 벌금각이다. (물론 디자인이나 품질 안 챙기면 차가 안 팔려서 회사가 망한다.)

유럽은 이제 CO2를 많이 배출하는 차를 팔면 한대당 수백만 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규제를 도입했는데 일본은 이와 달리 기업의 자율 목표 달성에 의존하는 방식을 오랫동안 고수했다. 이런 방식은 나름 상당한 성공을 거뒀다. 도요타 등 간판 기업들이 꾸준히 연비를 개선했고 기존 차 대비 효율을 월등히 높인 하이브리드 자동차 판매를 전체 시장의 30% 수준까지 대중화시키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한국과는 달리 아주 작은 소형차가 많이 팔리는 것도 자동차 CO2 감축에 있어서 도움이 되었다. 일본은 실제로 자동차 온실가스 감축에 있어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문제는 일본에서 전기차 판매가 거의 늘어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분명 일반 자동차 대비 연비가 월등히 좋다. 그래서 CO2가 훨씬 덜 나온다. 하지만 덜 나올 뿐이지 나오는 양은 여전히 상당하다. 결국 기름을 태워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넷제로를 달성하려면 하이브리드 자동차로는 안 된다. 전기차로 가야 한다.

한때 일본 업체인 닛산이 '리프'라는 전기차를 2011년도에 출시하며 전 세계 전기차 시장을 주도했었다. 하지만 일본 내에서 판매량은 크게 늘지 않고 2~3만 대 수준에 그치고 있다. 게다가 1등 기업인 도요타는 전기차가 극소형차에나 어울리는 기술이라며 폄하하고 차세대 기술로 수소차를 출시했는데 일본 내 판매는 몇 년째 연간 2~3천 대 수준에 그치고 있다. 수소차를 들고 나왔지만 수소차를 핑계로 전기차 개발을 미룬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미 2030년까지 자동차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강화했는데 이를 위해서는 전기차 판매 비중을 30%까지 높여야 한다. 도요타, 혼다 같은 간판 자동차 기업들이 엔진이 주동력원인 하이브리드 기술과 수소차에 대한 막연한 집착을 버리고 전기차로 넘어갈 수 있을지가 자동차 부문 온실가스 넷제로 달성 여부를 가르는 관건이다. 여기에 더해 일본 정부가 전기차 판매 비중을 2030년에 30%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높일 수 있는지도 중요하다.

한국은 어떤가? 한국은 한동안 디젤차 우대 정책을 편 결과 디젤 세단, SUV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돌아보면 무슨 짓을 한 건가 싶은데 당시에는 유럽도 그렇게 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소 이해해 줄 여지는 있다. 하지만 디젤차는 유해가스를 제대로 줄이지 못했고 요목조목 따져보면 CO2 감축 효과도 아주 크지 않다. 결국 디젤게이트가 터지며 디젤차의 역할은 급격히 축소되고 빈자리를 하이브리드와 전기차가 일부 메우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 자동차 판매의 70%가량을 차지하는 현대·기아는 일본의 간판 기업인 도요타·혼다에 비해서 전기차 출시에 상대적으로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현대차는 도요타와 마찬가지로 수소차에 대해서 상당히 강한 집착을 보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에 2018년 말에 출시한 넥쏘 수소차가 국내 판매 1만 대를 달성했지만 이는 1대당 4천만 원에 달하는 강력한 보조금의 영향이 크다. 보조금이 없는 해외 시장의 경우 캘리포니아에서 연간 기준 수백 대가 어렵사리 팔린 정도다.

믿기 어렵겠지만 한때 현대차와 수소차 개발에 협력하던 폭스바겐(아우디)은 면밀한 연구를 거친 끝에 수소차는 에너지효율이 전기차의 절반 수준이기 때문에 온실가스 감축 기술로 적합치 않다며 공개적으로 개발 중단을 선언하고 전기차 개발에 올인하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2021년부터 전기차 전용 모델을 출시하고 2025년까지 전 세계 기준 연간 판매량을 100만 대 수준까지 늘리겠다는 계획인데 2050년 넷제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국내 판매 자동차 전량을 2030년 정도까지 100% 수준으로 늘려야 가능하다. 자동차는 한번 만들어지면 최대 20년 정도 사용되기 때문에 2050년에 온실가스 배출이 제로가 되려면 2030년 이후로는 엔진 달린 자동차가 팔리면 곤란하다. 최근 현대·기아차는 문재인 대통령의 온실가스 넷제로 선언에 맞춰 달성 방안을 준비한다고 하는데 제대로 할지 좀 염려스럽다. 환경부도 유럽 수준의 규제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넷제로 선언에 맞춰 좀 더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 기후변화, 결국은 모두의 경기

미국 선거 개표 상황을 보면서 글을 마무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으로 미국이 파리기후변화협약을 공식 탈퇴하는 날에 재가입하겠다는 바이든 후보의 우위가 확실한 상황이다. 바이든 후보가 집권하면 태양광, 풍력 중심의 에너지 전환, 전기차 중심의 자동차 산업 전환은 더 빨라질 것이다.

경쟁 구도로 글을 풀어봤지만 결국 한국, 미국, 중국, 일본을 포함한 다른 모든 국가들이 이런 전환에 성공해야 끔찍한 기후 위기를 막을 수 있고 산업과 경제도 살릴 수 있다. 미국 정권 교체로 시작될 기후변화 올림픽에서 팀 코리아가 멋진 경쟁을 펼치고 좋은 성적을 얻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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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인잇 #김지석 #생존의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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