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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김정은이 거론한 '양심'…"속에서 내려가지 않는다"

김정은 위원장이 태풍 피해를 입고 복구작업이 진행 중인 함경남도 검덕지구를 현지 지도했습니다. 태풍에 의한 피해가 아직도 복구되지 않은 상황에서 현지를 둘러보고 복구 작업을 격려하는 차원입니다.

그런데 현장을 둘러보는 과정에서 김 위원장이 했다는 말이 눈에 띕니다. 노동신문 보도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김정은 검덕지구 시찰 (사진=노동신문 홈페이지 캡처, 연합뉴스)

"(김 위원장은) 살림집 건설장으로 가시는 령길에서 산비탈면에 단층 살림집들이 들쑹날쑹 비좁게 들어앉아있는 광경을 보시고 못내 심려하시었다."
"(김 위원장은) 반세기도 훨씬 전에 건설한 살림집들이 아직 그대로 있다고… 너무나 기막힌 환경과 살림집에서 고생하고 있는 인민들의 실상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였다고, 이번에 저런 집들도 다 헐어버리고 새로 지어주지 못하는 것이 속에서 내려가지 않는다고 말씀하시었다."
"인민들의 살림살이에 대해 응당한 관심을 돌리지 못하여 이렇게 뒤떨어진 생활 환경 속에서 살게 한 데 대하여 심각히 자책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오늘 우리가 이런 지방 인민들의 살림 형편을 보고서도 외면한다면… 정말 양심이 허락지 않을 것 같다고 말씀하시었다."

태풍 피해 입은 함경남도 검덕지구의 복구된 주택들.

● 북중 국경지역에서 관찰되는 낡은 북한 집들

북중 접경지역을 여행해보신 분들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강 저편의 북한 마을들을 보셨던 기억이 있으실 것입니다. 강을 따라 북한 지역들을 둘러보다 보면 느끼게 되는 것 중의 하나가 정말 집들이 너무 낡았다는 것입니다. 저도 2014년에 북중 접경지역을 둘러보면서 '어떻게 저런 집에서 사람이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도 이번에 검덕지구를 둘러보면서 낡은 집들이 눈에 들어왔던가 봅니다. 평양과는 완전히 천양지차인 낡은 집들을 보면서 '어떻게 저런 집에서 사람이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나 봅니다.

김 위원장이 "속에서 내려가지 않는다" "양심이 허락지 않을 것 같다"는 표현까지 쓴 것을 보면 인민들의 곤궁한 삶에 대해 나름 느낀 바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것 자체가 다 의도된 것 아니냐는 비판을 제기하실 분도 있겠지만, 김정일 시대에는 최고지도자가 이렇게 인민들과 교감하는 듯한 언급을 한 적이 거의 없습니다.

김정일과는 다른 김정은의 리더십은 당 창건 75주년 열병식 연설에서도 드러났습니다. 김 위원장은 연설의 상당 부분을 인민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는데 할애했습니다. 감정에 복받치는 듯 울먹이기도 했고, 자신이 나라를 이끌고 있지만 노력과 정성이 부족해 인민들이 생활상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자책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것 역시 모두 연출이라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연출이라면 정말 고도의 연출을 한 셈입니다. 하지만 조선중앙TV를 모니터했던 제 눈에는 김정은의 눈물이 '의도적 연출'로만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김정은 감덕지구 시찰 (사진=노동신문 홈페이지 캡처, 연합뉴스)

● 김정은은 인민을 사랑하는 지도자인가

그렇다면 김정은은 정말 인민을 사랑하는 지도자일까요? 북한 매체들은 김 위원장을 인민 사랑의 지도자라고 열심히 선전하고 있지만 그렇게 보기는 어렵습니다. 김 위원장이 정말 인민들의 곤궁함을 해결하려는 진정 어린 의지가 있다면 그렇게 할 방법이 충분히 있는데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북한의 어려움은 핵 개발과 이로 인한 국제적 고립에서 비롯됩니다. 김 위원장은 핵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북한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더 정확히 말하자면 북한 인민이 아니라 김일성 일가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방을 해서 세계체제에 편입되면 인민들의 생활은 향상되지만, 김정은만 보면 눈물까지 줄줄 흘리는 절대적이고 신성화된 김일성 일가의 절대권력은 유지되기 힘들어집니다. 외부의 정보가 유입되는 상황에서 김일성 일가에 대한 허구적인 우상화는 설 자리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 김정은, 개방 가능할 정도로 독재의 수준을 낮출 수 있을까

김 위원장이 개혁개방을 하면서 독재권력을 유지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금의 중국도 개혁개방을 했지만 공산당 독재체제는 유지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시진핑 주석의 권력은 갈수록 강화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시진핑의 권력이 강화되고 있다고 한들, 중국은 북한처럼 '최고지도자 이외의 것은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말라'는 사회가 될 수는 없습니다. 해외를 자유롭게 오가고 외부 정보에도 노출돼 있는 중국 인민들이 상식을 넘어서는 수준의 우상화와 신격화를 받아들이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김 위원장이 인민 생활을 향상시키기를 원한다면 개방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개방을 통해 외부 정보 유입을 어느 정도 허용하려면 지금보다는 독재의 수준을 낮춰야 합니다. 박정희 유신독재나 전두환 정도의 독재만을 하겠다고 해야 개방의 가능성이 열립니다. 김 위원장이 북한에서 가지고 있는 절대권력을 어느 정도는 내려놓아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김 위원장이 과연 그런 결단을 할 수 있을까요. 유감스럽게도 독재자가 스스로 권력을 제한한 사례는 역사적으로 거의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사진=노동신문 홈페이지 캡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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