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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특허 배상 금액이 3조 7천억 원…'블록버스터의 꿈' IP 시대

[월드리포트] 특허 배상 금액이 3조 7천억 원…'블록버스터의 꿈' IP 시대

김용철 기자 yckim@sbs.co.kr

작성 2020.10.12 09:19 수정 2020.10.15 13:27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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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전기자동차 배터리 관련 영업비밀 침해 소송으로 지식재산(IP: Intellectual Property)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에서는 세계적인 네트워크 장비업체 시스코(Cisco Systems)에 대한 천문학적 규모의 손해배상 판결이 화제다.

미국 버지니아주 노퍽(Norfolk) 지방법원의 헨리 모건(Henry Morgan) 판사는 지난 5일 중소기업 센트리피털 네트웍스(Centripetal Networks Inc.)가 시스코를 상대로 제기한 특허침해 소송에서 시스코에 19억 달러(8일 환율 기준 한화 2조 1천897억 원)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모건 판사는 시스크의 특허 침해로 센트리피털이 입은 손해는 7억 5천580만 달러로 산정됐지만, 시스코의 특허침해가 고의적이고 악의적(willful and egregious)이었다고 판단해 배상금액을 원래 산정됐던 손해액의 2.5배인 19억 달러로 올렸다.

모건 판사는 여기에 더해 앞으로 3년 동안 특허 침해 관련 제품 매출의 10%, 그다음 3년 매출의 5%를 로열티로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특허 전문매체 IAM미디어는 이렇게 산정된 로열티는 첫 3년 동안 매년 1억 6천770만 달러에서 3억 달러, 그다음 3년 동안은 매년 8천380만 달러에서 1억5천만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손해배상 판결 금액 19억 달러에 6년 동안 받을 로열티가 최대 13억 5천만 달러에 달해 시스코가 특허 침해로 지불해야 할 손해배상금액은 최대 32억 5천만 달러(3조7천456억 원)에 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스코에 대한 특허 침해 배상 판결 금액 19억 달러는 미국 역사상 가장 큰 특허 침해 배상 판결이었다고 IAM미디어는 전했다. 이전 최대 특허 배상 금액은 2007년 MP3 기술과 관련해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를 상대로 루슨트(Lucent)가 소송을 제기해 승소한 15억 달러 배상 판결이었다.

모건 판사는 시스코에 특허침해 제품에 대한 판매중지 명령을 내리지는 않았다. 모건 판사는 판결문에서 "특허 침해 제품에 대한 사용중지 명령은 시스코의 고객들과 국방, 그리고 전 세계 인터넷의 안전에 의도하지 않은 엄청난 피해를 줄 수 있다"고 밝혔다. 시스코가 전 세계 네트워크 장비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대목이다.

이번 재판은 배심원 평결이 없이 모건 판사의 단독 판결로 이뤄졌다. 코로나19 감염을 우려해 배심원 평결을 채택하지 않았고, 수개월에 걸친 재판도 줌(Zoom) 시스템을 통한 화상으로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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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버지니아주 헌든(Herndon)에 있는 센트리피털 네트웍스는 "미국 국토안보부의 지원으로 네트워크 보안시스템을 개발한 뒤 시스코와 회의를 하고 기술 설명을 했는데, 시스코가 임의로 우리의 발명을 네트워크에 포함시켰다"고 밝혔다. 모건 판사는 "시스코가 센트리피털과 만난 뒤 1년도 안돼 센트리피털의 관련 기능이 포함된 제품을 출시한 것은 우연일 수 없다"고 말했다.

시스코 측은 "시스코의 혁신적인 제품은 센트리피털의 특허보다 몇 년을 앞서는 만큼 특허는 무효이고, 특허 침해는 없다. 특허침해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들을 제시했는데도 이런 판결이 나온데 대해 실망스럽다. 연방항소법원(CAFC)에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센트리피털 측은 "2015년 시스코와 만나 제휴 협상을 하기 전까지 우리의 매출은 매년 2배씩 증가하고 있었다. 우리가 2016년 시스코에 우리의 발명을 얘기한 뒤, 시스코 관계자들이 계속 찾아와 더 많은 정보를 요구했다. 이번 판결은 작고 혁신적인 기업들에게 중요한 승리이다"라고 말했다.

시스코는 2017년 '암호화된 트래픽 정보분석 프로그램(Encrypted Traffic Analytics)'을 발표했다. 당시 네트워크 보안 책임자였던 데이비드 게클러(David Goeckeler)는 "이 기술이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됐던 네트워크 보안 문제를 해결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시스코 측은 모건 판사의 부인이 시스코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며 기피신청을 하기도 했지만, 모건 판사는 부인이 중개인의 권유로 시스코 주식을 매수한 사실을 알기 전에 판결문은 쓰지 않았지만 이미 재판의 결론을 내렸었다며 시스코의 기피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센트리피털이 1심에서 천문학적 배상 판결을 받았지만, 최대 32억 5천만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배상금을 받기 까지만 길고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시스코가 항소 의사를 밝혔듯이 연방항소법원(CAFC)의 항소심에서 이겨야 하고, 시스코가 제기할 것으로 예상되는 미국 특허심판원(PTAB)에서의 특허 무표소송에서도 이겨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배상 금액이 크게 줄어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시스코에 대한 천문학적 특허 배상 판결은 최근 미국 법정에서 특허 침해에 대한 보다 엄격한 판결이 이뤄지고, 배상 판결 금액도 크게 확대되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특허 침해 소송에 시사하는 바가 큰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IAM미디어가 글로벌 특허DB 분석업체 렉시스넥시스(LexisNexis)의 '렉스 마키나(Lex Machina)'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올 들어 이뤄진 특허침해 배상 가운데 1억 달러가 넘는 경우가 9건에 달했다.

자료: Lex Machina
1억 달러 규모 이상의 특허 침해 배상 판결은 지난 2017년 2건, 2018년 1건에서 2019년 4건으로 늘어난데 이어 올해는 9건으로 작년보다 배 이상 늘어났다. 특허 침해 배상을 최종적으로 받기까지는 아직 여러 가지 절차가 남아 있지만, 올해에만 1억 달러(우리 돈 1천152억 원) 규모 이상의 특허 배상 판결이 9건이나 된 것은 법원에서 특허 보유자들에게 유리한 분위기가 조정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시스코와의 특허 침해 소송에서 승소 판결을 받은 센트리피털의 최고 경영자(CEO) 스티븐 로저스(Steven Rogers)는 "특허의 보호 없이는 신생기업들이 대기업들과의 큰 싸움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과의 자동차 배터리 관련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로부터 조기 승소 판결을 받은 LG화학은 수 조원의 배상금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를 상대로 반도체 관련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한 카이스트는 지난 2월 미국 법원에서 2억300만 달러의 배상 판결을 받고, 삼성전자와 합의 종결했다.

기술의 중요성이 갈수록 중요해지면서 특허 침해에 대한 배상 판결 금액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특허 배상 판결 금액은 터무니없이 적고, 대기업과의 특허 소송에서 중소기업이 최종 승리하는 경우는 그 예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특허 법정은 대기업에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최근 SK이노베이션과의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서 미국 ITC로부터 조기 승소 판결을 받은 LG화학이나 삼성전자와의 반도체 특허 침해 소송에서 미국 텍사스 법원으로부터 승소 판결을 받은 카이스트가 소송 장소로 미국을 택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처럼 한국의 특허에 대한 보호 정도가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21세기는 특허와 디자인, 저작권 등을 통칭하는 지식재산(IP: Intellectual Property)의 시대라고 한다. 개인의 창의와 노력의 산물인 지식재산에 대한 철저한 보호야 말로 더 나은 계층으로 이동할 수 있는 계층 간 사다리가 끊어지고 역동성이 떨어진 우리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비결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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