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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내게 맞는 공부법, 머리 아닌 몸을 만들어라

[인-잇] 내게 맞는 공부법, 머리 아닌 몸을 만들어라

한동일 │ 동양인 최초 바티칸 변호사. 책 「한동일의 공부법」 저자

SBS 뉴스

작성 2020.10.23 11:08 수정 2020.10.23 15:00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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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학습 필기 노트 시험 (사진=픽사베이)
#1. 몸을 가두고 '그냥 하는 것'의 힘

참 희한하게도 공부를 위해 자신을 가두면 자유로울 때는 눈에 띄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늘 책상 위에 이것저것 늘어놓고 살아도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공부하려고 앉는 순간 갑자기 그게 거슬립니다. 누구나 한 번쯤 이런 경험을 해봤을 겁니다. 제 경우 텔레비전 보는 걸 좋아해서 "이것만 보고 공부해야지" 하면, 그다음에 더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시작되어 또 보게 되고 결국 하루가 다 가버리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요즘은 유혹이 더 많지요. 스마트폰에 재미있는 볼거리가 수없이 많습니다.

여기서 요즘 공부하는 사람들은 제가 공부할 때와는 다른 어려움이 있음을 느낍니다. 요즘은 물리적으로 몸을 가둘 수는 있어도 마음까지 가두기는 어려운 시대입니다.

어릴 때 공부하려고 책상에 앉으면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한 첫 행동이 영어 단어를 외우는 일이었습니다. 영어 단어를 외우는 건 두뇌를 예열하기에 좋은 방법이어서 어떤 공부를 하든 일단 영어 단어부터 외웠습니다. 단어와 숙어를 외우기 시작하면 머릿속의 잡다한 생각들이 서서히 사라지면서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규칙성을 '루틴'이라 한다면 저에겐 영어 단어를 외우는 일이 공부 시작의 루틴이었습니다.

하루 공부한 뒤 며칠씩 공부를 손에서 놓는다면 언제 어떻게 공부하는 게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지 알 수 없습니다. 무조건 규칙적으로 뭔가를 해봐야 자신의 공부법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 수 있고 몰랐던 습관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머리로 공부하려 들지 말고 몸이 공부할 수 있게끔 이끌어주어야 합니다.

일정한 시간에 책상에 앉고 계획표를 짜서 '몸이 그걸 기억할 수 있을 때까지' 차근차근 실천해야 합니다. 벼락치기가 가능할 때는 머리로 공부하는 거로 충분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바뀌어 몸으로 공부해야 합니다. 매일 습관으로 쌓인 공부가 그 사람의 미래가 됩니다.

습관을 만들기 위해선 자신의 생활 방식과 성향을 파악해야 합니다. 내가 어느 시간에 더 집중이 잘 되고 어느 시간에 집중이 안 되는지 알아봐야 합니다. 몰입을 방해하는 요인이 시간인지, 공간인지, 습관인지를 세심하게 살펴야 해요.

저는 오전 8시부터 오후 1시 사이에 머리가 맑고 몸 상태가 좋기 때문에 이 다섯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노력합니다. 저도 유학 가서 비로소 제 생활 방식과 공부 성향을 파악했습니다. 신체 리듬을 파악하니 공부 계획을 실천하기가 훨씬 수월했어요.

습관 때문이라면 더더욱 많은 생각을 하지 말고 정해진 루틴을 '그냥 하는데' 시간을 할애해야 합니다. 그럴 때는 공부의 질을 생각하지 말고 정해진 양을 목표로 삼는 게 좋습니다. 매일 책을 몇 쪽부터 몇 쪽까지 읽기로 정하고 그냥 읽기만 하는 것으로 시작해도 괜찮습니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같은 구간을 매일 반복적으로 읽어보세요. 속도가 빨라질 거고, 어느 순간 이해하게 될 겁니다. 그러면 진도를 나가게 되고 다른 책도 볼 수 있게 되죠.

몸은 서서히 익숙해집니다. 그동안 불규칙하게 되는 대로 시간을 끌어 모아 공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 포기했다면, 질은 떨어져도 일단 책상에 앉아 규칙적인 공부 루틴을 의식하며 매일매일 그냥 해나가다 보면 어떤 리듬이나 자기만의 호흡이 생길 겁니다.

이후 좀 더 수준 높은 공부를 시작하면 공부하는 몸이 되어 간다는 걸 스스로 느낄 수 있습니다. 세상은 어쩌면 매일의 뻔한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뉠지도 모릅니다. 그 극명한 차이는 나이가 들수록 더 크게 다가옵니다. 당신 앞에 주어진 뻔한 이야기와 뻔하게 주어진 일은 무엇입니까?
 
*SBS 보이스(VOICE)로 들어보세요.
머리로 하려 하지 말고 몸이 공부할 수 있게끔 이끌어주어야 합니다.
#2. 깊이는 타인이 주지 않는다

지금 우리는 체벌이 반교육적이라는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 학교에서 과거와 같은 체벌은 상상할 수 없게 됐습니다. 학생들은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게 됐고 선생님들은 잘 받아줍니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 교육이 과거보다 민주적으로 변신했지만 정작 학생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세상은 빠른 속도로 변하고, 학생들은 입시와 취업을 위한 공부만으로도 벅찬 상황입니다. 생각할 시간이 없고 정답을 찾기 바쁩니다. 학원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정답을 찾는 걸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정말 생각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걸까요? 오늘날 많은 학생이 유튜브를 즐겨봅니다. 어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책 내용을 요약해주거나 인문학적 지식을 전해주는 콘텐츠를 보는 사람도 꽤 많을 겁니다. 이런 콘텐츠를 보면 교양이 쌓일 테니 안 보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나쁜 선택은 아닙니다만 깊이가 없습니다. 깊이는 타인이 주는 것이 아니라 치열하게 사유하여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겁니다.

벼락치기 공부나 단순한 지식의 습득만으로도 어떤 기준선이 있는 시험을 통과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깊은 사고를 통한 직관과 통찰로 진정한 학문적 진보를 이루거나, 우리 앞에 놓인 수많은 문제를 좀 더 나은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저력을 기대하긴 어렵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왜 이처럼 선택하는 일에 어려움을 느낄까요? 왜 자신이 진로를 결정하는 걸 힘들어할까요?

저는 여러분이 길 한복판에서 멈추거나 혹은 주저앉지 않길 바랍니다. 요즘 학생들은 매우 훌륭합니다. 뛰어난 언어 능력과 인문학적 지식 그리고 다양한 세계를 경험하면서 견문을 넓히고 도전하기를 즐깁니다. 세계적 수준의 IT 환경 아래 창의적으로 지식을 활용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예전에는 꿈도 못 꾼 걸 해내고 있으면서도 지레 포기하거나 자책하는 모습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이런 좋은 능력을 갖추고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멈춰 있거나 방황하는 젊은이들을 만나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웰빙과 웰다잉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그보다 앞서 웰싱킹(well thinking)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웰싱킹은 시험 문제를 풀 때만 가동되는 급조된 사고력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긴 시간 동안 풍부한 인문학적 사유를 했을 때, 그게 누적되어 발현될 수 있습니다. 세계가 빠르게 변해가는 가운데 한 가지 분명한 건 국가든 사회든 개인이든 거기에 열광할 콘텐츠가 있느냐가 갈수록 중요해진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좋은 콘텐츠라고 해도 철학적 사고의 빈곤은 언제든 치명적인 불안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제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1980년대에 홍콩 영화 붐이 일었습니다. 청룽을 비롯해 많은 홍콩 배우들의 이름을 줄줄 꿰고 다녔고 그들을 흉내 내며 놀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습니까? 유행에 민감한 대중문화의 속성이라 치부하기엔 홍콩 영화 산업의 쇠퇴는 너무나 처참합니다. 인간의 삶에 대한 문제의식과 변화하는 시대 정신이 담긴 주제를 탐구하고 고민하는 영화인들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웃음이나 재미를 주는 영화가 오래 기억되거나 시간을 거슬러 다시 선택되기 힘든 이유는 재미도 시대를 가리고 유행을 타기 때문입니다. 1980년대의 홍콩 영화가 지금 봐도 그렇게 재미있을까요? 시시하고 헛웃음이 나오기 십상입니다. 30여 년이 지나면서 재미 코드와 웃음 포인트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추억을 더듬기엔 좋을 수 있지만, 그때의 감동과 재미를 똑같이 느끼긴 어려울 겁니다.

그렇다고 재미있는 영화의 무용론을 말하려는 건 아닙니다. 당장 재미있고 스트레스가 풀리는 상업 영화도 분명 필요하지요. 다만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철학이 있는 콘텐츠의 생명력입니다.

우리는 생각하는 사회인가?

나는 생각하는 공부를 하고 있는가?

타인이 줄 수 없는 깊이를 내가 만들어가고 있는가?


지금 한국 사회에 던져야 하는 질문입니다.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운 시대에 '어떻게 생각하고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사유는 여전히 유효한 공부가 아닐까요? 그것으로 우리는 미래를 준비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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