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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적북적] 친절한 '아는 형' 그 이상.. '보건교사 안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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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룸] 북적북적 262 : 친절한 '아는 형' 그 이상 <보건교사 안은영>

"안은영은 유감스럽게도 평범한 보건교사가 아니었다. 은영의 핸드백 속에는 항상 비비탄 총과, 무지개 색 늘어나는 깔때기형 장난감 칼이 들어 있다. 어째서 멀쩡한 30대 여성이 이런 걸 매일 가지고 다녀야 하나 속이 상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어쩔 수 없다. 사실은 멀쩡하지 않아서겠지. 안은영, 친구들에게는 늘 아는 형이라고 놀림받는 소탈한 성격의 사립 M고 보건교사. 그녀에겐 이른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고 그것들과 싸울 수 있는 능력이 있다."

30대 여성, 직업은 학교 보건교사, 이름은 어디서 들어본 듯한 안.은.영. 평범한 듯 아닌 듯한 그는 숨겨진 신분- 퇴마사이기도 합니다. 2010년 환상문학웹진 '거울'에 발표했던 단편 '사랑해, 젤리피쉬'에 처음 등장했던 그… 2015년 책으로 탄생했고 이어 올해 2020년, 영상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소설 출간 5주년과 작품 영상화를 기념한 리커버 특별판까지 나온 그 책 <보건교사 안은영>, 이번 주 북적북적의 선택입니다.

어느 고등학교를 무대로, 젤리피시-해파리라는 별명의 여학생 혜현을 좋아하는 남학생 승권이 있습니다. 목에 뭔가가 박혔고 그걸 빼주는 보건교사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승권은 제대로 치료받지 않고 도망치듯 가버리고 그의 담임은 한문 선생... 연작 소설의 시작이자, 등장인물 소개까지 겸하고 있는 '사랑해, 젤리피시'부터 '돌풍 속에 우리 둘이 안고 있었지'까지 모두 10편의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왜 하필 간호사를 직업으로 골랐을까. 아니, 아니다. 해가 갈수록 더 느끼는 점이지만 사람이 직업을 고르는 게 아니라 직업이 사람을 고르는 것 같다. 사명 같은 단어를 기본적으로 좋아하지 않으므로 수긍하고 받아들였다기보단 수월한 인생을 사는 걸 일찌감치 포기했다는 게 맞겠다."

"졸업생들이 버리고 갔음직한 사념들이 좀 있었다. 폭력성과 경쟁심의 덩어리들, 묵은 반목과 불명예와 수치의 잔여물들이 어두운 곳에 누워 있었다. 은영은 길게 한숨을 쉬곤, 손목 스냅으로 장난감 칼을 길게 폈다. 그리고 더러운 덩어리들을 베기 시작했다."

"은영도 언젠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이렇게 위험하고 고된데 금전적 보상이 없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말이다. 하지만 은영의 능력에 보상을 해 줄 만한 사람들은 대개 탐욕스러운 사람들이었다. 좋지 않은 일에만 은영을 쓰려고 했다. 아주 나쁜 종류의 청부업자가, 도무지 되고 싶지 않았다…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고 해서 자신의 친절함을 버리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은영의 일은 은영이 세상에게 보이는 친절에 가까웠다."

"안은영은 아까의 한문 선생을 보호하고 있던 거대한 에너지 장막에 감탄하고 있었다… 누군가 그 선생님을 매우 사랑했던 사람이, 죽어서도 강력한 의지를 남긴 게 틀림없었다. 그런 보호를 받고 있는데 왜 다리를 다쳤지? 희한한 일이다. 친해지기 힘들어 보이는 사람이었지만, 만약 사태가 심각해지면 도움을 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거의 걸어 다니는 행운의 부적이나 다름없었다. 탐났다."

퇴마사로서 학교에는 취직해 에로에로 에너지와 악령으로부터 아이들을 지키려는 보건교사와, 학교의 실질적인 소유주로서 할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학교를 지키려는 한문교사는, 공통의 목적을 갖고 나름대로 의기투합해 갖은 크고 작은 모험을 겪습니다. 약간만 뒤의 내용을 더 누설하면... 이런 악귀와 혼령이 또 아주 심각한 수준까지는 아니어서 그럭저럭 명랑하고 코믹한 기운이 곳곳에 흘러넘칩니다.

퇴마, 하면 저한테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강시를 무찌르는 영환도사, 그리고 퇴마록입니다. 홍콩 강시 영화는 무섭고 인기도 있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조악한 느낌이 들었고 이우혁 작가의 퇴마록은, 자신의 능력과 운명에 상처 받는 이들이 가득해 뭔가 더 비장하고 우울한 기운이 가득했던 것 같아요. 보건교사 안은영은 그렇지 않습니다. 발랄하고 다정하고 그러면서 엉뚱하기도 하지만 굳센.. 이런 친구 하나 있으면 참 즐겁겠죠. 드라마의 두 주인공 배우도 꽤 어울립니다.

정세랑 작가는 작가의 말에 이렇게 썼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오로지 쾌감을 위해 썼습니다. 한 번쯤은 그래도 되지 않을까 했습니다. 그러니 여기까지 읽으며 쾌감을 느끼지 못하셨다면 그것은 저의 실패일 것입니다… 즐겁게 쓴 이야기라 영원히도 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언젠가 다시 또 이어 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 언젠가'가 곧 돌아오길 기대합니다. 드라마도 시즌2가 나왔으면 좋겠네요.

*출판사 민음사로부터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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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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