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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택배 과로사는 지병 탓?", "주식 거래하느라" 어떤 애도

[취재파일] "택배 과로사는 지병 탓?", "주식 거래하느라" 어떤 애도

제희원 기자 jessy@sbs.co.kr

작성 2020.10.20 15:33 수정 2020.10.20 16:01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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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기사 김재익 씨는 벌써 몇 달째 조끼에 검은색 추모 리본을 달고 일합니다. 벌써 이달 들어서만 3명, 올해 들어 12명의 택배 종사자가 과로로 숨졌습니다. 김 씨를 만나 산재 적용 제외를 강요당하는 현실에 대해 듣고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한 명의 택배기사 부고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김 씨를 비롯한 택배 노동자들은 당분간 근조 리본을 떼지 못한 채 착잡한 심정으로 배송 일을 하게 됐습니다.

● 유족 두 번 울리는 한진택배 "지병으로 과로사 판단, 고인 지인에게서 확인"

(사진=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제공, 연합뉴스)
"거의 큰 짐에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일한다는 게… 저 집에 가면 (새벽) 5시 밥 먹고 씻고 바로 터미널 가면 한숨 못 자고 나와서 또 물건 정리해야 해요. 형들이 돈 벌라고 하는 건 알겠는데 장담하다가 있다가도 또 똑같이 돼요. 저 너무 힘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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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숨진 한진택배 김 모 씨가 04시 28분 동료에게 보낸 카톡

숨지기 나흘 전에도 새벽 4시 28분까지 일한 것으로 확인된 한진택배 소속 36살 김 모 씨가 동료에게 보낸 메시지는 절규에 가까웠습니다. 택배 일을 시작한 지 1년 3개월, 김 씨의 체중은 20kg 가까이 줄었습니다. 추석 특송기가 지난 이후에도 밤을 지새워 배송을 끝마쳐야 하는 날이 이어졌습니다. 김 씨의 휴대전화 캘린더에는 200개에서 300개, 많게는 400개 넘는 배송 물량이 꼬박꼬박 기록돼 있었습니다. 너무 힘들다, 물량을 줄여달라는 김 씨의 호소는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진택배의 해명은 황당합니다. 김 씨의 죽음이 지병 때문이라는 입장인데, 한진택배는 유족에게 김 씨의 지병에 대해 묻기는커녕 사망 이후 지금까지도 단 한 번도 연락한 적 없다는 게 택배 노조의 주장입니다. 그렇다면 유족도 모르는 김 씨의 지병을 한진택배는 어떻게 알았을까요? 한진택배 관계자는 "장례식장에서 고인의 지인으로부터 김 씨의 사인이 심혈관 장애라고 들었다. 이를 바탕으로 지병으로 인한 죽음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앞뒤가 맞지 않는 설명입니다. 부검 결과, 고인의 사인이 심혈관 장애인 것은 맞지만 이를 지병으로 볼 수 있는 근거는 없습니다. 김 씨는 190cm 넘는 건장한 체격에 평소 먹는 약 하나 없이 건강한 체질이었습니다. 오히려 심혈관계 질환은 과로사의 대표적인 주범으로 꼽힙니다. 명백한 과로 환경에서 일하다 과로의 대표적 질환으로 숨진 김 씨에게 업계 2위 한진택배가 내놓은 해명이라기에는 너무 궁색합니다. 유족과 동료들은 한진택배가 고인을 두 번 죽이고 있다고 호소합니다.

● "다음 차례 내가 될까"…추모도 못 하게 하는 CJ대한통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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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배송 중 쓰러져 숨진 CJ대한통운 소속 故 김원종 씨에 대해서 일부 점주들이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린다는 제보도 이어졌습니다. 일부 점주들이 김 씨의 죽음에 대해 "팩트만 알리겠다"면서 김 씨의 산재 적용 제외 신청서를 대필한 것은 김 씨 본인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거나, 고인이 주식 거래를 해 항상 오후 3시 30분까지 장을 본 후 배송에 임했다는 식으로 고인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퍼뜨리며 기사들에게 입단속을 종용하기도 했습니다. 사실상 김 씨에 대한 추모 분위기를 막는 것입니다. CJ대한통운 부산 우암터미널에선 동료들이 차린 추모 분향소와 영정이 강제 철거돼 쓰레기통에서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동료들은 인간 된 도리로서 이건 아니지 않냐고 되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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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 년 내내 상중(喪中)인 택배 노동자…더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어

여름에서 가을로 계절이 바뀌는 동안 CJ대한통운과 한진택배 본사 앞에는 가족을 잃은 유족 여럿이 피켓을 들어야 했습니다. 누군가의 아들, 누군가의 동생, 누군가의 남편이었던 이제는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 유족들은 어김없이 "이번 죽음이 마지막이 되게 해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지난 8월 13일 사상 최초로 '택배 없는 날'을 도입하면서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한진택배를 비롯한 4개 주요 택배사들과 '택배 종사자 휴식 보장을 위한 공동선언'을 했습니다. 노동부 장관과 택배 회사들은 "택배기사의 충분한 휴식시간 보장을 위해 심야시간 배송을 하지 않도록 노력한다"면서 온 국민이 보는 앞에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그 선언이 너무나 무색하게도 택배 노동자들은 죽어 나가고 있습니다. 오늘도 비통한 심정으로 일하고 있는 택배 노동자들을 생각한다면 이들의 절규를 그냥 넘겨서는 안 됩니다. 한시라도 빨리 분류 인력을 투입하고 과로사를 막을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을 정부와 택배사가 내놓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또 다른 택배 노동자의 죽음, 없으리라는 법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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