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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이 말 한마디, 죽을 이유만 많던 날 살렸죠

[인-잇] 이 말 한마디, 죽을 이유만 많던 날 살렸죠

공지영│작가. 책「그럼에도 불구하고 : 공지영의 섬진 산책」저자

SBS 뉴스

작성 2020.10.22 11:00 수정 2020.10.22 20:33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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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나는 내 인생이 완전히 망쳐졌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돌이킬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감당할 것은 태산과 같았다. 열심히 애쓰며 애지중지 내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누군가 다가와 도화지에 검은 먹물을 확 끼얹어 버린 것 같았다. 그 상대방은 말했다.

"어머나 미안해, 고의가 아니었어."

사람들도 말했다.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잖아. 그러게 왜 거기서 그림을 그리고 그래?"

내게 먹물을 끼얹은 '그'는 세상이었고 세월이었고 운명이었고 어쩌면 나 자신이었다.

죽을 용기도 없었다. 몇 번 잘 드는 칼을 손목에 대 보았는데 엷은 상처만 나도 너무 아팠다. 죽을 만큼 고통스러운데 이토록 작은 상처는 또 다른 차원의 아픔이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 담배를 하루에 세 갑 이상 피워 댔고 술 없이는 잠들지 못했다. 쓸데없이 들은 것은 많아서 혹여라도 내가 스스로 내 생을 마감할 경우 부모님의 슬픔과 아이들이 평생 지고 가야 할 죄책감 혹은 분노가 떠올라 그럴 수는 없었다. 나는 남에게 피해 입히는 것이 몹시도 싫은 사람이어서 그건 싫었던 것이다. 그러나 살아갈 자신이 없었고 여기서 그만 생을 포기하는 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옳게 보였다. 생각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하다못해 생명보험이라도 받아서 아이들이 남은 생을 사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려면 내가 스스로 죽는 것은 어리석어 보였다.

외출할 때 1.8리터짜리 생수 두 병을 언제나 지니고 다녔다. 침이 나오지 않아 늘 물을 마시고 있지 않으면 안 되었다. 몸은 퉁퉁 부어올라 체중이 난데없이 10킬로그램이나 불어났다. 옷이 맞지 않는 것은 그렇다 쳐도 신발까지 들어가지 않아 커다란 슬리퍼를 사서 신고 다녔다. 병원에 가서 피검사를 했다. 수치상으로 아직 아무 이상이 없었다. 한의원에 가니 심장에 화기가 가득해 이미 신장이 많이 다친 것 같다고 했다.

어느 병원에서도 딱히 나를 치료해내지 못했다. 그렇게 의사들을 찾아 병원들을 돌다가 스위스 대체 요법으로 진료하시는 분을 소개받았는데 그분이 내 팔에서 직접 피를 뽑으셨다. 무심히 그분이 뽑는 피를 보고 있었는데 내 왼쪽 정맥에서 검은 피가 쏟아져 나왔다. 그때 피를 뽑다 말고 그분이 움찔하셨다. 의사가 놀라는 것도 놀라웠지만 그 피의 색을 보고 나도 놀랐다.

검은 피…… 가끔 체했을 때 엄지손가락을 따면 나오던 그렇게 검은 피. 검은 피는 경고였다. 설사 현재 신장 수치가 정상 범위에 있다고 해도 곧 신장이 망가질 것이라는 경고를 들었다.

"어떻게 하면 되나요?"

내가 묻자 의사가 대답했다.

"마음을 편히 가지세요."

나는 웃었다.

"아 그렇군요. 그런데 어떻게 하면 마음이 편해질 수 있나요? 그런 약이 있나요? 선생님."

내가 비꼬며 말하자, 의사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본인 생각에 고통은 내부의 것인가요? 외부의 것인가요?"

나는 비명을 지르듯이 대답했다.

"저는 잘못이 없어요. 모든 것이 외부로부터 왔어요."

당연하지. 난 착하고 올바른데 세상이 악하고 내게 못되게 굴었던 것이었으니까. 그때까지 나는 그랬다. 그러자 의사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그러면 돌파하세요. 그러지 않으면…… 정말 큰일 납니다."

내가 다시 물었다.

"돌파를…… 하라고요?"

의사가 대답했다.

"네 돌파. 밀고 넘어가 버리세요."

"돌파하세요, 돌파하세요."

몇 달 동안 그 단어가 내 귀를 떠나지 않았다. 이상하게 그 단어가 위안이 되었다. 어떻게 돌파하는지는 알려주지 않았고 나도 여전히 오리무중인 상태였지만 말이다. 칠흑 같은 밤에 희미하게 보이는 먼 등불 같았다. 지금도 나는 그분께 감사드린다. 신경안정제 한 알 처방해주시지 않았지만 참의사셨던 것 같다.

그 무렵, 어떤 분이 내게 말씀하셨다.

"한번 이렇게 해볼래요?"

밤새 울어서 비둘기처럼 부은 눈으로 내가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대답했다.

"그래서, 라고 하지 말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고요"

"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나는 잠에서 깨어난다. 창밖으로 푸른 새벽이 당도하고 있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커튼을 열면 푸른 새벽 속으로 섬진강이 흐르고 밤새 쌍계사 계곡을 내려온 구름이 긴 띠 모양으로 섬진강 위를 통과한다. 동쪽으로 향해 있는 백운산 이마가 분홍으로 물들면 긴 띠 모양의 아침 안개는 더욱 짙어간다. 하늘은 푸르고 백운의 흰 이마는 분홍빛으로 수줍고 흰 밍크 목도리처럼 희고 폭신한 구름 띠를 두른 앞산은 초록빛이다. 초록의 향연. 세상 모든 초록이 한 산에 모여 날마다 다채롭게 변화하고 있다.

새 아침은 마치 아무도 걸어가지 않은 흰 눈 쌓인 벌판처럼, 혹은 흰 백사장처럼 순결하고 깨끗한 모습으로 내게 다시 주어진다. 나는 그것이 내게 주어지기 위해 아무것도 애쓴 것이 없으니 이것은 온전한 선물이다. 현재, present, 선물이라고 번역되는 그 단어, 오늘.

친구들이나 후배와의 대화, 혹은 인터뷰 중에 주어지는 질문에 나는 대답한다.

"아침이면 깨어나 제일 먼저 하는 생각은 '행복하다' 입니다. '감사하다'이기도 하고요. 저는 하루를 보내고 나면 그 보낸 하루만큼 더 행복한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전 행복의 절정에서 죽게 되겠지요. 이렇게 매일매일 행복해지니까."

사람들은 내 말에 감탄하기보다 어이없다는 표정을 더 많이 짓는다.

나는 젊은 시절 세 번의 이혼으로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 온갖 구설에 시달리는 예순을 앞둔 늙은 '여성' 작가였다. 다섯 건의 고소 고발을 당해 경찰서를 오가고 있었고, 인터넷을 열면 입에 담지 못할 악플에 시달리고 있는 처지였다. 인터넷을 열면 일부러 표정을 찌그러뜨리고 찍은 것 같은, 내가 보기에도 낯선 내 사진이 내 이름 밑에 도배가 되어 있었다. 대출은 많았고 이자만도 상당했다. 책은 예전보다 팔리지 않았고 계약금을 받아놓은 글의 진도는 나가지 않아서 날마다 편집자들의 전화가 올까 봐 눈치를 보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그들도 알았다. 나는 스스로 죽어도 될 이유를 30가지도 더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믿을 수 없을지 모르지만 사실이에요. 정말이지 행복하고 만족한 하루를 보내고 있어요. 당신들이 지금 무엇을 떠올리는지 대충 짐작은 하지만 그건 큰 문제가 되지 않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행복하니까요."

그러자 오래 불행했던, 아니 어쩌면 스스로는 평생을 두고 한 번도 행복하지 않았던 후배가 물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어떻게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럴 수 있었는지 가르쳐주세요. 검은 피를 쏟으시며 퉁퉁 부으셨던 거, 사기를 당하시고 재산을 다 잃으셨던 거, 온갖 사람들의 음해에 시달리셨고, 여전히 시달리시는 거, 배반당하셨던 거, 제가 다 알고 있는데 어떻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럴 수가 있는지."

나를 두고 울먹이고 있는 후배에게 나는 약속했다. 내가 왜 이리되었는지 언젠가 긴 글로 써 주겠다고.

돌아보면 고통스럽다고 생각할 이유는 백 가지도 넘고 행복하다고 생각할 이유도 백 가지도 더 된다. 나는 그냥 그중에서 하나를 택하려고 한다. 요즈음 많이 고독했다. 내 맘에 퇴비가 쌓이고 있는 거다. 꽃은 비옥한 땅에서 핀다.

사실 후배에게 해줄 말은 나에게 해줄 말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것도 안다. 그것은 누군가 나를 절벽으로 밀었는데 그때야 비로소 나는 내가 날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생은 기필코 우리를 절벽으로 민다. 그때 우리는 선택할 것이다. 추락할 것인지 날아오를 것인지를. 우리는 행복할 권리와 의무가 있으리라. 행복하라! 오늘!

그래서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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