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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 24살 발랄한 보수주의자, 그가 '불안'한 이유

[그, 사람] 24살 발랄한 보수주의자, 그가 '불안'한 이유

유찬근, 유쾌한 비관주의자

윤춘호(논설위원) 기자 spring84@sbs.co.kr

작성 2020.10.17 11:00 수정 2020.10.19 09:57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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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그, 사람] 24살 발랄한 보수주의자, 그가 불안한 이유
1. 표정과 말이 따로 놀고 있었다. 입으로는 불안하다고, 앞날이 막막하고 다가오는 미래가 두렵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얼굴은 평안했다. 좁은 회의실 공간에서 둘이서 얼굴을 마주보는 게 어색했기 때문이었을까, 가끔 사람의 눈길을 피하기도 했다. 기사화를 전제로 인터뷰를 한다는 것도 이 사람을 긴장하게 만들었을 텐데, 시간이 갈수록 그는 여유를 되찾았고 나중에는 아예 즐기는 태도였다. 인터뷰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 사람은 할 말이 늘어만 갔고, 묻는 사람은 밑천이 떨어지고 있었다.

말 외에 다른 데서 불안의 징후를 포착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의 글에서도 정서적 불안이나 불균형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의 글은 균형 잡혀 있고, 어디를 강조해야 할지 어디에서 힘을 빼야 할지 어디에서 슬쩍 농담 같은 말을 던져야 할지 잘 알고 있다.

다섯 시간이 넘는 대화 중에 이 사람이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두렵다, 불안하다는 말이었다. 자신이 과대 포장된 사실이 탄로날까 두렵고 앞날도 두렵다고 했다. 지금도 행복하지 않은데 앞으로 나아질 일이 없을 듯해서 두렵다는 것이다. 취직은 할 수 있을지, 설사 일자리를 잡는다 해도 기대하는 급여가 월 200만 원 정도라니 그 돈으로 온전히 독립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는 거다.

그사람-유찬근
2. 불안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이 사람 이름은 유찬근이다. 1996년생, 만 24살. 공익요원으로 공립유치원에서 근무 중이다.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4학년 1학기를 마쳤고, 사학을 복수전공했다. 경기도 분당에 있는 도시형 대안학교인 이우고등학교를 다녔다는 게 스스로 꼽은 특이한 이력이다.

평범한 청년으로 보이지만 SNS에서는 꽤 이름이 알려진 청년 문사다. 자신을 에세이스트, 프로잡학러, 유사학문 종사자, 이야기꾼 워너비라고 소개한다. 조선과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 근현대사에 관심이 많지만 정치, 시사, K-POP, 문학, 학술 등 그의 관심이 미치지 않는 곳을 찾기 어렵다. 지난 5월까지 그가 SNS에 올린 글은 모두 61편인데 이 가운데 서평이 50편이다. 지난 5월 이후 잠시 쉬고 있지만, 그 전에는 거의 일주일에 한 편씩 글을 올렸고 그 때마다 이 사람의 글은 화제가 됐다.

이 사람의 글은 읽는 사람을 주눅들게 한다. 이 사람이 이제 겨우 24살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읽으면 그런 기분이 더 강하게 든다. 날카롭고 발랄하고 어디에도 얽매여 있지 않은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그렇다고 해서 번뜩이는 재기 하나에 기대어 손끝으로 끄적이는 글은 전혀 아니다. 그의 글을 몇 줄만 읽어봐도 그의 독서량이 방대하고 오랜 시간 책상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쓴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지난 한 해 143권의 책을 읽었다니 하니 대단한 독서가다.

지난해 필자는 조선 천주교 역사와 관련된 책을 한 권 냈다. 이 사람이 그 책에 대한 서평을 썼다. 그 책이 다루고 있는 시대와 인물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필자가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이 사람의 서평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필자의 책 한 권보다 이 사람의 몇 쪽짜리 서평을 읽는 게 더 나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 사람이 아직 대학도 졸업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에는 약간의 낭패감마저 들었다. 이런 평가가 혹시 필자만의 생각일까 싶어 몇 사람의 전문가에게 의견을 구했다.

"만난 적은 없는데 페북에 올라오는 이 사람의 글을 보고 깜짝 놀랄 때가 많았습니다. SNS에 역사 관련 글을 잘 쓰는 청년들이 몇 명 있는데 좀 현학적이고 자기 과시적인 면도 없지 않거든요. 그런데 유찬근 씨는 그런 면이 보이지 않아서 더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김형민 역사 저술가, SBS-CNBC PD>

"유찬근 씨가 제가 쓴 <조선, 철학의 왕국> 서평을 SNS에 올린 적이 있습니다. 그 서평을 보니 독서량도 많고 핵심을 잘 짚고 있었습니다. 제 책이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다 보니 같은 분야를 공부하는 교수 수준의 서평은 아니지만, 해당 분야에 식견이 높은 독자가 쓸 수 있는 수준, 신진 학술 담당 기자의 서평 수준은 된다고 봅니다. 다만 서평을 쓰는 것과 본인의 글을 쓰는 것은 다른 것이니 대학원에 가서 제대로 트레이닝을 받으면 좋은 재목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경구, 한림대 과학원 원장>

자신이 쓴 글 가운데 남들에게 보여줄 만한 글이 뭐냐고 물었더니 잠시 망설이다가 이영훈에 대한 글을 꼽았다. 일제 식민지 시기 근대화 논쟁과 관련해 논란이 된 이영훈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그에 대한 총체적인 평가를 촉구하는 내용의 글이다.* 유찬근은 발제 수준의 글이지만 나름 깔끔하게 정리된 글이라고 자평했다. 유찬근의 이영훈에 대한 글은 SNS에서 꽤 화제가 된 글이다. 이영훈에게 유찬근의 글을 보내주고 그의 소감을 물었더니 이영훈이 다음과 같은 내용의 문자를 보내왔다.

"저를 비판하는 사람으로서 저의 주저 <한국경제사 1, 2>를 읽은 사람은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저와 지향을 같이 하는 사람들조차 그러합니다. 그런 풍토에서 한 젊은 대학생 에세이스트가 제 책을 읽고 꽤나 정수에 접근했군요.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사람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미래 담론을 이끌어갈 주역 중의 한 명이라는 격정적인 칭찬도 있지만, 아직 온전한 평가를 내리기엔 이르다는 견해도 적지 않다. 우선 그의 텍스트를 요약 정리하는 능력이 탁월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은 일종의 테크닉일 뿐 창의적이라고 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대입 등에서 글쓰기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 그가 독서와 체험, 토론식 수업을 강조하는 이우학교 출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정도의 글쓰기는 다른 사람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경구가 지적한 것처럼 아직 그가 자신만의 글을 선보인 적은 없다는 점도 그에 대한 평가를 유보하는 이유다. 그 역시 자기 글쓰기의 한계를 잘 알고 있었다.

- 지난 5월 이후 서평 쓰기를 중단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뭔가요.
"게을러져서 그런 것이긴 한데 제가 남의 명성을 빌려 따봉을 추수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저자의 명성에 기대어 가는 것 같은 느낌이 싫더라구요. 지난해 10월부터 공익근무하면서 책을 밀도 있게 읽지 못하는 것도 한 이유가 되겠네요."

이 사람의 글에 대해 몇몇 사람들의 격찬이 있고 이 사람의 천재성을 의심하지 않는 사람들도 적지 않지만 그의 글이 일반 대중들로부터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사람이 서평 대상으로 삼는 책들이 대중서가 아니라 전문 연구자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학술적인 글이기 때문에 공감의 폭이 좁을 수 있겠지만 어쨌든 반응이 뜨거운 것은 아니다. 조금 인색하게 말하자면 특정 분야에 특화된 학습된 천재일지도 모른다.
* '이영훈론'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에게 좋아요 등의 반응을 구하는 행위를 이르는 말이다.

유찬근에게 본인의 글에 대해 물었다. 머뭇거리다가 그가 이렇게 답했다.
"글을 읽기 쉽게 쓰는 재주는 있는 거 같아요. 약간의 너스레와 재치를 섞어서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재주는 있고 또래들에 비하면 못 쓰는 편은 아닌 거 같아요. 어떤 때는 쉽게 쓰기도 하는데 글 한편 쓰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 붓는 느낌이 들 때도 있죠. 있는 재주 없는 재주 다 부려서 쓰는 느낌이랄까요."

그사람-유찬근
출판계, 학계 인사 너댓 명이 모이는 자리에서 그를 두 번 봤다. 자기보다 적게는 30살, 많게는 40살 정도 나이가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자리였다. 유찬근은 그런 자리를 그리 불편하게 여기는 눈치가 아니었다. 고기 구워야 할 때는 열심히 고기를 구웠고 잔심부름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자리를 꽤 흥미롭게 관찰하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그런 자리에서 듣고 배우는 이야기도 있을 것이나 이 사람의 나이를 생각하면 좀 지루할 수도 있는 자리였다. 이 사람이 입을 열 기회는 거의 없었고 어쩌다 말을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의 말에 금방 끊겼다. 그런데 가만히 들어보면 이 사람의 말은 경청할 만했다. 아니, 새겨들을 말이 적지 않았다. 어렸을 때 말을 잘해서 주변에서 칭찬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글재주에 못지 않게 말재주가 특출 났다는 게 그의 어머니의 말이다. 이 젊은 지식인의 이야기를 길게 들을 수 없어 아쉽고 그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 사람과 헤어질 때면 매번 다음에는 찬근 씨 이야기를 많이 들었으면 좋겠다고 했고, 아예 우리 둘만 만나서 이야기를 하자고도 했다. 이번 인터뷰가 이루어진 배경이다.

이 사람을 통해 20대 청년들의 모습을 들여다보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러기엔 유찬근은 20대 청년 같지 않은 면이 많았다. 초등학교 때 잠깐 카트라이더 게임을 한 것을 빼면 여태 게임을 해본 적이 없다니 말을 더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넷플릭스도 자신이 최애하는 정세랑 작가의 <보건교사 안은영>을 보기 위해 가입했는데 곧 탈퇴할 생각이란다. 이 사람은 영상도 '읽을 만큼' 활자 중독이다. 요즘 20대는 톡도 문자보다는 영상으로 한다는데 그런 면에서도 이 사람은 예외적인 20대다. 지금껏 1천 권쯤 책을 읽었다는 말을 할 때 이미 알아보긴 했는데 게임을 한 적도 없다는 말을 듣고 놀랐다. 편견일지 모르겠지만 게임을 하지 않는 20대는 거의 인간문화재 수준 아닌가. 다만 이 사람에게 집중하면 요즘 젊은 세대의 생각을 조금은 알 수 있겠다는 생각이 없지는 않았는데 결과부터 말하자면 망외의 소득이 적지 않았다.

3. 그는 예의 바르고 정중했다. 말하는 중에 자기 말을 필자가 알아듣지 못할까 신경 쓰는 눈치였다. 이런 말 아십니까, 이런 말 들어 보셨습니까? 라는 말을 몇 번이나 했고, 20대가 주로 쓰는 말을 사용할 때는 묻지 않아도 먼저 이 말은 이런 뜻입니다 라고 설명했다. 유찬근이 고모라고 부르며 따르는 푸른역사 대표 박혜숙은 유찬근의 모습에서 단정한 조선 선비의 모습이 보인다고 했고, 한림대 과학원장 이경구는 직접 만나 본 유찬근이 너무 선하고 반듯하게 생겨서 욕심이 날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 모습이 거짓일 리 없지만, 그 모습이 그의 전부일 리도 없었다. 페이스북에서 보이는 그의 모습은 필자가 현실에서 본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그는 언론인, 정치인, 셀럽들의 싸대기를 상큼 발랄, 신랄하게 후려친다. 그리고 능글능글 웃는다. 연세대 명예교수 조한혜정은 그가 고교 시절 사숙한 정신적 은사인데, 조한혜정을 논한 글의 한 대목을 보자.

"단순한 일차함수처럼 조한혜정은 어떤 주제든 이를 자기 식대로 해석해 언제나 똑같은 결론을 도출해낸다. 청년들의 그루이자 시민운동계의 대모였던 조한혜정은 이제 만인의 지탄을 받는 고장 난 벽시계로 전락해 있었다."

조한혜정이 이 글을 봤다면 얼굴이 벌개지지 않았을까 싶다. 그는 익명으로 남의 가슴을 후벼 파는 악플을 다는 일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고 했지만 설사 그가 그런 일을 했다고 해도 놀라지는 않을 거 같다.

겉으로 보면 다소 소심한 모범생의 모습이고 대학생 때는 도서관에만 처박혀 있었다지만 다른 얼굴도 있다. 초·중학교 때는 학급 학생회장을 놓친 적이 없고 이우학교에서도 부학생회장, 풍물패 부장을 맡은 것을 보면 리더십도 강한 사람이다. 그가 고등학교 시절 문집에서 밝힌 그의 모습은 "성격 더럽고 괴팍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며 화를 잘 내는 사람"이었다.

유찬근은 지난해 10월 논산훈련소에 입소했다. 훈련소 시절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 안에 여러 개의 자아가 있는 거 같다고 말했다.
"저는 통제 받는 것을 극히 싫어해서 군대는 제게 전혀 맞지 않을 거 같았는데 훈련소도 잘 맞더라고요. 그 때 저를 어떤 사람이라고 규정하지 않아아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적응 능력이 뛰어난 건가요?
"제게 여러 개의 자아가 있는 거 같아요. 여러 개의 SNS 계정을 두고 필요에 따라 골라쓰는 것처럼 가면을 바꿔 쓰는 능력이 좋은 거 같아요. (상황에 따라) 전환이 자유롭게 되는 거 같아요."

사람의 내면에 여러가지 모습이 있는 거야 특정 개인, 특정 세대만의 특징일 수는 없는데, 다만 유찬근과 그의 세대는 여러 개의 자아 가면을 바꿔 쓰는 것을 불편하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즐기는 듯싶다. 요즘 예능에서 본캐와 부캐가 유행인 것도 그런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4. 그의 어머니 김은숙은 그를 손에서 거의 내려놓은 적이 없을 만큼 공을 들여 키웠다고 했다. 어렸을 때부터 영특했다. 말도 빨랐고 글도 일찍 깨쳤다. 그림을 잘 그렸는데 항상 그림 안에 스토리가 있었다. 주변의 권유로 영재 테스트를 받기도 했다. 아이는 욕심이 많았고 의욕이 넘쳤다. 어떻게 하면 아이의 넘치는 재능을 제대로 키워줄지 고민했다. 김은숙은 아들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지만 그 사랑 때문에 분별력을 잃지는 않았다. 거리를 두고 말해야 할 때와 애정을 담아 말해야 할 때를 제대로 구분해서 말했다.

그사람-유찬근
"엄마한테 손편지도 자주 쓰고 남에게 인정도 많은 아이였고 제가 보기에도 역량이 있는 거 같아요. 성격의 기복이 심한 것은 저를 닮아 그런 것 같아요. 때로는 회초리도 종종 들어서 찬근이 입장에서는 (자상함과 엄격함을 오가는) 엄마나 아빠의 태도 때문에 조금 혼란스러웠던 거 같아요. 그래서 갈등도 벌어지고 반발도 하고 그랬어요."

이우학교 입학을 위해 유찬근 부모가 작성한 학부모 자소서는 인상적인 글이었다. 아이의 장점과 가능성이 무엇인지, 이 아이의 장점을 키워 주기 위해 부모로서 어떤 노력을 했는지, 아이의 성장과정에서 부모가 느낀 어려움과 아이의 단점이 무엇인지를 빼놓지 않고 있다. 학부모 자소서만 봐도 유찬근이 어떻게 커왔고 학교에 들어오면 어떻게 교육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그려지는 글이었다. 유찬근은 부모님과 본인이 남들과 다르고 싶고 남들과 달라야 한다는 일종의 허영심 같은 게 있다고 말했지만, 어쨌든 이 글은 우리 사회 중산층의 자녀 교육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

경기도 분당에 있는 도시형 대안학교인 이우학교 입학은 유찬근 인생에서 중요한 대목이다. 제대로 된 학교, 제대로 된 선생, 제대로 된 친구를 만나고 싶어 이 학교를 선택했다고 했다. 최고의 교육, 가장 귀족적인 교육을 받았다고 했다.

"이른바 386세대의 자녀 교육에 대한 로망, 판타지가 제대로 구현된 학교였어요. 자기 자녀는 입시 교육받지 않고 학원 다니지 않고 실컷 놀고 보고 싶은 책 보면서 자연과 벗하며 자라기를 바라는, 그러면서도 명문대생까지 되기를 바라는 386세대의 로망을 실현시키려는 학교였어요."

자유롭고 창의적인 교육을 받았고 그 결과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 무슨 수업이 좋은 수업인지 알아볼 수 있는 눈을 길렀다고 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풍물패 활동을 열심히 했다. 통진당 간부 출신인 지도교사는 정치색이 짙은 인물이었고 이 때문에 학부모와 지도교사, 학생과 지도교사, 학생과 학생 사이에 갈등과 불화가 생겼다. 유찬근은 풍물패의 리더로 갈등의 한 가운데 있었고 그 갈등은 18살 고등학생이 감당하기엔 너무 큰 것이었다. 최상위권이던 성적이 바닥으로 추락했고 그는 입시에 실패했다. 1년의 재수를 거쳐 서강대학교에 입학했다.

대학교에 들어간 이후 한 번도 알바를 한 적이 없다. 부모님 덕을 봤다고 할 수 있겠는데 그는 남들이 알바를 하는 시간에 도서관에 있었다. 그는 도서관 죽돌이였다. 아침 8시에 문을 여는 것에 맞춰 도서관에 가서 마치 도서관에 있는 모든 책을 읽을 기세로 책을 읽었다. 촛불집회에는 나갔지만 다른 집회와 시위에 적극적이지는 않았다. 굳이 나 아니어도 되겠다는 생각이었다지만, 그만큼 절실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교환학생을 다녀오지 않았다. 주위 친구들 가운데 교환학생을 다녀오지 않은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왜 다녀오지 않았을까.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이 두려웠고요. 뉴욕이나 보스턴 같은 영미 문화 총본산에 동양인인 제가 있는 것이 상상이 안됐어요. 일본을 다녀오고 싶었는데 그 때는 일본어 공부가 충분하지 않아서 포기했습니다."

그사람-유찬근
패기와 도전정신이 없다고 할지 모르지만 자신은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 있기를 바라고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고 했다. 그런 면에서 자신은 생래적 보수주의자라고 말했다. 노무현은 희미하게 기억이 나는 정치인이고,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10대 시절을 보냈다. 보수 정권에 대해서는 화가 나기보다는 그런 정권이 계속되지 않을까 무서웠고, 현 진보 정권에 대해서는 체념한 상태라고 했다. 다만 사람들이 진보의 가치를 386세대와는 다른 방식으로 구성해야 되는데 일부 진보주의자들의 위선을 지적하면서 도덕성과 공동체 지향까지 쓰레기통에 처박고 있는 듯해서 안타깝다고 했다.

한 발만 삐끗해도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에 요즘 20대가 공정이라는 이슈에 민감한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기성세대, 특히 보수 세력이 20대를 앞세워 공정 이슈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측면도 있다는 게 이 젊은 보수주의자의 답변이었다. 자신이 나온 대안학교에서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인턴 활동 등에서 부모들의 덕을 보는 일이 있었다는 것이고 그런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입장에서 조국과 추미애 장관 자녀들 이야기를 예전에는 전혀 몰랐던 일인 양 새삼스레 요란을 떠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말투였다.

5. 불안이 특정 세대의 전유물일 수는 없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 누구나 불안하다. 그래서 유찬근의 '불안 타령'은 다소 유난스러워 보였다. 그의 불안 호소는 약간 습관성처럼 들리기도 했다. 왜냐하면 그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불안이 그의 삶에 어떤 식으로 구체적으로 영향을 미치는지 모호했기 때문이다.

유찬근이 태어난 1996년 한국은 OECD에 가입하며 선진국 문턱을 넘어섰다. 그의 세대는 경제적 결핍에서 해방된 세대다. K-POP을 필두로 한류가 전세계로 뻗어 나갔다. 그의 세대는 정치적으로 억압당한 경험이 없다.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데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유찬근은 자신이 가장 질 좋은 교육, 귀족적인 교육을 받았다고 자부했다. 대안학교의 경험을 말하는 것인데 사실 이 말은 그의 세대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일 수 있다. 입시 지옥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어쨌든 가장 많은 투자를 받은 세대임에는 틀림없다.

풍요롭고 자유롭고 억압받은 기억이 없는 유찬근과 그의 세대가 왜 불안을 입에 달고 다니는 걸까. 20대 공통의 불안이든 아니면 유찬근만의 불안이든 범용적이지 않은 불안의 이유를 그에게서 찾고 싶었다.

군대에서 받는 월급 40만 원을 군인적금에 들고 있다. 군인적금은 연이율이 6%라고 하니 이만한 재테크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올해 들어 처음으로 주식 투자를 할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했다. 치솟는 부동산 가격을 보니 이대로 있으면 안 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는 것이다. 친구들 가운데 몇 명은 이미 주식 투자를 하고 있다. 지금 같은 상황이면 나이 마흔이 넘어도 부모님에게 의존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주식 투자를 생각해본다는 말은 그의 불안이 가장 구체적으로 드러난 표현이었다.

고3 때 일어난 세월호 사건은 유찬근에게 강한 트라우마를 남겼다. 정권의 무능함에 분노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국가의 무력함이 두려웠다. 그 친구들도 거의 비슷한 생각이었다.

"위기에 빠지면 국가가 국민을 지켜준다고 생각하던 세대거든요.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거죠. 그 때 우리가 근대에 와 있기는 한 건가 싶었어요. 시각적으로도 충격이었어요. 배가 떠있는데 아이들을 구하지 못하고… 슬픔이나 분노보다는 공포보다 불안이 훨씬 크더라구요. 국가가 우리를 지켜주지 못하는구나… 그래도 나름대로 선진국이라고 믿고 살아왔던 국가가 이 수준밖에 안되나 싶어서 굉장히 충격이 컸지요."

그사람-유찬근
유찬근은 자신의 주변에 있는 친구 중 누구도 앞으로 다가올 미래가 지금보다 나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고 단언했다. 한국이 이룰 수 있는 성취의 정점에 올라섰고 미래에 이보다 더 좋은 날을 찾기 힘들 것이라고 그는 확신한다. 경제성장률을 보나, 인구 구성을 보나 모든 면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정점에서 내려갈 일만 남았고 더구나 남은 날들이 살아온 날보다 훨씬 길다고 생각하면 우울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거다. 확고한 비관론자다.

그는 자신들의 세대가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 풀 능력이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자신들이 과연 함께 일을 도모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 세대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부모 세대라고 할 수 있는 이른바 386세대에 대한 반감 내지 적대감이 있는 것이 맞는데 그렇다고 이 세대를 뛰어넘을 자신도 없는 것이다.

변화를 누구와 함께 대응할 수 있다면, 아니면 함께 견디면 좋을 텐데 함께 견디고 대응할 집단이 없어 더욱 두려운 것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인 동시에 자기 세대에 대한 불신이 섞여 있는 두려움이다.

"서울대 김홍중 교수가 요즘은 자아주권 시대라고 하더라구요. 신성불가침한 주권의 수준이 자아 수준까지 내려갔다는 거죠. 나의 자아를 침범 받기 싫고 남의 자아도 침범하지 않는다. 그거를 원칙으로 삼는다. 그런 상황에서 20대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근육을 가진 사람들인가? 집단이나 조직, 공동체 수준에서 무언가를 함께 해 나갈 수 있는 역량이 있을까 회의적입니다. 당장 제가 다니는 학교만 해도 학생회 구성도 어려운 상황이니까요."

유찬근의 말을 들으면서 이 세대는 누군가 자신들을 대신해서 이 불안감을 없애 주겠다고 나선다면 기꺼이 그 사람을 떠받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점에서 이 세대는 포퓰리스트 정치인의 타겟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는 20대 남성의 가장 큰 화두가 페미니즘이라고 했다. 유찬근은 자신이 페미니즘에 공감한 적이 있고 학회에 나가 남성 페미니스트로 발표도 했었지만 이제는 내려놓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20대에서 남녀 문제는 봉합할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넘어섰고, 남녀가 교차할 수 있는 지점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그의 단정적인 표현은 페미니즘의 논법을 착실하게 따라 가려고 노력했던 그의 항복 선언처럼 들렸다 그는 페미니즘과 관련해 꽤 길게 설명하면서 "페미니즘에는 제가 모르던 세계가 많더라구요"라고 말했다. 그는 자기보다 어린 세대는 남녀 갈등이 더 심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찬근 세대의 페미니즘 논쟁 이야기는 20대의 대분열이라고 읽히는데, 그 이야기를 할 때 그의 표정은 유독 어둡고 우울해 보였다.

그에게 처음 듣는 말이 적지 않았는데 그 중에 하나가 '대한민국민족주의'라는 단어였다. 1948년 한반도 남쪽에 수립된 대한민국, 민주화와 산업화에 성공한 현대 한국에 대해 강한 자부심과 긍지를 느끼는 감정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대한민국민족주의는 시기적으로는 1948년 이후, 지리적으로는 휴전선 남쪽, 인종적으로는 한국인들이니 1948년 이전은 제외되고 한반도 북쪽에 사는 사람들 역시 대상이 아니다. 북쪽에 있는 인민들과는 같이 나눌 기억이 없으니 같은 선상에서 놓고 말할 대상이 아니라는 거다. 급격히 늘고 있는 해외 이주민들이 이 영광을 같이 누릴 대상인지는 애매해 보인다. 개방적 민족주의라기보다는 폐쇄적인 성격이 더 강해 보이는데 문은 좁고 울타리는 높은 만큼 자부심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1948년 이후 대한민국은 일본과 미국을 어설프게 베낀 것이 사실이지만, 대한민국의 뿌리 없음은 가볍게 웃어넘기고 그 성취를 긍정적으로 보자는 것인데 유찬근도 이 주장에 공감한다고 했다. '한민족'보다는 '대한민국민족'이 더 개방적일 수 있기 때문이라는데 사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안되는 면이 많았다. 다만 이것 저것 좋은 것만 챙겨서 민족이라는 가방 안에 넣겠다는 말처럼 들렸다.

유찬근 세대가 연대를 추구하고 무리짓기를 달가워하지 않는 세대라도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자기 세대의 절반을-물론 페미니즘이 세대별로 형성되는 것은 아니지만-적의에 가득찬 경쟁자로 여겨야 한다는 것은 그 세대의 커다란 손실이다. 페미니즘을 말할 때 유찬근의 표정이 어두웠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 아니었을까.

6. 386세대의 순장조가 되고 싶다는 그의 말은 다소 당혹스러웠다. 문자, 책, 글이 압도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누리던 시대에 대한 동경을 그렇게 표현할 수 있겠으나 어떻게 봐도 퇴행적인 말이다. 활자의 궁극적 우월성을 믿지도 않고 그 환상이 가차 없이 깨져 나가는 시절이니 더욱 불안하지만 그래도 활자를 통한 지식의 창조와 전수가 앞으로 20년은 계속되지 않겠느냐고 그는 되물었다. 그래서 이제라도 그 세대의 운명에 동참하고 싶다는 것이다. 책을 보고 글을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싶다는 말로 이해했다.

그사람-유찬근
유찬근은 자기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는 젊은 역사가이자 문필가다. 역사가의 미덕은 사건과의 거리 두기에 능하다는 점이다. 역사는 과거의 일이고 나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일이라는 태도는 객관적인 사실 파악에 도움이 된다. 유찬근의 글을 보면 그런 것이 느껴진다. 몸으로 사안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지식으로만 사실을 바라보는 자세가 주는 미덕 말이다. 감정이 앞서지 않는다. 그래서 편견이 보이지 않는다. 애정이 묻어 나긴 하지만 그 애정 때문에 사안이 비틀리거나 구부러지지 않는다.

그는 과거를 정리하는 일에 관심이 있다고 했다. 사회구성체 논쟁처럼 한 시대를 점령했던 뜨거운 논쟁이 아무런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패러다임의 변화에 따라 많은 것이 한순간에 뒤집어지고 무너지는 것이 안타깝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사람의 몸속에는 확실히 보수주의자의 피가 흐르고 있다. 역사를 가슴이 아니라 머리로 구성하는 사람이 과거를 다시 써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싶다.

대화 중에 그를 '찬근 씨'라고 불렀지만 사실 마음 속으로는 '찬근 쌤'이라고 부르고 싶었다. 그러고 싶을 만큼 그는 박식했고 생각이 깊었다. 저런 청년이라면 어떤 일도 넉넉히 감당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은 어두웠지만 표정은 유쾌했고 그와의 대화는 즐겁고 유익했다.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청년문사 유찬근'이 있듯이 우리 사회 각 분야에는 다양한 '유찬근'이 있을 것이다. 유찬근은 그를 포함한 그의 세대들이 함께 일할 수 있는 근육을 갖고 있는지 의문을 표시했지만, 아무리 강한 개인도 공동체보다 강할 수는 없다며 공동체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었다. 유찬근과 그의 또래들이 만들어갈 공동체가 '한민족 공동체'일지, 아니면 '동아시아 공동체'일지, 아니면 '대한민국 공동체'일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다가오는 날들은 그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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