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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라 · 자식 빼고 다 바꿔"…일류 삼성 키운 경영철학

"마누라 · 자식 빼고 다 바꿔"…일류 삼성 키운 경영철학

이건희 평전, '삼성'…추격자에서 선도자로

유영규 기자 ykyou@sbs.co.kr

작성 2020.10.25 12:19 수정 2020.10.25 15:35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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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25일) 별세한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취임한 1987년 당시 삼성은 국내에선 최고 기업이라는 평가가 따랐지만 세계무대에서 존재감은 미미했습니다.

당시 삼성은 일본의 소니 등을 벤치마킹하며 추격자로서 고군분투하는 후발 기업이었지만, 이제는 오히려 소니에서 '삼성으로부터 배우자'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고인이 회장 취임식에서 밝힌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라는 비전이 현실이 된 것입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모두 다 바꿔라"라는 말로 압축되는 1993년 이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은 그룹의 체질을 철저히 개선하지 않으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절박한 위기의식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삼성은 이런 위기의식을 바탕으로 한 혁신과 체질 개선에 성공해 소니, 애플 등 글로벌 경쟁사의 견제를 뚫고 세계 최대, 최고의 기업으로 우뚝 설 수 있었습니다.

삼성이 세계무대에서 기술과 품질을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반도체 사업이 성공하면서부터입니다.

1969년 1월 설립된 삼성전자는 TV와 냉장고 등 가전제품 사업으로 성장기반을 마련한 뒤 1974년 한국반도체를 인수하면서 반도체 사업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당시 삼성 계열사 이사였던 고인은 한국반도체가 부도 직전의 위기라는 소식을 듣고 개인재산을 털어 한국반도체를 인수했습니다.

이병철 선대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은 'TV도 제대로 못 만드는데 반도체가 가능하겠느냐'며 진출에 회의적이지만 이 회장은 첨단기술 산업에 진출해 성공하는 것이 삼성의 살길이라고 주장하며 뜻을 관철했습니다.

당시 '1차 오일쇼크' 여파로 페어차일드, 인텔, 내쇼널 등 세계적 업체들이 구조조정과 감산에 나서는 상황에서 과감한 투자로 승부수를 띄운 것입니다.

삼성은 1975년 전자손목시계용 집적회로 칩을 개발한 데 이어 이듬해 국내 최초로 트랜지스터 생산에 성공했고, 당시 최첨단이던 3인치 웨이퍼(반도체 원판) 설비도 부천공장에 갖췄습니다.

1982년에는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 3번째로 64K D램을 개발하며 성과를 냈고 10년 뒤인 1992년에는 세계 최초로 64M D램 개발에 성공하며 반도체 시장의 강자로 우뚝 섰습니다.

삼성은 이후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단 한 번도 세계 1위 자리를 내주지 않고 성장을 계속했습니다.

D램뿐 아니라 스마트폰을 비롯한 각종 디지털 휴대용 기기에 많이 쓰이는 플래시메모리, 시스템메모리 분야에서도 투자와 개발을 계속하며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4M D램을 개발할 때 스택 방식을 결정한 것이나 16M D램 양산을 위해 세계 최초로 8인치 웨이퍼를 도입한 것은 모두 이건희 회장의 결단으로 알려졌습니다.

특히 8인치 웨이퍼를 도입할 당시 기술적인 어려움으로 어느 기업도 선뜻 이 방식을 선택하지 못했고 실패하면 1조 원 이상의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이 회장의 판단으로 8인치 도입이 진행됐습니다.

이건희 회장은 반도체 사업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휴대전화 시장 개척에 나섰습니다.

삼성이 휴대전화 시장에 뛰어든 것은 이 회장이 신경영을 선포할 무렵이었습니다.

이때만 해도 미국의 모토로라가 국내 휴대전화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삼성은 1994년 야심 차게 첫 휴대전화를 출시했지만, 불량률이 11.8%에 달해 시장의 외면을 받았습니다.

이에 이 회장은 1995년 구미사업장에 불량 휴대전화 15만 대를 모아 불에 태우는 충격적인 '화형식'을 진행하며 삼성에 근본적인 체질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고집스러운 품질 개선 노력이 결실을 거둬 그해 8월 애니콜은 모토로라를 제치고 51.5%의 점유율로 국내 정상을 차지했습니다.

한국은 당시 세계 시장 점유율 1위 모토로라가 유일하게 고지를 점령하지 못한 시장으로 남았습니다.

이런 제품력을 바탕으로 애니콜은 국내에서뿐 아니라 세계적인 인기를 끌며 뻗어 나갔습니다.

2000년대 초반까지 반도체가 삼성을 먹여 살렸다면 이제 휴대전화가 삼성의 성장을 이끄는 효자 상품 노릇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 회장은 특별검사 수사로 경영에서 물러났다가 2010년 일선으로 복귀했습니다.

이 시기는 세계 휴대전화 시장에서 애플이 내놓은 아이폰이 시장을 장악하며 스마트폰 열풍이 부는 때였습니다.

'애니콜 신화'에 젖어 있던 삼성은 당시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스마트폰 시장에 뒤늦게 대응하며 한때 심각한 위기를 맞았습니다.

휴대전화 시장의 절대강자로 각인됐던 노키아조차 이때부터 몰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애플을 추격하지 못하면 자칫 큰 격차가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삼성은 아이폰의 국내 시판을 앞둔 2009년 8월 기존의 스마트폰을 업그레이드한 '옴니아2'를 내놨습니다.

그러나 '모양만 스마트폰 아니냐'는 등의 차가운 반응과 마주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그룹의 역량을 총 결집한 '갤럭시S'를 선보이며 비로소 추격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당시 갤럭시S가 애플을 위협하기에는 부족했지만, 삼성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갤럭시탭, 갤럭시S2, 갤럭시S3를 잇달아 출시하며 애플을 빠르게 추격했습니다.

2011년 4월에 출시된 갤럭시S2는 성능이 개선된 하드웨어와 진일보한 소프트웨어를 탑재해 4천만 대 이상의 판매실적을 올렸습니다.

이때부터 삼성의 본격적인 스마트폰 질주가 시작됩니다.

갤럭시S2를 본격적으로 시장에 선보인 2011년 3분기 삼성은 마침내 애플을 제치고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1위를 탈환했습니다.

세계 최강 애플은 삼성의 갤럭시폰을 아이폰의 '카피캣'(복제품)이라고 공공연히 폄훼하고 경계했습니다.

이런 두 회사의 신경전은 수십 건의 특허 소송으로 번지기도 했습니다.

한편에서는 이런 기 싸움조차 세계 시장에서 삼성과 애플의 양강체제를 확인시켜주는 단면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세계 시장에서 삼성의 체급이 어떤지를 방증한다는 것입니다.

삼성전자의 스마트폰은 2012년부터 글로벌 시장에서 판매량 기준 1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밖에 회사의 사업 근간인 TV·가전 역시 10년 넘게 글로벌 1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2006년 선보인 보르도 액정표시장치(LCD) TV는 소니를 제치고 삼성전자가 세계 TV시장 1위를 달성하는 디딤돌이 됐습니다.

삼성전자 창립 40주년인 2009년에는 LCD에서 진화한 발광다이오드(LED) TV를 선보였고, 2017년에는 양자점발광다이오드(QLED) TV를 출시하며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QLED 8K TV'와 초대형 TV에 집중하고 있으며, 8K 이후에는 마이크로 LED로의 '투트랙' 전략을 세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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