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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테스형∼ 내 단점은 왜 나한테 안 보이는 거요

김창규│입사 21년 차 직장인. 실제 경험을 녹여낸 회사 보직자 애환을 연재 중

[인-잇] 테스형∼ 내 단점은 왜 나한테 안 보이는 거요
전국에서 비슷한 직급을 가진 동료들이 회사 연수원에 집합하여 이틀 동안 숙박하면서 직무 교육을 받았을 때의 일이다. 교육은 참기 힘든 일이지만 교육 이후의 시간이 있기에 그 끔찍함을 견디게 한다. 모두 다 교육시간에는 졸린 나무 늘보 같더니 교육이 끝나자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활력이 넘쳤다. 여기 한 무리, 저기 한 무리 친한 동료들끼리 모여 술을 마시며 그동안의 안부도 묻고 회포도 풀었다. 나 역시 메뚜기 뛰듯 여기 한번, 저기 한번 자리를 옮기며 이야기보따리를 펼쳤다.

한참을 웃고 떠들고 나니 난 그만 체력이 방전이 됐다. 다른 친구들은 아직도 계속.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슬금슬금 뒷걸음질 쳐 숙소로 물러났다. 그런데 이미 벌써 동료 A가 한 자리 차지하고 잠을 자고 있었다. 나는 장난스럽게 툭 치고 "자냐?" 며 싱거운 짓을 했고 그는 뭐라고 투덜거리며 등을 확 돌리더니 이불을 얼굴까지 휘감았다. 난 그 모양을 보고 실없이 웃다가 간단히 씻고 이불 속으로 몸을 뉘였다.

하지만 잠자리가 바뀌어서 그런지 금방 잠이 오지 않았고 뒤척뒤척 거리기 시작했다. 피곤한데 잠이 들지 않자 조금 전부터 들려오던 A의 코고는 소리가 나를 더 예민하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참을 수 있을 정도였는데 점점 소리가 커져만 갔다. 이 친구의 코골이, 박자를 맞추는 것처럼 한번 골다가 안 골고 또 골고 안 골고를 무한 반복하는 식이었다. 아, 무슨 시끄러운 음악도 아니고 듣기에 귀에 거슬려서 정말 그가 덮어쓰고 있는 이불을 돌돌 말아 복도로 내던지고 싶을 정도였다. 코고는 소리가 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드르렁, 쿨, 드르렁, 쿨~

이때 또 한 친구 B가 술이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 들어왔다. 들어올 때부터 술 취한 사람 특유의 혀 꼬인 목소리로 "자냐?", "취한다.", "으, 죽겠다"를 반복하며 헤롱헤롱 대다가 씻지도 않고 자기 자리로 가서 그냥 엎어졌다. 나는 비몽사몽간에 그런가 보다 했는데 아이고 이건 또 뭔가? 술 냄새와 더불어 B의 코골이가 시작되었다. 우뢰와 같았다. A가 중저음의 사운드였다면 B는 드럼을 있는 힘껏 연속으로 두드릴 때 나는 소리였다. 드르렁, 꽝, 드르렁, 꽝. 게다가 이 친구는 이도 갈았다. 빠드드득. 아! 미칠 것 같았다. 참다 못해 툭 건드렸더니 잠시 조용해 졌다. 순간 '이 때다. 어서 자야지' 했지만 그건 헛된 바람이었다. 30초도 안되어서 또 드르렁, 꽝, 드르렁, 꽝. 빠드드득. 아~ 하늘이시여!

코골이는 수면 호흡 시에 여러 가지 원인으로 좁아진 기도를 공기가 지나가면서 주위 구조물에 진동을 일으켜 발생되는 잡음이라고 한다. 이것은 만성피로와 스트레스, 과도한 음주 때문에 생긴다고 했으니 나는 속으로 '사는 게 힘들어서 그렇지'라고 이해하면서도 어떤 기사에서 보도한 것처럼 이 코골이 소리로 내 청각에 손실이 생기지 않을까? 혹은 내 수명이 몇 년 단축되지는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도 했다. 하지만 이것은 나중의 걱정이고 지금 당장은 수면 부족이 문제였다. 벌써 새벽 4시, 5시인 것 같은데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면서 계속 잠을 자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아침이 왔다. 난 눈을 비비며 일어났지만 바로 수면 부족 증상이 나타났다. 괜히 몸이 찌뿌듯하고 아파왔다. 어제 뭐를 했는지 (잠자리에 시달린 것 말고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았고, 세수를 다 한 상태에서 양치질을 했는지 안 했는지도 헷갈렸다. 아무튼 씻고 나오니 A도 일어나 있었다. 나는 "잘잤냐?"고 아침 인사를 했으나 말이 퉁명스러웠는지 A도 "그냥 그렇지"라며 정감 떨어지는 목소리로 답하고 세면장으로 갔다. 고주망태가 되었던 C도 일어났다. 그는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어휴, 어휴"를 남발하며 눈을 떴다. '이 친구, 왜 저렇게 신경질이야. 짜증나는 사람은 나구만' 이렇게 속으로 싫은 소리를 해 댔지만 그 친구에게도, 세수하고 온 B에게도 아침 식사를 하러 가자고 권했다. 그들 역시 배가 고픈지 순순히 같이 갔다(수면 부족 증세 중 하나가 배고픔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식사를 하면서도 서로 뭔가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웠다.

식사를 하니 기분이 좀 나아졌다. 그제서야 굳은 표정의 내 얼굴은 좀 풀어졌고 농담 삼아 "어젯밤 너희들 코골이, 이 가는 소리에 잠을 못 잤다네"라고 툭 말을 꺼냈다. "많이 피곤했나 봐. 소리가 장난이 아니었어. A는 드르렁, 쿨, 드르렁, 쿨~ 이었고 B 너는 이 가는 소리를 곁들어서 드르렁, 꽝, 드르렁, 꽝, 빠드드득. 이었지. 덕분에 난 잠을 제대로 못 잤어. 미안해 하지 않아도 돼. 뭐, 그런거지. 괜찮아."

그러자 A가 나를 빤히 쳐다보며 황당하다는 듯 말한다. "야,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코와 이 가는 소리를 낸 건 너와 C였어. 특히 네 소리는 정말 컸다고. 잠 못 잔 것은 나야, 네가 아니고. 넌 아주 잘 자던데. C도 마찬가지고."

이에 C는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기가 찬 듯이 대꾸했다. "얘들이 술이 덜 깼나. 이거 왜들 이러셔. 난 원래 코를 안 골아. 아주 얌전히 잔다고. 반면에 너희들은 장난이 아니었어. 병원에 가서 치료받아야 할 정도라고 생각했다고."

이렇게 우린 얼마 동안 "너야, 아니야 너야"를 반복했다. 황당하지만 이것이 아침에 서로 데면데면했던 이유였다.

얼마전 전 국민들을 열광하게 했던 나훈아의 콘서트에서 나훈아는 신곡 '테스형'을 불러 세간의 화제가 됐다. 그 노래 가사에 이런 대목이 있다.
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말을 /
내가 어찌 알겠소 모르겠소. 테스형

사람은 참 자신을 모른다. 실제로는 자신이 남의 잠을 방해할 정도로 코를 심하게 골면서도(심지어 그 소리를 자는 와중에 본인이 들으면서도) 그 코골이가 자신이 내는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고 상대방 탓만 한다. 그래서 나훈아가 테스형에서 신세 한탄하듯이 내뱉은 가사가 우리 같은 직장인들에게 이렇게 들리는 것 아닐까.

"아! 테스형 세상이 아니 직장생활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인잇 필진 네임카드

#인-잇 #인잇 #김창규 #결국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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