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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엄정화의 눈물에 니트 청년이 떠오른 이유

[인-잇] 엄정화의 눈물에 니트 청년이 떠오른 이유

장재열|비영리단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을 운영 중인 상담가 겸 작가

SBS 뉴스

작성 2020.10.14 11:01 수정 2020.10.15 13:58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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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좀 부끄러운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지난 주말, 저는 엉엉 울었습니다. '놀면 뭐하니-환불원정대편'을 보다가 말이지요. 예능을 보다 울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만, 엄정화 씨의 모습에서 그만 울컥해버리고 말았지 뭡니까.

그동안 가수를 '안' 하는 줄 알았던 그녀. 앨범 반쪽을 내고 '곧 Part 2가 나온다'고 했는데, 그 후로 몇 년이 넘게 소식이 없었던 그녀. "이제 엄정화 연기자로 전향했잖아"라는 댓글을 보며, '그러게. 이제 앨범 안 내나 보다'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녀가 갑상선암 수술 이후로 소리를 내는 것에 완전히 겁먹은 채, 희망을 잃은 상태였단 걸 전혀 모른 채 말이지요. 하지만 그녀의 속사정을 몰랐던 시청자는 저뿐이 아니었을 겁니다.

지난 MBC '놀면뭐하니' 방송 화면
지난 방송은 과히 '엄정화의 회복과 치유'라고 해도 손색이 없었습니다. 보컬트레이너 앞에서 이제는 내가 더 이상 못내는 음역대라고 겁먹던 그녀는, 한참 눈물을 머금은 채 연습에 연습을 이어갔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요? 딱 한 음절 소리가 났을 때, 그녀는 "어, 되네?"라는 말과 동시에 주저앉아 펑펑 눈물을 쏟아냈지요. 수술로 성대가 손상된 이후, 무대에 돌아가고픈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을까요. 하지만 혼자 고군분투했던 긴 세월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지 못했던 겁니다. 결국 완전히 위축되어 '난 이제 이 음역대는 안 된다' 며 자신의 한계를 그어버리고 말았던 거지요.

오열하는 그녀의 눈빛은 뭔가 복잡 미묘해 보였습니다. 기쁘기도 했겠지만, 위축된 채 흘려 버린 지난 시간들이 떠올라 얼마나 아깝고 허무했을까요. '이게 되는 음역대였다니. 이렇게 누군가의 도움으로 되는 일이었다니. 혼자서만 애쓰지 말고, 누군가에게 한번만 더 도움을 청해볼 걸.' 짧은 순간 얼마나 많은 생각들이 뇌리를 스쳤을까요. 저는 그 모습에서 왜 뜬금없이 상담을 하며 만나온 니트(Not currently engaged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미구직 상태) 청년들의 모습이 떠올랐는지 모르겠습니다.

주변에서는 제게 자주 질문하십니다. "아니, 재열님. 본인들이 일 안 하겠다고 방에 틀어박혀서 놀고 있는 애들을, 대체 왜 도와줘야 되는 겁니까?" 라고요. 그런데 말입니다. 사실 그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요, 물론 개인마다 조금씩은 다르지만, 엄정화 씨의 암 수술처럼 큰 상처가 자리 잡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걸 극복해보고자, 혼자서 고군분투하며 노력했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사람은 한 번의 실패에 바로 포기하거나, 놓아버리지 않거든요.
 

*SBS 보이스(VOICE)로 들어보세요.

청년, 니트족, 고민, 생각
그러나 자신의 생각 안에서 '해볼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보았음에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때, 그래서 더 이상의 시도는 실패의 경험만 적립되는 것 같아서 두려워질 때. 바로 그 때 사람은 동굴로 숨어듭니다. 이전에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든, 열정적인 사람이었든 그것은 상관이 없습니다. 이제는 다른 존재가 되어 버렸다고 여기니까요. 그저 사람마다 조금씩 숨어드는 형태가 다를 뿐이지요. 시대의 팝 디바는 목소리를 숨겼고, 니트 청년들은 오롯이 자기 자신을 숨겨버리고요.

그렇게 쌓여온 실패 때문에 한계를 지어버릴 수 밖에 없었던 사람에겐 '야, 더 해봐'라는 말이 가장 큰 폭력일지 모릅니다. 혼자서는 방법을 더 쥐어 짜낼 수 없는 상태라, 무력해진 것을 나약함이나 태만으로 치부해서는 안 될 테니까요. 엄정화가 목소리를 되찾을 수 있었던 건 더 해보라는 말 대신 함께 그녀의 문제를 고민하고 손을 이끌어준 두 사람. 지미유(유재석)와 보컬트레이너의 존재 덕분이었습니다. 아마 니트 청년들에게도 그런 존재가 필요한 시대는 아닐까요? '겁먹지 말고 밖으로 나와, 뭐라도 해!' 라고 호령하는 교관이 아닌, 손을 잡아 경계 밖으로 딱 한 발만 '같이 나가주는' 사람. 바로 그런 존재 말입니다.

장재열 네임카드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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