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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직장 동료, 우린 친구가 될 수 있을까

김창규│입사 21년 차 직장인. 실제 경험을 녹여낸 회사 보직자 애환을 연재 중

[인-잇] 직장 동료, 우린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모르는 전화번호가 액정에 뜨면서 핸드폰 벨이 울린다. 요즘 일반전화를 가장한 마케팅 전화가 많이 와서 받을까 말까 주저하다가 받았다. 조심스럽게 "여보세요" 하니 누군지 알지 못하겠는데 내 이름을 다정하게 부르면서 "나야 나, 재윤이" 그런다. 나는 "재윤"이라는 이름에 깜짝 놀라면서 "재윤이, 정말 너 재윤이야!"라고 하며 마치 이산가족을 다시 찾은 것처럼 환호성을 지르면서 반가워했다.

이 친구, 군대 동기이다. 장교 임관 전 후보생 훈련을 받는 몇 개월 동안 나와 같은 내무반을 쓰면서 동고동락을 같이한 여러 전우 중 베스트였다. 군 제대 후 사회에 나와서도 가끔 연락을 했던 친구였지만 삶이 바빠서인지 서로 연락을 못한 지 벌써 10년이 넘은 것 같다. 집은 아직 부산인데 사업차 그리고 벌써 대학생이 된 아들을 보러 서울에 왔다가 생각나서 내게 전화했다는 것. 난 이 친구의 전화번호도 잃어버렸기에 그가 아직도 내 전화번호를 갖고 있다는 게 고맙고 미안했다. 어쨌든 우리는 짧은 통화를 하면서 소원했던 긴 시간의 어색함을 한순간에 떨쳐버리며 옛 친구의 푸근함을 느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아쉬운 마음에 그의 전화번호를 소중한 보물 다루듯 핸드폰에 저장했다.

이때 직원들이 뭔가 보고를 하기 위해 나에게 왔다. 흥분을 가라앉힌 뒤 정신을 차리고 보고를 받기 시작했다. 중요한 내용이었다. 이것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던 중 또 핸드폰이 울렸다. 지금 이 일을 담당하고 있는 A다. 역시 반가운 사람이다. 그는 최근까지도 나와 같은 사업부에서 근무하면서 서로 '친구'같이 지냈는데 얼마 전 관리 부서로 영전을 했다. 나는 예의를 갖추어 전화를 받기는 했지만 그동안의 관계에서 형성된 친밀함 때문에 매우 편하게 응대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렇게 친했던 그분과 대화를 하면 할수록 내 기분이 점점 상해 갔다. 점차 내 말투도 사무적으로 바뀌어 갔다. 대화 막판에는 마치 처음 본 윗사람에게 일방적으로 지시 받고 영혼 없이 "알겠다"라고 하는 그런 통화가 되어버렸다. 직원들이 앞에 있어서 싫은 내색을 하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매우 불편했다. 그래서 그런지 통화가 끝나자마자 나는 방금 전 치열하게 고민했던 그와 관련된 이 일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 싫어져서 "알아서 하라"고 하며 직원들을 내보냈다.

그들이 나가자 참았던 부아가 서서히 올라왔다. '뭐야? 이 사람. 왜 이러는 거야? 원래 이런 사람이었나? 나한테 어떻게 이래' 이렇게 분통을 터트리며 얼마 전까지만 해도 퇴근 후 웃고 떠들며 회포를 풀었던 추억, 어려운 과제를 함께 헤쳐가며 서로 응원해 줬던 좋은 기억들이 이제는 한없이 옛날 일로만 여겨졌다. 마음이 비수에 찔린 것 같이 아팠다.

'직장에서의 친밀한 관계는 역시 신기루인가? 관계가 변화하면 약한 충격에도 바로 깨지는 항아리 같군.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속상하네.' 반면 이런 마음도 들었다. '관리 부서는 그 업무 속성상 인간적인 관계를 중요시하면 오해를 많이 받을 수 있는 곳이지. 특히나 A 자리가 그렇긴 해. 또 최상위 부서의 장으로 전체를 통제, 조율을 해야 하니 내가 종전처럼 자기를 편하게 대하는 것이 불편할 수도 있겠네. 그럼 내 잘못인가?'

두 가지 상반된 마음이 서로 부딪쳤지만 뭐가 옳든 어쨌든 기분은 좋지 않았다. 마치 내가 능력이 부족해서, 급이 떨어져서 이제는 A와 다시는 과거 좋았던 관계를 회복하지 못할 것 같아서다. 열등감을 동반한 수치감이 느껴졌다.

속상함을 달래고 있자니 직장 내 친구라고 생각되는 몇몇이 떠올랐다. '이 친구들은 정말 친구들 맞나?' 이런 의구심이 들었지만 이내 이것은 쓸데없는 질문임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직장에서 만난 사람은 원래 동료이지 친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동료는 친구와 비슷한 뜻이지만, 친구가 사적으로 친한 사람을 뜻한다면 동료는 같은 직장 혹은 한 팀에 소속되어 함께 일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엄연히 다르다. 좀 더 부연하면 동료는 '벗'의 개념이 들어가 있는 친구와는 달리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같이 행동하는 인물이라는 뜻이 더 강하다.

그럼에도 내가 A를, 또 정감을 느끼는 다른 직장 내 동료를 친구라고 여긴 것은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한 조직에서 협력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밀감이 생겨서였다. 하지만 착각은 금물이다. 이런 친밀감은 분명 친구에게서 느낄 수 있는 것이지만 지속가능성에 있어서 확연한 차이가 난다. 친구는 무슨 일이 있든 간에 어쨌든 친밀감을 유지하려고 하나 동료는 공동의 목표가 사라지면, 경쟁관계에 서게 되면, 책임의 문제가 제기되면, 지위 관계가 틀려지면,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업무를 서로 하게 되면 좋았던 관계가 바로 틀어지거나 냉랭하게 된다.

사실 이게 맞는 거다. 직장생활이란 성공, 생존을 위해 일을 하는 곳이지 사적 친분을 쌓는 곳은 아니니까 말이다. 그러니 자리가 바뀌어서 새로운 관계 형성을 요구하는 A의 태도변화에, 믿었던 선배 혹은 신임했던 후배가 내 요구를 기대한 만큼 해 주지 않을 때에, 회의석상에서 친한 동기가 내 의견을 공개적으로 비난할 때 "어떻게 저 사람이 나한테 이럴 수가?"라며 서운해할 필요가 없다. 각자 자기 위치에서 조직의 목표(혹은 자신의 목표)에 따라 일을 하는 것이니까.

그럼에도 가끔 우리들은 이 궤도에서 이탈을 해 속앓이를 하곤 한다. 왜? 인간이기에 친구를 소원하는 마음이 항상 내재되어 있어서 그런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글과 상반되는 주장이기도 한데 직장생활에서 친구를 얻겠다는 생각을 아예 망상이라고 단정 짓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가능성은 적지만 그것을 기대하며 마음의 문을 살짝이라도 열어놓자.

그러면 가끔 마음의 생채기가 날 수는 있겠지만 작금의 삭막한 인간관계가 더 삭막해지지 않고 혹시나 재수가 좋으면 평생지기 3명의 친구 중 1명은 직장 동료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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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인잇 #김창규 #결국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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