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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휠체어농구' 신생팀, 춘천의 돌풍…또 다른 한국 농구의 도전

[취재파일] '휠체어농구' 신생팀, 춘천의 돌풍…또 다른 한국 농구의 도전

이정찬 기자 jaycee@sbs.co.kr

작성 2020.10.08 09:25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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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를 앞둔 춘천장애인스포츠센터에는 에너지가 넘쳤다. 휠체어농구리그 최고 스피드를 자랑하는 이치원(40)은 거침없이 코트를 휘저었다. 십여 대의 휠체어가 마치 경주용 카트처럼 속도를 냈다. 좁은 공간에서 이뤄지는 급격한 방향 전환. 선수들은 몸을 아끼지 않았다. '쿵' 소리와 함께 놀이공원의 범퍼카처럼 여기저기서 충돌이 이어졌다. 코트에 쓰러지고도 오뚝이처럼 일어나 다시 부닥쳤고, 얼마나 격렬한지 휠체어 바퀴가 빠지기도 했다. 주장 김상열(37)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스스로 바퀴를 정비하고는 다시 힘차게 굴려나갔다. 지난 8월 개막한 휠체어농구리그 1라운드에서 3전 전승, 깜짝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춘천의 훈련장에는 의욕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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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대표 센터 출신 조동기 감독 "휠체어농구도 똑같은 농구"

지난해 12월 창단한 신생팀의 돌풍, 그 중심엔 조동기(49) 감독이 있다. 국가대표 센터 출신으로 여자농구팀 하나은행의 사령탑을 맡기도 했던 조 감독은 프로무대에서 쌓은 경험을 휠체어농구에 과감히 접목했다.

"비장애인 농구나 휠체어 농구나 농구라는 점에선 일맥상통하죠. 과감하게 골밑, 좁은 공간을 파고들라고 했어요."

휠체어농구는 처음이다 보니 시행착오도 적지 않았다.

"휠체어는 폭이 넓잖아요. 사이를 뚫고 지나가는 게 굉장히 어렵더라고요. 그런데도 선수들이 눈 딱 감고 '한 번 해보겠습니다' 이런 말을 많이 해줘요. 제가 선수 복이 많아요."

휠체어농구리그 '신생팀' 춘천의 국가대표 센터 김상열이 서울과 경기에서 슛을 시도하고 있다.
현역 시절 조동기와 함께 코트를 누빈 이들은 그를 '영리한 센터'로 기억한다. 중앙대 동기, 김승기 인삼공사 감독(48)은 "조 감독이 골밑과 외곽, 어디서든 패스를 참 잘했다"고 떠올렸다. 197cm 장신에도 발이 빨랐고, 주특기는 리버스 레이업이었다. 그래서 별명이 '리버스 동기'였다. 1995년 '호화군단' 상무에서 기량에 꽃을 피웠다. '람보 슈터' 문경은 SK 감독, '컴퓨터 가드' 이상민 삼성 감독, '캥거루 슈터' 조성원 LG 감독 등이 입대 동기다. 역대 최강 군인팀이라는 평가 속에 '달리는 농구'로 95-96, 96-97 두 시즌 연속 팀이 농구대잔치 결승에 오르는 데 힘을 보탰다. 이때 활약을 발판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 무대까지 밟았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대한민국 남자농구가 마지막으로 본선에 오른 올림픽이었다. 조 감독에게 속공과 끈기를 배운 춘천은 올 시즌 개막전에서 20점 차 대역전극을 이룬데 이어 지난 시즌 우승팀 서울을 꺾고 3연승을 질주했다.

1996 애틀랜타 올림픽 농구대표팀. 오른쪽에서부터 조동기, 정경호, 현주엽, 최인선 감독, 우지원(아래), 김남기 코치, 전희철.
● 20년 만에 본선 진출…내년 도쿄에서 일낸다!

휠체어농구 경험이 없는 조동기 감독이 신생팀의 사령탑을 맡았을 때, 주변에선 우려와 기대가 섞였다. 이치원과 김상열 등 국가대표 선수들을 영입했지만 선수층이 얇은 국내 현실에서 선수별 기량차가 컸다. 조 감독은 팀 구호를 "팀 퍼스트(Team First)"로 정했다. 승패를 떠나 흥을 내며 팀 분위기를 밝게 유지하는 데 중점을 뒀다. "꼭 깔끔하게, 정제된 플레이만 할 수는 없다 " "우린 젊고 터프하고 열심히 하니까 장점을 살리자"고 선수들을 독려했다. 종종 조 감독이 무리한 요구를 하면 휠체어농구에서 잔뼈가 굵은 양훈모(48) 코치가 절충안을 냈고, 선수들은 믿고 따랐다.

스무 살 때 스키 사고로 다리를 다친 뒤, 휠체어농구에 입문한 김상열은 "농구대잔치 시절부터 조동기 감독 팬이었다"며 "이 팀에 오길 정말 잘한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소치 패럴림픽과 평창 패럴림픽에서 알파인스키 국가대표로 활약한 이치원도 "점프가 없다는 점이 다를 뿐 비장애인 농구에서 기술적으로 배울 점이 많다"며 "감독님께서 선수 개개인의 장점을 살려주시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1라운드 전승행진으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춘천휠체어농구단.
조 감독은 선수들 눈에서 열망을 읽고 있다. 우리나라 휠체어농구는 지난해 아시아-오세아니아 선수권에서 은메달을 따내며 2000년 시드니 대회 이후 20년 만에 도쿄 패럴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올림픽 대표 출신 조 감독은 '2021 도쿄 패럴림픽 신화'에 발판을 놓겠다는 포부다. "선수들이 '올림픽' 얘기를 하면 눈빛이 달라진다"며 "조금이라도 도움을 줘서 우리 선수들이 도쿄에서 좋은 성적을 내길 꿈꾼다"고 희망을 얘기했다.

춘천이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는 휠체어농구리그는 내일(9일) 2라운드에 돌입한다. 춘천은 10일, 지난 시즌 준우승팀 제주와 시즌 첫 맞대결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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